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the Machine God RAW novel - Chapter 92
기계신과 함께 – 092
“물론입니다. 뭡니까, 강하나 씨에게 간다고 하셔서 제가 얼마나 실망했는지 아십니까? 하하하.”
-아, 제가 오해를 하실 만한 발언을 했군요. 그럴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괜찮습니다. 이쪽으로 오신다는 데에야 충분히 이해해 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어디 다치지 말고 잘 다녀오십시오.”
-감사합니다.
전화가 끊겼다.
이건 좀······.
개이득이었다.
안 그래도 한서후의 [천살성]을 길들이기 위한 시간이 좀 필요했는데 다행이었다.
‘애니가 없어진 상황에서까지 한서후를 데리고 있기에는 좀 힘들었단 말이지. 강하나와 천재령이라면 [천살성]을 제어하며 필요한 곳에 한서후를 쓸 수 있을 거야.’
어쩌면 그 과정에 [천살성]이 누그러들 수도 있고.
나는 강하나와 한서후에게서 신경을 끄고 이제 내 문제에 집중하기로 했다.
“도 비서님, 상황 좀 자세히 들려주시겠어요?”
나는 실없는 생각은 그만두고 도 비서에게 자세한 상황을 물었다.
“이틀 전, 은하그룹에 본사에 5명의 각성자가 침입했습니다. 모두 A급 이상의 강력한 각성자였습니다.”
“능력은요?”
“비전투원으로 은신 능력자 한 명, 침투 능력자 한 명. 그리고 전투원으로 마법사 한 명, 무인 한 명으로 판단됩니다. 나머지 한 사람은 능력을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음······ 목적은요?”
“아무래도······ 처음부터 송애니 헌터님을 노리고 침입한 것 같습니다.”
나는 머리를 짚었다.
아무래도 저번에 송애니를 납치하려던 녀석과 같은 조직 소식은 듯했다.
“계속 브리핑해 주세요. 그리고 도 비서님.”
“예.”
“꽉 잡으세요.”
“예······ 으억.”
부와아앙-
고속도로에 들어선 나는 액셀러레이터를 강하게 밟았다.
차가 미친 듯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속도계가 순식간에 250km/h까지 치고 올라갔으나, 그 눈금이 250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차에 자체적으로 걸려 있는 최고속도 리미터가 더 이상 속력이 올라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급하단 말이다!’
[디바이스 컨트롤].차의 속도 리미트가 해제되며 도로의 차들이 미친 듯한 속도로 뒤로 지나쳐 가기 시작했다.
“시, 신 헌터님! 소, 속도가······.”
도 비서가 덜덜 떨며 속도계를 가리켰다.
“걱정 마세요. 사고 안 납니다.”
나는 힐끗 눈금 300을 넘어서고 있는 속도계를 바라보고는, 도 비서를 안심시켰다(?).
300km/h라 말하면 별로 감이 안 올지도 모르는데, 보통 운전자들은 100km/h의 속도도 긴장하며 운전한다.
자칫 삐끗하면 황천길 가는 속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100km/h로 달리는 차를 100km/h로 추월하는 차를 또다시 100km/h의 속도로 추월하는 속도이니, 도 비서가 공포에 질려 이를 딱딱거리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도 비서님, 창밖은 신경 쓰지 마시고 보고 계속해 주세요.”
“네, 네!”
도 비서는 여전히 덜덜 떨면서도 직업정신을 발휘해 보고를 계속했다.
“그중 은신 계열은 중국계······ 남자······.”
그런데.
‘응?’
[배틀 센스]마저 발동해 운전 중인 나는 차의 경로에 돌멩이가 튀어나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평소에는 그냥 밟고 지나갔겠지만 지금은 시속 300킬로미터.
저런 작은 장애물도 무시할 수 없었다.
“어이쿠, 이런. 웬 돌멩이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디바이스 컨트롤]로 차를 작게 ‘점프’시켰다.
차체가 살짝 허공을 날아 돌멩이를 지나쳤다.
그렇게 돌멩이를 지나치고 나니 보고를 이어가던 도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백미러를 돌아보니 그가 거품 물기 직전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바, 방금 차, 차가 날았어······?”
