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the Machine God RAW novel - Chapter 126
기계신과 함께 – 126
그녀는 마법사인 듯 커다란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아아, 미안하군, 아가씨. 아, 그러고 보니 자네는 랭킹 10위의 서소아 양이구먼. 아, 미안, 미안. 늙으면 말이 많아지는 게 문제라니까. 어쨌든 작전을 짜잔 말이지? 흠······.”
현수길이 주책없이 떠들다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혼자 움직이겠네.”
“네? 그래도 이렇게 모인 김에 다 함께 움직이는 게 효율이 좋지 않겠습니까?”
당효민이 현수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내 능력은 혼자일 때가 편해서 말이네. 다른 사람들에게 그다지 보여주고 싶지도 않고.”
“아······ 알겠습니다. 그러시다면야.”
헌터에 따라 자신의 능력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당효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희는 함께 움직이도록 할까요?”
랭킹 10위의 마법사 서소아가 당효민을 보며 물었다.
“저는 마법을 캐스팅하는 동안 지켜줄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좋습니다. 저희도 든든한 마법사가 있으면 사냥이 수월하죠.”
당효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치유사만 있으면 딱인데······.”
“아, 그러고 보니······ 김소유 씨, 치유사 아니신가요?”
당효민이 회의실 의자에 앉아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10대의 여자 헌터를 보며 물었다.
이지스 클랜에서 강하나의 명령으로 파견을 나온 김소유였다.
그녀는 갑자기 자신에게 모든 이목이 쏠리자 당황했다.
“아! 안녕하세요! 치유사 김소유입니다. 그, 그게······.”
그가 흘끗흘끗 한 사람의 눈치를 보았다.
검은색 슈트로 온몸을 감싸고 있는 20대 중반의 헌터.
사람들의 이목이 이번엔 그쪽으로 쏠렸다.
“자네는 누군가?”
현수길이 그에게 물었다.
“저는 신무결이라고 합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로구만.”
“별로 활동을 많이 한 편은 아니라서요.”
무결이 담담히 대꾸했다.
“저 아가씨가 자네 눈치를 보는 것 같던데, 자네 일행인가?”
“아, 김소유 씨.”
신무결이 김소유를 불렀다.
“네, 넷!”
김소유가 바짝 긴장하며 대답했다.
“저도 지금은 혼자 다니는 게 편해서요. 혹시 일행이 없으시다면 이분들과 같이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네, 알겠어요······.”
김소유가 살짝 기운 빠진 얼굴로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헌터들은 생각했다.
‘차였다.’
‘차였어. 불쌍해.’
“그럼 김소유 씨, 저희랑 함께 다니시는 겁니까?”
당효민이 반색하며 물었다.
김소유는 랭킹 22위의 치유사로, 치유사로서는 거의 톱급에 랭크된 헌터였다.
파티 사냥에 있어서는 누구나 모셔 가려고 하는 귀중한 인적 자원이었던 것이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김소유가 당효민과 당철민, 서소아에게 인사했다.
“다른 분들도 괜찮으시면 저희와 함께 파티로 움직이는 게 어떨까요?”
당효민이 회의실에 있는 다른 헌터들에게도 의향을 물었다.
신무결과 현수길처럼 단독행동을 하기로 한 다섯 명의 헌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헌터가 당효민의 파티에 합류하기로 했다.
“저희는 원주시로 진공하는 몬스터의 정면을 막겠습니다. 단독행동하시는 여러분은 참고해서 활동해 주세요.”
당효민이 다른 헌터들을 보고 말했다.
“자, 그럼 얼른 갑시다. 사람들이 더 몬스터의 손에 희생되기 전에!”
“어서 갑시다!”
당효민의 주도하에 헌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무결은 원주로 오는 내내, 그리고 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딴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는 회의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여기 있는 사람들로는 몬스터 웨이브를 저지하지 못한다.
그보다는 일단 한 가지 의문을 풀어야 했다.
‘왜 벌써?’
도대체 몬스터 웨이브라는 이 사태가, 왜 벌써 일어난 것인지.
전생에서는 분명 2년이 지나서야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했다.
그런데 지금은 던전시대가 열리고 고작 1년 반.
아직은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할 시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망할 던전들이 전생보다 더 빨리 생성되고 있어. 그것 때문인 것 같긴 한데.’
