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89
제89화
카반이 암살자를 묶었다. 그동안 마르할은 허공에 있는 돌과 단검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뭐 하세요?”
“음. 조금 신기해서요.”
“마르할 님의 마법이잖아요?”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마르할의 바람은 전투에 직접 써먹기엔 약했다.
일반인 상대로도 직접 공격 수단으로 사용하긴 애매하고, 초인끼리의 싸움에서는 움직임을 보조해주는 것 이상의 역할을 못 한다.
그래서 마르할은 싸움에는 되도록 가죽끈을 이용했다.
하지만 이 바람은 싸움에 직접 써먹기에 무리가 없다.
방금도 초인의 몸을 물리적으로 묶었다.
‘토지의 역사인가.’
마르할 본인이 가진 힘 외에도 외부의 힘이 마법에 작용하고 있다.
마족으로 황폐해진 땅, 그 위를 지나가는 모래바람의 역사가 머리에 그려진다.
마르할이 이 땅의 지주인 건 맞지만, 토지의 역사를 활용할 정도는 아니다. 토지에 오래 있지도 않았고, 이 땅에서 특별한 역사를 쌓은 적도 없다.
‘그 망할 형이 말했던 그건가.’
세상이 한 차원 높은 곳에 도달했다는 개소리.
그 인간은 시야가 너무 특별해서 가끔 자기만 알아듣는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마르할은 한참이나 설명을 듣거나 실제 일이 벌어진 다음에야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물건을 베는 기사, 마족이 된 인간, 100년 역사를 가진 왕국의 왕들도 다룰 수 없는 토지의 역사를 10년도 안 되어 다루는 지주.
이제 알았다.
인간은 과거에는 도달하지 못하던 영역에, 이전에는 도달할 수 없던 영역에 더 빠르게, 더 쉽게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쉽게 쌓을 수 있다는 게 맞는 말인가.’
장인들은 더 높은 수준의 물건을 만들어낼 것이고, 마법사들은 더 강한 마법을 만들어낼 것이며, 초인들은 더 치명적인 신비를 몸에 품을 것이다.
-세상이 한 차원 높은 곳에 도달했다.
지금 일어나는 현상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말이다.
‘호재인가, 악재인가.’
일단 마르할 본인도 재능 있는 인간인 건 맞다. 인외의 인간 네 사람에게 인증받았으니, 그건 확실하다.
하지만 마르할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일전 마르와 만났던 공간에서 보았던 것처럼 마르할이 품고 있는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마르할은 마왕을 죽인, 세상의 반을 죽이는 자리에 있었다. 세상의 반을 죽였다는 역사가 마르할의 몸에 깃들어 있다.
그게 마르할이라는 인간이 가진 역사다. 보통 사람이라도 그만한 역사를 쌓았다면 고위 기사를 손가락 하나로 제압하는 괴물이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르할은 그 역사를 모두 다른 것에 쓰고 있다.
마르할은 자신의 역사로 죽은 마족의 역사를 봉인하고 있다. 바체아 제국의, 서부의 역사는 거기에 필요한 매개다.
마르할의 역사가 상자고, 마족의 역사가 봉인해야 할 물품이라면, 바체아 제국의 역사는 상자를 감싼 쇠사슬이다.
마르할이 사용할 수 있는 건 쇠사슬의 힘 일부가 끝이다.
마르할 본인의 역사도 쇠사슬에 함께 묶여 있는 모양새라 마르할 자신의 성장에도 제한이 따랐다.
토지의 역사를 활용할 수 있게 되고,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쉬워졌다면, 마르할도 성장할 수 있다.
굳이 본인의 성장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지금처럼 토지의 역사만 다룰 줄 알게 되어도, 자기 땅에서 일어나는 일 대부분은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이건 마르할에게 확실히 호재다.
악재는.
‘나한테만 적용되는 일이 아니라는 거지.’
시간이 지나면 공국과 성황국, 제국도 변화를 알아차릴 것이다.
쌓인 역사는 가볍지 않다. 성황국과 제국은 말해 입만 아프고, 공국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은 부진한 공국이지만, 그들에게는 전투의 역사가 있다. 마족과 싸운 경험을 가진 사람이 다수 포진해 있다.
기사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공국은 심각한 남녀 성비 불균형에 시달리고 있다. 그만큼 전쟁에 동원되어 죽은 사람이 많다.
서른 살 남짓의 공국 남자는 모두 마족과 싸운 경험을, 역사를 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가능성이 변한 세상과 맞물려 폭발한다면?
제국과 성황국이 활용하지 못하고 쌓이기만 하던 역사를 쓰기 시작한다면?
