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324
324화
장용과 쾌도는 그냥 놀랐지만, 다른 이들은 누구랄 것 없이 경악했다.
죽었던 게 아니었어?
고루마가 어처구니없어하며 혼잣말을 했다.
“하! 살다 살다 별…….”
골마가 고수들도 황당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복면인에게 마도의 대종사가 죽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어떤 새끼야.”
“어떤 어미 아비도 없는 새끼가 죽었다고 했어?”
마도인들이 모두 잡아먹을 것 같은 눈으로 호천을 쳐다보았다.
마도 대종사란 자가 죽은 척한 게 부끄럽긴 했지만, 그래도 죽었다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구할 수 있었는데.
소림승들도 마음이 언짢긴 마찬가지였다.
중간에 죽었다는 말만 듣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살릴 수 있었을 터였다.
대종사도 그런 생각으로 죽은 척 귀식대법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숨만 붙어 있어도 어떻게든 소림사의 손에 넘겨지면 대환단으로 소생이 가능할 거라고.
그런데 그러던 차에 생각지도 못한 복면인들의 손에 머리가 달아날 줄이야.
“우리가 당했습니다.”
“이제 부끄러워서 얼굴을 어찌 들고 다닙니까.”
그들도 원망의 눈길로 호천을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림맹 무상의 수족이었다는 자가…….”
“마귀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도다.”
호천은 아무 대꾸도 못 했다.
그저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전신이 피 칠갑에다 만신창이였다. 게다가 가슴에는 칼까지 꽂았다.
그런데 설마 누가 살았다고 생각했겠어.
하여 다시 시신을 확인하니, 도진이 찌른 칼이 가슴의 중앙에 박혀 있었다. 심장을 관통하려면 왼쪽으로 한 치 정도 더 치우쳐야 했다.
“후우…….”
도진이 모르고 찔렀든, 야율황이 피해 맞았든. 삶에 대한 집착이 그렇게나 강하니 잡졸이란 소리를 들으면서도 끝끝내 살아남아 대종사까지 된 거였겠지.
그러나 결국 마지막엔 또 그 잡졸이라는 별칭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죽었다는 게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호천은 자신을 쏘아보는 수백 쌍의 눈길을 느끼며 한숨을 거듭 내쉬었다.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선 장용과 쾌도가 가슴을 활짝 편 채 신나게 외치고 있었다.
“으하하핫! 소림사와 청성파의 공동 전인이며 전대 신강제일인이자 종남파 문주에게 받은 보검으로 마도 대종사를 죽인 게 바로 이 몸이시다!”
“큭큭큭. 나는 남십자성의 손을 이용해 마도 대종사를 처리한 현자이시지.”
둘을 보며 호천은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아까 안 죽었으니 자기들이 죽인다고 우길 때, 손대지 못하게 말릴걸…….
아니, 그랬다가 어떻게라도 살아났으면 오히려 내가 천하의 역적이 되는 거였나?
지금 주변 반응을 보아하니 이미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하아, 심란하구나.
여보…… 지금이라도 당신을 만나러 가고 싶구려.
장내는 한참이나 술렁거렸다.
허윤은 기묘한 감정을 느끼며 목이 잘린 야율황의 시체를 보았다.
마침내 복수했다…….
자기 손으로 끝을 낸 건 아니지만, 어찌 보면 야율황에게 가장 걸맞은 죽음이었다.
두풍이나 혈안지, 천근신퇴공으로 한 번에 죽였으면 기분은 개운해도 응어리진 마음은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야율황은 끝까지 고통을 받다가,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다 버린 채 싹싹 빌다가 죽었다.
지금까지 허윤과 도진이 겪은 고통을 조금이나마 되돌려 준 것 같아 차라리 그게 더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허윤은 산문 아래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복수가 끝났어도 아직 상황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흑룡, 도진을 데려가야 할 지금 이후가 새로운 난관의 시작이다. 어쩌면 상황은 여태까지보다 훨씬 더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때문에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된빔실의 첫 가닥부터 차근차근 풀어가야 한다.
하필 그게 소림사라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허윤은 부러진 손가락들의 뻐근한 통증과 그로 인해 치미는 화를 애써 참으며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갔다.
소림사와 얽힌 연을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고루마는 장고 끝에 후퇴를 결심했다.
앞으로 마도의 내분이 시작될 텐데, 굳이 소림사와 싸워 전력을 잃고 싶지 않았다.
