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313)
319화 75. 마왕(5)
“하하…….”
웃음소리를 길게 흘리며 김종현이 내려온다.
검은 로브를 펄럭거리며 붉은 눈을 빛내는 그는, 처참하게 뭉개진 도시의 잔해와 셀 수 없이 많은 좀비의 군세를 뚫고 온 성기사들에게 있어서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마왕답게 보였다. 아니, 지금의 김종현은 실제로 마왕이었다.
‘성기사들이 도움이 될까?’
성기사와 사제들이 발하는 신성력은 김종현에게 있어서는 상극인 힘이다.
하지만 그것도 격의 차이가 너무 크다면, 통용되지 않는다.
김종현은 즉시 행동에 나섰다. 격의 차이가 크다고는 해도 귀찮다.
김종현의 양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마력에 휘감긴 손이 공간을 찢었고 그에 겹쳐서 마법이 발현되었다.
꽈아앙!
김종현의 주변에서 시커먼 불길이 솟구쳤다. 불길과 불길이 이어 붙으면서 원형의 고리가 되었다. 그것은 연쇄적으로 터져 나가며 불꽃의 폭풍을 만들었다.
성기사 수십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불길에 휘말렸다. 테레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불꽃의 폭풍 속에서 웃으며 손을 휘젓는 김종현은 이성 없는 좀비들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사람이, 사람을, 웃으며 죽이고 있다. 테레사에게 있어서 그것은 당연스러운 상식 중 하나를 박살 내는 현실이었다.
이성민이 앞으로 달렸다. 그는 성기사들의 머리 위를 뛰어넘고서 김종현을 향해 창을 내리찍었다. 김종현은 즐거운 미소를 지어가며 양손을 들어 이성민의 창을 향해 펼쳤다.
방어 결계가 만들어지는 것을 확인한 즉시 이성민의 모습이 자색 전류에 휘감겼다.
질풍신뢰로 순식간에 아래로 내려온 이성민은 텅 비어 있는 김종현의 옆구리를 향해 창을 찔렀다.
꿰뚫리기 직전에 김종현이 몸을 비틀었다. 옆구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친 창이 그의 로브를 찢었다. 김종현과 이성민의 눈이 마주쳤다.
“꿇어라.”
김종현이 중얼거렸다.
-쿠우웅!
어마어마한 무게의 압박감이 이성민의 어깨를 짓눌렀다. 순간 무릎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하였으나 이성민은 간신히 압박감을 버텨냈다. 아주 잠깐 굳게 만든 것으로 충분하다. 김종현의 양손이 이성민을 향했다.
키이이이잉!
귓가에 찢어지는 이명이 들린다. 다섯 개의 자그마한 마법진이 이성민의 몸을 뒤덮었다.
“쾅.”
김종현이 소곤거렸다.
콰아아앙!
소곤거렸던 목소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소리가 났다. 폭발에 휘감긴 이성민을 보고서 김종현은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전투를 겪을수록 그는 성장하고 있다.
육체 능력도, 언령도, 마법의 소양도. 그는 점차 전투에 임하는 마왕의 시야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일시적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김종현은 이 마법이 유지되는 동안 자신이 성장하는 속도와 남은 지속시간에 대한 계산을 끝냈다.
예상보다 자신의 성장이 더디다고 하더라도. 마법의 지속이 끝나기 전에 게르무드의 상황은 완전히 정리할 수 있다.
‘마법사 길드장은 힘을 잃었다. 굳이 대주술사를 죽이려 들 필요는 없고. 성기사와 신관 정도만 죽여 놓고.’
이성민을 어떻게 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동료로 삼고 싶은데. 그런 미련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이놈!”
성기사들이 덤벼들었다. 신관들의 버프 마법을 휘감고서 뛰어드는 성기사들의 몸에서는 눈부신 백광이 흐르고 있었다.
껄끄러운 빛이다. 격 낮은 언데드라면 그랬겠지. 김종현은 피식 웃으면서 양손으로 허공을 훑었다.
그의 손이 허공을 훑을 때마다 새카만 빛을 발하는 자그마한 마법 탄환이 만들어졌다.
매직 미사일은 캐스팅도 술식도 필요 없는 단순한 마법이다. 그런 마법이라도 충분한 마력을 불어넣는다면 사람 하나 꿰뚫기에는 충분한 위력을 갖는다.
