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56
제56화
준비된 의자는 많았다. 마르할은 마린과 카리안을 데리고 빈 의자에 대강 앉았다.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마리나 실라나티엘의 입에서 나온 말의 충격이었다.
마족.
여기 있는 사람의 반 이상은 그 악몽을 직접 경험했다.
지평선을 뒤덮은 검은 안개를 눈으로 보았다.
그들에게 마족은 전설이나 공상이 아닌 현실이다.
아젠만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연합 소속 측량사. 마리나 실라나티엘이라고 합니다.”
“연합 측량사가 이 자리에는 어떻게 왔소? 여긴 지주들 회합이오.”
알레스가 아니꼬운 눈으로 마리나를 보았다.
사제와 마법사는 사이가 좋지 않다. 역사를 신의 영역으로 두고 숨기려는 사제와 신비를 파고들어 그 근원을 밝히려는 마법사는 태생부터 공존할 수 없는 직군이다.
“제가 불렀습니다.”
뤼겐이었다.
“그녀는 연합 소속이지만, 연합 사람은 아닙니다. 제국의 인사에 가깝죠. 그녀가 지주들이 꼭 들어야 할 말이 있다기에 함께 왔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매우 중요한 말은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군. 마족이 나타났다. 그 말을 자세히 듣고 싶군.”
아젠만이었다. 그는 자기 앞에 놓인 고기를 우아하게 썰어 입으로 가져갔다. 공국 왕실의 예법 선생이 보았다면 자지러지며 감탄할 자태였다.
평민 출신인 아젠만이 귀족들 사이에서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사소한 일 하나도 꼬투리를 잡혀선 안 된다.
아젠만은 이 자리에서 가장 완벽한 예법을 가진 사람이었고, 또 그걸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마르할과 마린, 카리안의 앞에도 음식이 나왔다. 마린은 예법은 무시하는 움직임으로 고기를 썰었고, 카리안은 에나에게 배운 가장 기초적인 예법을 따라 했다.
마르할도 대강 음식을 썰었다. 예법을 뽐내려면 보여줄 수는 있다.
성인과 마법사에게 각각 성황국과 제국의 예법을 배웠고, 도둑도 이쪽에 아주 문외한은 아니었다. 그리고 마르할은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예법을 가지고 있다는 바체아 제국 황족이다.
다른 사람들도 야금야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음식 맛을 즐기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마리나에게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최근 열린 토지 경주는 다들 알고 계시겠죠.”
“알다마다. 그걸 모르면 여기 있을 자격이 없지.”
뤼겐이 말했다.
“거기서 마족이 나타났습니다. 마족을 처리한 건 마침 토지 경주에 참가한 고위 기사와 그 부하들이고요. 지주의 신분 보호를 위해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여기 계신 분들이라면 간단한 조사만으로 알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오. 내 땅과 이름을 걸고 보증하겠소.”
침묵이 술렁였다. 헛숨을 들이켜는 지주도 있었고, 고용인이 나르던 음식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그 말 사실이오?”
알레스였다.
“알레스 씨였던가요. 그건 무슨 뜻이죠?”
“연합 소속 마법사 나부랭이가 하는 말을 어떻게 믿으란 거요. 지주들에게 혼란을 주려는 연합의 수작일지도 몰라. 난 믿지 않소.”
“제가 어떻게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증명. 당신의 말을 믿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시오.”
마리나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눌렀다.
이 상황에서 정치질이라니. 성황국의 권위주의에는 신물이 난다.
그녀는 말이 험해지지 않도록 호흡을 조절하며 말했다.
“좋습니다. 보여드리죠.”
“어서 해보시오.”
마리나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보이지 않는 눈이 알레스의 주변을 한 바퀴 돌더니 벽을 뚫고 바깥으로 나갔다. 눈이 향한 곳은 알레스의 마차였다.
귀족의 마차에는 중요한 물건을 숨겨두는 공간이 하나쯤은 있다. 알레스의 마차도 마찬가지였다. 마차의 의자 밑판에 숨겨진 공간이 있었다.
신비의 도움 없이 단순히 밀봉하기만 한 봉인은 그녀 앞에 의미가 없다. 그녀는 숨겨진 공간을 훔쳐보았다.
수표 몇 개와 편지가 하나.
마리나는 편지를 읽었다.
성황국의 특별 작전과 그 작전을 위해 투입된 사람을 지원하라는 내용이었다.
다만, 그 작전이 평범하지 않았다.
‘성기사 지망생이 이끄는 도적단이라니.’
그녀가 눈에서 손을 뗐다.
“최근 성황국에서 편지를 받으셨네요. 성황국에서 온 귀빈들을 도우라는 것 같던데, 잘되고 있습니까?”
여유롭던 알레스의 얼굴이 굳었다.
