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33
33화
그 틈에 소지광이 노련하게 몸을 낮추고 바닥에 거의 붙다시피 기어서 홍의 여인의 발치까지 살금살금 다가들었다.
그런데 곰방대를 꽉 쥐고 위로 찌르려는 찰나.
홍의 여인과 소지광의 시선이 마주쳤다. 홍의 여인이 눈물범벅이 된 채로 아주 힘겹게 실눈을 떠서 소지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감…… 히…….”
걸렸다.
홍의 여인의 시뻘게진 눈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충혈되어 있었다.
“이런!”
소지광이 이를 악물고 홍의 여인의 목을 곰방대로 찔렀다.
목에 곰방대가 꽂히는 순간, 홍의 여인이 턱을 바싹 붙여 곰방대를 눌렀다. 곰방대가 홍의 여인의 턱과 목 사이에 끼었다.
소지광이 힘을 썼지만, 곰방대는 끼인 채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밀거나 당기거나 흔들어도 빠지지 않았다. 내력의 차이가 현격히 드러났다.
홍의 여인이 충혈된 눈을 가늘게 뜨고 이를 드러냈다. 그리곤 한쪽 다리를 한껏 들어서 소지광을 노렸다.
소지광은 미련 없이 곰방대를 놓고 물러났다.
꽈앙!
덕분에 소지광 대신 애꿎은 바닥이 박살 났다.
홍의 여인은 물러나는 소지광을 쫓아갔다. 소지광이 양팔을 교차시켜 방어했으나, 홍의 여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팔을 걷어찼다.
펑!
소지광은 거의 일 장이나 날아가 굴렀다. 몸을 둥글게 말았다가 펼쳐서 낙법을 치고 일어났으나 충격을 못 이기고 휘청거렸다.
홍의 여인이 소지광을 따라가려다가 멈추고 피를 토했다.
쿨럭!
목과 턱에 핏줄기가 도드라지게 튀어나오고 있었다. 뿜어야 할 미약을 먹어 버려서 본인의 몸이 굳어 가는 것이다!
아드득.
그녀는 화가 났는지 이만 잔뜩 갈면서 소지광을 노려볼 뿐이었다.
홍의 여인이 억지로 버티는 중이라는 것을 깨달은 소지광이 소리쳤다.
“흑과부는 미약 때문에 제대로 못 움직인다! 해독약을 먹기 전에 같이 쳐!”
“내가 간다, 영감!”
“우리가 간다!”
홍의 여인이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장용과 쾌도는 오지도 않고 멀리에서 소리만 질러 댔을 뿐이었다.
“이야야앗! 받아라, 광천도법!”
“내가 뒤를 잡았다!”
말만 하고 한 걸음도 가까이 오지 않았다.
홍의 여인 입장에서는 신경이 거슬리다 못해 울화가 터질 지경이었다.
“다 놓쳐도 네놈들만은 내가 꼭 죽인다!”
홍의 여인은 내공을 폭발적으로 끌어 올렸다. 옷자락이 흩날리고 머리카락이 치솟았다.
쿨럭!
무리하게 내공을 끌어 올린 탓에 홍의 여인이 선 채로 피를 뿜었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빈틈을 노려 쾌도가 달려들었다. 온 힘을 다해 도를 휘둘렀다.
“떨거지는 어쩔 수 없구나! 이년은 내 거다!”
쫘악!
어깨에서 피가 솟구쳤다.
홍의 여인이 피한다고 피했으나 몸이 굳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어깨를 베였다. 사정이 어떻든, 적어도 보기에는 제때 피하지 못해서 다친 것 같았다.
“죽어라, 떨거지 년아!”
쾌도가 거의 무방비 상태가 된 홍의 여인의 옆구리를 베어 갔다.
그때 소지광이 소리 질렀다.
“이 멍청아! 너무 들어가지 마!”
“응?”
쾌도가 옆구리를 베어 가면서 보니, 홍의 여인이 실눈을 뜬 채 웃고 있었다. 몸이 굳어서 잘 움직이지 못하니 쾌도를 끌어들이려 빈틈을 노출하는 수작을 부린 것이다.
순간 홍의 여인이 쾌도에게 몸을 밀착해 도가 제대로 휘둘러지지 못하게 한 뒤, 쾌도의 팔을 자신의 옆구리에 끼웠다. 그러곤 몸을 틀었다.
우득!
쾌도의 팔이 부러질 것처럼 꺾였다.
“억!”
홍의 여인은 동시에 몸을 빙글 돌려서 다른 손으로 쾌도의 얼굴을 쥐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우드득!
얼굴에 덮인 손가락이 쾌도의 관자놀이를 파고들었다.
“끄윽!”
쾌도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장용이 달려와 홍의 여인의 등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내 친구 내려놔라, 이년!”
뻐억!
홍의 여인이 충격을 받고 상체가 흔들렸다. 쾌도뿐 아니라 장용 역시 나름 소림 속가의 문파에서 무술을 배운지라 주먹질이 예사롭지 않은 편이었다.
