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316
316화
호천은 허윤을 업고 벽호공으로 가파른 절벽을 올랐다. 소림사의 경내 뒤쪽으로 가게 되는 길이다.
평소라면 아무리 절벽이라 해도 감시하는 무승들이 있을 텐데, 그런 이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있긴 있었던 듯했다.
그러나 모두 죽어 있었다.
“대종사가 이쪽으로 향한 게 맞군.”
호천이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를 만나면 막을 수 있겠나?”
“글쎄.”
“일전에 무상을 쓰러뜨린 건 천마개계천공지검이었네. 천마신공의 경지는 일반적인 경지를 따르지 않지만, 그가 천마검법까지 익혔다면 마도에선 탈마…… 정파에선 앙연 너머의 무명경 이상으로 보아도 될 걸세.”
그야말로 일반 무림인들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높은 경지다.
허윤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가 원하는 걸 얻는 건 막기 어려울 거야. 다만 그를 쫓음으로써 그 아이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지.”
“꼭 이길 필요 없다면 할 만해.”
호천이 잠시 말을 멈추고 절벽을 오르다가 말했다.
“오늘 살아간다면, 마도에 있다는 그 애의 정체를 말해 주겠나?”
허윤은 실소했다.
“이미 예상하고 있잖나.”
“하하. 역시 그런가. 하지만 자네 나이가 영 가늠이 안 되어서 말이야. 아무리 봐도 환골탈태를 한 체질로 보이진 않는단 말이야.”
“낙 학사가 그러더군. 전혀 무골로 보이지는 않고, 느껴지기에 점골(占骨) 같다고.”
“뭔가 하긴 한 거군. 내가 본 아이가 자네와 닮았던데, 설마 나이가…….”
허윤이 고민하다가 사실을 밝혔다.
“자네와 비슷할 걸세.”
“하하하. 이거야 원. 어쩐지 동년배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니.”
호천이 말했다.
“그럼 친구로군.”
친구라는 말에 허윤은 기분이 묘해졌다.
젊어진 이후, 처음으로 사귄 동년배 친구라.
“죽지 말게.”
“자네야말로.”
* * *
야율황은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나 걸어간다기보다는 한꺼번에 수백 계단을 뛰어내리는 것에 가까웠다.
벽에 걸린 횃불의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시커먼 어둠이 완전히 잠식하고도 한참을 더 내려간 뒤에야 작은 호롱불 하나가 보였다.
마침내 가장 밑바닥까지 온 것이다.
거기엔 돌로 만든 작은 모옥이 있었는데, 나이가 몇이나 되었는지 모를 노인이 나와 있었다.
야율황이 가볍게 내려서자, 노인이 허허롭게 웃었다.
“이 지하 뇌옥의 밑바닥에 얼마 만에 찾아온 손님인지 모르겠군. 차 한잔할 텐가?”
야율황은 흥분했는지 눈을 크게 뜨고 마기를 드러내며 말했다.
“건방진 놈. 주인이 오셨는데 차 한잔? 어서 천마경(天魔鏡)을 내놓지 않고 무엇 하느냐.”
천마경!
노인이 빙긋 웃었다.
“다 알고 온 것 같은데, 뭐 그리 급해.”
돌연 호롱불이 훅 꺼지더니 노인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동시에 들려왔다.
― 어차피 가져가지도 못할 것을.
육합전성! 최상승의 전음입밀 수법!
그것만 봐도 노인의 무공이 어느 수준인지 알 만했다.
― 여기까지 찾아서 들어온 것만도 대단하이. 당신이 이곳까지 온 걸 보면, 소림사는 이미 멸문한 건가?
야율황으로서도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곳에서 안법으로 보려면 최소한의 빛이 필요한데, 이곳은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둠이었다.
그 누구도, 야율황이라고 해도 앞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야율황이 손가락 다섯 개를 쭉 펼쳐서 노인이 있음직한 곳을 향해 뻗었다.
다섯 가닥의 지풍이 암벽을 강타했다.
퍼억! 퍽퍽! 퍽 퍽퍽.
연속으로 몇 번이나 지풍을 날렸으나 노인에게는 닿지 않은 듯했다.
― 이곳에서 지낸 지 몇십 년은 된 듯하군. 나야 눈 감고도 다닐 수 있으나 당신은 다르지. 좋은 말로 할 때 돌아가지 그러나.
야율황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큭큭큭. 숨소리가 떨리는데 허세를 부리다니. 미천한 종놈이 감히.”
― 허세라니. 소림사를 무너뜨리고 제아무리 많은 인원을 데려왔어도, 이 무저갱에서는 나를 당할 수 없다네.