지주가 마적을 지원한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단순하게 마적을 지원하는 것과 지원하는 사실이 알려지는 건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자칫 여기 있는 전원을 적으로 돌릴 수도 있다.
성황국의 은밀한 지원을 받는 알레스지만, 여기 있는 지주 전원을 상대할 순 없다.
제국의 지원을 받는 뤼겐과 공국의 권력을 끌어올 수 있는 아젠만도 있다.
“누구나 놀랄 마법은 아니지만, 알레스 님은 놀란 것 같네요. 제 능력 증명은 된 것 같습니다만? 더 증명해 드려야 할까요?”
“아니, 되었소. 충분하오.”
그는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모두가 마리나를 볼 때 아젠만은 마르할을 보았다.
아젠만은 다른 사람의 행적은 다 놓쳐도 마르할의 행적만은 놓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지난 1년 보이지 않던 마르할은 개척촌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토지 경주에 참가했다. 그리고 그 경주에서 스트레킬이라는 거물과 함께 돌아왔다.
마르할의 비인간적인 친화력은 그도 알고 있지만, 스트레킬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토지 경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스트레킬이 마르할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걸까.
마족의 등장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이건 증명할 수 없는 주장이죠. 하지만 여기 있는 분들이라면 모두 들어봤을 소식도 하나 있습니다. 며칠 전 돌연 나타났던 폭풍과 검은 거인.”
멀쩡하던 하늘에서 폭풍이 치고 정체불명의 거인까지 나타났다.
이 자리에서 그 일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 현상이 무엇이었는지는 조사가 되지 않았다.
“그 또한 마족의 소행입니다.”
“보았다. 하늘이 갈라지는 걸. 그건 누구?”
거구의 남자가 어눌한 공국어로 말했다. 남자의 덩치는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컸다. 운동과는 담을 쌓은 아젠만과 비교하면 어깨 넓이가 족히 두 배는 되었다.
“당신은?”
“아프란체의 하일리. 그래서, 있었다? 용사.”
“거기까진 모릅니다.”
“달리 없다. 하늘을 가르는 인물.”
폭풍과 거인만큼이나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게 거인과 폭풍을 갈라버린 무언가다.
‘마르 누나도 가능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 형의 기술이라는 느낌이지.’
거인과 함께 구름이 갈라지는 모습을 봤다면 누구든 용사를 떠올릴 것이다.
“최선을 다해 그 신비의 주인을 찾았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찾았을 테죠. 하지만 저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야, 못 찾겠지. 하늘을 가른 사람은 여기 있으니까.
“용사를 찾는 건 나중입니다. 그가 숨고자 하면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중요한 건 마족이 나타났고, 경계 근처에서까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겁니다.”
마리나가 자리에 앉았다.
뤼겐은 살짝 당황했다. 그녀는 마족을 대비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여기까지 왔다. 마리나 본인은 이 자리를 달가워하는 기색이 아니었고, 마리나 자신도 할 말을 끝내면 바로 떠나겠다고 했다.
그녀가 다시 자리에 앉는 건 뤼겐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마리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있는 게 편하지 않았다.
그녀는 권력과 권력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권력자들이 모이는 자리라면 더더욱 사양이다. 그녀가 이 자리에 남아 있는 건 순전히 한 사람의 존재 때문이다.
‘마르할.’
땅과 역사의 관계를 아는 사람.
-쌓는 것.
-쌓인 것.
신비와 역사를 두고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표현이다.
역사는 쌓인다. 그리고 쌓인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역사와 업을 알고 다루는 자들도 그것을 쌓을 주체로 사람을 택한다.
사실,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쌓을 수 있으며 또 담을 수 있는 건 따로 있다.
땅, 토지.
모든 역사는 사람이 발 딛고 선 땅에서 일어나니, 모든 사건은 땅 위에 쌓인다.
토지의 주인은 단순한 땅의 주인임과 동시에 그 땅에 깃든 역사의 주인이다.
특별한 역사도 없는 신흥 귀족 가문에서 천재나 영재가 태어났다면 그 땅에서 일어났던 과거의 사건을 살펴보면 된다.
그러나 실제로 토지의 역사에 사람이 영향을 받는 일은 드물다.
유력한 대가문에도 몇 없는 희귀한 일이다. 그걸 알고 언급하는 저 남자는 평범하지 않다.
저 남자에 대해 알아야 한다. 지주 회합이라는 자리가 주는 불쾌감을 감수하고서라도 자리를 지키고 있을 가치가 있다.
마르할이 아프란체어로 말을 꺼냈다.
