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340)
346화 82. 크론(1)
용병왕이 크론에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현재 에리아 무림은 정파의 무림맹, 사파의 혈맹으로 나누어져 있다.
10년 전의 사마련은 어디까지나 사파 연합으로서, 자신들의 영역에서만 일을 벌였지만 혈맹은 아니었다.
흑마법사들을 거둔 것부터 시작해서 혈맹은 설립 이후로 과격한 움직임을 계속했다.
아직 전면전이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혈맹의 도발과 난폭함은 점점 선을 넘고 있었다.
머지않아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전쟁은 용병들에게 있어서는 돈을 쓸어 담을 수 있는 기회다. 수백 년 동안 에리아는 너무 평화로웠다.
이 넓은 세상에서 제대로 된 전쟁이 일어났던 적은 거의 없다. 국가도 하나뿐이고 귀족들도 서로 다투지 않는다.
도시의 영주들은 다른 도시를 침범하려 들지 않는다. 그나마 싸움이 자주 벌어지는 것은 무림이다.
중소 방파들이 벌이는 영역 다툼이 용병들이 활약하는 자그마한 전장이 되어주었다. 그 외에는 몬스터 토벌 따위.
이전에, 사마련주였던 마황 양일천이 무림맹에 쳐들어와, 개방이 자랑하는 대 타구봉진을 무너뜨리고 맹주였던 흑룡협을 쓰러트려 납치했던 일이 있었다.
그것은 무림맹의 역사에 다시 없을 치욕이고 굴욕이었지만, 무림맹은 그 일을 두고서 사마련에 전쟁을 선포하지는 못했다.
사마련주였던 마황 양일천의 힘이 너무나도 강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마황 양일천은 죽었고, 사마련은 붕괴했다.
혈마라는 걸출한 무인이 갑자기 튀어나와 혈맹을 만들었지만, 혈마가 얼마나 강한 인물인지는 제대로 선보였진 적이 없다.
적어도 무림맹으로서는, 마황 양일천이 있던 사마련보다는 혈마가 있는 혈맹이 만만한 상대였다.
또한, 현 무림맹주인 개방 방주…… 아니, 전대 방주인 무걸개의 성향이 흑룡협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도 한몫했다.
천외천의 꼭두각시였던 흑룡협은 사마련과 대적하려 들지 않았다. 하지만 무걸개는 아니었다.
그는 사파를 혐오하는 인물이었고, 마황 양일천에게 치욕을 당한 덕에 사파에 대한 혐오는 증오가 되었다.
“아마 호의적인 반응을 얻기는 힘들 겁니다.”
크론의 성문을 지나며, 이성민이 말했다.
“10년 전에 나는 사마련주…… 스승님과 함께 크론에 왔었고, 스승님이 개방의 타구봉진을 처참하게 박살내는 것을 직접 보았지요. 무림맹 건물로 쳐들어가 흑룡협을 두들겨 패는 것도 보았고.”
그 후 무림맹 측에서는 어떻게든 소문이 퍼지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워낙에 본 사람이 많아 소문은 결국 퍼졌다.
“그럼 내가 가볼까?”
백소고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성민은 잠시 고민하다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같이 가지요. 호의적인 반응을 얻을 수 없다면 힘으로 하면 되는 일이니까.”
“굳이 무림맹을 적으로 돌릴 필요가 있어?”
“상황에 따라서는. 10년 사이에 프레데터는 혈맹을 통해 사파를 하나로 모았습니다. 무림맹도 혹시 모르는 일이지요.”
이 경우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천외천이었다. 그를 위해서 도존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이성민은 무림맹에 들르는 것보다는 도존을 먼저 만나 볼 생각이었다.
무림맹에 가서 소란이 벌어진다면, 그 와중에 도존이 도망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 이성민과 백소고는 인피면구를 썼다. 도존을 만나기 전까지는 소란을 벌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야나에게도 인피면구를 주려 했지만, 야나에게 그런 것은 필요가 없었다.
“마법입니까?”
“요술(妖術)이지요.”
이성민의 곁에 선 야나는 흑발 흑안의 여인으로 변해 있었다. 탐스러운 꼬리도 사라지고 눈에 띄던 한복 대신에 무복을 입으니, 수상쩍은 모습은 조금도 없었다.
백소고는 뒤로 질끈 묶은 이성민의 긴 머리를 힐긋거리며 물었다.
“사제는 머리카락을 자를 생각은 없어?”
“이렇게까지 기른 적도 처음이고 해서 그냥 두고 있습니다. 딱히 불편함을 느낀 적도 없고.”
