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326
326화
第八十一章 막후(幕後)
허윤과 일행은 백룡장에 도착했다.
번산과 일꾼들이 마당을 쓸고 있다가 일행을 보고 반색하며 달려왔다.
“돌아오셨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고생이 많았다는 게 겉으로도 확연했다.
허윤은 물론이고 호천, 장용과 쾌도, 소지광까지 전부 부상을 입어 피 묻은 붕대를 여기저기 감고 있었다. 천하의 도귀도 내상을 입었는지 얼굴이 핼쑥하고 눈빛이 탁했다.
백룡회가 평소에 거의 부상이 없었다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누가 보아도 싸움이 치열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번산의 눈길이 두건을 쓴 이에게 절로 향했다. 누군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마도의 흑룡.
“어…… 설마, 회주님께서 찾으시던, 음…….”
허윤이 자식을 찾으려 했다는 건 백룡회의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었다. 다만 굳이 밖으로 내뱉지 않을 뿐.
소지광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장원의 정문은 부서지고 담벼락도 부서져 엉망이었다.
“자네와 형님들은 괜찮았나? 흔적을 보니 사람들이 최근까지 여기 몰려 있었던 듯한데.”
“말도 마십쇼. 우리가 내원으로 들어간 뒤에도 얼마나 오랫동안 죽치고 있었는지.”
“호오. 한데 지금은?”
“회주께서 대종사를 해치우고, 소림사 방장이 뒷목 잡고 쓰러졌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다들 도망갔습니다.”
사실 도망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무려 천하의 대종사를 죽인 사람이다. 그런 인물에게 뭘 따지고 말고 할 수 있겠는가.
그 모습을 상상한 허윤 일행은 저마다 피식거렸다.
한데 그때 번산이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그보다도 안 총관이…….”
안소방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총관 집무실에 침상을 놓고 드러누워 있었는데, 안색은 허옇고 핏줄이 거뭇거뭇하게 드러나 보였다. 떠나기 전 약간 동그랗게 살이 붙었던 뺨은 핼쑥했다.
“죄송합니다, 회주님.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오셨는데 일어서서 맞이하지 못해서.”
눈도 잘 뜨지 못하고 목소리까지 쉬었다.
“괜찮아. 그런데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건가?”
옆에서 야율령이 안절부절못하며 대답했다.
“내원으로 들어가고 이틀 정도 되었을 때부터일 거예요.”
약왕도 못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쓸 수 있는 약은 다 썼네. 한데 한번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하니 귀령초를 복용시켜도 안 되더군. 소림사의 속가들이 물러간 후에 혹시나 하여 이곳으로 다시 데려왔더니…… 그때부터 악화되는 속도가 좀 줄었네.”
허윤으로서는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곧 도진이 천마신공을 익혀야 하는데,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면 장차 그에게도 똑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부작용이 사라진 게 아니라 잠시 멈췄던 거였군요. 무엇 때문인지 찾아야겠습니다.”
“그게…… 아마도 이거랑 뭔가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약왕이 피 묻은 벼루를 들어 보였다.
“혈루연(血淚硯). 이게 다른 방에는 없고 여기에만 있는 유일한 물건일세.”
허윤은 벼루를 받아서 잠시 생각했다.
안소방이 천마신공에 부작용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게다가 천마신공을 쓰면 부작용이 갑자기 심해지기도 하니 마도 대종사 후보라고는 보기 어렵다.
그러나 두 달을 넘기지 못한다던 것을 몇 달째 버티고 있으니, 분명 그 이유가 있을 터.
그게 이 피 묻은 벼루 때문이라…….
무언가 감이 왔다.
“다들 자리를 피해 주십시오. 그리고 회원들의 부상이 심하니 약왕께서 좀 돌봐 주시고요.”
“자네는?”
“나중에요.”
“회주가 곧 백룡회의 중심인데 그럼 안 되지. 자네부터 보세.”
다들 동의했다.
허윤은 할 수 없이 약왕에게 치료를 받았다.
“어깨의 상처는 굉장히 악독하게 짓이겨 놔서 몇 달이 지나도 잘 아물지 않을 테니, 답답해도 그간 약 잘 바르게. 그런데, 손가락은 또 누가 이랬나? 깔끔하게 부러뜨린 걸 보면 굉장한 고수의 솜씨인데. 이건 금세 붙겠어.”
“소림사 방장 대삽니다.”
약왕이 혀를 찼다.
