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Comic Genius RAW novel - Chapter 66
066화. 가지 마!
협회와 서울 출판사가 흔들리는 지금을 노려야했다.
그래서 나는 코믹제트, 더 나아가 모회사 ‘대명성’에 제안을 했다.
“차기작을 대명성에 드릴게요.”
“……차, 차, 차기작?!”
내 느닷없는 말에, 고준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어느새 정신을 차려 벌벌 떨었다.
“차, 차기작을 저희에게 주시는 겁니까? 안 선생님이라면 일본에 내실 줄 알았습니다.”
마침 가 일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다. 고준하는 내가 차기작을 일본에 연재할 것이라고 찰떡처럼 믿은 것이다.
하지만 기대도 안 했던 차기작을 제트가 받는다니, 기쁨에 겨운 고준하였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 말입니까? 말씀해주시죠.”
고준하가 귀를 기울였다.
“대명성에서도 ‘점프 플러스’같은 새로운 잡지를 내주세요. 그곳에 연재하고 싶어요.”
“새 잡지 말씀이십니까?”
고준하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마치 고준하도 원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주간 제트가 소년지니까, 새로 만들 잡지는 청년지가 어때요?”
“‘영 챔스’ 같은 성인 타겟 잡지를 말씀하시는 거죠? 안 그래도 주간 제트의 규모가 커졌는데, 사업 확장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준하는 휴대폰을 켠 뒤, 자리에 일어났다.
“대명성 회장님에게 회의 일정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그리고 얼마쯤 지났을까.
“허허, 참.”
고준하가 얼떨떨하게 웃으며 돌아왔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내가 답하자, 고준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선생님의 파급력이 생각보다 대단하군요. 고작 전화 한 통으로 결정이 되어버렸습니다.”
“벌써요?”
의외였다.
적어도 한 달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고, 그걸 염두해서 미리 말해둔 것인데.
“원래라면 시장 조사도 하고, 긴 시간을 걸쳐 회의에 결정되어야할 사항입니다. 그런데 안 선생님의 요청이라는 것과 함께 차기작을 받을 수 있단 첨언에 회장님께서 곧바로 수락하셨습니다.”
쿨한 회장님이시네.
‘아니, 회장님이 쿨하다기 보다는……. 내가 흥행보수증표가 되었기 때문인가?’
그렇다.
사업가에 입장에 보자면 안서준 작가를 다른 회사에 빼앗기기 전에 계약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겠지.
‘판단력이 좋다고 봐야겠군.’
아무렴 내가 누군가.
대명성은 물론 국내 만화판을 살려내고 있는 작가가 아니겠는가.
그런 작가가 차기작을 준다고 했으니 즉시 수락하는 것이었다.
“아, 새로 생긴 잡지도 제가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일거리가 더 늘었군요.”
이번에도 고준하가 담당하는 것으로 결정 났다.
“새 잡지 이름은…… 플러스를 붙이면 ‘점프 플러스’가 연상되거든요. 그러니 ‘제트 블랙’이 어떻습니까?”
“‘제트’랑 ‘블랙’은 연결이 안 되는데요. ‘제트 매그넘’이 어때요?”
“오, 제트 매그넘…… 좋습니다.”
메모를 해두는 고준하.
“주간 제트 최신호에 작가 모집 공고를 올려야겠습니다. 안 선생님의 차기작도 연재된다고 광고하면 그 파장은 클 겁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원하던 것이었다.
‘대한 만화가 협회와 제트는 서로 적이라고 되어 있다.’
협회 측은 코믹 제트 연재를 금기시 여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트 매그넘에는 업계 최고의 대우에, 국내 최단 기록을 세운 작가의 차기작마저 연재된다.’
내 차기작이 연재되는 잡지가 잘 팔릴 것은 기정 사실이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제작 지원과 일본 연재의 기회까지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작가의 입장에선 제트는 최고의 연재처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 협회를 뛰쳐나오고 제트로 넘어 오겠지.’
사실상 협회를 없애버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니 협회를 탈퇴하도록 유도하거나,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아예 새로운 단체를 만드는 것이 현실성 있었다.
‘대한 만화가 협회에 준하는 ‘협회’를 내가 만들면 된다.’
협회 자체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었다.