“차가 날듯이 빠르긴 하죠.”
나는 시치미를 떼었다.
정말 날았다고 했다간 기절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도, 돌멩이라고 하신 건······?”
“잘못 들으신 겁니다.”
“······.”
“······.”
도 비서가 침묵했다.
‘이런, 내 선의의 거짓말을 눈치챘나?’
나는 슬쩍 도 비서의 눈치를 보았다.
그런데 도 비서가 백미러의 시각에서 벗어나 있어서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도 비서님?”
내가 불러보았지만 도 비서는 계속해서 침묵을 이어갔다.
“도 비서님? 도 비서님?”
몇 번을 부르자, 대답이 들려왔다.
슈리에게서.
[기절했습니다.]“······그 철두철미한 도 비서에게 이런 나약한 면이 있을 줄이야. 쯧쯧.”
[그러게요. 사람이 보기보다 약하네요.]“그래도 중요한 건 다 들었으니까, 자게 내버려 둬도 되겠지.”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손가락질할 만한 대화를 하며, 우리는 계속해서 도로 위를 질주했다.
* * *
“미안.”
은하수가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사과한다.
“아니, 형은 어쩔 수 없었지. A급 다섯 명을 형이 어떻게 막아?”
현재 우리나라 전체를 뒤져도 A급 각성자는 30명이 채 안 된다.
그런 A급 각성자가 한두 명도 아니고 5명이나 몰려왔다.
은하그룹에서 막을 수 있었을 리가 없다.
“그렇게 오래 시간을 끈 게 용하지.”
은하그룹은 다섯 각성자의 침입 사실을 발견한 순간부터 최선을 다해 녀석들의 전진을 막았다.
각종 자동화 공격 기기가 녀석들의 발을 묶을 동안 고용된 헌터들이 나서서 녀석들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생포는커녕 한 놈을 죽일 수조차 없었다.
A급이란 그런 놈들이었다.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CCTV도 거의 다 무력화돼서 건진 건 이 영상뿐이야. 녀석들을 추적한 드론들도 전부 놈들에 의해 망가졌고, 근처 CCTV를 조회해 봐도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어.”
그렇게 말하며 은하수가 건네준 영상은 당시 애니가 머물던 숙소를 멀리서 촬영한 것이었다.
그곳에서 세 명의 헌터가 거대한 곰인형을 상대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저 곰인형은 티버······!’
저 곰인형의 이름은 [곰돌이 가방 티버]였다.
어떤 팔불출 마법사가 자식을 지키기 위해 만들었을 거라 추측되는 가방으로, 헌터스 마켓에서 구입해 애니에게 선물한 곰돌이 가방이었다.
주인이 위급할 시에 ‘화가 난 티버 모드’를 발동한다고 했는데, 저게 그 ‘화가 난 티버 모드’임에 분명했다.
곰돌이 인형은 성인 두 배가 넘어서는 덩치를 하고서는 다른 각성자들도 쫓아가기 힘들어하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그리고-
콰앙!
오러 피스트(Aura fist)를 내뿜었다.
각성자 한 명이 피를 토하며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
나는 황당함에 말을 잃었다.
오러 피스트란, 말하자면 주먹으로 기(氣)를 내뿜는 초절기예였다.
검사에게 검기(劍氣)가 있다면 권사에게는 이 오러 피스트, 즉 권기(拳氣)가 있었다.
하지만 권기는 검기에 비해 난이도에 있어 훨씬 어려운 기예였다.
기본적으로 파괴를 주목적으로 하는 기공무예는 몸에 흐르는 기(氣)를 파괴적으로 가공해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만 컨트롤을 놓쳐도 자기 자신을 해하는 무기가 되고는 한다.
검사가 처음 검기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검에 검기를 주입하다가 검이 깨지는 것은 꽤나 흔한 일이다.
정련되지 못한 기가 검을 파괴해 버리는 것이다.
하물며 이 기를 주먹에 형성하다 실패라도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한 인간의 육신은 순식간에 피떡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오러 피스트를 사용하는 권사, 혹은 무투사는 검사보다 훨씬 희귀했다.