파바바박!
수백 다발의 마법 탄환이 쏘아졌다. 성기사들의 갑옷과 방패는 그들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
탄환에 꿰뚫린 말이 발작하며 성기사들을 낙마시켰고, 그런 성기사들이 다시 탄환에 꿰뚫렸다.
“정신 차리십시오!”
대주교가 윽박을 지르고 나서야 테레사가 화들짝 놀라며 이성을 찾았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로자리오를 잡았다.
후우우웅!
테레사에게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치명상을 입었지만 죽지는 않은 성기사들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보며 김종현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적어도 성인이라는 테레사의 신성력 정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위협적이지는 않다. 치명상으로 죽일 수 없다면 즉사시키면 되는 일 아닌가. 김종현은 양손을 가슴 앞으로 모았다. 수인을 맺으며 그는 빙그레 웃었다.
거듭해서 터지는 폭발 속에서 호신강기를 유지하고 있던 이성민은 폭발의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런 이성민이 본 것은 바닥에 널브러진 성기사와 그들이 타고 있던 말의 시체 무더기였다.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는 신관들을 상대로 김종현이 양손을 내밀고 있었다. 신관들이 일으킨 백색 결계가 김종현이 쏘아낸 마법에 의해 박살 났다.
힘이 부친 신관들이 피를 토하며 자리에서 무너졌다. 후방의 중심에서 손을 모으고 있던 테레사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몇이나 살았지?’
폭발 결계에 가둬졌던 것은 몇 분도 되지 않는다. 그사이에 성기사들 태반이 전멸했다. 살아남은 것은 백은기사단장인 테오스를 비롯하여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신관들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대주교나 테레사는 아직까지 서 있었지만 대부분의 성기사는 주저앉아 쉰 목소리로 기도를 읊는 것이 고작이었다.
군중은?
시체가 많았다. 너무나도 많았다. 몇 분 사이에 수천이 죽었다. 머릿수만 많은 그들은 좀비와 싸우는 것은 가능했지만 마왕과 싸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으레 그런 법이다. 옛날이야기에도 많이 나오지 않나. 마왕과 싸울 수 있는 것은 군대가 아닌 용사뿐이다.
누군가가 이성민의 발목을 붙잡았다.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아래를 보니, 죽기 직전의 남자가 핏발 선 눈으로 이성민을 올려 보고 있었다.
“제발…….”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지만, 이성민은 그가 자신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 알았다.
옆구리가 터진 테오스가 땅을 뒹굴었다. 상처를 부여잡고 신음할 새도 없다. 신성력이 그를 비추자 상처가 순식간에 재생된다.
이제 그만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이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그는 다시 김종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성기사의 수는 열 명도 안 되게 줄었지만, 그만큼 신관과 테레사의 빛이 수가 줄어든 성기사들을 돌보았다. 그러한 가호는 김종현의 공격에서 즉사를 피하게끔 만들어 주었다.
김종현이 종언의 첫 번째 재앙이다.
제니엘라가 했던 그 말은, 조금 의문이었다. 김종현이 하고자 하는 일은 결국 종언을 벗어나게끔 하는 것이었으니까.
처음 김종현이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들었을 때에는, 대마계와 연결되는 것이 종언은 아니어도 종언에 준하는 일이기에, 제니엘라가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여겼다.
지금은 아니었다. 대마계와의 연결을 떠나, 김종현은 종언 그 자체였다.
다시 한번. 가슴이 함몰되어 뒹구는 테오스와 이성민의 눈이 마주쳤다. 무너진 결계를 다시 일으키고 기도를 내뱉는 신관들이 이성민을 보았다. 테레사도 이성민을 보았다.
안다. 그들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에 간절한지.
종언에 대해 모르고 있다 해도 그들은 김종현을 막는 것에 간절했다.
제발.
발목을 잡았던 남자가 한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귀창이라는 별호. 마인으로 취급을 받았는데. 이곳에서 이성민은 마왕과 대적하는 용사가 되어 있었다.
그런 취급이 기분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역시 간절하기에. 종언을 막고자 하는 것도, 김종현을 막고자 하는 것도 이성민에게는 간절했다.
[위험해.]허주가 경고한다.
[한계에 가깝다. 볼란데르와의 싸움은 너에게 많은 부담을 주었어. 그리고 김종현이 네 생각보다 너무 강했지. 요력을 너무 많이 사용했다.]사마련주가 남긴 유언에 대해 읽었을 때.
