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the Machine God RAW novel - Chapter 76
기계신과 함께 – 076
“······알파?”
순간 내가 잘못 들은 건지 슈리에게 물어보고 말았다.
[네, 저도 분명 알파라고 들었습니다.]나는 깜짝 놀라며 내 앞에 주저앉아 있는 꼬맹이를 내려다보았다.
“얘가 알파라고?”
알파란, 종족 중에서도 가장 강한 무력을 가짐과 동시에 종족을 통솔하는 종족석을 가진 개체를 이르는 말이다.
가장 강한 무력이야 그렇다 쳐도 이 녀석에게는 종족석이 없는데.
“종족석을 이 녀석에게 계승하겠다는 뜻인가?”
[크, 크큭.]알파가 비웃는다.
[그 녀석의 종족석이 안 보인다고 없는 줄 아나 보군. 보이지 않는 걸 볼 수 있는 지혜는 없는 건가?]그 말을 듣고 나는 다시 한번 [하늘의 눈]으로 꼬맹이를 살펴보았다.
-이름 : 어스 펭귄
-상태 : 의지할 곳을 찾음
-설명 : [대지의 가호]를 받는 어스 펭귄족의 새끼
바뀐 부분이라고는 ‘상태’ 정보뿐 나머지는 이전에 봤던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의지할 곳이라니.’
나는 바뀐 상태 정보를 보고 잠시 머리를 짚었다.
‘그건 그렇고······ 이거 말곤 바뀐 게 없는데.’
아무래도 돌아가서 [하늘의 눈]에 대한 연구를 좀 더 해봐야겠다.
생각보다 놓치는 정보가 종종 생기는 것을 보니 스킬에 대한 내 이해가 부족했거나, 내가 모르는 다른 변수가 스킬에 작용하는 모양이었다.
[눈치를 보니 무슨 말인지 모르나 보네.]알파가 말했다.
“······넌 이 꼬맹이가 알파라서, 네 자리를 위협할 존재라서 일찌감치 무리에서 배척시킨 거군.”
[그렇다. 저 녀석이 계속 동족들과 함께하게 된다면 언젠가 우리 종족은 반으로 양분될 수밖에 없었다. 나의 파벌과 저 녀석의 파벌로. 나는 그렇게 우리 동족이 쪼개지기 전에 저 녀석을 내쫓은 것뿐이다.]“왜 네 녀석이 나가지 않고?”
[나는 오랜 기간 무리를 안정적으로 다스린 왕이다. 이런 나보다 저 어린 녀석이 지도자로서 나으리란 보장이 대체 어디 있지? 나는 동족 전체를 위한 선택을 한 것뿐이다.]“······어떻게 알파가 이번 대에 두 마리나 나왔지? 그리고 너희 종족의 베타는 뭐고?”
[하하, 너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알파가 기분 나쁘게 비웃었다.
“그래, 아무것도 모르니까 빨리 얘기해 봐.”
[베타는 베타고 알파는 알파다. 베타가 알파가 될 수도, 알파가 베타가 될 수도 없다.]“한번 베타로 태어나면 영원히 베타라는 건가?”
[그렇다. 알파는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내가 존재하는 한 우리 종족의 새로운 알파는 태어나지 않았겠지.]“네가 죽어야 다음 알파가 태어난다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그렇다.]“뭐야, 그럼 이 녀석은 어떻게 태어난 거야?”
내가 꼬맹이를 가리키며 말하자 알파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모르겠다. 간혹 우리 종족뿐만 아니라 다른 종족에서도 종족적 특성 또는 연속성에서 벗어난 예외적인 존재들이 태어나는데, 이 녀석도 그런 녀석이지 싶다.]“돌연변이로군.”
“너도 모르는 게 다 있군. 큭큭.”
나는 계속 잘난 척하는 알파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던 차에 기회를 만나 실컷 비웃어주었다.
[마스터, 쪼잔합니다.]‘시끄럽다.’
대충 궁금한 게 다 풀렸으니 이제 마무리를 짓기로 했다.
나는 녀석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시간을 끌며 독성이 풀리길 바랐겠지만, 미안하군. 내가 요즘 이런 경우를 통 많이 겪어서.”
[······젠장.]그리고 마무리 일격을 위해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애초에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었던 데다가 앞서와 같이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도 한 적이 없었다.