“소림사는 여전히 그대로다. 그리고 굳이 데려왔다고 하면 골마가 정도일까? 그리 많은 인원은 아니지.”
― 허허, 말도 안 되는 소리. 소림사를 그냥 두고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올 수 있단 말인가.
“그것뿐이겠느냐. 남십자성의 대부분이 내 명령에 따라 강호에 나왔다. 아니지. 구세쌍성과 남응성이 죽었으니 남은 건 너와 화령성 뿐이로군.”
노인이 당황했다.
―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머지 삼성을 모두 끌어냈단 말인가? 아니…… 그중에 둘이 죽었다니. 대체 무슨 일이…….
야율황의 마기가 짙어졌다.
“네놈도 복종하면 살려 줄 것이로되, 그게 아니라면 이 자리에서 죽이겠다. 이제 닥치고 천마경을 내놓아라, 홍성(紅星)!”
홍성! 남십자성의 수장!
그가 소림사의 지하 뇌옥 최고 지저에 있던 것이다!
노인 홍성의 살기가 지저를 감쌌다.
― 네가 쌍둥이와 남응성을 죽였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다.
“건방진 놈들. 언제는 주인으로 인정하였느냐?”
야율황도 마기를 풀풀 뿜어냈다.
“네놈들은 일족의 맥을 잇기 위해 대종사의 피로 연명하며 대가로 무력을 바쳐 왔다. 하나 신주를 찾게 되면 네놈들의 효용은 무의미해지고 버려지겠지. 그래서 마지막 열쇠가 될 천마경을 이 소림사의 지하 뇌옥에 숨기고 오랫동안 지켜 온 것이다. 그게 대대로 남십자성의 수장인 홍성의 역할이지. 어때, 내 말이 틀린가?”
홍성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말했다.
― 대단하군. 그렇게까지 의심하기는 쉽지 않았을 터인데.
“크크크. 내가 대종사가 된 후, 네놈 중 하나에게서 배신자의 관상을 보았기 때문이지.”
― 관상?
홍성이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으나, 오래전에 가지고 들어온 홍환도 떨어진 지 좀 됐는데 잘됐구나. 네 피와 살이 나를 좀 더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죽어라!
순간 아주 작게 빠각, 하는 돌 소리가 났다.
야율황이 번개처럼 몸을 돌려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
퍽!
피비린내가 나면서 쿵 하는 둔한 소리가 이어졌다.
“쿨럭!”
홍성이 기침을 했다.
“이, 이래서 엉뚱한 곳에 천공지를…… 이런 잔꾀에 당하다니……!”
야율황이 부순 벽에서 떨어진 돌조각을 밟은 것이다.
야율황이 소름 끼치는 웃음을 지으며 마기를 뿜었다.
“천마경을 가져와라. 거부할 때마다 네 뼈마디를 한 개씩 뽑아내 씹겠다. 자…… 어쩌겠느냐?”
“흐흐흐. 어떤 협박을 해도 천마경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홍성이 양손을 교차했다가 펼치며 묵색의 기형도를 날리려 했다.
“죽어라!”
야율황은 한 손을 치켜들었다. 그의 손에 도 한 자루가 들렸다.
그가 내공을 집중하자 우르르르르! 지하 뇌옥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흔들리고, 위에서 수없이 돌이 떨어졌다.
홍성의 얼굴이 굳었다.
이것은 설마 천마도법?
“천마굉세명동태도(天魔轟世鳴動太刀)! 벌써 도법까지!”
야율황의 입가에 마기가 담긴 차가운 냉소가 흘렀다.
“넌, 죽지 마라.”
그가 펼친 일도양단의 도법에 홍성의 기형도가, 뇌옥이, 천지가 좌우로 갈라졌다.
갑자기 모든 소리가 잡아먹힌 것처럼 잠잠해졌다.
그리고 얼마 뒤.
지하 뇌옥의 밑바닥에서는 웃음과 함께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끄아아아아아!
* * *
골마가와 소림사의 기묘한 내공 대결은 한동안 이어졌다.
언제까지라도 이어질 것 같던 그것이 멈춘 건, 다른 데서도 불이 붙었기 때문이었다.
“어?”
여기저기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골마가와 소림사는 서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여태 당연히 상대방이 그랬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왠지 아닌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여 어느 순간, 골마가의 고수들이 눈짓을 하더니 좌우의 수풀을 향해 강력한 장풍을 쏘아 냈다. 소림사의 승려들도 백보신권으로 권풍을 날렸다.
콰아앙!
불길이 갈라지며 꺼지고, 덩굴이 날리며 나무가 부러졌다.
