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56
56화
이주천. 삼주천. 아니, 오주천! 십주천!
소약의 소주천은 한 번 돌 때마다 더 속도가 빨라져서 나중에는 그냥 거의 하나의 뜨거운 고리가 그냥 몸 안에 있는 듯했다.
‘어어.’
허윤은 조금 심각함을 느꼈다.
‘시작은 어떻게 하긴 했는데…… 이걸 어떻게 멈추지?’
쉬이이이!
소약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점점 뜨거워져서 독소가 타는 양도 많아졌다. 허윤은 모르고 있지만, 허윤의 몸에서는 지금 흰 김 같은 것이 뿌옇게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이대로라면 독소를 다 태우는 것도 문제가 아닌 듯싶었다. 그러나 문제는 허윤도 뜨거워서 더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몸이 반으로 갈리는 것처럼 뜨거웠다. 불에 달군 고리를 몸에 욱여넣은 것처럼 고통스러워졌다.
‘자, 잠깐! 멈춰! 멈춰, 이놈아!’
고삐 풀린 말이 된 소약은 허윤의 말을 듣지 않았다.
하필이면 그 순간.
보였다.
“으아아아악!”
허윤의 몸이 덜덜 떨리면서 칠공(七空)에서 피를 뿜기 시작했다. 눈이 타고 전신에서 흰 연기가 나며 풀썩 주저앉는다.
소약의 힘이 너무 강해 단련이 되지 않은 허윤의 몸이 버티질 못하고 타 버렸다.
허억! 안 돼!
허윤은 필사적으로 소약을 잡으려 했지만 잡히지 않았다. 너무 빨라서 몸을 팽팽 도는 소약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했다.
늦었다. 늦은 건가?
모골이 송연해졌다. 고된 수련이나 탄탄한 준비 없이 얻은 힘이라 너무 쉽게 다룰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 힘은 사실 사승이라는 고수를 죽일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힘인 것이다.
허윤 본인이 잡아먹힐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방법은!
단 하나.
만년소정의 본 덩어리로 다시 보내는 방법뿐.
콰콰콰콰콰!
허윤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끼며 손을 더듬어 아무 돌이나 주웠다. 손이 떨렸다. 몸이 떨렸다. 눈이 타들어 가는 듯 뜨거웠다.
곧 앞날을 예견한 대로 칠공에서 피가 터져 나갈 것이다.
허윤은 양손으로 떨리지 않게 돌을 잡고 힘껏 머리를 쳤다.
“으아아아아!”
빠악!
증위와 방녹의 내공이 막고 있던 혈도가 열리고, 만년소정의 본 덩어리가 소약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소약이 그리던 원형의 고리가 기울어져서 삐딱하게 되었다.
허윤은 만년소정의 본 덩어리가 더 쉽게 소약을 끌어당길 수 있도록 환정보뇌의 법을 더했다.
모든 정기를 머리로 끌어 올린다!
한 번 더!
“으아아아!”
빠악!
연속으로 자극을 받자 거칠게 달리던 소약이 마침내 궤도에서 이탈했다.
원심력을 잃은 소약이 갈 데라고는 한 군데밖에 없었다. 소약은 머리로 치솟아 강한 인력(引力)으로 당기고 있는 만년소정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한데 그냥 빨려들어 가 조용히 흡수된 게 아니라, 만년소정과 충돌을 했다.
허윤의 눈앞이 번쩍였다.
꽝!
머릿속에서 하얀빛이 번져 갔다. 아찔했다.
동시에 허윤의 머리 밖에서도 엄청난 폭음이 울렸다.
꽈아아아앙!
* * *
막성은 오늘 허윤 때문에 매우 불쾌했다.
특히나 무림맹 사람들 앞에서 체면을 구긴 것은 막성의 자존심에 큰 상처가 되었다.
“어디서 굴러온 놈인지도 모르는 놈을 신뢰하는 거요? 게다가 공세연이라는 어린것은 놈의 반반한 얼굴에 반해서 되레 놈의 편을 들더이다!”
막성은 화가 나 오주 지회의 회주 안종에게 거푸 따졌으나, 안종 역시 내내 허윤을 감싸고 돌았다.
“신뢰하진 않으나 사승을 잡았다고 하니 우선 지켜보긴 해야지. 여기서 뭘 더 어쩌겠나?”