거추장스러웠는지, 홍의 여인이 허리를 돌려서 신경질적으로 쾌도를 집어던졌다.
장용이 그런 쾌도를 받았는데, 평소 쾌도의 몸무게가 아니었다. 홍의 여인의 내공이 더해져서 거의 몇 배나 더 무거워져 있었다.
“어이쿠!”
결국 장용이 쾌도를 안은 채 나동그라졌다.
그때 소지광이 가세했다. 그는 떨어진 곰방대를 집어 들곤 단봉처럼 휘둘렀다.
홍의 여인이 힘껏 팔을 휘둘러 손등으로 곰방대를 쳐 냈다. 곰방대가 태앵! 하면서 진동하고 소지광의 팔이 뒤로 젖혀졌다. 소지광은 손아귀가 얼얼했는지 곰방대를 다른 손으로 바꿔 쥐고 손을 털었다.
그러다가 힐끗 보니 곰방대가 휘었다.
“젠장, 내력이 아직도 어마어마하군.”
홍의 여인이 코웃음을 쳤다.
“하루살이만도 못한 것들이. 본녀가 실수하지 않았다면 본녀의 몸에 상처 하나 낼 수 있었을 듯싶으냐?”
그사이 자세를 수습한 장용과 쾌도가 물러나려 했는데, 홍의 여인이 그보다 빠르게 둘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딜!”
장용과 쾌도는 할 수 없이 홍의 여인을 상대했다.
팔 조 조원들도 강호에서 밥만 축내고 산 게 아니라 눈치가 있었다. 마도의 무사들이 홍의 여인을 돕지 못하도록 최대한 막아 냈다.
허윤은 무공을 배우지 않았으므로 무작정 끼어들어서 도울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차라리 홍의 여인에게 집중하는 편이 나았다.
허윤은 일단 한숨을 돌린 뒤, 호흡을 고르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자 시야가 넓어지고 눈에 보이는 게 많아졌다.
휙휙 날아다니는 듯한 네 사람의 움직임이 모두 보인다.
눈으로는 현재를 보고 있는데 머릿속에는 바로 직후의 미래가 계속해서 떠오르며, 마치 미래와 현재가 동시에 보이는 것 같은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미래 움직임이 잔상으로 남아 있다가 현재의 움직임이 거기에 계속 겹치며 하나씩 지워진다.
네 사람이라서 아까보다 훨씬 정신이 없었다. 바둑으로 따지자면 바둑판 네 개를 동시에 놓고 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어떻게 자기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인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나 세 사람이 홍의 여인에게 밀리는 상황이었으므로 언제까지 놀라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저 현란한 무인들의 틈에 막무가내로 끼었다간 몸이 남아나지도 않을 터이고.
허윤은 계속 집중해 보면서 자신이 개입할 수 있는 시기를 쟀다.
‘여기다!’
허윤은 자갈 한 개를 집었다. 그러나 잠깐 생각해 보곤 고개를 저었다. 하나로는 딱 맞출 자신이 없었다.
바닥을 손으로 훑어서 흙과 작은 돌들을 한 움큼 집었다. 그러곤 심호흡을 한 뒤 때를 기다렸다가 힘껏 던졌다.
‘지금!’
마침 홍의 여인은 한 번의 손짓으로 소지광과 장용을 물려 내고 쾌도를 몰아치던 중이었다.
백영수(百影手)!
쾌도를 찔러 가던 홍의 여인의 손이 수없이 갈라졌다. 쾌도가 기겁하여 뒤로 물러나며 도를 휘둘러 손을 후려쳤다.
깡! 까앙! 깡!
홍의 여인의 손과 도가 부딪치며 도가 휘청거렸다.
“이 떨거지 년, 손이 무쇠도 아니고!”
그러나 자세히 보면 손과 도 날이 부딪치는 게 아니었다. 교묘하게 손을 비틀어 손등으로 도면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따앙! 땅!
쾌도의 손아귀가 찢어져서 피가 튀었다. 도면이 계속 충격을 받아 날 끝이 깨지며 이가 나가기 시작했다.
깔깔깔!
“약한 놈들이 입만 살아 가지고!”
홍의 여인이 신나서 몰아붙였다.
쾌도가 연신 뒤로 물러나다가 패인 바닥을 밟고 발목이 삐끗했다.
“억!”
쾌도의 중심이 무너진 순간을 홍의 여인이 놓칠 리 없었다. 홍의 여인이 실눈을 더욱 가늘게 하여 눈웃음을 짓곤, 순식간에 쾌도의 심장 쪽을 손바닥으로 후려치려 했다.
곧 늑골이 무너지고 심장이 터져 나갈 것이다.
누구나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소지광과 장용은 두어 걸음 뒤에 있어서 쾌도를 도울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타다다닥.
