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the Machine God RAW novel - Chapter 262
기계신과 함께 – 외전(3)
“음, 뭘 선택할까, 슈리?”
무결은 선택지를 보며 고민했다.
던전 입장 전의 대기 공간이었지만, 언제나처럼 슈리의 목소리가 들려올 줄 알았다.
하지만······.
“슈리?”
일 초가 지나고, 이 초가 지나도 슈리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제서야 무결은 슈리가 자신의 곁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던전지기, 슈리는 어떻게 된 거야?”
[모험가 슈리 님께서는 또 다른 ‘시작의 방’에서 시작을 준비하고 계십니다.]“······아하.”
슈리 또한 ‘모험가’로 분류되어 던전에 입장한 모양이었다.
무결은 전에는 없었던 일이라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그러려니 했다.
이전까지의 슈리는 일종의 치외법권 지대였던 [에메랄드의 서] 속에서 던전의 눈을 피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완벽한 객체성을 획득했으니, 던전에 인식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뭐, 알아서 잘하겠지.”
걱정되지는 않았다.
슈리는, 지금 무결보다 훨씬 강한 ‘신’이었으니까.
무결은 선택지 중 5번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골랐다.
[5번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선택하셨습니다. 맞습니까?]“응.”
[모험가 님께서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 속 캐릭터 ‘필립’이 되어 동화나라 속을 모험하실 수 있습니다.] [모험가 슈리 님과 협력하여 동화나라를 뒤흔드는 마녀를 퇴치하십시오.] [마녀 한 명을 퇴치한 순간부터 던전 클리어가 성공한 것으로 인정됩니다.] [하지만 원하신다면 더 많은 마녀를 퇴치하실 수도 있습니다.] [성공 보상 : 던전 내의 획득 아이템 1종과 마녀를 퇴치한 수에 비례한 카르마 포인트] [실패 조건 : 모험가 님의 사망] [주의 사항 : 사망 시 현실 세계에서도 사망합니다. 주의하십시오. 다만 ‘던전 탈출’을 외치면 즉시 던전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스테이지의 배경과 맞지 않는 스킬과 아이템을 배제합니다. 해당 스킬과 아이템은 던전 퇴장시 다시 습득할 수 있습니다.] [‘디바이스 컨트롤’ 스킬이 배제되었습니다.] [‘기기 친화력’ 스킬이 배제되었습니다.] [‘둔재보’ 스킬이 배제되었습니다.] [‘비응회선각’ 스킬이 배제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스킬이 배제되었다는 소리가 줄줄이 흘러나왔다.
무결이 그만큼 많은 스킬을 가진 까닭이었다.
[육체와 기억이 보정됩니다.] [모험가님의 행운을 빕니다.]온몸이 뒤틀리는 감각과 함께 낯선 기억이 쏟아져 들어왔다.
무결은 눈을 떴다.
그의 앞에는 지옥 같은 화염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사방이 용암과 화염이 가득한 살풍경한 시작이었다.
그리고.
“크롸아아아아—!!”
한 마리의 레드드래곤이 무결의 앞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거대한 탑이 보였다.
딱 봐도 저 탑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라고 생각한 순간.
“크롸아아아!!!”
레드드래곤이 불길을 토해냈다.
하지만.
“앉아.”
무결이 기세를 드러내며 명령한 순간.
끼깅.
레드드래곤은 땅에 주저앉은 다음 배를 드러내고 애교를 부렸다.
놈의 눈은 쉴 새 없이 공포로 떨리고 있었다.
고작 던전시대 2년 차의 던전, 고작 성룡도 안 된 레드드래곤은 지금의 무결 앞에서는 강아지나 다름없었다.
무결은 놈을 지나쳐 탑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한 명의 아름다운 미녀가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다.
애틋한 감정에 무결의 심장이 파르르 떨렸다.
그에게 스며든 필립 왕자의 기억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녀는 숲속에서 만난 ‘플로라’라는 이름의 여인으로, 필립과 사랑을 나누었던 이웃 나라의 공주였다.
“당신의 진실한 키스만이 플로라를 깨울 수 있습니다. 부탁해요, 필립 왕자.”
요정 메리웨더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마녀를 퇴치하려면 공주의 힘이 필요하다 했다.
무결은 플로라 가까이로 다가갔다.
‘공주와 협력하여 마녀를 퇴치하랬지.’
마녀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공주의 힘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플로라의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
맑고 투명한 피부, 앵두 같은 입술.
생기 넘치고 웃음으로 가득했던 눈은 이제는 곱게 감겨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아름다움은 전혀 빛을 발하지 않았다.
이윽고 무결의 몸이 조금씩 숙여졌다.
그리고 그럴수록, 플로라의 숨이 거칠어졌다.
하얀 볼이 발갛게 변했다.
무결의 입이, 그녀의 입이 아닌 귓가에서 멈추었다.
“일어나, 슈리.”
그러자 플로라, 아니, 플로라의 몸을 입은 슈리가 눈을 사알짝 떴다.
그리고 무결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화들짝 감고 모른 척했다.