“허어. 좀 심했군. 그래도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진 말게. 소림승들이 워낙 옹고집인 데다, 세상 물정에 어두워서 평범한 사람이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긴 해도…… 결과만 놓고 보자면 옳은 지점에 가 있더군.”
“글쎄요. 당장에 주먹부터 들이대니 납득하기가 어려워서요.”
“허허…… 아무래도 그게 그들의 방식이라…….”
약왕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나머지 치료를 마쳤다. 그러곤 다른 이들과 함께 방을 나갔다.
혼자 남은 허윤은 귀물을 꺼내 들었다.
야율황에 의해 파괴되어 이제 몇 남지 않았다.
“양이 많이 줄어서 잘 될지 모르겠군.”
허윤은 심호흡을 한 뒤, 집중해서 귀문을 열기 시작했다.
“으핫핫하! 이제 좀 살맛 납니다!”
백룡회는 호탕하게 웃으며 음식을 마구 입에 퍼 넣는 안소방을 어이가 없다는 듯한 눈으로 보았다.
고우사도 황당해했다.
“아니, 분명 다 죽어 가던 놈이 어떻게 반나절 만에 저렇게 얼굴에 개기름이 흘러.”
야율령이 눈물을 흘리면서 안소방에게 달려가 안겼다.
서덕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이젠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껴안고 지랄이네. 아예 총관실 옆에 따로 신방을 차리지 그러냐.”
서덕의 어깨에 걸쳐져 있던 초우인도 끼어들었다.
“신방은, 아니됴. 총관실은 중요한 곳이니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겨서 지키됴.”
“넌 대문이나 지켜.”
“그러니까 괴뢰사 한 줄만 달라잖됴. 백만 대군도 막아 보이겠됴.”
“그날 밤에 내 목부터 걸려는 건 아니고?”
카랑카랑.
“당연한 일 아니됴?”
장용과 쾌도가 서덕과 초우인을 보고 한마디씩 했다.
“둘이 친구여?”
“사파하고 마도라 그런가. 왜 이렇게 죽이 잘 맞아. 아주 천생연분이네.”
약왕이 허윤에게 물었다.
“혹시 야율황에게서는 귀기가 느껴졌나?”
“마기는 진했으나, 귀기는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럼 이걸로 확실해졌군. 선택받지 못한 자가 천마신공을 익혔을 때 생긴 부작용을 귀기로 다스릴 수 있는 것 같네.”
허윤은 원기를 되찾은 안소방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해송 도장이 말한 바 있었다.
신공귀력(神工鬼力)!
하늘은 꾸미고, 귀신의 힘은 이를 이루게 한다.
그래서 귀문을 열면 귀기가 하늘의 설계대로 만들어 내는 미래를 볼 수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천마신공은 익힌 자의 선천지기를 고갈시키는데, 귀력(鬼力)은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힘이므로 서로 상충한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허윤의 어마어마한 귀기에 영향을 받은 안소방이 지금껏 살 수 있던 것이다.
심지어 도진은 스스로 귀기를 어느 정도 부릴 줄 안다. 그렇다는 건 다시 말해 천마신공의 부작용을 버틸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뜻이었다.
‘해 볼 만하다.’
잠시 안소방을 지켜보던 허윤은 이내 도진이 기다리는 방으로 갔다.
방에는 도진과 낙락이 함께였다.
아까 허윤이 낙락에게 부탁해 둔 게 있어서다.
“잘 되어 갑니까?”
“가만히 좀 있어 보게. 자, 다 됐다. 돌아봐.”
여태 허윤에게 등을 보이고 있던 도진이 뒤돌아섰다.
젊고 앳된 얼굴이 아니라, 사오십 대에 세월의 풍파를 그대로 맞은 찌푸린 상의 얼굴이었다.
낙락이 흐뭇해했다.
“어떤가? 누군지 못 알아보겠지? 오랜만에 당과 값을 해 보았네.”
변장은 낙락의 전문이다.
하지만 허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왜? 마음에 안 들어?”
“그게 아니라…… 아무리 그래도 저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면 호칭도 그렇고 좀…….”
아무래도 오랜만에 만난 아들이 너무 늙어 보이는 게 걸렸다.
“이왕이면 좀 멀쑥하게 해도 되잖겠습니까?”
“웬 욕심인가. 원래 나이 그대로면 의심을 사기 더 좋을 텐데.”