던전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시간보다 지금 생성되고 있는 던전들의 등장 날짜가 조금씩 앞당겨지고 있었다.
아마 이 몬스터 웨이브도 그 때문에 생긴 것으로 추측되긴 했다.
문제는.
‘왜 던전 생성이 앞당겨지고 있느냐.’
이것 때문에 골치가 아주 아팠다.
다행히 던전 생성 위치는 전생과 비슷해서 노리고 있던 던전이 다소 일찍 등장하더라도 그 던전을 독점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계속해서 몬스터에 의한 지상 침식이 가속화될 터였다.
그게 제일 큰 문제였다.
후에 등장하는 던전일수록 난이도도 어렵고,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몬스터들도 강력하다.
그런 몬스터들이 더 일찍 풀려난다면, 그만큼 더욱 위험해진다.
‘한국의 헌터들은 전생의 이 시기보다 강력해서 그래도 좀 다행이긴 한데, 다른 나라들은······.’
한국은 무결 자신이 [베히모스의 꿈] 던전을 일찍이 클리어한 덕에 카르마 포인트 2배라는 막대한 보상을 오랜 기간 동안 누렸다.
덕분에 헌터들의 능력도 한층 강해진 상황.
하지만 몬스터 웨이브라는 이런 재앙 앞에서 그 발전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하물며 다른 나라까지 이 지경이라면, 그 나라는 존속 자체를 보장하기 힘들 터였다.
‘다른 나라도 내가 지식을 조금씩 풀어준 덕에 조금씩 더 성장한 것 같긴 하지만 말이지.’
혹여 이것이 무결이 미래지식을 푼 대가라면, 앞으로 조심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결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검토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터벅터벅 걸어갔다.
“꺄아아악!”
“도망쳐!!”
무결이 걸어가는 반대편으로, 사람들이 도망가고 있었다.
대부분이 일반인이었지만, 그중에는 헌터로 보이는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몬스터 웨이브를 처음 겪어보는 헌터들.
“도망가! 우리로서는 막을 수 없어!!”
“제길, 수가 너무 많아! 저건 아무도 못 막을 거야!”
“놈들이 이상한 능력을 사용해! 헌터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어!!”
그들은 도망치며 다른 헌터들의 후퇴를 종용하고 있었다.
그 말에 이끌린 헌터들이 하나둘 전선에서 후퇴하고 있었다.
무결은 그들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뚜벅뚜벅 앞을 향해 걸어 나갔다.
도시의 외곽 부분.
이미 몬스터가 한차례 휩쓸고 지나가서인지 파괴되고 무너져 내린 건물들이 보였다.
그 건물들의 잔해를 지날 때.
툭.
무결의 발치에 인형 하나가 걸렸다.
어린아이가 가지고 놀았을 법한 토끼 인형.
토끼 인형은 그을리고 헤져서 누더기처럼 더러웠다.
하지만 무결은 그 인형에서 스러져 갔을 한 아이의 생명을 느낄 수 있었다.
꺄아악······.
고통 속에 죽어갔을 아이의 비명이 귓가를 울리는 것만 같았다.
무결은 고개를 들어 저 앞을 바라보았다.
몬스터들이 보인다.
날아다니는 가면이 도망가는 사람들을 입으로 베어 물고 있었다.
거대한 사자 같은 몬스터가 헌터들의 합공을 받다가 한 헌터를 손톱으로 할퀴어 버렸다.
그 헌터는 온몸이 찢어진 후, 사자의 입에 날름 삼켜졌다.
“틀렸어······ 공격이 안 통해!”
“도망가!!”
협공하던 헌터들은 그대로 줄행랑을 쳐버렸다.
헌터라는 방해자가 사라지자 사자 모양 몬스터는 다시 인간사냥을 시작했다.
놈이 눈을 두리번거리다 도망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향해 달려갔다.
“헉, 헉······!”
두 명의 어린아이와 세 명의 어른.
아이 둘은 어른들의 발을 따라잡지 못하고 뒤처지고 있었다.
파란 옷을 입은 아이가 노란 옷을 입은 아이의 손을 잡아끌며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먼저 죽은 것은 앞서 달리던 어른들이었다.
콰아앙!!
사자의 발이 앞서 달리던 어른 셋을 깔아뭉갰다.
피가 터져 나오며 바닥을 적셨다.