“일어난 것 다 아니까, 그만 일어나라니까.”
“저 안 일어났습니다.”
슈리가 눈을 감은 채로 입만 움직여 말했다.
“그거 네 몸 아니다. 진짜 몸 얻으러 안 갈 거야?”
그 말에 슈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슬그머니 눈을 뜨더니, 중얼거렸다.
“치,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키스라는 거, 저도 해보고 싶었습니다만.”
“그런 거는 연인끼리나 하는 거야.”
“저도······.”
슈리가 뭐라 중얼거리다 그만뒀다.
“아닙니다, 어서 가죠, 마스터.”
그녀가 침대에서 씩씩하게 일어서며 치마를 걷어 올렸다.
그러나.
휘청-
그녀는 그 기세가 무색하게도, 중심을 잃고 쓰러지려 했다.
그렇게 쓰러지려는 것을, 무결이 얼른 다가가 잡아주었다.
슈리가 무결의 팔에 몸을 기대고 그를 올려다보며 배시시 웃었다.
“인간의 몸은 처음이라······.”
“······그래, 천천히 적응하고.”
슈리는 여전히 무결의 몸에 매달려 어기적어기적 걸음을 옮겼다.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듯 조금씩 조금씩 몸에 적응해 나갔다.
그렇게 오 분이 지나고······.
십 분이 지나고······.
삼십 분이 지났다.
“······너 어째 적응이 좀 느린 것 같다? 일부러 제대로 안 하는 거 아니야?”
무결은 여전히 자신의 팔에 몸을 기대며 걸음을 연습하는 슈리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 아닙니다, 인간의 걸음이 어려운 것뿐입니다.”
움찔 몸을 떤 슈리가 부인했다.
그러더니 저 멀리 창밖으로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그래? 그럼 조금만 더 노력해 봐.”
무결은 여전히 못 믿겠다는 눈이었지만, 그냥 알았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슈리의 걸음마를 도와주었다.
그런데, 그 직후······.
슈리는 불과 1분도 안 돼서 완벽하게 걸음을 떼었다.
극적인 변화였다.
“······너······.”
무결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뭐라 말하려는 순간, 슈리가 말을 가로챘다.
“어서 가죠, 마스터! 얼른 마녀를 물리치고 제 몸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슈리의 말에, 무결은 하려던 말을 넣어두고는 그녀를 따랐다.
둘의 앞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없었다.
해골병사와 몬스터들, 그리고 기기묘묘한 함정들은 무결과 슈리, 아니, 필립 왕자와 플로라 공주의 무지막지한 힘에 초토화가 되며 스러져 갔다.
이윽고 그들은 마녀가 있는, 성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했다.
도도하고 강력해 보이는 인상의 마녀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감히 네놈들이 어둠의 여왕인 내게 대적하려 해?”
그녀가 옥좌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살려주세요.”
그녀는 얼마 안 가 무결과 슈리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내놔.”
“뭐, 뭘 말씀이십니까?”
그녀가 안쓰럽게 오돌오돌 떨며 무결을 올려다보았다.
“인간의 몸, 가지고 있다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소문 듣고 찾아왔으니, 끔찍한 꼴 보기 전에 얼른 내놓는 게 어때?”
무결이 나른하게 말했다.
“저, 전 진짜 무슨 말인지 잘······. 제가 갖고 있던 인간이라고는 잠들어 있던 플로라밖에는 없는데요?”
“······.”
[신의 눈]으로 그녀의 말이 진실임을 확인한 무결은 눈을 깜빡였다.그의 머릿속으로 아테나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뒤틀린 동화나라] 속의 마녀에게서 영혼 없는 인간의 몸을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러고 보니 그녀는 그냥 ‘마녀’라고만 했지, 그게 어떤 마녀라고는 얘기 안 했다.
‘하긴, 마녀가 하나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많을 거라 생각했나.’
던전지기의 말에서 ‘마녀 네트워크’라는 표현이 나왔다.
마녀가 한둘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하아······.”
무결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던전 생활이 조금 더 길어질 것 같았다.
“그럼 말해봐. 어떤 마녀가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지?”
“예? 그걸 왜 저한테······.”
마녀가 무결의 눈치를 살피며 그렇게 말했지만, 눈을 부라리는 무결에게 찔끔하고는 얼른 눈을 다시 내리깔았다.
“잘 생각해 봐, 짐작 가는 게 있을 거야. 없으면 넌 죽어.”
무결이 속삭이듯 마녀를 협박했다.
그러자 마녀가 오들오들 떨며 얼른 머릿속을 뒤졌다.
“아, 아! 아마 인어공주의 마녀 ‘우르슬라’가 인간의 몸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인어공주의 다리를 만든 것도 걔거든요!”
“그래?”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그래, 고맙다.”
그렇게 말한 무결은 망설임 없이 마녀를 기절시켰다.
[마녀를 퇴치하셨습니다.] [아이템 ‘그림하일드의 지팡이’를 획득하셨습니다.] [스테이지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스테이지 보상을 정산하시겠습니까?]“아니, 이제 ‘인어공주’의 세계로 갈래.”