“그렇긴 하죠. 그래도 부모 맘이라는 게 뭔가…….”
도진이 궁금해했다.
“사부님, 제가 어떤데 그러세요?”
낙락과는 제일 거리낌이 없는 사이라고 미리 일러 주었기에, 도진도 그 앞에서는 허윤을 스스럼없이 불렀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아버지보다는 사부라는 단어가 더 입에 붙어 있었다.
허윤이 도진을 바라보는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고민하며 말했다.
“나보다 나이 많은 아저씨 같구나.”
낙락이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게 마음에 안 든다면, 좋은 생각이 있네. 자네는 좀 나가 있어 봐.”
“예? 뭘 또 굳이 나가 있으라고…….”
허윤은 떠밀리다시피 방에서 쫓겨났다.
하여 다시 안소방이 있는 총관실로 가서 백룡회와 함께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낙락이 도진과 같이 들어왔다.
낙락이 이번에야말로 확실하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도진을 내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순간, 모두가 놀라서 입을 벌렸다.
안소방이 먼저 얼떨떨해하며 말했다.
“저, 저게 흑룡?”
낙락은 뿌듯해했다.
“본판이 나쁘지 않아서, 회주가 원하는 대로 잘됐네.”
야율령이 질투하듯 입을 살짝 내밀었다.
“왜 예뻐?”
“예? 이쁘다고요?”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한 도진은 얼굴을 손으로 매만지며 어리둥절했다.
“제가 어떤 얼굴인데요?”
도귀가 도진에게 동경을 건넸다.
“마침 내게 거울이 있네.”
도진이 자기 얼굴을 보고 기겁했다.
낙락이 도진을 젊은 여자로 분장시킨 것이다.
“아니…… 저를 여자로 만드시면 어떡합니까?”
“왜? 잘 어울리는데. 안 그런가, 회주?”
한데 허윤은 화를 내리라는 도진의 기대를 배반하고 흠흠 헛기침만 했다.
“뭐…… 아까보단 훨씬 좋습니다.”
“변성술을 좀 쓰면 목소리도 금세 바뀔 걸세. 그럼 더 감쪽같지.”
당황한 도진이 거울 속 자기 얼굴을 살펴보려다가, 문득 거울을 매만졌다.
그리곤 앞면과 뒷면을 번갈아 보더니 깜짝 놀랐다.
“어? 천마경?”
* * *
십팔비성의 종주 천기성은 난발을 휘날리며 초조한 얼굴로 방 안을 서성거렸다.
그 앞 의자에는 육임비전의 종주 아사백이 무릎을 가슴에 붙이곤, 쉴 새 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계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손가락을 뚝 멈췄다.
그것을 본 천기성이 다가갔다.
“아사백. 어때. 내가 본 게 맞았나?”
아사백이 흐릿한 동공으로 멍하게 말했다.
“구사필법 희구공망내묘기(喜懼空亡乃妙機)에 따라 오화(午火)에는 용(龍)이 오르나 도신(盜神)으로 이를 빼앗기고, 월지 신살(神殺)로 사기(死氣)가 가득하여 흉(凶)하며, 말전(末傳)에는 호랑이가 올라탄 귀살(鬼殺)로써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象)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천기성이 놀라서 눈에 힘을 주었다.
“난세를 다스려야 할 용이 사악한 기운과 사나운 호랑이에 막혀 더욱 어지러워지는구나! 내가 본 천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가 답답해하며 침상에 걸터앉았다.
“마도 대종사가 죽었는데 어째서 흉성은 더욱 빛나는가? 그가 흉성이 아니었나?”
아사백이 그런 천기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천기성…… 변했어.”
천기성이 문득 고개를 들어 아사백을 보았다.
“내가?”
“머리에 잔뜩 혹 달고 오더니…….”
“큭…….”
아사백이 웃지도 않고 말했다.
“농담이야.”
“네가 하는 말은 농담처럼 들리질 않아.”
“하지만…… 강호 무림 같은 거…… 안중에도 없던 너잖아.”
“그랬지.”
천기성은 갑자기 허윤의 말이 떠올랐다.
― 이류육종은 악연을 만든 건 나라고 하지만, 자신들이 먼저 시작했다는 건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더구려. 피해자가 당신들이오?
그가 중얼거리듯 답했다.
“신경 쓰이는 녀석이 있어서.”
아사백이 배시시 웃었다.
“누군지 몰라도…… 너보다 점을 잘 보는 녀석인가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