“그래도 나는, 짧았을 때가 더 좋았던 것 같아.”
백소고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이성민은 두 눈을 끔벅거리며 백소고를 보았다. 그러다가 뒤로 묶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그렇다면 다음에 자르도록 하지요.”
“지금도 나쁘지는 않아.”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여관 ‘은루’로 향했다. 도존, 용병왕 드미트리와 그가 이끄는 용병단이 은루 전체를 빌려서 쓰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이성민은 고급 여관인 은루의 앞에 섰다. 기감을 확장시키니 은루 안의 인기척들이 느껴진다.
드미트리 용병단은 총인원이 300으로, S급 이상 용병이 대부분에 가장 낮은 급이 A급이다.
B급 이하 용병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 급의 용병은 드미트리 용병단에서는 잡일꾼 취급밖에 받지 않는다.
용병단 하나가 어지간한 대문파와 정면승부를 할 만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초월지경의 고수인 드미트리가 있다는 점에서는 구파일방의 전력을 상회 한다.
‘있군.’
혹시 없으면 어떡하지 싶었는데. 이성민은 피식 웃으면서 은루의 문을 향해 다가갔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이곳까지 새어 나왔다. 아무래도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등급이 낮든 높든, 용병이 즐기는 향락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싸구려 술과 고급술, 싸구려 창녀와 고급 창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이성민은 천천히 은루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주저 없는 걸음으로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널따란 정원과 그 너머에 있는 큼직한 저택들이 보인다. 정원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는 용병들이 이성민을 힐긋 보았지만, 이내 신경을 쓰지 않고서 술을 퍼마셨다.
경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성민과 백소고는 반박귀진을 완벽하게 완성했기에 무공 수준이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야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힘을 안으로 숨길 수가 있다.
제지받지 않고 술판이 벌어지는 정원을 지난다.
몇 개의 저택을 지나쳐 이성민이 멈춘 것은 본관보다 화려한 별관이었다.
그 안에서 드미트리의 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드미트리 외에도 몇몇 기척이 더 있다.
이곳까지 지나오면서 느꼈던 기척들보다 강대한. 아무래도 용병단의 간부들과 드미트리가 별관을 사용하고 있는 듯했다.
“냄새.”
야나가 코를 찡긋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리 좋은 모습을 보게 될 것 같지는 않군요.”
이성민도 동감했다. 그렇다고 기다려 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소란 없이, 이성민은 별관의 꼭대기 층까지 뛰어올랐다. 닫힌 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중에 침대 위의 드미트리와 눈이 마주쳤다.
알몸의 여자 둘을 끼고 시시덕거리고 있던 드미트리는 이성민을 보고서 두 눈을 크게 떴다.
“뭐…… 야!?”
드미트리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상처투성이의 전신은 꿈틀거리는 근육의 갑옷처럼 보였다.
덜렁거리는 물건을 보며 백소고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야나는 경멸하는 눈으로 드미트리를 보았다.
드미트리는 그 시선에 움찔하고 뒤로 물러서면서 한 손으로 사타구니를 가리며, 구석에 세워 둔 대도(大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뭐냐고!”
드미트리가 고함을 질렀다. 그 외침에 별관 전체에 소란이 일어났다. 용병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성민은 드미트리를 빤히 보면서 발을 들어 올렸다.
탁.
그의 발이 가볍게 바닥을 내리치자, 이성민을 중심으로 무형의 기세가 사방으로 뿜어졌다.
그것은 가로막는 물리적인 장해물들을 모조리 무시하고서 저택 전체를 집어삼켰다.
“괴력난신(怪力亂神)……!”
야나가 가볍게 탄성을 터뜨렸다. 괴력난신은 요괴의 힘이다.
초월지경의 고수가 공간에 간섭할 수 있다면, 수많은 공포를 공양받음으로써 드높은 요력을 갖게 된 대요괴는 가진 요력을 완벽하게 조율하면서 요력을 바탕으로 한 요술을 부리게 된다.
이성민의 경우에는 이런 것이었다. 이전에 검은 심장으로 흡수하여 은연중에 사용할 수 있게 된 드래곤의 로어가, 완전한 요괴가 됨으로써 더한 위력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실로 괴력난신이라 할 만했다. 괴이와 용력과 패란과 귀신에 관한,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현상.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의기상인이 완벽, 그 이상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요정의 숲에서 지내는 동안 완벽히 다룰 수 있게 된 힘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기세만으로 죽일 수 있다.
정종 무공을 깊이 익혔거나 불심이 깊고, 신성력이 뛰어난 이들이라면 무리겠지만. 난잡한 용병들을 상대로는 그리 힘을 줄 것도 없었다.