사자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며 공포에 질려 떨고 있는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표정.
그 모습을 목격한 무결의 머릿속에 토끼 인형이 스쳐 갔다.
무결은 손을 들어 올렸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권총이 불을 뿜었다.
콰아앙-!!
“크에에엑!”
사자가 비명을 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레일 건을 맞고도 별로 타격을 안 받다니, 네놈도 상당히 터프한 놈이군.”
무결이 조금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핸드건 모양으로 개량되었지만 레일건은 레일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무기였다.
하지만 요즘에는 레일건이 듣지 않는 놈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터프한 놈에게는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줘야겠지.”
블랙미슈릴 슈트에 덮인 무결의 오른손에서 파지직거리며 전류가 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주변의 잔해에 묻혀 있던 철골들이 서서히 떠올랐다.
반파된 건물에는 수많은 종류의 철골이 존재했다.
커다란 H빔에서부터 가늘고 긴 행거볼트, 거기에 작은 나사 하나하나까지.
그 모든 종류의 철골이 종류를 가리지 않고 건물의 잔해에서 떠오르더니, 무결의 손짓에 따라 쏘아져 나갔다.
캉! 카카카캉!
커다란 철골들이 하늘에서부터 내리꽂혀 사자 몬스터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두 어린아이의 사이에 철의 벽을 만들어내었다.
그사이 작은 철골들은 거대한 사자의 몸을 이리저리 감싸고, 찌르고, 묶었다.
하지만 사자 몬스터가 날뛸 때마다 놈의 몸을 묶은 철골들은 끊어지고 일그러지고 찢어져 나갔다.
‘이러면 오히려 감사하지.’
무결은 그렇게 찢어져 끝이 뾰족해진 철골들과 작은 철골들로 사자의 눈 부위를 괴롭혀 나갔다.
“크와아아아!”
사자가 울부짖으며 양발과 입으로 사정없이 철골들을 쳐내고 물어뜯었다.
‘빙고.’
무언가 사자의 입속으로 쏙 들어갔다.
무결이 몰래 철골들 틈에 섞어 날려 보낸 철제 폭탄.
철골들은 폭탄의 존재를 숨기기 위한 눈가리개였다.
일부러 녀석의 눈을 어지럽히면서 입은 놔뒀기 때문에 더더욱 입에 폭탄을 밀어 넣기가 쉬웠다.
‘자고로 겉가죽이 단단한 놈은 많이 봤어도 속가죽까지 단단한 놈은 얼마 못 봤지.’
딱!
무결이 손가락을 튕김과 동시에.
펑!!
녀석의 배 속에서 폭발이 일었다.
역시 터프한 놈답게 몸이 터져 나가지는 않았다.
대신.
울컥!
녀석은 피를 토했다.
뒤로 돌아 달아나던 헌터들이 그 모습을 목격했다.
“야, 저 녀석 피 토했어!!”
“저 헌터분 덕에 내상을 입은 거 같은데?”
“조지자!!”
도망치던 헌터들이 다시 뒤로 돌아 녀석에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저 정도에도 안 죽었으면 6급은 되겠는데?’
6급이면 어지간한 A급 헌터라도 고전할 수밖에 없는 거대 괴수.
지금 저 녀석을 다구리 치는 B급 이하 헌터들이 픽픽 놈의 발톱에 쓰러져 나간 것도 이해가 되었다.
겉가죽이 저렇게 튼튼해서 어지간한 공격도 통하지 않는 까다로운 녀석이라 무결 자신 또한 이렇게 따로 수를 쓰지 않았는가.
“야, 봤어?”
“저게······ 저게 저렇게 죽을 몬스터가 아니었는데.”
다른 몬스터를 사냥 중이던 헌터들도 사자 몬스터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도망치던 헌터들은 그래 봬도 이 자리에 모인 수많은 헌터 중 정예를 맡을 만큼 강한 헌터들이었던 것이다.
“랭커 아니야?”
“이번에 공개된 랭커 목록에 저런 사람은 없었던 것 같은데.”
“젠장, 랭커도 아닌데 저렇게 쉽게 죽여? 우리도 나름 B급 헌터인데 그럼 A급이랑 차이가 저렇게 크단 말이야?”
헌터들이 왠지 자괴감에 빠져서 저들끼리 허우적거렸다.
그사이 무결은 철골 뒤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