실익 보호가 그대로 유지될 경우엔 회원 모두가 이득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2000년 초기의 대한 만화가 협회는 그것이 제대로 실행이 안 된 것이 문제였고.
‘내가 만드는 협회는 투명성 있게 작가의 실익을 보호하게 될 것이다.’
박두식과 다르게, 나는 협회를 통해 개인적인 이득을 취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만화로 수십 배, 아니, 수백 배는 벌 테니까.
‘무너져 가는 협회에 계속 있겠느냐, 아니면 새 시대를 받아들이겠느냐.’
과연 어떻게 될까.
* * *
서울의 어느 커피숍.
작가 두 명이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김 작가. 소식 들었습니까?”
“제트 매그넘 말씀이시죠?”
주간 제트 최신호에 게시된 ‘제트 매그넘 작가 모집’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박두식 이놈의 말에 속아서 점프 플러스로 옮겨 연재하는 걸 매일같이 후회중입니다.”
“저도예요. 100만부 신화를 다시 일으켜주니 뭐니 거렸으면서 10만부는커녕 5만부도 못 넘겼죠.”
두 작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출판사, 점프 플러스에 야심차게 연재했지만 변변찮은 판매부수에 실망한 기성작가들이 입을 모아 박두식을 욕했다.
“제트 공고 다시 봅시다. 저는 이만하면 넘어가도 될 거 같다고 생각하는데.”
한 작가가 뜯어온 공고문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 대명성 신규 잡지, ‘제트 매그넘’ 작가 모집 공고 ] [ 18세 이상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 잡지 작가/ 어시스턴트님을 모십니다. ] [ 작가님의 작품 집필에 적극적인 도움을 드릴 전문 편집부의 제작 지원을 드립니다. ] [ 국내 최고의 대우를 약속드립니다. ] [ 일본 진출 지원을 받게 됩니다. ] [ 의 안서준 선생님의 차기작도 연재 됩니다. ]작가입장에서 보면 볼수록 구미가 당기는 공고문이었다.
“박두식은 대명성을 협회 블랙리스트에 올렸죠. 대출이 잔뜩 밀려있고 임금 체불하는 악질 회사라고요.”
“근데 그거 순 거짓부렁이었죠?”
의 흥행과 주간 제트의 판매량 덕에 박두식의 거짓말은 탄로 나게 된다.
“제가 제트에 연재하는 작가를 한 명 아는데, 제트에 만화를 그려서 행복하답니다. 작가 존중은 물론이고, 원고료도 많이 주고, 어시스턴트 비용도 절반 지원해주고, 전문 편집부까지 있다고요.”
“그런 회사가 제트 말고 더 남아 있을까요?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 저희도 제트에서 연재를 했어야 했데…….”
“어쩔 수 없죠. 당시엔 제트에 연재하면 하루살이 취급했으니까요. 이렇게 크게 성장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렇겠죠. 지금이라도 제트에서 연재를 해야할 지 고민입니다.”
1년 전만 해도 거들떠도 안 본 잡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작가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안서준마저 연재를 한다는데요?”
“안서준이라면 믿을 만하죠. 같은 100만부 대열 작가로서 질투가 나긴 하지만, 솔직히…… 21세기에선 안서준보다 잘 그리는 한국 만화가는 없다고 봅니다.”
두 작가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2000년 이후로는 안서준이 최고라는 것엔 이견이 없었다.
“저도 안서준이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습니다.”
“소문으로는 박진호의 문하생 출신이라던데요?”
“아…… 챤스 박진호요? 그 사람, 안 그래도 그림은 잘 그리는 사람이었는데 영향을 줬나보군요.”
“어느새 스승을 뛰어 넘은 거죠. 대단하죠.”
안서준의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본론인 ‘제트 매그넘’으로 돌아왔다.
“저는 일단 매그넘에 투고해보려고요. 합격하면 점프 플러스 연재 종료하고 옮기렵니다.”
“그럼 협회랑 적이 되지 않습니까?”
“솔직히 그게 무슨 상관일까요? 이젠 협회가 대수는 아니잖아요?”
“흐음…….”
주위를 살펴본 뒤,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했다.
“그렇죠. 요새 협회는 무능력하죠.”