그런데 거기에서 웬 수상한 자들이 엉거주춤 나타난 게 아닌가!
그중 한 명이 갑자기 어색하게 머리를 긁었다.
“저희 수상한 사람 아닙니다. 지나가다가 길을 잃어서 그만…….”
말로는 길을 잃었다는데 시커먼 복면을 쓰고 화섭자를 든 채였다. 그들이 불을 지르고 있던 게 분명했다.
“누가 봐도 수상하게 보이는데?”
복면인이 되레 화를 냈다.
“거, 아니라는데 왜 사람 말을 못 믿고 그러셔! 속고만 살았나?”
“뭐 하는 놈들이야, 이거?”
소림사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였다.
“허어, 시주들은 뭐 하는 분들이오?”
골마가와 소림사가 서로를 보았다.
“너희 중놈들이 사주했나?”
“우리가 미친놈도 아니고 왜 우리 산에 불을 지르겠는가.”
길쭉한 복면인과 머리를 찰랑거리는 복면인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돌렸다.
“걸렸다!”
“튀어!”
골마가도, 소림사도 궁금해서라도 잡지 않을 수 없는 희한한 상황이었다.
“중놈들에게 뺏기지 마라!”
“마인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취해야 하…….”
한데 가장 먼저 달리던 소림사의 노승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그에게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퍼어어엉!
경전의 낱장이 나풀거리고 날렸다.
복면을 쓴 백발 수염의 노인이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누가 감히 나 도……!”
곰방대를 든 복면인이 급하게 소리쳤다.
“형님! 그만!”
백발 수염의 복면인이 말을 하다말고 우물거렸다.
“누가 감히 겁박을…… 음…….”
그의 도경을 맞은 소림승이 키가 큰 백발 수염의 복면인을 위로 올려다보았다.
띠꺼운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궁금한 표정이었다.
“지금 뭐라고 하였소? 도, 뭐?”
순간 복면 노인의 도경이 다시금 소림승의 정수리로 떨어졌다.
꽈앙!
발밑이 터져 나가며 소림승이 발목까지 파묻혔다.
그러나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도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짓곤, 계인이 찍힌 자기 머리를 툭툭 치며 한마디 했다.
“철두공.”
도귀의 얼굴에도 미소가 어렸다.
퍼엉!
날벼락과 함께 찢어진 도경이 나풀거렸다.
“철두공?”
도귀의 눈이 가늘어졌다. 소림승이 대꾸했다.
“철두공.”
도귀의 손에 새 도경이 들렸다. 그리곤 모서리로 정확하게 계인의 사이를 찍었다.
뻐억!
소림승의 몸이 살짝 떨렸다.
도귀가 웃으면서 다시 물었다.
“철두공?”
소림승도 웃으며 자기 머리를 다시 매만졌다.
“철두공.”
뻐억!
“철두공?”
“철두공.”
퍼엉! 펑! 펑!
소림승과 도귀의 알 수 없는 호승심에 불이 붙었다.
그 사이 마도는 쾌도를 쫓았다. 쾌도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쫓아오는 상대의 등 뒤로 돌아갔다. 그러곤 소수로 뒤통수를 후려쳤다.
퍽.
도귀의 상대와 달리 머리통이 깨지며 바로 자빠졌다.
소림사도 장용을 쫓았다.
젊은 무승이 장용을 가로막았다.
“나무아미타불. 시주는 거기 멈추시고…….”
“어허, 감히! 내가 소림사와 청성파의 공동 전인이며 전대 신강제일인이자 종남파 문주에게 보검을 받은……!”
무승이 깜짝 놀랐다.
“네? 소림이요?”
장용이 방심한 무승을 냅다 걷어찼다. 무승이 정통으로 맞고 날아가서 데굴데굴 굴렀다.
그 와중에 소지광은 곰방대의 연기를 피우며 소림사와 골마가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해서, 서로 싸우게 만들고 달아나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고루마는 삽시간에 난장판이 된 장내를 어이없이 쳐다보다가 도진에게 물었다.
“저게 대체 뭐 하는 놈들이지? 흑룡, 너도 모르는가?”
도진도 좀 황당했다.
그러나 도귀는 확실하게 안면이 있어서 복면으로 가렸다 한들 금세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사부님이 보이지 않으시는 걸 보아, 대종사를 막으러 가신 거구나!’
그 때문에 굳이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저었다.
소림사의 방장 혜심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정신없이 구는 것치고 무공이 낮지도 않았다.
“노납이 성불할 때가 됐나……. 강호가 아무리 넓다지만 살다 보니 저런 이상한 놈들을 다 만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