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the Machine God RAW novel - Chapter 36
기계신과 함께 – 036
“엇?”
상대방이 깜짝 놀라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내 이름을······?”
그의 눈에 난 동공지진이 보였다.
이곳에서는 그 또한 타인의 이름과 얼굴을 하고 있을 테니, 현실에서의 자신의 이름을 부른 나 때문에 당황한 것이다.
나는 일이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두 가지 역할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1. 천마신교의 말단 교도
2. 정파의 후기지수
던전 입장 시 나왔던 두 선택지 중, 한서후는 두 번째를 골랐던 것이다.
아니, 내가 첫 번째를 골랐으니 나보다 나중에 던전에 들어왔을 그에게는 두 번째 선택지밖에 없었으리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으음······.”
나는 이 기막힌 우연에 침음했다.
분명한 건, 이게 내게 기회가 되리란 점이었다.
“여기서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군요.”
“대체 누구시죠? 누구시기에 현실에서의 제 이름을 알고 계신 겁니까?”
한서후 또한 잠시 검을 거두고 물어왔다.
나는 그의 말에 순순히 대답해 줬다.
“저는 당신보다 먼저 이 던전을 들어온 각성자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알고 있는 각성자이기도 하죠.”
“아, 던전에 각성자 여러 명이 들어올 수도 있는 거였군요? 근데 제가 알고 있는 각성자라시면······?”
그의 동공지진이 다시금 시작되고 있었다.
“엘리멘탈 골렘.”
내 말에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아랑곳없이 말을 이었다.
“‘어떻게 저기에 맞설 생각을 하냐? 검기도 못 뽑는 애송이 주제에. 네가 불사신이냐?’”
나는 그때 그에게 했던 말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말했다.
기억력 하나는 좀 좋아서.
“어엇?”
한서후도 뭔가 생각난 듯했다.
그에 따라 내 입가에 미소가 생겨났다.
“‘다음부터는 상대 좀 보고 덤벼라. 너 그러다 죽었었어, 인마’.”
“아, 그때 그 각성자분!!”
“그때는 반말해서 미안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어떻게 저런 중2병스러운 대사를 쳤을까,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아닙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사실 반말로 하신 줄도 몰랐습니다, 하하. 그나저나 그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여기 이렇게 서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서후가 마침내 검을 완전히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하려는 것을, 내가 말렸다.
“아니아니, 인사는 됐습니다. 대신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예? 부탁요?”
“네, 갑작스럽지만······.”
“말씀만 하십시오. 그때 일에 대한 보답도 못 드렸으니 제가 가능한 거라면 성심을 다해 돕겠습니다.”
과연 한서후는 듣던 대로 호인(好人)이었다.
입을 여는 내 입가의 미소가 짙어졌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 * *
“부상자입니다! 비켜주십시오!”
한서후가 빠르게 문을 향해 달려가며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의 뒤를 성녀를 업고 쫓아가고 있었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한서후는 여기서 ‘송서욱’이란 이름을 쓰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정파인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꽤나 알려져 있는 후기지수였다.
한서후는 빠르게 달리며 나를 흘끗 곁눈질했다.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는 눈치였다.
내가 성녀를 업고도 자신을 잘 따라오는 눈치이자 한서후의 눈에는 ‘역시’ 하는 감탄이 어렸다.
딱히 내가 경공을 펼치고 있는 것도 아니었건만, 성녀를 업고도 경공을 펼치는 자신을 너끈히 따라오는 모습에서 감탄한 것이다.
반면 나는 한서후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입은 캐릭터의 힘일지도 모르지만, 한서후는 내공심법과 검술에 더해 신법까지 여러 종류의 무공을 참 밸런스 있게 익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움직임을 봐선 자기 무공 같은데. 무슨 기연이라도 얻었나?’
그에게서는 낯선 스킬을 운용하는 자 특유의 어색함이 묻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서후를 관찰하며 움직이던 도중, 누군가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거기 잠깐!”