“이제 그만 퇴각…….”
그때 골마가 소속의 고수, 괴절노파(怪切老婆)가 고루마에게 와서 말했다.
“이봐, 왕장(王丈). 그게 아니지. 지금 돌아가면 손해만 보고 아무 이득이 없잖아.”
“지금 소림사 중들을 죽여 봐야 무슨 소용이냐. 빨리 돌아가서 다른 놈들보다 미리 준비해야…….”
“낄낄낄.”
괴절노파가 웃었다.
“복수해야지, 복수.”
“복면한 놈에게 죽었는데, 그놈 하나 죽이자고 굳이 고생을 사서 해야 되나?”
“무슨 말이야. 그게 보통 놈인가? 소림사와 청성파의 공동 전인이고 종남파에서 키워진 살수인데.”
그 말에 고루마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어럽쇼? ……듣고 보니 그렇구먼. 정파 놈들이 작당을 해서 우리 대종사를 살해한 게야.”
“맞아. 그럼 그걸 우리가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있나.”
“죽인 놈뿐만이 아니라, 정파 전체가 책임을 져야겠군.”
“일단 소림사부터.”
고루마가 괴절노파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그리고 그다음에 통합군을 결성해서 정파 놈들을 깡그리 죽여 대종사의 원한을 갚아야 하고 말이야.”
“이제야 왕장의 머리에 바람이 좀 통하는가 보군. 낄낄낄.”
고루마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정파의 다수 문파가 연합해 대종사를 죽였으니, 복수를 해야 한다.
일단 명목이 생겼으니, 마도를 통합하여 강호를 침공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 과정에서 수장을 잃은 기존 세력은 자연스레 흡수될 터이고, 어지간한 불만은 죄다 정파로 표출될 테니 큰 문제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통합 마도군의 수장 자리가 고루마의 눈에 아른거렸다.
실제 복수는 관심 없다.
그걸 이용해서 이득을 챙기는 게 중요하지.
“킬킬킬. 나이가 드니 살날은 줄어들고 몸은 쪼그라드는데, 어찌 욕심은 점점 커지기만 하는가.”
“낄낄, 살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더 그렇지. 조금 남은 날들이나마 최대한 넘치도록 살아 봐야 하지 않겠어.”
괴절노파가 탐욕스럽게 입술을 핥았다.
“그러니, 내게 공을 세울 기회를 준다면 좋겠군. 발 빠른 놈들을 몇 붙여 주면 그놈들을 데려가 소림사의 본산을 잿더미로 만들고 오지.”
소림승을 죄다 죽이는 것보다 본산을 잿더미로 만드는 게 더 요란스럽고, 남들 보기에 크게 보인다.
괴절노파는 할 말이 더 있는 듯, 쭈글쭈글한 손가락으로 계단 쪽 방향을 가리켰다.
“걸리는 건 한 가지. 저놈이야. 중놈들이야 수로 밀어 버리면 되지만, 저놈은…….”
고루마는 괴절노파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허윤을 보았다.
허윤은 육대 세력의 연합도 개 박살을 낸 전적이 있다. 대종사까지 죽은 이상, 한번 날뛰면 누구도 말릴 수 없다.
고루마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기다려.”
“언제까지? 뭘 어떻게 하려고?”
고루마의 입술 끝이 씰룩였다.
“우리가 할 게 아니야.”
허윤은 소림승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다가, 한 승려의 손짓에 멈춰 섰다.
오십 명 정도였던 소림승들의 수는 어느새 삼분지 이 정도로 줄었다.
나한승이 불진을 들고 나섰다. 눈썹은 분명 잔뜩 화가 나 있는데, 표정은 애써 담담하려는 기색이 보여 기이했다.
하여 허윤이 대놓고 물었다.
“당신들은 왜 화가 났소?”
“우리가 가장 추하게 여기고 금기하는 게 화내는 일이다. 심지어 사문의 존장에게 반말을 하고 농지거리를 해도 화로 받지 않는다. 그런데 어찌하여 시주는 내게 다짜고짜 화를 내느냐고 묻는가?”
“관상쟁이라 보기 싫어도 보이는구려. 억지로 웃는다고 웃는 얼굴이 되는 게 아니오.”
“웃고 울고 슬퍼하고, 인내하는 모든 것이 수행이니 빈승이 그리 보였다면 그건 내가 모자란 탓일 테지.”