무결이 그렇게 말하자 다시 메시지가 떠올랐다.
[3번 인어공주의 세계로 이동합니다.]무결의 눈앞이 다시 어두워졌다.
[육체와 기억이 보정됩니다.] [모험가님의 행운을 빕니다.]다시 한번 육체 보정과 기억 보정이 일어났다.
감각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무결은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 수 있었다.
시야보다 먼저 느껴진 건 눅눅한 습기와 코를 찌르는 악취였다.
눈을 떠 앞을 살펴보니 쇠창살들이 촘촘히 앞에 박혀 있었다.
잘그랑.
손발을 움직이니, 족쇄가 그의 팔다리를 묶고 있었다.
“끌끌끌.”
눈앞에서 웬 등이 굽은 꼽추 노인이 웃었다.
“일어났는가? 아직도 열쇠가 필요 없는가?”
꼽추 노인이 더러운 죄수복 밑에 숨겨둔 열쇠를 무결에게만 슬쩍 보이며 짤랑거렸다.
무결에게 들어온 기억 속에서, 이 꼽추는 감방 동료였다.
그런데 무슨 수를 썼는지 무결의 팔다리 족쇄를 푸는 데 필요한 열쇠는 물론 감옥의 열쇠까지 가지고 있었다.
왕자 ‘에릭’은 그게 꼽추 노인이 간수로부터 열쇠를 훔쳤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마도 왕자에게서 정보를 뽑아내려는 첩자겠지.’
무결은 단숨에 꼽추의 정체를 파악했다.
[신의 눈]을 쓸 것도 없었다.“자네의 한 마디면 이 축축하고 끔찍한 지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어. 내게 왕궁의 기밀 문서함의 위치를 알려준다면······.”
거기까지 들은 무결은 슬슬 스킬을 끌어올렸다.
던전 [뒤틀린 동화나라]는 고작 던전 시대가 열린 지 2년 차의 던전.
스킬 몇 개 봉인시킨 걸로는-
찌거걱, 캉!
찌걱, 캉!
절대로 무결을 막을 수 없었다.
무결은 팔다리의 족쇄를 간단하게 손으로 뜯어버리고는 일어섰다.
꼽추 노인이 눈을 커다랗게 끄더니 꿈뻑꿈뻑거렸다.
그리고 그는, 무결이 감옥의 쇠창살을 양손으로 벌려 버리고 나갈 때까지 얼어버린 듯, 제자리에서 꼼짝도 못 했다.
무결은 당당하게 감옥을 걸어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병사가 달려들었지만 무결의 손발짓 한 방에 다들 펑펑 나가떨어졌다.
무결은 곧장 왕궁으로 직행했다.
그곳에 에릭으로부터 왕국을 빼앗은 마녀가 있을 거였기 때문이다.
인어공주가 짝사랑했던 왕자 에릭의 왕국은 이미 마녀의 손에 넘어가 있었다.
본래대로 이 던전을 깨려면, 꼽추 노인을 이용해 감옥을 탈출해, 마녀의 폭정에 불만을 가진 시민들을 규합, 반란을 일으켜 다시 왕권을 탈취하는 시나리오로 가야 했을 터였다.
하지만, 다 필요 없었다.
‘압도적인 힘이면, 모든 것이 장땡이다!’
무결은 곧장 마녀를 잡기 위해 왕실로 직행했다.
그의 앞을 검기를 뽑아내는 근위기사단이 그를 막아섰고.
“감히 여왕 폐하께 반기를 드는- 악!!”
급기야 검강을 뽑아내는 근위기사단장이 등장했지만-
“놀랍군. 여기까지 혼자서 온 자는 네놈이- 커억!!”
무결 앞에서는 일반 병사나 그들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마침내 무결이 마녀가 있다는 ‘왕의 침실’에 도달했다.
하지만.
마녀는 이미 도망치고 없었다-
* * *
“하아, 진짜. 귀찮게 하네.”
무결은 배를 타고 마녀를 추적해 바다로 나왔다.
추적 스킬만 여섯 종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녀를 추적하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퐁당.
바다 위에 배를 멈춘 무결이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이곳부터는 심해로 헤엄쳐 가야 한다.
몇 분 안 헤엄쳐 심해에 도달한 무결은 마녀의 은신처를 찾아냈다.
그리고 바로 그곳을 부수고 들어갔다.
“야, 야! 좋은 말 할 때 튀어나와라?”
생각보다 길어진 던전 탐험에 짜증이 난 무결이 신경질적으로 외치며 들어갔다.
“어?”
하지만 그는 이내 의외의 광경을 발견하고 말을 잃었다.
문어의 다리를 가진 모습으로 변한 마녀는, 여덟 개의 문어다리로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한 여인이 빙긋 웃으며 무결을 반겼다.
“마스터, 오셨습니까.”
상반신은 여자, 하반신은 물고기의 것을 한 여인이 빙긋 웃으며 무결을 반겼다.
“너, 너······.”
“아, 마녀는 이미 제가 제압해 두었습니다. 이제 심문만 하면 됩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너 가슴은 가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