우락부락하게 생긴 중년인이었다.
“공덕 사숙.”
한서후가 그에게 가 포권했다.
“그분들은 뉘신가?”
그가 우리를 보며 물었다.
“예, 사숙. 함께 정찰을 나갔다가 마교도들에게 부상당한 동료들입니다. 죄송하지만 부상이 심해서 빨리 가봐야 합니다.”
사숙이라는 사람이 혹시나 우리의 소속에 대해 물을까 봐 한서후는 우리의 부상이 심하다 둘러대었다.
그러나 그것이 더 치명적인 악수가 되었다.
“그래?”
사숙이란 자가 나와 성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걸어왔다.
“제가 보기엔 그렇게 심한 부상을 입은 사람들 같지는 않은데. 어디에 부상을 입었는지 볼 수 있겠습니까?”
“부, 부상을요?”
한서후가 떠듬거렸다.
“하, 하지만 사숙, 지금 한시가 급한······.”
“네 이놈!!”
사숙이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사숙이 다른 분들과 얘기를 나누는데 끼어들다니,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더냐!!”
“······.”
한서후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안절부절못할 뿐이었다.
저벅저벅.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져 갔다.
한 걸음, 두 걸음.
마침내 내게 손이 닿을 거리까지 왔을 때.
저벅.
그가 우뚝 걸음을 멈춰 섰다.
“이 냄새는······.”
그가 나를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정말 부상이 심한가 보오. 실례했소, 빨리 가시오.”
그러더니 자리를 비켜주었다.
“빨리 모시고 가지 않고 뭣 하느냐!”
무안한지 괜히 한서후를 닦달하는 그였다.
“네? 네, 사숙!”
한서후는 뭐가 뭔지 모르면서도 다시 나와 성녀를 이끌고 자리를 벗어났다.
다행히 그는 멀리 서서 우리에게 포권을 취한 채로 우리를 배웅했다.
예의 그 사숙이라는 자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달렸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나는 한서후를 멈춰 세웠다.
“서후 씨, 잠깐 쉬었다 가죠.”
나는 등에서 일어나는 지독한 고통을 참아내며 업고 있던 성녀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후욱- 혈향이 퍼져 나갔다.
“후읍.”
나는 숨을 들이마시며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세상에······.”
한서후와 성녀는 피로 가득한 내 등을 보며 신음을 내뱉었다.
한서후의 사숙이 물러난 이유는 간단했다.
짙고 생생한 혈향(血香)을 맡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다가오기 시작한 순간부터 [유가선공]을 운용해 강제로 내 등의 피부를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유가선공]으로는 내 뼈와 살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부상자 역할을 맡은 것은 성녀였지만, 내 등과 성녀가 접촉해 있는 이상, 사숙이 이 혈향이 누구의 것인지 구분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리고 이런 혈향을 맡고도 끝까지 칼 맞은 부위를 보자고 할 만큼 낯짝이 두껍지 않았던 그는 결국 순순히 길을 비켜주고 말았다.
우리 모두 한서후가 구해준 검은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혈향에 비해 피에 물들지 않은 옷에 대해서는 눈치를 못 챈 것이 다행이었다.
나는 내력을 운용해 찢어진 등을 서서히 치료해 나갔다.
역시 치유 무공답게 [유가선공]은 상처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게다가 등에 낸 상처는 피만 많이 나오도록 깨끗이 찢어낸 것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빨리 아물어갔다.
나는 대충 치료를 끝내고 일어섰다.
“다시 업히시지요.”
“······아직 안색이 창백해요.”
성녀가 걱정스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여기서 더 지체한다면 들킬 확률만 높아집니다. 나머지는 대충 가면서도 치료될 테니 일단 빨리 자리를 뜨죠.”
내 말에 성녀는 한숨을 쉬면서도 업혔다.