죽일 수도 있다지만 죽일 생각은 없었다. 이곳에 학살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니었으니까.
“헉……!”
밀어닥치는 무형의 압력에 드미트리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는 급히 내공을 끌어 올려 이성민의 괴력난신에 저항했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있던 여인들은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두 눈에 빛이 사라진 여인들이 힘없이 머리를 떨어트렸다. 계단을 오르고 복도를 뛰던 용병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누구……?”
“옷이나 입어.”
이성민은 얼굴에 뒤집어쓴 인피면구를 벗으며 말했다.
“그 정도 시간은 기다려 줄 테니까.”
알아보라고 벗어 준 것이었지만 드미트리는 이성민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이성민을 노려보며 슬며시 옷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머리를 굴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저놈은 대체 뭐하는 놈인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놈이 누구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뒤에 여자 둘…… 신경 쓸 정도는 아니로군. 문제는 저놈인데…….’
드미트리는 이성민이 자신보다 뛰어난 고수라는 것을 인정했다. 초월지경인 드미트리의 경지로도 불가능한 의기상인을 저토록 가볍게 해냈다.
작금 세상에 저런 고수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왜 저런 고수가 나한테 이런 지랄을 벌인단 말인가?
“거…… 누군지나 좀 들어봅시다. 댁은 대체 뭐 하는 위인이요?”
“질문은 내가 해.”
빌어먹을 새끼. 얼음장 같은 대답에 드미트리는 마음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항복해야 하나? 죽이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는데? 틈을 보아서 빠져나갈 수밖에.
갑옷을 걸치며 드미트리는 마음을 굳혔다. 다행히 놈은 방심하고 있는 듯했다.
으레 있는 경우 아닌가. 자신이 상대보다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상대를 무시하고, 방심하고.
드미트리는 도존이라는 별호이면서 용병왕이었다. 그리고, 용병이라는 족속은 정정당당함과는 거리가 멀다.
상대가 방심한다면 오히려 좋았다. 그 방심의 틈을 찔러 죽일 수는 없을지라도, 도망칠 틈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드미트리는 자신의 애도를 꽉 쥐었다. 드미트리의 준비가 끝나자, 이성민은 어깨에 걸치고 있던 창을 아래로 내렸다.
드미트리가 도망치려 들지 않는 것은 의외일 것도 없었다. 이성민은 드미트리라는 인물을 오늘 처음 보았지만, 그가 이곳에서 목숨을 각오하고 덤빌 만큼 심지가 굳센 무인이 아님은 직감했다. 그렇다면 노림수는 뻔한 것 아닌가.
‘창…… 씨발, 괜히 불길하네.’
귀창이라는 별호가 머리 한구석을 떠돌았다. 그 괴물 같던 검존을 죽이고, 무신의 똥구멍을 빨아대던 암존을 죽이고, 권존도 죽인 놈.
창왕이 놈과 동수를 이루었다고 했던가? 그래도 설마, 놈이 귀창일 리는 없지.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던 귀창이 사실 살아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에리아 전역으로 퍼진 소문이었으나, 드미트리는 자신의 앞에 있는 저 뭔지 모를 창수가 귀창이라는 가능성은 조금도 떠올리지 않았다.
게르무드에서 루베스까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슬며시 발을 끌던 드미트리가 순간 땅을 박찼다.
꽈앙!
저택 전체가 뒤흔들릴 진동과 함께 드미트리의 몸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드미트리는 양손으로 쥔 대도를 휘둘렀다.
이성민은 차분한 표정으로 드미트리가 대도를 휘두르는 것을 보았다.
대도가 공기를 찢는 파공음 속에서 ‘딸칵’하는 소리가 들렸다. 놈의 팔목을 감싸고 있는 완갑에서 자그마한 암기가 쏘아졌다.
이성민은 헛웃음을 흘리며 몸을 살짝 비틀었다. 자그마한 암기가 이성민을 비껴갔다.
그 뒤로 떨어지는 대도를 향해 창을 쭉 뻗었다. 끝까지 휘둘리지 못한 대도가 허무하게 멈췄다.
드미트리는 헉하고 숨을 삼키며 대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창에 가로막힌 대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드미트리가 양손으로 대도를 쥐고 있는 힘을 다해 아래로 내리찍는 것과는 다르게, 이성민은 왼손만으로 창을 잡고 있었다.
“이런…… 씨……!”
드미트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도와 창대가 맞닿은 곳에서 끼긱거리는 소리가 났다.
드미트리의 주변 공간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그것까지 기다려 줄 생각은 없었다.
