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n and Torn Newbie RAW novel - Chapter 1005
106화 거인국(巨人國) (6)
…기우뚱!
‘그’ 히드라 빅헤드가 몸을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크르르륵!?]빅헤드는 순간적으로 벌어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놀라 황급히 몸을 곧추세웠다.
그러나.
휘청-
몸은 여전히 말을 듣지 않는다.
무게추 역할을 해야 할 빅헤드가 좌우로 비틀거리고 있으니 히드라의 몸 전체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르르륵? 그르륵?]빅헤드는 지금의 상황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빅헤드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머리들은 이미 제각기 다 망명을 떠나 버렸고 남아 있는 머리들은 아직도 그 수가 상당하다.
비로소 몸의 통제권을 완전히 행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그저 늘 하던 대로 적들을 섬멸하는 일 뿐.
……하지만 어째서일까?
지금 본체 전체가 기우뚱 휘청이고 있는 것은.
“오오! 뭐지! 빅헤드가 약해졌다!”
“머리들. 많이 잃었다. 탈모(脫毛)가 아니라 탈두(脫頭)? 그 때문?”
“그렇다기엔 아직 남은 머리들도 많은데? 왜 갑자기……?”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빅헤드가 갑작스럽게 약해진 이유를 찾지 못해 의아한 기색이다.
그러나 이우주는 사태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흐음.”
히드라의 작은 머리들을 쭉 훑어본 이우주가 입을 열었다.
“지금 히드라의 머리가 총 몇 개지?”
“응? 글쎄, 대충 보기에도 100개는 훨씬 넘어 보이는데?”
이산하의 대답에 이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한 성인 남성의 경우 하루에 대략 2,600칼로리를 소모하지. 이 점은 선사시대 원시인들이나 현대인들이나 거의 비슷해.”
“으음, 그래? 그래서?”
“그리고 이 중에 두뇌가 소모하는 칼로리가 어느 정도인 줄 알아?”
“아, 알았는데 까먹었어.”
“절대 모른다는 말은 안 하는군. 아주 건방져.”
“진짜야! 알았는데 까먹은 거야!”
“뭐 그래. 누나의 경우에는 두뇌가 소모하는 칼로리가 조금 적을 수도 있지. 그만큼 근육의 힘이 강하니까 균형이 맞다고 해야 하나.”
이우주는 이산하를 은근슬쩍 비난하며 말을 이었다.
“두뇌는 대부분 물로 구성되어 있고 무게도 1.4kg정도밖에 되지 않지. 하지만 혼자서 하루에 400~500 칼로리를 소모하는 괴물 같은 부위야. 하루 소비 칼로리의 20%를 혼자서 차지하고 있는 셈이니까. 이건 근육에 비해 10배나 높은 수치라고.”
“헉? 그, 그 정도야? 왜 그렇게 많아?”
“두뇌에는 천억 개가 넘는 신경세포와 조 단위를 넘어가는 수의 신경아교세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지. 이 신경세포들은 4만 개가 넘는 시냅스를 이뤄 엄청나게 정교하고 복잡한 일들을 수행해. 생존에 직결되는 수많은 것들을 컨트롤하기 위함인데 심지어 휴식 중에도 뇌는 계속해서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이우주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의 끝에는 비틀거리고 있는 히드라 빅헤드가 보였다.
극도로 피곤해 보이는 모습의 히드라 빅헤드.
그 때문에 산하에 있는 수많은 작은 머리들은 불안한 눈치를 보이고 있었다.
이우주는 말했다.
“지금 저 히드라는 100개가 넘는 머리들을 거느리고 있지. 그리고 그 머리들은 각각 뇌를 가지고 있어. 100개가 넘는 머리들이 한 몸에서 에너지를 받아 두뇌 활동을 한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칼로리가 필요할지 상상조차 안 가는군.”
그리고 이우주의 말이 끝나는 즉시.
…쿵!
히드라의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수많은 머리들이 우왕좌왕하며 동요하자 빅헤드가 포효를 내질렀다.
머리들의 동요가 일순간 가라앉았다.
하지만.
…쿵!
빅헤드는 몸을 일으키다 말고 다시 옆으로 쓰러졌다.
종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우주는 드디어 작살을 빼 들었다.
“너무 많은 머리들은 오히려 독이 되는 거지! 순간적인 전투력은 폭증할지 몰라도 장기전으로 가면 답이 없다! 결국은 운영 싸움이 될 거야!”
머리가 많아진 히드라는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막대한 양의 스태미나를 낭비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우주의 민주주의 교육으로 인해 많은 머리들이 망명을 떠난 지금, 중앙정부 역할을 수행하는 빅헤드는 매우 지쳐 있었다.
“바로 지금이 버스트 딜 타이밍이야! 한타 각이다!”
전체 머리들을 통솔하고 있는 빅헤드가 헤롱거리고 있을 때가 딜을 넣을 타이밍이었다.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 역시도 이우주를 따라 힘을 폭발시켰다.