막성은 이를 갈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뺀질뺀질한 허윤이 사승을 잡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회주가 하지 않으면 내가 무림의 선배로서 놈에게 도의를 알려 주겠소이다!”
안종은 오히려 잘됐다는 듯 ‘그러시게.’라고 하여 막성의 화를 돋웠다.
그래서 막성은 허윤을 찾아갔으나 허윤은 이미 밖으로 나간 뒤였다.
막성은 허윤을 찾아 나섰다.
그때, 안종의 손자인 안소방이 안내를 자청했다.
“허 조장은 대나무 숲으로 갔습니다.”
함께 대나무 숲으로 가는 동안 막성이 화를 감추지 못하며 허윤의 욕을 했다.
“그런 자가 어떻게 사승을 잡았겠는가. 섭혼술이니 하는 이상한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사술이 틀림없지! 아무리 우리 백도맹이 중도 인사를 중용하고 받아들인다 해도, 사술을 쓰는 자까지 들이면 안 되지. 안 그런가?”
안소방이 부목을 댄 팔을 들어 보였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저도 그자에게 당했습니다. 하나 할아버님께서는 너무 놈에게 관대하십니다. 좀 섭섭하더라고요.”
막성이 침까지 튀며 성토했다.
“그것 보게! 놈은 아무리 좋게 봐 줘도 절대 정파의 인물이라 할 수 없어.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면 나라도 나서서 놈의 민얼굴을 드러나게 할 걸세. 자네가 증인이 되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둘은 대나무 숲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뭔가 기분이 꺼림칙해졌다.
멈칫.
둘 다 허술한 삼류는 아닌지라 낌새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순간 긴장했다.
“기의 공명?”
누군가가 내공의 폭주를 일으키고 있었다. 기의 파동이 심하게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음?”
“놈인가?”
두 사람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다가 막성이 소리치며 고개를 숙였다.
“엎드리게!”
콰아아아아!
안소방은 앞으로 엎드리지 못하고 뒤로 몸을 뉘었다.
거센 바람이 안소방의 코앞으로 스쳐 갔다. 한 줄기의 바람이었는데, 바람이 지나는 길에 있는 대나무들이 거의 수평으로 누울 정도의 엄청난 강풍이었다!
촤아아아…….
쓰러졌던 대나무들이 일어서면서 잎사귀들이 흩날렸다.
막성이 눈을 부릅뜨더니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안소방은 식은땀을 닦지도 못하고 허둥지둥 막성을 뒤따라갔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대나무들이 꺾이고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혀 있는 모습까지 보였다.
“대나무가 부러져 있어?”
“이게 무슨…….”
둘은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부러지고 꺾인 대나무들의 흔적이 이십여 장이나 이어져 있었다.
잠시 후, 둘은 마침내 원인을 찾았다.
대나무 숲 사이의 공터. 부러진 대나무들이 만들어 낸 길의 끝에 허윤이 서 있었다.
“…….”
막성과 안소방은 허윤을 보고 당황해서 말도 건네지 못했다.
소림사의 무공 중에는 백 걸음 안의 모든 것을 권풍으로 때릴 수 있다는 뜻으로 백보신권(百步神拳)이란 절기가 있다.
백보신권이 왜 신권이고 절기라 하느냐면 권풍을 백 보나 되는 거리까지 날리는 게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백 보면 거의 십 장 길이에 해당하고, 십 장이면 어지간한 암기도 날아가기 어려운 거리였다. 특히나 장풍은 사방으로 퍼지는 성질이 강해서 밀집되어 쏘아지는 권풍만큼 멀리 날아가지 못한다.
그러니까 방금 허윤이 쓴 것은 권풍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권풍이 무려 이십 장 밖의 대나무까지 꺾었다?
심지어 두 사람이 강한 바람을 느낀 건 그보다 좀 더 먼 거리였다. 아무리 위력이 반감됐어도 거의 삼십 장을 날아갔다는 건데…….
‘그런 게 가능했던가? 백보신권보다 더 멀리까지 나가는 권풍이 있어?’
‘아니, 그런 게 있다 쳐도 애초에 권풍으로 대나무를 휘게 할 순 있어도 꺾는 건 불가능한 일이잖은가!’