불만 제기하는 작가는 블랙리스트를 걸어버리고, 작가를 보호해주지도 못하고, 소통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박두식 협회장부터가 질 나쁜 공장 운영하는 건 아는 사람들은 다 알잖아요?”
정작 한국 만화의 질을 떨어뜨리는 악질이었으니.
자신의 작품 판매량이나 애니메이션이 잘 나간다고 허영심만 가득 찬 것이다.
“저는 허재만 선생이나 이현 선생급이 협회장 맡지 않는 이상 협회 안 믿으렵니다.”
어느새 만화가들에겐 협회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찼다.
“작가님이 얼마 전에 연재 종료했을 땐 너무 일찍 나간 게 아닌가 싶었는데, 현명했던 거였군요.”
“저도 조만간 연재 종료 해야겠습니다. 김 작가님도 제트로 옮기시죠.”
“저야 뭐, 합격시켜주면 제트로 바로 가지요.”
아이피 점프 플러스의 A급 작가들도 뒤늦게 탈주를 하는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 * *
“지금 뭐하는 겁니까.”
강명호는 초췌한 얼굴로 어시스턴트를 바라보았다.
어시스턴트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들은 무표정이었다.
“어서 자리에 앉아서 작업 하세요.”
조금 이상한 낌새를 느낀 강명호였지만, 펜을 들고 작업을 시작하는 그였다.
‘시간이 없다. 퀄리티를 좀 더 끌어 올려야 해.’
의 순위가 한 자리 더 내려앉으면 ‘위기관리체제’에 들어간다.
‘반드시 반등을 하고 말겠다. 그리고 따윈 앞질러주지.’
13위로 내려갔지만, 충분히 다시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보다 더 공을 들이려는 그였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서 작업을 하는 건 강명호 자신뿐이었으니. 보다 못한 강명호는 신경질적인 눈초리로 어시스턴트를 바라봤다.
“뭐합니까? 얼른 앉으라니까요?”
강명호가 그들의 눈을 마주치자 느낄 수 있었다.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소름이 돋은 강명호였다.
“……자리에 앉으세요.”
강명호의 계속된 명령에, 김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른 회사에서 작가 모집 공고가 나왔거든요. 이젠 그만 두려고요.”
“저희도 여러 사유가 있어서요.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강 선생님.”
“뭐?”
강명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13위까지 내려앉은 것만 해도 절망적인데, 만화를 같이 그릴 어시스턴트마저 없다면…….
‘어시스턴트가 없으면 를 그릴 시간이 촉박하다!’
퀄리티를 올릴 수 없는 건 둘째 치고, 연재마저 불가능한 상황.
13위까지 내려앉은 지금, 연재마저 펑크를 낸다면 자신은 완전히 끝장이다.
“자, 잠시만. 이번 편은 그리고 가세요.”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강명호였지만, 어시스턴트의 반응은 냉랭했다.
강명호 자신이 어시스턴트들에게 했던 반응이 그대로 돌아온 것이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신발장에서 신발을 신는 어시스턴트를 보자, 위기감을 느낀 강명호는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 가버리면 이번 달 비용 입금 안 해줄 겁니다! 돌아오세요!”
김석을 포함한 어시스턴트들은 그런 것 따위 상관없었다.
어차피 푼돈에 가까운 돈 때문에 더 이상 이런 차가운 공간에서 일을 하고 싶지 않다.
자신은 꿈이 생겼다. 다시는 그 꿈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문이 벌컥 열리자, 강명호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다다다! 얼른 뛰어가서 김석의 팔을 붙잡는 강명호였다.
“가, 가지 마!”
“말씀 드렸잖습니까, 이거 놓으세요.”
강명호의 손을 뿌리치는 김석이었다. 철푸덕! 강명호는 힘없이 쓰러졌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강명호에게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화가가 된다면, 강명호처럼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강명호를 반면 교사 삼을 것이다.
최악의 인성을 가졌으며, 존중을 모른다. 남의 작품을 복제하는 것밖에 모르는 작가.
자신은 절대로 강명호처럼은 되지 않을 것이다.
어시스턴트들은 이미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음에 불구하고, 강명호도 뒤따라 나왔다.
“가지 마!”
점점 멀어져가는 어시스턴트를 향해 소리쳤다. 그들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가지 말라고!”
강명호는 울부짖었다.
그의 주변에는 단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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