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47
47화
第十一章 과거의 인연
그 시각, 허윤은 산책을 하고 팔 조의 거처로 돌아오다가 까치 한 마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허윤이 별생각 없이 중얼거렸다.
“방향을 보니 반가운 사람을 만날 모양새로구나.”
그러나 허윤은 곧 자신을 찾아올 만한 사람 중에 반가운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가 실망하여 웃었다.
“있을 리가.”
하나뿐인 아들이자 제자는 불귀의 객이 되었고, 아흔이 넘는 스승 운학거사는 은퇴하여 한적한 시골에서 은거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몇 년 전에 연락한 게 다라서 지금은 살아 계신지 어떤지도 모르는 상태다. 아니, 살아 계신다고 한들 이 몸으로 만날 수도 없다. 괜히 만나서 도진이 얘기를 하면 충격을 받아 잘못되시기나 할 것이다.
“휴.”
허윤이 한숨을 쉬며 장원 내의 모퉁이를 도는데, 앞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오고 있었다.
‘어?’
허윤은 우뚝 멈췄다.
앞에서 오던 이가 허윤을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귀하가 허 소협이신가? 나는 총군사의 직속 서무관이고, 여기 계신 분들은 자네를 만나기 위해 온 분들일세.”
길 안내를 해 온 서생이 세 명의 무인을 소개했다.
허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중 한 사람을 보았다.
무림맹에서 왔다는 두 명은 아는 사람이었다.
한 명은 하후온이었고 다른 한 명은…….
‘저 여인……?’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 얼굴이 똑똑히 기억이 났다.
현천신월대 부대주.
공세연.
허윤이 공세연을 뚫어지게 보고 있으니 서무관이 당황해 허윤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어허. 이런, 이보게. 정신을 차려 보게.”
“아차!”
허윤은 그제야 정신이 들어 손을 모으고 읍을 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다음에 뭐라고 해야 할지 잠깐 망설여졌다. 이렇게 만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의 자신은 예전과는 다른 외모이지 않은가.
다행히 여전히 손에 부목을 대고 있는 하후온이 쩝 하고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먼저 말했다.
“허 조장. 오랜만일세.”
“아, 오랜만이외…… 아니, 오랜만입니다.”
그러면서도 허윤의 눈길은 공세연을 향해 있었다. 공세연은 어떠한 말이나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허윤을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허윤은 묘한 기분을 받았다.
뭔가…… 예전과 달라졌다?
예전에는 본인의 상태도 좋지 않으면서 풀이 죽은 허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 정도로 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눈빛은 어딘가 많이 흐려져 있었다.
‘어째서…….’
잠시 분위기가 묘하게 흐르던 중에 하후온이 말했다.
“흠흠, 허 조장. 우리는 몇 가지를 확인하러 온 걸세. 여기 여협은 조사차 파견 나온 무림맹 은월대(銀月隊)의 조사관일세.”
어라? 현천신월대가 아니라?
허윤이 의아해하면서도 답했다.
“필요한 건 모두 상부에 보고하였습니다.”
“오주 지회에도 허 조장과의 면담을 허락받았네. 협조하여 주지 않겠는가?”
허윤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얘기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말끝을 흐렸다.
“글쎄요.”
세 무인 중 나머지 하나는 육십 대 가량의 노인이었는데, 그가 허윤에게 말했다.
“나는 백도맹 광동 지회에서 온 막성일세. 고문을 맡고 있지. 단도직입적으로 지금 우리는 말일세, 허 조장 때문에 골치를 많이 앓고 있다네.”
“저 때문에 말입니까?”
“허 조장의 행동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아. 만일 그 사유가 명확히 밝혀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허 소협이 모종의 의도를 가진 채 백도맹에 들어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걸 유념해 주게.”
가뜩이나 심경이 복잡한데 약간의 협박이 섞인 말투를 들으니 허윤의 심기가 살짝 삐딱해지려 했다.
“아아, 그러십니까?”
