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325
325화
나한승이 확인하더니 말했다.
“본사의 환단은 아닙니다.”
허윤은 그것이 무언지 알아챘다.
붉은색이 감도는 것이, 홍환이다!
왜 천마경이 아니라 홍환이…….
설마 도귀?
어쨌거나 저것이 있다면 만약의 경우에 도진이 좀 더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혜심이 마치 허윤의 생각을 눈치챈 것처럼 말했다.
“흑룡을 넘겨준다면, 저것을 주겠네.”
허윤이 흠칫한 표정을 보이자, 혜심이 미소를 지었다.
“시주는 노납이 바보로 보였는가. 정황상 시주가 마도의 흑룡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의심이 드는군.”
“그건 소림사와는 관계없는 일이잖소!”
“흑룡이 본사를 어지럽혔는데 어찌 관계가 없나. 대종사는 어쨌거나 우리 소림의 연이 닿은 자의 손에 죽었다 하니 그건 그렇다 쳐도. 시주의 행동은 못내 괘씸하여 용납하기 어렵네.”
혜심이 갑자기 명했다.
“혜오! 세상을 어지럽히는 마귀의 물건이다. 당장 파쇄하여라!”
허윤이 놀라서 말리려 했다.
“그러지 마시……!”
하나 나한승은 조금의 미련도 없이 손바닥에서 홍환을 짓이겨 으깨고, 삼매진화로 태워 버렸다.
그것을 본 순간, 허윤은 가슴이 차갑게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들은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없애 버렸구나.
천마신공이란 대비책이 있어서 망정이지, 만약 홍환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었다면 어찌했겠는가.
허윤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
“예전의 나는 소림사가 아주 어려웠소. 나 같은 건 언감생심 숭산을 올려다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사찰이며, 훌륭한 고승들이 많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그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이제 깨달았소이다.”
혜심이 빙그레 웃었다.
“보천지하(普天之下)에 명산과 명사와 명승(名僧)은 모두가 입방정 떨기 좋아하는 속인들이 지어낸 얘기라네. 한데 시주는 어찌하여 실체가 없으며 실재하지도 않는 풍문을 잘못되었다고 평하는가? 그건 시주의 마음이 잘못되었기 때문일세.”
허윤은 혜심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대사는 중생의 어떤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구려.”
“중생은 삼계육도(三界六道)를 무한히 반복하는 존재로서, 해탈하기 위해 귀를 기울여야 할 건 시주인데, 시주는 왜 노납의 말을 듣지 않는고?”
“소림사에 흉과 액이 닥쳐도 말이오?”
“우리는 시주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위기를 겪어 왔네. 우두머리를 잃고 언제 달아나야 할지 눈치만 보는 마도는 위협이라 할 수도 없지.”
아!
순간 허윤은 깨달았다.
혜심은 눈이 보이지 않는다.
대종사가 죽은 뒤에 일시적으로 마도가 주춤하며 물러나려는 분위기는 감지하였으나, 그 뒤에 부하와 뭔가 얘기를 주고받은 후 변한 고루마의 표정까지는 보지 못한 것이다.
“눈이 안 보이니 불편하지 않소이까?”
“불편한 건 시주의 마음이겠지.”
“마지막으로 권하겠소. 다른 스님들과 상의해 보고 결정하시오.”
“본사에서 가장 흔들림이 없는 혜오도 시주에게 휘둘렸는데, 노납이 책임지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그것으로 허윤은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
“내 도움을 원하지도 않고 조언도 거부하니, 여기 남을 이유가 없어졌소. 가겠소. 다시 보지 맙시다.”
허윤이 돌아서는 데도 혜심은 말리지 않았다.
“시주. 흑룡을 두고 가지 않으면, 우리는 머잖아 다시 만나게 될 걸세.”
허윤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일행과 함께 산문을 떠났다.
소림승들은 막으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막을 인원도 더 없고, 그럴 수도 없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마도에 허윤까지 적으로 돌리면 천하의 소림사로서도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허윤이 떠나는 걸 막지 않은 건, 골마가와 마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잘 지나갈 수 있게 슬쩍 비켜 주었다.
고루마의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졌다.
“역시나. 고집 센 중들이 스스로 화를 불렀구나.”
괴절노파가 감탄했다.
“점쟁이만 용한 줄 알았더니, 왕장도 만만치 않구먼. 중들이 저자를 거부할 줄 어떻게 알았나?”
“아까 갑자기 잡졸을 받아 준다고 할 때부터 분위기가 묘하더군. 희로애락은 다 버렸어도 무림 문파로서의 자존심은 못 버린 게야. 백룡선생이 경고도 무시했지, 자기들 영역 안에서 온갖 난동은 다 부렸지. 거기다가 도움까지 받으면 남들에게 영 면이 안 설 것 아닌가.”