그건 마르할과 서부 전체의 재앙이다.
마르할은 바람을 거뒀다. 허공을 춤추던 돌덩이와 단검이 땅에 떨어졌다. 마르할은 단검 하나를 손으로 가져왔다.
“특별한 실과 단검 손잡이에 아주 작은 구멍을 뚫는 기술. 이런 무기를 쓰는 암살자들이 있죠.”
도둑은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귀족의 서재를 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안체의 전사가 쓰는 무기까지 알고 있는 도둑이다. 동부에 있는 이름 있는 암살자 조직은 모두 도둑의 은밀한 방문을 한 번씩은 받았다.
“검은 손가락의 주요 활동 지역은 공국하고 성황국 아니었나요. 이 근방으로는 올 일 자체가 없을 텐데요. 의뢰라면 더 양질의 의뢰가 많고, 의뢰 말고 서부까지 올 이유라면… 서부가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너는 누구냐?”
“너희를 싹 다 지옥으로 처넣을 사신이요. 카반, 죽여요.”
“지금 말입니까?”
카반이 되물었다. 마르할의 출신을 들은 그조차 살아 있다.
카반은 마르할이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기준은 모른다. 하지만 마르할이 이토록 단호하게 사람을 죽이라고 하는 건 처음이다.
“네. 지금요.”
“알겠습니다.”
“자, 잠깐…!”
카반의 검이 암살자의 목을 깔끔하게 잘랐다.
“마린, 괜찮아요?”
“그, 안 괜찮은 것 같아요.”
마린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암살자의 독이 본격적으로 돌기 시작했다.
유물의 힘을 빌려 버티고 있는 거지 유물이 아니었으면 진즉 쓰러졌다.
“해독제가 있으면 좋겠지만, 이놈들은 따로 해독제를 안 들고 다녀요. 일단 이거라도 먹어둬요.”
마르할이 작은 단약을 꺼냈다.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하던 마린은 마르할이 꺼낸 단약을 얼른 삼키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많이 힘들어요?”
“느낌이 없어요.”
“그건 조금 위험할지도. 업혀요. 검은 놓지 말고.”
검은 손가락의 독은 가볍지 않다. 마린이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게 유물 덕분이라는 걸 마르할도 모르지 않았다.
“어, 업히라고요?”
“빨리. 그러다 늦으면 큰일 나요.”
마린이 엉거주춤 마르할의 등에 업혔다.
“카반, 발자국 따라올 수 있죠?”
“알겠습니다.”
“아니다. 여기도 잠깐 들렀다 와줘요. 투구 사이만 주의하고요. 이것도 하나 먹어둬요.”
바람이 카반 앞에 내려앉았다. 바람이 땅에 작은 선을 그었다.
선은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으로 이어졌다.
“알겠습니다.”
마르할이 준 작은 단약을 먹은 카반이 올려뒀던 눈가리개를 내렸다.
* * *
카반은 바람이 만들어둔 길을 따라 움직였다. 바람은 도시 안쪽으로 이어졌다. 도시의 모든 구역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완벽을 위해 재건에 재건을 반복하는 제도에도 사용되지 않고 버려진 구역이 여럿 있다. 그리고 그런 장소에도 사람은 산다.
버려진 구역이기에, 권력이 닿지 않는 땅이기에 그곳에 발붙이는 사람이 있다.
카반이 도착한 곳도 그런 장소였다. 대량의 물자가 오가면, 폐기되는 물건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런 폐기물을 모아둔 장소.
‘이게 서부의 저력인가.’
쓰레기장은 제도에도 있다. 칼라엔스 공작이 다스리는 도시에도 있다.
쓸 만한 물건은 거지들이 주워가고, 아니면 불태우거나 땅에 묻어 처리한다.
여긴 그런 수준이 아니다. 부서진 가구나 철, 동물 사체가 건물 높이만큼 쌓여 있다.
암살자… 마약 제작상이라 의심되는 그놈들이 여기 자리 잡고 있다면, 평범한 방법으로는 잡을 수 없다.
암살자는 생활의 그림자에 살아가는 직종이다. 추적 기사나 특별한 별동대 소속 기사가 아니면 암살자의 음험한 수법을 당해낼 수 없다.
기사라도, 초인이라도 결국은 눈먼 화살에 죽는 사람이다.
하지만 도시라는 환경 아래 암살자를 상대할 수 있는 기사가 한 종류 더 있다.
공성 기사.
복잡한 도시에서 암살자보다 암살자답게 움직이는 법을 배우고, 그걸 유파로 만든 기사들.
공성 기사의 공성은 성벽 관리를 뜻하기도 하지만, 공성전을 포함해 도시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전투를 포함한다.