이성민은 스스로 선택했다. 요괴가 될지 모른다고 해도, 사마련주의 힘을 계승하기로. 사마련주는 그렇게까지 하면서 이성민에게 ‘앞으로의’ 가능성을 주고자 했다. 성장이 정체되어 있는 이성민에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고자 했다.
믿었다. 요괴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사마련주가 그것을 믿고 이성민에게 자신을 먹으라 유언을 남긴 것처럼.
단전 안에 요력이 가득 찼다.
흑뢰번천의 내공이 요력과 뒤섞였다. 요력이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버프 마법까지 걸었다. 온몸을 짓누르던 피로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부족했다.
더.
언제부터인가 이성민은 스스로에게 안전장치를 걸고 있었다. 폭주하지 않을 정도로만 힘을 써왔다. 창왕과의 싸움에서 끝내 요력이 폭주하기는 했지만, 그때에도 이성민은 최대한 써서는 안 될 힘을 조절하려 애를 썼다.
이성민이 진심으로, 자기 자신 따위는 어찌 되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힘을 끌어냈던 것은 루베스에서 위지호연을 지키기 위해 암존과 싸웠을 때뿐이었다.
그 이후로는 쭉 안전장치를 유지했다. 어르무리의 요력을 흡수한 후로는 더욱 그를 조심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기서 김종현을 막지 않는다면.
아니, 죽이지 않는다면.
두근.
심장이 크게 뛰었다.
꽈지지지직!
공간을 찢고 들어온 일격에 김종현의 정신이 순간 날아갔다.
온갖 종류의 방어막이 인챈트되어 있는 로브가 그 일격에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한참을 날아간 김종현의 몸은 건물을 으깨면서 땅에 처박혔다. 뭐지? 김종현은 급히 정신을 차렸다.
자색의 번개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멈춰라. 김종현은 언령을 내뱉으면서 양손을 펼쳤다.
진한 색의 결계가 김종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방어로 최소한의 시간을 번 뒤에 블링크로 빠져나간다.
그는 순식간에 이 상황에서 가장 올바른 행동을 이행했다.
‘아니…….’
틀렸다.
언령이 찢겼다. 내리찍는 번개는 언령에 멈추지 않았다. 힘은 그대로, 김종현이 만들어낸 결계를 찢었다.
이성민은 내리꽂은 창을 뽑았다.
가까스로 블링크를 펼치는 것에는 성공했다. 몸의 절반이 완전히 날아가기는 했지만, 김종현의 불사력은 죽음을 거부한다.
이성민은 묵묵히 머리를 돌려 하늘을 보았다. 그 올려다보는 시선에 김종현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말도 안 돼. 더 강해졌다고……?’
마왕의 성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설마 저만한 힘을 아직까지 숨기고 있었다는 건가?
김종현이 혼란을 느끼는 동안 이성민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의 손안에서 창이 한 바퀴 돌았다.
창은, 가볍게 쏘아낸 것 같았지만 김종현에게는 아니었다. 방어 결계가 또 한 번 박살 났다. 김종현은 왼팔을 내주면서 앞으로 날았다.
시커먼 마력이 휘감긴 그의 손이 이성민에게 향했다. 이성민은 창을 쥐지 않은 손을 김종현에게 마주 뻗었다.
쿠와아앙!
밀려난 것은 김종현이었다. 그는 자신의 양팔이 사라진 것을 보았고 급히 언령을 내뱉었다. 멈춰라, 멈춰라. 거듭해서 언령을 외었지만 이성민은 멈추지 않았다.
‘이건…….’
가슴 깊은 곳에서, 기분 나쁜 예감이 스멀거리며 올라왔다.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 * *
아벨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자신의 형을 무시하며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예전에 청색 마탑주에게서 빼앗았던 것. 이성민의 피를 통해 뽑아낸 드래곤의 혈청이다.
“프라우, 이만하면 되었다.”
아벨은 혈청의 뚜껑을 열며 말했다.
“네 덕분에 여기까지 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아벨.”
“너는 이 도시를 떠나라. 괜히 휘말리지 말고. 지금이라면 몸 하나 빼기에는 아직 안 늦었다.”
“너…… 뭘 하려는 거냐?”