“농담이 아닐세. 어떻게 현월대와 풍림단에서조차 찾아내지 못한 마급 고수의 행동을 예측할 수가 있지? 사전에 알고 있지 않고서 말이야. 게다가 자네의 무공 수위는 도저히 예측이 불가능하다 하던데.”
허윤이 귀찮다는 투로 대꾸했다.
“글쎄요.”
“어허. 우리가 귀한 시간을 내어 여기 놀러 온 줄 아는가?”
“그럼, 귀한 시간을 내어 오면 길거리에서 사람을 심문해도 됩니까?”
“뭣이?”
막성이 눈을 치켜떴다. 옆에 있던 백도맹의 서무관이 말렸다.
“여기는 광서 지회입니다. 그리 강압적으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허 조장도 너무 무례하지 마시오.”
“뭐, 알겠습니다.”
그때 공세연이 나섰다.
“내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허윤이 흠칫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후온과 막성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대놓고 여자를 밝히는 건 삼류 잡배나 하는 짓이었다.
“공 여협께 미안한 일을 하는구려.”
“괜찮습니다.”
하나 허윤은 공세연의 미모 때문이 아니라 공세연에게 빚이 있었다. 그래서 대답하려 한 것이다.
“대답하는 건 어렵지 않소. 하나 간자 취급을 받으면서 계속 같은 답을 반복하는 것도 달갑지 않으니 딱 세 가지의 질문에만 대답하겠소.”
막성이 화를 냈다.
“어허, 근데 이자가! 이게 흥정을 할 문제인가?”
“댁이 내 윗사람이오?”
허윤이 삐딱하게 막성을 쳐다보았다.
“큭!”
막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공세연이 말했다.
“됐습니다. 질문을 많이 해도 거짓말을 하면 의미가 없으니 말씀하신 대로 세 가지만 묻겠습니다.”
“사실만을 말하겠소이다.”
“그럼 방금 물은 질문에 대한 대답부터. 어떻게 마급 고수의 출현을 예측했죠?”
허윤이 소매를 뒤적거렸다. 허윤의 행동에 네 사람의 이목이 쏠렸다.
허윤이 소매에서 꺼낸 건 동전이었다.
“동전으로 점을 쳤소.”
그 말을 들은 네 사람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공세연이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
“사실대로 말하기로 약조하지 않았습니까?”
“물론이오. 우리 조원들 모두가 보았고 증인이외다. 나는 그전에는 마도의 고수에게 어떤 급수가 있는지도 몰랐소.”
백도맹의 서무관이 확인해 주었다.
“사실입니다.”
“흠.”
공세연이 허윤의 걸음걸이를 살피더니 두 번째 질문을 했다.
“당신의 사문은 알려져 있지 않더군요. 따로 무공을 배운 적도 없다 하고. 그런데 어떻게 사승에게 피해를 입혔습니까?”
“맞소. 무공은 배운 적이 없소이다.”
공세연이 날카롭게 질문했다.
“흑과부는 운이 좋아서 이길 수 있을지 몰라도, 사승은 그럴 수 없는 자입니다. 사승은 손가락이 부러지고 어깨가 함몰되었죠. 그건 당신이 한 일 아닙니까?”
아무리 사승이 마급의 최하위라 해도 무림맹에서조차 이름난 고수들 정도나 맞상대가 가능하다. 무공을 배운 적이 없는데 그럴 수 있다는 건 얼토당토않은 얘기인 것이다.
“맞아요. 그건 내가 했소.”
“무공을 배우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요?”
“그것은…….”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으나 사실대로 말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수많은 사람을 희생양 삼아 만든 약을 먹어서 이렇게 되었다고 하면, 장담컨대 일이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하여 허윤은 사실이지만 틀리지는 않은 대답을 했다.
“환정보뇌의 법을 익혔소.”
그 순간 서무관과 하후온, 막성의 표정이 더 나빠졌다. 공세연의 눈빛도 한순간 약간의 불편함과 수치심으로 물들었다.
환정보뇌의 법은 다수의 방사들이 익힌 수법인데, 엄밀히는 내공 심법이라기보다 방중술에 가까웠다. 방문좌도라고 할 수는 없어도 정식 도문에서 배울 만한 수법은 아니었다.