고루마가 흥분에 들떠 뼈만 남은 손을 들어 올리곤 힘껏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중놈들이 예상하지 못한 게 한 가지 더 있지. 바로 나, 고루마존께서 지금까지는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
“역시 왕장이야. 이제 지존이 될 일만 남았어.”
고루마의 눈빛이 번뜩였다.
“클클클. 괴절노파, 가라. 연천봉을 불태워 버려! 중놈들이 망연자실하는 꼴을 봐야겠다.”
연천봉에서 피어오르는 불길이 북경에서도 보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마도군은 소림사의 사찰을 불태우고 떠났다.
방장 혜심을 비롯해 상당수가 살아남았지만 혜심은 충격을 받고 주화입마 직전까지 가 구안와사가 생겼고, 나머지도 돌아갈 곳이 없어졌다.
사실상 소림사라는 장소의 실재적인 의미가 사라진 것이다.
야율황의 죽음은 그 이후에 알려졌다.
* * *
마도 대종사 야율황의 죽음.
강호에서 칼밥을 먹고 사는 이들은 그의 사망 당시 정황을 듣곤, 묘하게도 야율황답다고 납득했다.
섬서부터 압박하여 무상을 살해하고 소림사를 끌어낸 것까지는 성공했으니, 그러면 대군을 이끌고 정면으로 쳤어도 되었다.
그런데 굳이 부하들은 앞에 두고 혼자서 음침하게 수작을 부리다가 허윤에게 걸려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모두 감탄해 마지않았다.
야율황이 그답게 죽은 것만큼이나 허윤도 백룡선생답게 야율황의 행동을 예측하고 막아 낸 것이다.
하나 거기에 논란이 되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백룡회로 추측되는 일단의 복면인들이 난입했고, 소림사와 각을 세우면서까지 끝끝내 야율황을 척살했다는 점.
그 때문에 소림사의 영역 내에서 주인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백룡회의 실수라는 평이 많았다.
거기에 자신의 할 일만 마치고 바로 돌아가는 바람에 소림사의 본사가 잿더미가 되는 최악의 상황을 야기했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다만 그런 한편,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방장이 직접 허윤에게 손을 쓴 건 과한 처사라고 보는 목소리였다.
허윤이 처음부터 소림사에 경고했는데도 끝끝내 무시한 건 소림사였고, 어차피 그가 아니었으면 소림사는 마도 대종사를 막지 못해 완전히 전멸했으리라는 것이다.
만일 야율황이 순순히 원하는 바를 이뤘다면 지금쯤 강호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쪽이든 허윤이 잘못했다 생각하는 부분은 같았다.
최소한 소림사에 흑룡을 넘겨서 면은 세워 줬어야 했다는 점이었다.
그간 그 이름과 위엄을 지키기 위해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소림사가 애써 출행했는데, 별다른 소득도 없이 일이 종결되었으니 꼴이 얼마나 우스워졌나.
하다못해 마도의 이 인자인 흑룡이라도 넘겼으면 자존심을 챙길 수 있었는데, 그 길이 사라졌으니 소림사도 후퇴의 명분이 사라진 것이었다.
어쨌거나 결론적으로 소림사와 백룡회 간에는 이렇듯 깊은 골이 생겼고, 강호인들은 본거지를 잃은 소림승들이 어찌 움직일지 추이를 지켜보아야 했다.
* * *
방장 혜심과 살아남은 이들은 가까운 속가의 장원에 몸을 의탁했다.
본산의 소식을 들은 소림사 수뇌들이 급히 돌아왔다.
본산이 불타고 남아 있던 승려 중 일부는 학살당했다는 사실에 모두가 침통해했다.
담우가 자책했다.
“백룡회주가 마도의 공세를 예측했을 때, 본산에 알리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구안와사로 입이 비뚤어진 혜심이 말했다.
“담우. 면벽 이 년을 명한다.”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겠습니다.”
“네 잘못은 알리지 않은 게 아니다. 혹세무민의 방술에 마음이 흔들려 자책하는 게 잘못이다.”
“본산이 모조리 불타고 동굴도 무너졌는데 어디에서 면벽을 합니까?”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이라, 부처는 어느 곳에나 있는데 너는 왜 장소를 찾느냐. 다만 눈앞에 닥친 일이 있으므로, 면벽은 이번 일이 끝난 뒤 시행하도록 해라.”
“예.”
혜 자 배 승려가 반장 하며 혜심에게 말했다.
“소제가 감히 여쭈옵건대, 장문 사형께서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심마를 얻었습니다. 맞습니까?”
혜심이 인정했다.
“맞다.”
“무릇 한 절의 주지로서 화를 다스리지 못하였으니, 그 같은 일은 문책받아 마땅합니다. 제 말이 옳습니까?”
“옳다.”
혜심이 말했다.