아벨은 대답 대신에 드래곤의 혈청을 모조리 목으로 넘겼다. 고갈되어 있던 마력이 충만하게 차올랐다. 혹시 몰라서 가지고 있던 드래곤의 혈청이다. 설마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아벨은 자신이 미리 이런 준비를 해두었던 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하지만 부족하다.
“형님.”
아벨은 천천히 카인을 돌아보았다. 두 눈도 잘 보이지 않고, 다리도 움직이지 못하는. 간신히 노화를 억누르고 있는 자신의 형을. 아벨의 손끝이 루비아에게 향했다.
“형님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팟.
터진 빛이 루비아를 덮쳤다. 그것은 루비아가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빛에 휘감긴 루비아의 두 눈이 멍하니 풀리더니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카인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나는, 지금 형님이…… 나름의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 나는…….”
“변명은 하지 마십시오.”
루비아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악의는 없다. 그녀를 굳이 기절시킨 것은, 앞으로 아벨이 하고자 하는 일에 그녀가 발작할 것이 틀림없었기에. 아벨은 프라우에게 시선을 보냈다.
“귀찮게 여기지 말고. 저 누군지 모를 수인도 데리고. 도시를 나가라.”
“나는 누군지 알아.”
프라우는 아벨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알았다.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아벨을 바라보았다.
“……괜찮겠어?”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야.”
“아니, 그거 말고.”
“뭘 새삼스럽게.”
아벨은 피식 웃으면서 카인을 향해 다가갔다. 휠체어에 앉은 카인의 어깨가 바르르 떨렸다.
죗값.
카인은 동생이 한 말에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도, 나름대로 세상을 구하려 했다.
종언이라는 운명에서 이 세상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을 구해봤자 자기 자신이 죽는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가 잘못한 건가?”
“자기 목숨 보전하고 싶어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아벨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것은 잘못된 거요. 형님이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그래서…… 나를 죽이겠다고?”
“일이 이렇게 되어버려서, 내가 좆같다고. 그것만으로 형님을 죽이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도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는 하겠지만. 아벨은 손을 들어 카인의 목을 움켜잡았다. 카인의 입이 쩍 벌어졌다.
불로불사는 많은 마법사가 추구하던 비원이다. 그런 불로불사의 대부분은 마법의 힘으로 가진 수명을 길게 늘이는 것이다.
그것이 한계다. 적어도 마법사 길드가 허용하는 불로불사의 범위는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금기 쪽으로 간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타인의 수명을 빼앗아 자기 자신의 수명을 삼는 것.
금기로 정해진 흑마법이다. 마법사 길드장이라는 위치에 있으니 몇 번 접해 본 적은 있었어도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은 없다.
설마 이 마법을 사용하는 상대가 피를 나눈 형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설마 자신이 이 금기를 범하게 될 것이라고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커…… 으으으…….”
아벨의 손이 카인의 목을 조인다. 카인은 입을 벌리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죗값.
어쩔 수 없다. 납득하려 함에도 카인은 손을 허우적거렸다. 죽고 싶지 않았다.
어르무리 때에는 삶에 미련을 갖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정령계에 오면서 종언의 운명에서 완전히 벗어났기 때문에. 아니, 적어도. 카인은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짰다.
“내가…… 죽는 것으로…… 종언…… 막을…….”
“모릅니다.”
아벨은 표정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형님 덕에 막을 수 있던 것을 못 막게 되었으니까.”
끔찍한 죽음.
카인은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에, 자신의 운명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끔찍한 죽음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모든 것을 잃고. 살았던 평생마저 부정당했다. 이 상황에서 그 누구도 카인을 구원해 주지 못했다. 누구도 카인을 동정해 주지 않는다.
그렇게, 친동생에게 경멸을 받으며 목이 졸려 죽는다. 한때 인간 중 가장 뛰어났던 대마법사였다는 것도 지금의 그에게는 가치로서 남지 않았다.
그렇게 카인은 죽었다.
아벨은 양손을 놓았다. 목이 부러진 카인의 몸이 휠체어 밖으로 널브러졌다. 아벨은 우울한 눈으로 카인을 내려 보았다. 그는 카인의 수명을 빼앗았다.
‘얼마 되지도 않는군.’
금기를 범했다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를 삼키고, 아벨은 몸을 돌렸다.
얼마 되지 않는 수명이지만 이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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