적을 고의로 성벽 내부로 끌어들여 설치한 함정으로 섬멸하는 건 오래된 공성 전략의 하나다.
카반이 숨을 들이켰다. 전신 갑옷에 가려 보이진 않지만, 그의 가슴이 부풀었다.
그가 폐에 모아둔 공기를 터뜨렸다.
“암살자 놈들은 들어라!”
천둥 같은 목소리에 쓰레기장 일부가 무너졌다.
놀란 쥐 떼가 우르르 카반의 발을 지나쳤다.
“당장 투항해라! 얌전히 항복하면 고통 없이 죽여주마!”
쓰레기 사이에서 빛이 번뜩였다. 카반이 팔로 얼굴을, 몸에서 유일하게 노출된 부위인 눈가리개를 가렸다.
팔에 작은 충격이 있었다. 팔에 튕긴 바늘이 땅에 떨어졌다.
‘확실히 작아. 눈가리개 사이로도 들어오겠어.’
눈은 뇌와 직결되어 있다. 눈에 독이 든 바늘을 맞으면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도 멀쩡할 수 없다.
생각 이상으로 위험한 기술이다.
‘하지만 그만큼 사용하기 힘들겠지.’
단검을 원하는 곳에 던지는 것도 몇 년의 훈련이 필요하다. 바람에도 흔들리는 작은 바늘은 훨씬 다루기 어렵다. 유명한 기사 유파급의 수련법을 확립하고 있어도 그 수련을 전부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처음 한 번의 공격 이후 쓰레기장은 조용했다. 카반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도 생각 없이 기습의 기회를 날려버린 건 아니다. 확인이 필요했다. 암살자가 있다는 확인.
‘쓰레기장에서 사람이 숨을 장소야 뻔하다.’
쓰레기가 쌓이며 만들어진 작은 틈새. 아니면 땅을 파고 지하에 숨는다.
둘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만한 쓰레기 더미가 무너지면, 충격으로 지하는 다 무너지게 되어 있지.”
카반의 검이 쓰레기 사이에 박혔다.
그 자체로는 무의미한 행동에 불과하다. 하지만 원래 건물을 무너뜨릴 때는 처음부터 기둥을 부수지 않는다.
나머지 부위를 먼저 손보고, 마지막으로 기둥을 없애 한 번에 건물을 내려앉히는 게 철거의 미덕이다.
땅 아래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 암살자들은 이해하지 못할, 공성 기사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마르할은 마린을 업고 달렸다.
마린의 호흡은 거칠었다. 스트레킬의 유파는 뭐든지 먹고 힘으로 삼는다. 독에 대한 저항도 자연히 따라올 것이다.
거기에 마린은 바체아 제국의 유물까지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독은 그녀에게 통하지 않는다.
검은 손가락은 바늘을 던지는 암기술로 유명하지 독은 수준 미달이라는 게 도둑의 평이다.
마르할이 알던 검은 손가락의 독이 아니다.
‘그렇게 보면, 마약도 이놈들이 만들 물건은 아니지.’
대마나 양귀비처럼 쉽게 만들 수 있는 마약은 도시가 가진 역량으로도 통제할 수 있다.
온갖 군상이 모여 있는 서부기에 소수민족이 사용하는 환각제 같은 것들도 여간해선 정보가 돈다.
하지만 이번에 퍼진 마약은 휴고도 모르는 물건이다.
소량으로도 중독되고, 유통되는 양도 심상치 않다.
검은 손가락 따위가 만들 물건이 아니다.
‘마법사인가. 정신 나간 개인이면 좋겠지만, 마법사 유파면….’
그땐 마르할 혼자서는 힘들지도 모른다.
도시 중앙에는 커다란 저택이 있다. 마르할의 집이지만, 사실상 휴고의 집으로 쓰이는 장소다.
지주 대리인인 휴고가 작은 판잣집에 살면 그것도 위엄이 서지 않는다.
마르할은 뒷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갔다. 집의 구조는 이미 안다.
마르할은 각종 의료 도구가 있는 방의 문을 열었다.
안에 기척이 하나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저택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마르할과 휴고가 허락한 사람뿐이다.
문 안에는 전혀 의외의 사람이 있었다.
“다곤. 여기서 뭘 하는 거죠?”
방에는 의료 기구를 두는 작은 탁자가 있다. 탁자 앞에 다곤이 있고, 탁자 위에는 하얀 종이가 올려져 있다. 그리고 종이 위에는 검은 가루가 있다.
다곤은 검은 가루를 향해 혀를 내밀고 있었다.
“어…? 잠깐,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이거 전부 필요한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