그런데 그 희귀하다는 오러 피스트를 쓰는 권사가 지금 곰인형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이런 제길!
비전투원이라 추측되는 동료 한 명이 중태를 입자, 중국이 한 명이 욕을 했다.
중국어가 귀에 꽂은 통역기를 통해 고스란히 번역되어 들려왔다.
욕을 한 자는 무인이었는지 검기를 두르며 곰인형에게 돌진해 갔다.
곰돌이 인형은 그것을 오러 피스트를 두른 한 손으로 막은 뒤-
펑!
다른 한 손에도 오러 피스트를 둘러 그 각성자를 후려쳤다.
무인인 각성자가 급히 검으로 그것을 막으며 물러났다.
‘저것이 바로 기를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권사가 검사보다 강한 이유.’
검에서만 기를 뿜을 수 있는 검사에 비해 몸 어디에서든 오러를 뽑아낼 수 있는 권사가 강한 것은,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 경지쯤 되면 검과 인간의 육신이 갖는 강도의 차이마저 사라진 상황이니까.
저 곰인형을 [하늘의 눈]으로 바라보고 싶다는 갈증이 일었다.
저게 ‘레어’ 등급의 아이템에서 나올 수 있는 위력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상 속 존재는 [하늘의 눈]으로 봐봤자 정보가 뜨지 않았다.
‘화가 난 티버’는 전혀 화가 난 것 같지 않은 절도 있고 유려한 동작으로 시종일관 다섯 명의 각성자, 아니, 전투에 나선 두 명의 각성자를 몰아붙였다.
‘으음, 저 녀석은 왜 안 나서는 거지?’
다른 둘이야 비전투원이니 그렇다 치고, 나머지 한 녀석은 꽤 강해 뵈는데도 방관만 할 뿐이었다.
‘급할 거 없다는 태도네.’
녀석에게서는 여유가 느껴졌다.
저 싸움에는 아직 안 끼어도 될 것 같다는 강자의 여유가.
그리고 나는 곧 그 녀석이 왜 그렇게 여유를 부리는지 알게 되었다.
곰인형의 움직임이 갈수록 느려지고 있었다.
‘축적된 에너지가 많지 않구나.’
하긴, 저런 무위를 계속 보일 수 있다면 레어가 아니라 유니크 등급이어야 할 것이다.
티버는 갈수록 움직임이 느려지다가, 곧 녀석과 전투를 치르던 두 각성자에 의해 제압되었다.
각성자들이 곰돌이 인형을 가르고 그 속에서 애니를 꺼낸 후 데려가는 게 보였다.
“······.”
나는 화면을 끄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번쩍-
일순 새하얀 빛이 화면을 가로질렀다.
“이게 뭐야?”
내가 은하수에게 물었지만 은하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뭔지 파악은 못 했어. 녀석들이 능력을 쓰며 일어난 현상 아닐까?”
“흐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은하수가 내미는 다른 것을 받아 들었다.
“이건 애니의 그림일기장이야.”
나는 그 일기장을 펼쳐 들었다.
딱 펼쳐 든 페이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저씨가 내가 아저찌라고 한다고 맨날 놀린다. 그래서 맨날 아저씨라고 연습하고 있다!
어린아이치고 꽤나 또박또박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게 나야?”
그 괴물체가 나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글의 내용 덕분이었다.
애니는 글과는 달리 그림 실력은 형편없는 모양이었다.
[······일치율 7.6%. 그림의 어디가 마스터와 닮았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슈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이 그림이 나라는 사실을 믿기 힘든 모양이었다.
“여길 봐야 돼.”
은하수가 손으로 그림일기장을 넘겼다.
“이 마지막 세 페이지가 애니가 실종되기 전에 남겨놓은 거야.”
과연 애니가 남겨놓은 세 페이지는 다른 페이지들과 달리 날짜도 안 적혀 있었고, 글도 그다지 길게 적혀 있지 않았다.
그림도 급하게 그린 티가 났다.
그래도 앞에 그린 것들과 별로 다를 건 없었지만.
“이건 사람 같지?”
맨 처음 페이지에는 금발머리를 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한 명 그려져 있었다.
그 아래로는 단 한 단어가 적혀 있었다.
-하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