총구에 걸린 손가락이 움직였다.
“끼익!!”
그때 바닥에서 비실거리던 꼬맹이가 벌떡 일어나 총구 앞을 양팔을 활짝 벌려 막아서며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내었다.
내가 펭귄어를 아는 게 아니라서 그 끽끽 소리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 그렁그렁한 눈망울과 애처로운 몸짓이 말하는 소리는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쏘지 마세요!
“널 죽이려 했던 녀석이야.”
“끼익!”
녀석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래도 부모라 이거냐?”
끄덕끄덕.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나는 저 녀석에게 달린 종족석이 필요해. 이 녀석이 죽으면 슬퍼할 놈들이 많으니까 눈물도 한 방울쯤은 얻을 수 있겠지.”
그러면서 생각난 김에 [영혼을 담는 병]을 꺼내 손에 쥐었다.
혹시라도 알파 녀석이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면, 그 또한 좋은 기회가 될 테니까.
탕탕!
나는 불시에 총을 발사해 알파를 처치하려 했다.
하지만 내가 총을 발사하기 직전에 알파의 앞에 단단한 흙의 벽이 솟아올라 내 총격을 막아내었다.
힘을 잃은 알파의 짓은 아니었다.
“비켜. 안 그러면 너부터 죽이는 수밖에 없어.”
내가 새끼 펭귄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떠나라 할 때는 떠나지 않아놓고 이제 와서 날 도와주는 척하는 거냐? 날 더 이상 비참하게 만들지 말고 꺼져라.]알파 또한 그런 새끼 펭귄에게 모진 말을 내뱉었다.
새끼 펭귄은 앞뒤로부터 들려오는 날카로운 언어에도 말없이 팔을 벌리고 내 손에 들려 있는 [영혼을 담는 병]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선택의 연속이야. 지금의 너에겐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어. 네 어미가 죽는 걸 보든지, 아니면 네 어미와 함께 죽든지. 너는 어떤 선택을 할 거냐?”
나는 암울한 눈으로 새끼 펭귄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생명이 죽는 것을 눈감을 수 있어야 하는 시대.
삶의 가치와 생명의 존엄을 이야기하기엔 이미 나를 둘러싼 세상이 너무나 불친절했다.
특히 몬스터의 생명 따위.
“끼익.”
흔들리는 새끼 펭귄의 눈이 나와 알파의 눈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양자택일의 순간.
녀석은 어떤 선택을 할까.
하지만 녀석은 내가 제시한 양자택일의 선택지를 거부했다.
“끼엑.”
피잉-
녀석의 이마로부터 동심원을 그리듯 특별한 파장이 퍼져 나갔다.
그러면서 내 발아래로부터 흙이 거칠게 솟아오르면 나를 집어삼키려 했다.
“큭.”
나는 급히 그 흙을 피하며 하늘로 튀어 올랐다.
[응? 네 녀석 설마? 하하하하!]동심원이 퍼져 나간 직후.
우리를 둘러싼 땅 위에 무언가가 불쑥불쑥 솟아났다.
이제까지 두 알파의 싸움에 땅속으로 피해 있던 어스 펭귄들이었다.
[네 녀석이 주도권 싸움을 걸어올까 봐 언제나 전전긍긍했건만. 설마 내가 네 녀석에게 동족들을 넘겨주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날이 올 줄이야. 하하하하!]알파의 말을 들어보니 이 꼬맹이 녀석이 알파로서의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모양이었다.
······그 말인즉슨.
새끼 펭귄의 이마에 노란빛이 몰려들며, 작은 보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어스 펭귄의 수가 많아질수록 새끼 펭귄의 이마에 자리한 노란 보석의 크기가 점점 커져갔다.
나는 허공에 체류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와 싸우기를 택한 거냐?”
지상에 수백 마리의 어스 펭귄이 등장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꼬맹이가 짧은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지상에 올라와 있던 펭귄들이 순식간에 땅속으로 다이빙하며 사라졌다.
‘전투태세에 들어가는군.’
어스 펭귄들은 비전투 시에는 웬만해서는 땅 위에 있는 반면 전투 시에는 땅 위에서 싸우는 법이 없다.
나는 땅에 발에 닿지 않도록 비눗방울 옮겨 뛰어다니며 땅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러나 5초가 지나고, 10초가 지나도록 그 어떤 이상이 감지되지 않았다.