둘이 납득하기 어려운 일에 엉거주춤하는 사이, 허윤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억! 깜짝이야.”
허윤은 사람이 와 있는 줄 몰라 놀랐다.
“왜 인기척도 없이 거기서 그러고들 계시오? 사람 놀라게.”
허윤은 정말 놀랐지만 막성이 그 모습을 좋게 볼 리 없었다.
‘그렇군. 내가 올 줄 알고 장난을 쳐 둔 게야. 미리 대나무를 꺾어 놓곤 권풍으로 한 것처럼!’
막성은 화가 나서 언성을 높였다.
“이놈이 대놓고 우리를 농락하는구나. 우리가 오는 걸 알면서 일부러 그런 게 아니냐!”
“뭐가 말이오?”
안소방이 의심 반 의혹 반의 눈빛으로 꺾이고 뽑힌 대나무들을 가리키며 허윤에게 물었다.
“이거. 허 조장님께서 그러신 거 아닙니까?”
허윤은 그제야 대나무들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얼레? 그게 왜 그렇게 되어 있지?”
막성이 코웃음을 쳤다.
“흥. 잡아떼는 것 봐라. 제 놈이 그런 주제에. 권풍으로 대나무를 꺾은 것처럼 만들어 놓고 우릴 놀리려던 거겠지.”
“권풍이 뭐요. 난 그런 거 할 줄 모르오.”
“할 줄 모른다면서 어찌 권풍을 날리느냐?”
“어허, 생사람 잡지 마시오. 아까부터 자꾸 나더러 뭐라고 하는데, 나는 거짓말을 잘 안 하는 사람이오.”
막성이 쓰러진 대나무들을 가리켰다.
“이걸 네놈이 한 게 아니란 말이냐?”
“그걸 내가 그랬다고?”
“이 뻔뻔하기 짝이 없는 놈! 네놈이 아니면 누구냐!”
“거, 자꾸 놈, 놈 하면서 함부로 남에게 뒤집어씌우지 마쇼! 내가 올 땐 그렇지 않았소이다!”
막성에겐 더 황당한 말이다.
“네가 왔을 때 이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렇게 되어 있으니 네놈이 했다는 말 아니냐! 여기 네놈 말고 누가 더 있어?”
허윤도 황당하다.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리니 이 모양이 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잠깐 딴 정신 팔고 있는 동안에 당신이 권풍인가 뭔가로 이래 놨는가 보지! 그래 놓고 내가 했다고 모함을 해?”
“이노옴! 천하의 소림사 방장이 와도 권풍으로 대나무를 꺾는 건 못할 것이다! 개수작 말거라. 내가 왜 번거롭게 이런 짓을 한단 말이냐?”
“어?”
듣다 보니 허윤도 이상하다.
분명히 누가 온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저 막성이란 노인네도 괜히 저런 수고를 할 이유가 없고.
그러면 정말로…… 자기가 저걸 한 건가?
‘아까 머리가 띵하면서 뭐가 튀어 나간 거 같던데. 설마?’
막성은 허윤이 고심하는 사이 그의 옆에 돌이 잔뜩 쌓여 있는 걸 보았다. 일부는 깨지거나 바스러져 있었다.
“이것 봐라! 아무래도 수상하구나. 이 은밀한 곳에서 남들 몰래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느냐!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던 것이냐!”
목소리에 내공이 담겨 있어 대나무 숲에 막성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허윤이 깜짝 놀라 귀를 막고 머리를 흔들었다.
“어우우!”
고개를 든 허윤의 눈이 희번덕댔다. 가뜩이나 감각이 예민한데 막성이 소리를 지르니 짜증이 확 치솟았다. 원래 손님을 대할 때도 진상을 유독 싫어하던 허윤이었다.
“이 망할 영감이 보자 보자 하니까! 그냥 말로 하면 되지, 가뜩이나 정신이 없는데 왜 소리를 질러!”
“혼나고 싶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당장 고하거라!”
“보면 몰라? 무공 수련하고 있잖아! 영감은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셔?”
“내 그럴 줄 알았다! 아까만 해도 너는 무공을 배운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무슨 수련을 해!”
“있으면 내가 하겠냐! 없으니까 하지!”
“이익!”
막성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