“나는 구도(求道)를 어기고 본산까지 잃게 하였으니 장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하여 마지막 명을 내리고 물러나 백의종군하려 하니, 모두 내 말을 듣거라.”
소림승들이 전부 입을 닫고 혜심의 말을 기다렸다.
혜심은 화를 억누르지 않고 말했다.
“본사의 승려들에게 명한다. 대종사는 사바를 떠났으나, 사마외도의 잔당은 아직도 남아 마군(魔軍)으로써 불도를 방해하고 중생을 괴롭히는 저. 총력으로 마군을 저지하고 참초제근하기 전까지는 복귀를 금지한다. 알겠는가!”
그야말로 승려로서 할 수 있는 최대의 분노가 담긴 명령이었다.
수뇌들이 일제히 반장 하여 응했다.
“나무아미타불.”
* * *
군사당의 사마오가 무림맹주의 집무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맹주를 만나려 함이 아니라, 거기에서 나올 문상을 기다리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 문상이 나왔다. 사마오가 급히 가서 고했다.
“본거지를 잃은 소림사가 대대적인 반격을 결정했습니다. 분노한 속가들이 속속 가세하고 있어서 그 세력이 막강합니다.”
한데 문상은 의외로 담담한 표정이었다.
사마오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마도를 참초제근하겠다는 문상의 의도대로 된 게 아닙니까?”
하나 문상은 뭔가 다른 생각에 잠긴 듯했다.
“소문에 따르면, 대종사가 소림사의 본산을 혼자 들어갔고 백룡회주에게 쫓겨 나왔다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대종사의 품에서 나온 것은 알약뿐이었는데, 소림승이 그것을 없애 버렸고.”
“소림사에서도 그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문상이 손가락을 두드리다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사마 당주께서는 백도맹에 연락을 취해 주십시오.”
“어떤 이유로 말씀이십니까?”
“마도와 사파가 점유한 지역은 상당히 넓습니다. 소림사 단독으로 그런 곳들을 탈환하면 해당 지역에서 소림사의 영향력이 너무 커집니다. 소림사야 그런 데에 관심이 없겠지만, 속가들은 다르지요.”
사마오가 고개를 끄덕여 그 말에 수긍했다.
지역에서는 분쟁이 나거나 도움을 받을 때 영향력이 큰 문파에 속한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인맥을 트거나 거래를 해도 이왕이면 그런 쪽으로 하게 된다.
삼류 무관이며 표국, 상계 심지어는 뒷골목 도박장도 그러하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이권의 발생에 영향을 끼치고, 이는 최종적으로 해당 문파의 명성이나 인재 영입, 수입에까지 연결되었다.
소림사는 정파이고 무림맹에 무상을 파견하기도 했으나, 속가의 세력이 워낙 커서 그 자체로 무림맹과 맞먹는 하나의 세력이었다.
하여 어찌 보면 지역에서는 무림맹 소속 문파들과 경쟁 관계라고까지 볼 수 있었다.
문상이 말을 이었다.
“우리 맹을 지지하는 무문과 사업체들이 피해를 보지 않게 하려면, 소림사에만 맡겨 둘 수는 없습니다. 이쪽에서도 최선을 다해야지요. 그러니 백도맹과 힘을 합치되, 지휘권은 이쪽에 있음을 명확히 하여 주십시오.”
사마오가 곤란해했다.
“그러면 사실상 복속하라는 의미라, 백도맹이 받지 않을 텐데요. 혹시 백룡장을 염두에 두고 계십니까?”
“백룡장이 직접 소림사와 문제를 일으켰으므로, 일개 백도맹의 힘으로는 중재 못 합니다. 더구나 흑룡과 야율가 혈족이 아직 백룡장에 있지 않습니까. 백룡장은 우리 밑에 들어와야 소림사로부터 안전하게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 * *
백룡장으로 돌아가는 길.
깊은 밤, 다들 잠이 들었을 때 도진은 허윤과 단둘이 객잔 밖으로 나왔다.
그제야 겨우 두건을 벗을 수 있었다.
“후아.”
“답답하지. 조금만 참거라. 아직은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장원에 도착하면 방법이 있어.”
도진은 못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저보다 사부님이 더 걱정이죠. 소림사도 적이 되었고…… 이제 어떡하시려고요.”
“글쎄다.”
허윤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복수를 하고 난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이 생각해 보지 못했거든.”
“전 있습니다. 죽으면 못한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러니까 그 전에 꼭 해 보려고요.”
“그래? 이제 장가라도 갈 생각이 든 거냐?”
“아이, 아버지도 참 그게 아니고요. 아…….”
도진이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입을 벌린 채 굳었다.
그러더니 다시금 조그맣게 말했다.
“아버지…….”
허윤은 기대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멍한 표정이 되었다.
눈물이 왈칵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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