창을 쥐지 않은 이성민의 오른손이 앞으로 나아갔다. 드미트리는 기겁하며 호신강기를 일으키고 보법을 병행하여 빠져나가려 하였으나, 무의미한 발악이었다.
이성민의 오른손이 드미트리의 가슴에 닿았을 때, 그를 보호하고 있던 흉갑은 부서지지 않았다.
하지만 드미트리의 몸 안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스며든 난폭한 요력이 드미트리의 기혈을 찢었고 내공을 진탕 시켰다. 드미트리의 코와 입에서 피가 뿜어졌다.
“커윽!”
압도적이었다. 똑같은 초월지경이라고 해도 이성민과 드미트리 사이에는 압도적인 격차가 존재했다.
사마련주가 흑룡협을 어린아이처럼 다루었듯이, 이성민도 드미트리를 어린아이처럼 다룰 수 있었다.
다리를 덜덜 떨던 드미트리가 결국 주저앉았다. 갑옷 곳곳에 숨겨놓은 암기와 인챈트 된 마법들을 발동할 틈도 없었다.
그것들 모두를 사용해 봤자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테지만. 이성민은 부들거리며 떠는 드미트리에게 다가가서 그의 손목을 잡았다.
“천외천에 대해 말해라.”
“너…… 넌 대체 누구…….”
“질문은 내가 한다고 했잖아.”
꾸욱.
이성민의 엄지손가락이 드미트리의 손목 한가운데를 눌렀다. 드미트리의 몸이 벼락 맞은 것처럼 바르르 떨렸다.
기혈 안으로 스며든 요력은 드미트리에게 통증을 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드미트리는 확실한 이질감을 느꼈고, 그것이 노골적인 협박임을 알았다.
협조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죽는다. 아니면 죽는 것이 나을 정도의 병신이 되던가. 어느 쪽이든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끔찍한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은 분명했다.
“아…… 알겠습니다.”
“맹세해. 진실을 말하겠다고.”
드미트리는 눈치가 빨랐다. 그는 어디에 있는지 모를 무신보다는 바로 앞에 있는 이성민이 두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드미트리는 이성민이 묻는 것에 모조리 대답해 주었다.
10년 동안 무신은 다시 폐관 수련에 들어갔고, 천외천은 사실상 방치되고 있었다.
드미트리도 영매에게 별다른 지령을 듣지 못해, 천외천의 도존이 아닌 용병왕으로서의 삶에 충실하고 있었다.
“영매의 지령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수정구슬…… 이 있습니다.”
“내놔.”
어느새 말을 높이고 있던 드미트리는 얌전히 아공간 포켓을 열어 수정구슬을 건넸다.
이성민은 그것을 자신의 아공간 포켓 안에 넣어두었다. 이것을 통해 영매의 위치파악을 시도해 보기 위해서였다.
“천외천은…… 그…… 최근 10년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지금 와서 천외천에 소속되어 있는 것은 무신과 월후, 그리고 저뿐이라…….”
“월후는 죽었을 텐데?”
“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월후는 자신의 거처에서 폐관 수련에 들어갔습니다만…….”
그 말에 이성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월후는 죽었을 텐데? 의문스럽기는 했지만, 그에 대해서 캐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서의 일이 끝난 후에는 월후의 거처에도 가볼 생각이었다.
더 이상 드미트리에게 들을 말은 없었다.
이성민이 몸을 일으키자, 드미트리는 꿀꺽 침을 삼키며 이성민을 올려보았다.
이성민은 그런 드미트리를 물끄러미 내려 보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퍼억! 쏘아진 지탄이 드미트리의 미간을 꿰뚫었다. 드미트리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 죽음을 맞았다.
“죽일 필요까지는 있었어?”
“살려 둘 필요도 없었습니다. 언젠가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사제. 신령에게 기만당하고 있지만, 천외천은 종언을 막는 것이 목적이잖아. 그렇다면 저 남자도…….”
“종언을 막기 위해 행동하던 것은 무신과 월후, 영매뿐입니다. 저놈은 종언이 뭔지도 모릅니다. 그냥 자신의 이득을 위해 살아왔을 뿐이에요. 의(義)롭지도 않았고 선(善)하지도 않습니다. 사저가 동정할 가치가 없는 인물입니다.”
백소고는 그 말에 쓰게 웃을 뿐 뭐라 반박하지는 않았다. 이성민은 내려놓은 창을 쥐어 들며 말했다.
“밖이 소란스럽군요. 아까의 소리로 사람들이 모인 모양입니다.”
“몰래 나갈까?”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이성민은 그렇게 말하며 방을 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