막성이 기가 차서 혼잣말을 했다.
“허어, 방사들은 원래 온갖 지저분한 수법을 다 알고 있다 하더니. 방사가 맞는가 보구만.”
허윤이 한쪽으로 입을 삐죽 내밀고 대꾸했다.
“귀하에게 답한 게 아니올시다. 여기 이 부…….”
부인에게 한 말이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공세연이 부인이라 부르지 말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민간에서는 이십 대 초중반이면 이미 혼인을 해 아이를 낳지만, 강호에서는 여자들도 늦게까지 활동을 해 처녀인 경우가 많았다.
허윤은 공세연의 말을 기억하고 말을 바꾸었다.
“여기 이 처자에게 한 말이오.”
“처자?”
뭔가 멀쩡한 젊은 사람이 할 법한 말이 아니라서 주변 이들이 잠깐 어색함을 느꼈다.
게다가 처음엔 존대를 하다가 이제 슬슬 말투가 평대로 변하는 걸 막성이 모를 리 없었다.
“이 노인네가 노파심에 충고하리다. 사람이 모나면 적이 많아지는 법이라오. 허 조장은 어디 다닐 때 밤길 조심하셔야겠네.”
허윤도 몇 번 죽을 위기를 넘겼더니 무림인에게 쉬이 기가 죽지 않는다.
“이 몸도 산전수전 다 겪은 노구(老軀)올시다. 그런 말씀에 움츠러들 것 같소?”
“노, 노구?”
허윤은 말을 해 놓고 나서야 자신이 실수한 걸 깨달았다.
노구는 늙은 몸을 말한다. 이십 대의 얼굴로 스스로를 노구라 불렀으니, 아마 상대는 그 말을 조롱이라 생각할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막성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허윤은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그냥 밀고 나갔다.
“뭐, 사승처럼 되고 싶다면야 누군들. 시험해 봐도 마다하지 않겠소이다.”
막말로 ‘네가 사승보다 세냐?’ 하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막성의 무공도 낮지는 않지만, 사승과 싸우면 당연히 진다. 상처나 제대로 낼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허윤은 사승을 때려죽인 사람이다.
왜 감도 안 되는 게 덤비냐는 투로 허윤이 씩씩대는 막성을 쳐다보았다. 그러곤 짐짓 헛기침을 하며 공세연에게 말했다.
“이제 하나 남았소이다.”
공세연이 막성을 살짝 몸으로 가로막으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허 소협이 환정보뇌의 법으로 내공을 가졌다고 해도, 무공 없이 사승을 그리 만들 수는 없습니다. 언변으로 사승을 혼란시켰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것은…….”
가장 말하기 어렵고 설명도 어려운 부분이었다.
허윤이 쉽게 대답하지 못하자 막성이 이제 대놓고 빈정거렸다.
“사실만을 말하겠다면서 대답하기 어려워하는 걸 보니, 이제까지 거짓말을 만들어 내고 있던 모양이외다.”
허윤이 손사래를 쳤다.
“아무래도 시끄러워서 안 되겠소이다. 마지막 대답은 저 형장이 없는 데에서 하겠소.”
막성이 욱했다.
형장(兄丈)이라는 건 나이가 엇비슷한 상황에서 상대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누가 봐도 이십 대인 젊은 허윤이 육십 대인 자신을 형장이라 부르는 건 막말로 맞먹자는 얘기인 것이다!
“감…… 히!”
막성은 백도맹 광동 지회의 고문이다. 회주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런 막성이 대체 어디에서 이런 대접을 받아 보았겠는가.
그러나 막성은 이를 꾹 물고 참았다.
“공 조사관. 더 들을 필요 없네. 이 형편없는 작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농락할 셈인 것이야.”
“사람 무시하지 마시오. 난 사실만을 말했소.”
공세연이 막성에게 부탁했다.
“허 소협이 말한 대로 자리를 비켜 주세요.”
“하지만, 공 조사관!”
공세연은 허윤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막 대협께서는 다른 대원들을 만나 증언을 들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