“화가 났는데 화를 내지 않으니 빈정대는 것으로밖에 안 보이잖소.”
“껄껄껄. 그리 부추겨도 빈승은 시주에게 화를 내지 않을 걸세.”
“대사가 화를 내든 말든 나완 상관없소. 그냥 거래를 하러 온 거요.”
“말해 보게.”
허윤이 부러진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가, 그 손가락으로 마도를 가리켰다.
“내 손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지만 그건 잊겠소. 그리고 당신들을 도와 저들을 몰아내 드리겠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지.”
“맞소. 대신 그것으로써 오늘의 일을 없었던 것으로 정리하고 싶소.”
껄껄껄. 나한승이 다시 웃었다.
“시주. 본사와 척을 지기 싫었다면 아까 경고했을 때 멈췄어야지.”
허윤이 그의 말을 끊었다.
“부탁하는 게 아니오.”
“그럼, 협박인가?”
허윤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산정 쪽 하늘을 가리켰다.
“저 봉우리를 보시오. 징조가 좋지 않소이다.”
나한승이 하늘을 힐끗 보더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본사가 있는 연천봉 위의 하늘은 아주 쾌청하고 맑네. 이를 보고 흉사(凶邪)라 하니, 시주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빈승이 모르는 깊은 뜻이 담긴 겐가?”
“봉우리에 걸렸던 구름이 물러가고 있소. 구름은 우풍자우(友風子雨)라, 바람과 친하고 비를 부르오. 그런데 바람이 구름을 밀어내고, 그 때문에 비가 오지 않게 되며, 봉우리의 바위는 혀가 갈라진 모양이오. 이것을 의미하는 글자가 곧 목마르고 메마를 갈(渴) 자외다.”
“그래서?”
“본인의 오늘 운세에 수(水) 자가 있으니, 내가 있어야 귀사에 해갈이 될 거요.”
나한승은 허윤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사람들이 백룡선생의 점술이 신묘하다 하였는데, 정작 점술은 허랑방탕하고 대신 그 혀 놀림이 신묘하기 이를 데 없구먼.”
나한승이 눈을 부릅뜨고 정색하며 말했다.
“거래는 결렬일세.”
처음부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긴 했으나, 역시 바늘도 박히지 않았다.
허윤은 고개를 끄덕이곤 한발 물러났다.
곧 마도가 행동할 것이 분명하다. 일행에게 돌아가 있다가 상황을 보아 개입하는 게 나을 듯싶었다.
그런데 그때, 돌연 방장 혜심이 단호하게 말했다.
“혜오! 지금 즉시 대종사의 시신을 확보하라!”
허윤은 아차 싶었다.
나한승은 이유를 묻지도 않고 불진을 들어 소림승을 나누었다.
부상자와 일부는 소림사의 산문을 지키도록 하고, 본인은 나머지 이들과 함께 야율황의 주검으로 달려갔다.
장용, 쾌도와 소지광, 호천 등이 막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마도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여 소림승들은 무리 없이 야율황의 시신을 확보했다.
그리고 혜심이 허윤에게로 걸어왔다.
한데 순간, 도귀가 혜심의 앞을 가로막았다. 소림승을 막는 대신 허윤을 보호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내가 있는 한, 장주는 건드리지 못하네.”
비록 안색이 창백했으나, 그의 능력은 이미 아까부터 증명된 바 있다.
아무리 혜심이라고 해도 도귀를 넘어 허윤에게 해코지를 하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
혜심은 눈을 감은 채로 웃었다.
“노납은 바보가 아닐세. 대종사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본사가 비어 있는 틈을 노렸네. 수행원도 없이 혼자였으니 그만큼 중요한 물건이었을 걸세. 그런데…… 자네가 그의 뒤를 쫓고 있었지. 그 의미가 무엇이냐?”
혜심이 자문자답하듯 말을 이었다.
“이미 대종사가 얻을 걸 얻었고, 시주는 그것을 빼앗기 위해 쫓고 있었다는 얘기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소. 다만, 그에게 귀한 물건이 있는 건 맞소.”
“그래?”
혜심이 소리쳤다.
“혜오! 대종사의 품을 뒤져 보거라!”
나한승이 야율황의 옷 안을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그러나 나온 거라고는 종이로 싼 몇 알의 환단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