[하일리, 오랜만이죠?] [죽은 줄 알았다. 너 같은 인물이 쉽게 죽을 리도 없겠지만. 또 무슨 사고를 쳤냐?] [에이, 저도 사고만 치고 다니는 건 아니에요. 꽤 중요한 개인사가 있어서요. 하일리는 잘 지냈어요?] [나는 늘 똑같지.]아프란체 출신 하일리는 서부 출신 지주들을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휴고와 같은 뉘테 출신이다. 휴고가 일반적인 뉘테라면, 그는 왕족의 직할령에서 세금을 거두던 뉘테였다.
일신의 무력은 고위 기사에 필적하고, 토지를 경영하는 능력도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그의 유일한 단점은 어눌한 언어 능력이다.
하일리가 언어 능력이 떨어지는 건 맞지만, 10년 넘게 공국 사람과 거래하면서 언어 하나도 못 익힐 정도는 아니다.
그는 일부러 어눌한 발음과 괴상한 문법을 고집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
하일리는 아프란체어가 가능하며 같은 서부 출신이며 뉘테인 휴고를 부하로 두고 있는 마르할에게 유독 살갑게 굴었다.
마르할도 하일리 같은 인물과 친하게 지내 나쁠 게 없기에 그와 어울리는 일이 많았다.
지주 회합에서 아프란체어로 둘만 떠드는 것도 마르할이 지주 회합에 얼굴을 비칠 때는 자주 있던 일이다.
그래서 다른 지주들은 또 시작이라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면서도 대화에 끼어들지는 않았다.
대화에 끼어들었던 지주가 땅바닥에 내던져지는 일이 세 번 정도 반복된 후에 생긴 암묵적인 규칙이다.
다른 지주들도 안면이 있는 사람끼리 각기 대화를 시작했다.
[나도 끼워주지 그러나.] [각하, 아프란체어도 할 줄 아셨어요?] [배웠다. 언어 계통이 완전히 분리되는 것도 아니니 1년이면 충분하지.] [그건 좀 놀라운데요.] [이제 욕도 못 하겠어. 아쉬워.] [내 욕 했나?]아젠만이 눈을 샐쭉하게 떴다.
[다 그런 거죠.] […굴욕을 피하려면 다른 언어 배워야겠군.]학구열에 불이 붙어버린 아젠만이었다.
[까네, 이제 어쩔 거냐. 연합 놈들이 개짓거리를 시작했어.]까네는 영혼의 동반자의 남성형이다. 남자가 남자를 까네라 부르는 건 가족만큼이나 그 사람을 믿고 있다는 의미였다.
하일리가 까네라 부를 때마다 마르할은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마르할은 딱히 그에게 까네라 불릴 일을 한 적이 없다. 이유 모르는 호의는 악의만큼이나 무섭다.
[예상하고 있었잖아요? 사람은 얼마나 모았어요?] [말해도 되나?] [아젠만 각하가 알아내려고 하면 반나절도 안 걸려요.] [아젠만 리안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알았지만, 예상 이상이군.] [칭찬으로 듣지.] [이백여 명의 뉘테가 뜻을 함께하기로 했다. 다른 지주의 대리인 일을 하는 뉘테도 꽤 있지.]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일을 하고 있었군.]뉘테는 아프란체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 속에서 탄생한 특이 직업이다.
아프란체는 큰 국가는 아니었다. 곡창지대에 발을 걸치고 그곳에서 나오는 생산력으로 유지되던 국가였다.
어지간히 흉년이 들지 않는 이상 식량이 부족하지 않았고, 인구도 많았다.
사람이 많으니 그것대로 문제가 생겼는데, 바로 통제가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지방 반란이 심심찮게 일어났고, 그걸 진압하느라 드는 자원도 상당했다.
그런 배경에서 생긴 직업이 뉘테다. 도시를 관리하지만 권력은 없고, 사병을 부리면 사형이다.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는 직업, 그래서 자신을 지켜야 하는 직업 뉘테.
아프란체에서도 사람이 할 직업은 아니라는 소리를 듣던 뉘테는 서부 개척 시대가 열리고 토지 관리인으로 각광받았다.
계산은 기본에 토지 관리도 할 수 있으며. 서부에서 자기 몸을 지킬 무력도 있다.
전직 뉘테들은 대리인으로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여러 지주의 땅을 대신 관리하고 있다.
뉘테들이 조직을 만들었다는 게 알려지면 난리가 날 것이다.
이런 자리에서 할 대화는 아니다. 으슥한 밤 밀실에서나 오갈 대화다.
그러나 이 자리에 아프란체어를 알아듣는 사람은 없다.
쓸 곳 없어진 망국의 언어도 가끔은 도움이 된다.
[이거, 입막음할 사람이 한 명 생긴 것 같은데요.]다만, 오늘은 조금 특별한 사람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다.
마르할의 정면에 앉은 마리나가 눈을 크게 뜨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