“······고마워요.”
이토록 무리해 가며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는 내게, 성녀는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해왔다.
“설령 실패한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겠어요. 당신은 최선을 다했어요.”
“실패하지 않습니다.”
나는 굳게 말했다.
“실패 같은 건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거든요.”
실패는 저번 생에 기계룡에게 죽은 것만으로 충분했다.
“이제 다 왔으니, 다들 힘내서 가죠.”
빈말이 아니었다.
교주전이 저 멀리 보였다.
* * *
“그럼 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한서후가 등을 돌려 웃어 보였다.
저 앞에서부터는 마교와 정파의 대치 구역이었다.
하지만 밤이라 전투는 소강 상태였고, 멀찍이서 상대 측을 감시하는 인원만 배치된 상태였다.
한서후는 약속대로 우리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최대의 도움을 준 것이다.
나는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이에 대한 보답은 언젠가 꼭 하겠습니다.”
한서후도 웃으며 내 손을 맞잡았다.
“말씀드렸다시피 제 빚을 갚은 것뿐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나는 그저 말없이 웃었다.
“그럼 이만.”
한서후의 사라지는 등을 보며 생각했다.
한서후가 무엇 때문에 죽었더라.
[얼마 안 있어 등장할 재앙형 던전인 ‘베히모스의 꿈’에서 사망합니다.]슈리가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내용을 검색한 모양인지 내게 알려왔다.
‘맞아, 조금 있으면 그놈이 나오는구나.’
한반도를 초토화시킬 그놈.
그놈에 의해 참 많은 각성자가 죽어나갔다.
‘한서후에게 진 빚도 있고, 어떻게든 피해를 최소화할 대책을 강구해야겠어.’
물론 한서후는 반드시 살릴 생각이었다.
강하고 헌신적인 각성자들을 최대한 살려놔야 인류가 조금이라도 오래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진다.
인류가 거의 멸망 상태에 이르렀던 [기계룡의 둥지]조차도 이 게임의 끝이 아니었다.
기계룡이 등장한 때가 이 게임의 초반인지 중반인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강한 몬스터가 더 많이 나올수록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생긴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은 최대한 많이 살려 가야 했다.
‘물론 도움이 안 되는 놈들은 최대한 빨리 죽여야 되고.’
그런 놈들 몇몇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일단은 이 일부터.’
나는 성녀와 함께 저 멀리 보이는 교주전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 * *
“서, 성녀님!”
한 깐깐해 보이는 노인네가 인상과는 다르게 헐레벌떡 뛰어왔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호법장로님.”
성녀가 헐레벌떡 다가온 공손혁 장로에게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미안한 듯도 하고, 고마운 듯도 한 미소.
“다행입니다. 무사하셨군요.”
“장로님이 염려해 주신 덕분에요.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군요.”
“이렇게 된 이상 교주님 옆이 가장 안전할 겁니다. 가시지요. 교주님도 반가워하실 겁니다.”
“그래요.”
성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공손혁 장로는 성녀를 교주전으로 이끌었다.
“장삼, 자네도 수고했네. 임무는 못 마쳤지만 자네 노고는 잊지 않겠네. 물러가 있게.”
공손혁 장로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말의 내용과는 달리 차가운 어조였다.
아무래도 마음대로 성녀님을 데리고 떠난 거에 대해 그새 앙심이라도 생긴 모양이었다.
[눈빛이 ‘당장 저놈의 주리를 틀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눈빛입니다.]슈리의 말대로 공손혁 장로는 내 독단에 의해 성녀를 놓쳐 버린 게 짜증 났는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성녀만 교주에게 데려다주고 나는 제거할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녀의 말에 그의 계획(?)은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아, 장로님. 그가 고생이 많았어요. 교주님께도 인사드리고 싶은데 따라오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성녀의 부탁에 공손혁 장로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돌아서는 공손혁 장로를 따르며 싱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