홍의 여인의 얼굴과 머리에 자잘한 돌멩이들이 부딪쳤다.
홍의 여인은 화들짝 놀랐다.
“뭐, 뭐냣!”
홍의 여인이 기겁해서 펄쩍 뛰어 물러났다. 어찌나 놀랐는지 순식간에 등이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아까 눈을 찔렸던 것과 똑같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전혀 맥락 없이 갑자기 날아온 돌멩이들에 부딪힌 것이다.
딴생각을 하고 길을 걷다가 멀쩡한 담벼락에 머리를 박은 것과 똑같은 느낌이었다.
거기에 있을 게 아닌데 왜 갑자기 나타나는가?
‘뭐지! 이게 뭐야!’
그러나 더 황당한 건 돌멩이에 내공이라곤 없어서 맞았다고 딱히 아프지도 않았다는 점이었다.
하물며 살기라도 담겨 있었으면 진작 알아차렸을 것을, 그마저 전연 느껴지지 않아 눈치채지 못했다.
그게 너무 이상해서 홍의 여인은 순간 머리가 복잡해지고 말았다. 고개를 돌려 흙과 돌멩이가 날아온 쪽을 보니 허윤이 해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게 뭔데! 뭘 한 건데?’
혹시나 뒤이어서 함정 같은 게 있을까 봐 극도로 긴장했다.
하나 내공을 운용한다는 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다. 가뜩이나 홍의 여인은 미약 중독을 내공으로 억지로 막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일로 완전히 집중력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미약의 효과가 한꺼번에 풀리고,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 빈틈이 크게 드러났다.
쾌도가 이를 놓치지 않고 바닥을 구르며 홍의 여인의 정강이를 베었다.
“죽어!”
싸악!
“꺄아아아아!”
홍의 여인은 뒤늦게 정신을 차려 보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바닥을 딛지 못하고 앞으로 몸이 기울었다. 동시에 소지광이 홍의 여인의 옆구리 혈도를 곰방대로 찔러 경직시켰다.
홍의 여인의 동작이 한순간 굳고 몸이 마비되었다.
“죽어라!”
장용이 털이 숭숭 난 주먹으로 홍의 여인을 두들겨 팼다.
홍의 여인은 움직이지 못하고 고스란히 공격을 몸으로 받아야 했다. 입술이 터지고 늑골이 부러져 뚝 소리가 났다.
“내가…… 내가 이렇게 당할 줄 아느냐!”
홍의 여인은 그 상황에서조차 억지로 내공을 끌어 올리려다가 피를 토했다.
그때 홍의 여인의 뒤에서 쾌도가 도를 힘껏 위로 쳐들었다.
“네년이 안 당하면 어쩔 건데?”
홍의 여인이 돌아보는 순간, 쾌도가 그녀의 목을 베었다.
번쩍!
홍의 여인은 완전히 멈추었다.
촤아아…….
이내 목에서 피를 뿜으며 홍의 여인의 몸이 옆으로 넘어갔다.
풀썩.
홍의 여인의 몸이 몇 차례 꿈틀거리더니, 움직임이 점차 잦아들어 갔다.
“죽…… 었나?”
장용이 다가와 발로 홍의 여인을 찼다.
홍의 여인은 크게 몸이 흔들렸지만 축 늘어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세 사람이 숨을 헐떡이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소지광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멍청한 새끼들과 해냈다고?”
쾌도가 도를 치켜들고 소리쳤다.
“흑과부를 죽였다!”
팔 조 조원들의 사기가 올랐다.
“와아아아!”
장용도 소리쳤다.
“남은 새끼들 다 잡아 죽여!”
마도의 무사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쾌도가 허윤을 보며 가슴을 폈다.
“으흐흐흐! 형님, 보셨죠! 제가 흑과부의 모가지를 확 따 버렸슴다!”
장용이 반발했다.
“아니지. 내가 다 패 놔서 꼼짝도 못 하고 죽은 거야. 저 얼굴 묵사발 된 거 안 보여? 그게 이 몸이 한 일이다, 이거야.”
소지광이 찢어져 피가 나는 손아귀를 헝겊으로 감으면서 면박을 주었다.
“싸움 다 끝났냐? 가서 좀 도와, 이 새끼들아. 막내 죽겠다. 무림맹 애들은 끝내 나올 생각이 없는가 보다.”
막내 번산은 실전 경험이 없는지 팔 조 조원들 가운데에 가장 힘들어하고 있었다. 벌써 몇 군데는 얻어맞고 베인 상처도 있었다.
쾌도와 장용이 괜히 팔 관절을 돌리면서 거드름을 피웠다.
“하, 대장을 잡았더니 피곤한데.”
“하여간 우리가 없으면 뭐가 안 되나? 꼭 우리가 나서야 해?”
하지만 허윤은 아직 안도하지 못했다.
감각이 갑자기 극도로 예민해졌다.
무언가 엄청나게 불편한 것이 느껴졌다.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