그 대신 소음이 들려온 것은 저 멀리 지평선 너머였다.
“으윽, 펭귄 놈들! 비켜라!! 우리의 종족석을 찾으러 왔단 말이다!!”
쿠와아앙!
쿠쿠쿠쿠쿠!!
내가 그쪽으로 시력을 집중시켜 보니 고르곤들과 드레이크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갑자기 늪처럼 변해 자신들을 빨아들이거나, 높이 솟아올라 자신들의 진로를 가로막거나, 혹은 땅에서부터 창처럼 쏘아져 오는 공격들을 막고 피하는 등 부산을 떨며 소란을 벌이고 있었다.
“······.”
사라진 어스 펭귄들은 나를 공격하는 대신 나를 추격해 오는 녀석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알파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바로 고개를 돌려 아래를 다시 내려다봤다.
경악한 표정으로 새끼 펭귄을 바라보는 알파와, 그 앞에서 나를 올려다보며 이마에 양손을 가져가는 새끼 펭귄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딸깍.
실제로는 아무런 소리도 안 났지만, 내 머릿속에 ‘딸깍’ 하는 효과음이 연상되었다.
새끼 펭귄이 자기 이마에서 종족석을 떼어낸 것이다.
[너, 너······!]알파가 신음을 내뱉었다.
[종족석을 떼어내면 죽는다고, 이 멍청아!!]“끼익.”
[괜찮긴 뭐가 괜찮아? 알파를 잃는 우리 종족은 어떡한단 말이냐!!]“끼엑.”
[내가 하면 된다고? 바보 같은. 저 인간이 나를 살려둘 것 같으냐?]“끼익.”
“끼에엑······.”
새끼 펭귄이 뒤돌아보며 머뭇거렸다.
그러더니 쓰러져 있는 알파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끼엑······.”
녀석의 품에 폭 파묻혀 얼굴을 부볐다.
[······고맙다니······.]알파로부터 힘없는 염파가 들려왔다.
[동족들로부터 널 내쫓은 내가 대체 뭐가 고맙단 말이냐······.]“끼엑.”
[······죽이지 않고 내쫓아줘서? 나 원 참 별 그지 같은 이유로······. 그게 그렇게 고마웠으면 나가서 잘 살 것이지 왜 다시 기어들어와서······.]“끼익.”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다고? 아니, 네가 무슨 수로 저 인간의 계획을 알고······?]“끼엑······.”
녀석이 경악했다.
대체 무슨 말은 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깜짝 놀란 녀석의 표정이 똑똑히 보였다.
[그렇군. 그게 네 알파로서의 능력이었군······.]“끼엑끼엑······.”
새끼 펭귄이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종족석을 빼낸 뒤 급격하게 생기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왜, 왜 네가 날 위로하는 거냐······. 내 마음을 알고 있었더라면 잘 살아갈 것이지 왜 위로 따위를 건네고 앉아 있는 거냐······.]“끼엑······.”
[······알았다. 그렇게 하도록 하마. 잘······ 가거라.]알파가 그렇게 말을 마침과 동시에, 새끼 펭귄이 편안히 눈을 감았다.
[······내 자식아.]마지막 날숨을 내뱉는 새끼 펭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이 새끼 펭귄의 턱을 타고 다리에 떨어지는 순간.
스르륵-
새끼 펭귄의 몸이 마치 흙처럼 부서져 내리더니 가루가 되어 눈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눈물은 잠시 허공에 멈췄다가, 다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땅바닥 속으로 스며들어 내렸다.
툭.
그 옆으로 새끼 펭귄이 쥐고 있던 종족석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 직후에.
출렁.
눈물이 떨어진 땅이 한차례 출렁이더니, 쭈욱 하늘을 향해 솟아났다.
늘어난 땅은 내 앞에서 멈추어 섰다.
그 위에는 종족석이 올려져 있었다.
“······.”
나는 말 없이 내 앞에 멈춰선 그 종족석을 바라보았다.
내가 아무런 동작을 취하지 않자 종족석은 저절로 날아 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흙 속에서 작은 물방울이 튀어나와 내가 들고 있는 [영혼을 담는 병] 속으로 들어갔다.
병이 환하게 빛났다.
곧 병의 정보가 내 눈앞에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