콰콰콰콰콰쾅!
강력한 화살비와 골렘의 주먹, 거대한 용오름과 참격이 히드라의 몸을 때렸다.
[크아아아악!]히드라는 여러 개의 머리들을 컨트롤하여 그것을 막아내려 했지만 사각지대로 밀려들어 오는 공격은 방어해 낼 수가 없었다.
“다양한 의견을 가진 머리들을 몸에서 쫓아냈기 때문에 사각지대가 생긴 것이지! 지금 있는 머리들은 빅헤드의 시야만을 따르기 때문에 다양한 시야를 가질 수가 없어!”
이우주의 지시에 의해 이산하, 솔레이크, 죠르디는 계속해서 딜을 쏟아부었다.
“일두독재 물럿거라! 민주주의 만세!”
“너를 알기 위해 나는 태어났다! 네 이름 지어 부르기 위해! 오 자유여!”
“이동속도도 저하되어 있고 스태미나도 오링이군! 실로 최악의 연비야. 잡을 수 있겠어!”
하지만 빅헤드는 빅헤드인 이유가 있는 법.
그것은 아주 끈질겼으며 또 교활했다.
남은 머리들을 방패삼아 밀고 들어온 빅헤드는 최후의 용트림을 시도했다.
지독한 맹독 안개가 퍼졌고 주변에 있던 지반이 녹아내린다.
버섯처럼 솟구쳐 있던 바위들이 모조리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대규모의 지각변동을 앞둔 이우주는 냉정하게 판단했다.
“여전히 정면승부로는 승산이 없어. 빠지자.”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도주에 쓸 최소한의 힘만을 남겨 놓은 채 딜에 집중했었다.
그리고 이제는 빠질 차례였다.
런(Run).
있는 힘을 다한 줄행랑만이 목숨을 건질 수 있는, 또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달려! 시간은 우리 편이야!”
이우주는 힘껏 외쳤다.
죠르디가 유령 군마 한 필을 소환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남겨 두지 않았더라면 아마 진작에 빅헤드의 난동에 휘말려 죽었을 것이다.
런. 런. 런. 런. 런. 런. 런. 런. 런 데빌 런. 런. 런. 런……
뒤에서 히드라 빅헤드가 내지르는 독기 어린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그-오오오오오오오!]산천초목을 말려 죽이는 굉음.
지축을 뒤흔들다 못해 찢어발겨 버리는 포효.
존재 자체가 자연재해와도 같은 그 고함소리를 등지고 네 사람은 필사적으로 뛰었다.
‘히드라 빅헤드. 아빠가 거르고 넘어갔었던 몇 안 되는 초고난이도 과업들 중 하나. 나는 그것을 넘어설 수 있을까……?’
이우주는 마음속으로 일말의 불안감을 품었다.
등 뒤로 따끔거리는 살기가 밀려들고 있다.
유령 군마의 말꼬리가 독기로 인해 타들어 가고 있었다.
뒤에서 수많은 머리들을 조종하고 있는 히드라 빅헤드는 ‘감히 네까짓 것들이 나를 넘어설 수 있겠느냐!’라고 외치고 있는 듯하다.
아빠조차도 정공법으로 잡은 적이 없는 이 괴물을 과연 아들이 사냥할 수 있을 것인가.
이우주는 계속해서 이 생각을 되뇌이며 초조해하고 있었다.
아빠를 뛰어넘을 것인가. 아니면 이 자리에서 거꾸러져 죽을 것인가.
‘정말로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가운데 초침이 숨 가쁘게 넘어간다.
바로 그때.
…탁!
이우주의 어깨를 짚는 손이 있었다.
죠르디. 그녀가 이우주를 돌아보며 말했다.
“최선을 다했잖아. 이제 남은 것은 하늘의 뜻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했다.
이제 남은 것은 정말로 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나.
이우주는 그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주사위는 던져졌지. 내 힘으로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것을 고민해 봤자 두뇌 에너지 낭비겠네.”
“맞아. 칼로리 낭비지. 히드라가 저질렀던 실수를 똑같이 저지를 수는 없잖아?”
죠르디는 씩 웃으며 고삐를 잡아당겼다.
…펄쩍!
유령 군마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며 뛰어올랐다.
일척도건곤(一擲賭乾坤).
성공하면 모두 가질 것이요 실패하면 모두 잃을 것이다.
그것이 보스 레이드의 참맛 아니겠나.
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
이산하, 이우주, 솔레이크, 죠르디는 시계의 초침이 피부를 쓸며 지나가는 것을 하나하나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1년과도 같은 1초가 극도로 느리게, 그리고 아득하게 다가오고 또 멀어져 간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무아지경의 도주 끝에서.
-띠링!
모두는 귓전을 때리는 알림음을 들을 수 있었다.
-띠링!
.
.
실로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는 메시지들을 말이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