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94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94화
상승장을 부르는 광고(3)
‘…어?’
솔직히 말하자.
내뱉기는 했지만, 이런 반응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내 주특기는 무대를 순간적으로 장악하는 거니까.
광고는 뭔가 좀 다르다고 생각했으니까.
다만,
“…재밌겠는데.”
봄이 할아버지의 표정은 마치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매우 격정적이었다.
“진짜… 요?”
“진짜.”
“가슴이 뛰십니까…?”
“놀랍게도.”
…남자는 아이나 노인이나 똑같다고 한다.
일부 사람들은 그게 남자를 비하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일정 부분 공감이 되는 면이 있었다.
그건 바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을, 어떻게든 실현해 보고 싶은 욕망.
세간의 따가운 시선을 처맞고, 누가 봐도 X신 같지만, 그럼에도 몰두해 보고 싶은 갈망.
“어… 응?”
봄이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듯이, 나와 할아버지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아직 어렵나 보네.’
굳이 설명하려 들지는 않았다.
이것은, 말로 뭐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나는 전혀 다른 곳에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분명, 같은 곳이었다.
“하지.”
“예.”
“…네?!”
“이건 해야 되는 거야!”
봄이네 할아버지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신 후, 이내 전화기를 들었다.
한 3분 지났나.
곧바로 노크 소리가 들려오더라.
4, 50대 회사의 실무자들이 크게 고개를 숙이며 들어오더라.
할아버지는 내가 생각하던 것과 완벽히 같은 계획을 설명하셨고, 역시나 실무자들 또한 눈을 크게 떴다.
가장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지적인 사각 무테안경의 아재였다.
“마케팅부 부장 오병석입니다. 말씀해 주신 계획이… 정말 실현 가능한 것입니까?”
회사의 대빵 앞이라 그런가, 조심스럽긴 한데.
그렇다고 눈빛에 의심암귀가 서려 있지 않은 건 아니고.
“물론입니다.”
내가 대답해야 할 것은, 확신뿐.
“발가락으로 피아노를 친다는 게… 정말 가능하다는 말씀이십니까?!”
“물론입니다.”
“아니 그게 어떻게….”
‘백문이 불여일견이지.’
나는 곧바로 봄이랑 같이 고른 새 신발을 훌렁 벗어 던졌다.
드러난 것은, 떼는 안 껴 있지만 그렇다고 만지기에는 두려움이 느껴지는 내 발.
“보십시오.”
국내 굴지의 대기업 관리자들과 회장님의 시선이, 내 발가락에 고정됐다.
그리고, 움직였다.
휘르륵.
꿀렁 꿀렁.
“어?!”
“으어어어어어어!”
울려 퍼지는 비명들.
입을 틀어막는 봄이.
“꺄아아아악!”
비서가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들어왔고, 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이상한가?’
사실 뭐,
‘발가락’이란 게 원래 엄지와 나머지 네 발가락이 동기화되어 있긴 한데.
나는 그걸 깨뜨릴 수 있는 것뿐인데.
반응이 정말로 엄청났다.
X랄이 났다!
“보시다시피, 손가락만큼은 아닙니다만….”
그들이 진정하기까지는 1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도저히 보지 말아야 했을, 크툴루의 무언가를 본 듯한 얼굴들.
가장 먼저 제정신을 되찾은 것은 실무자 중 가장 직급이 높아 보이는 마케팅부 부장이었다.
“그, 충분해 보입니다.”
“살다 살다 저런 발가락은 처음 봅니다.”
감탄.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공포.
아주 약간, ‘호들갑 떠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뭐.
제대로 이해를 했다니 다행이었다
나는 신발을 신은 뒤,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자동차 지붕 위에, 업라이트 피아노랑 의자를 설치해 주세요. 최대 하중은 한 350㎏ 될 겁니다. 가능합니까?”
“아 예… 원래 렉 설치가 가능한 모델이라 문제없습니다.”
문제는 없다니, 다행이었다.
다만,
“설마… 자동차의 ‘적재능력 홍보’까지 고려해서 의견을 내신 겁니까?!”
“이럴 수가.”
현업자들은 뭐랄까.
조금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다고나 할까.
“…기획 능력이 상당하시군요.”
“놀랐습니다.”
“….”
솔직히 그 정도까지는 고려하지는 않았지만 뭐.
알아서 고평가를 해준다는데, 굳이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난 놈이야. 허허.”
우리는 광고 기획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가 그리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다.
협상할 게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틀과 장소는 이미 잡혀 있는 상태.
원래는 내가 없어도 꽤 괜찮은 광고가 찍힐 것 같고.
내가 더해지는 것은 단순한 MSG 같은 역할이고.
“계약금과 의뢰비, 출연료는 이곳에….”
물론 돈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어마어마하구만.’
처음 페어리스의 곡을 만들었을 때 받은 돈이 세금 떼고 800이 안 됐지.
물론 그 금액 또한 업계 표준 이상이기는 했지만,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숫자는 단위 자체가 달랐다.
한 단위가 아니라, 두 단위로.
‘이사가 빨라지겠어.’
머리에 피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촬영 일정은 2주 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딱 가을 풍경일 때죠.”
“그때까지 준비하겠습니다.”
“어… 준비라뇨?”
“곡 말하는 겁니다만.”
벙찐 얼굴들.
“설마 그냥 치는 척만 하게 하고 나중에 곡을 삽입할 생각이셨나요?”
“보통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안 됩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광고는 광고고.
찍는 건 찍는 건데.
나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다.
곡에 대한 준비 없이, 건반 앞에 설 수는 없다는 것이다.
“촬영 전까지 곡 만들어 오겠습니다.”
나는 텅-!
계약서에 내 도장과 부모님 도장을 찍으며, 그리 확언을 했다.
“그,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한 번 내뱉은 이상에야 지킬 수밖에 없는 노릇.
“발가락이라….”
어떤 곡을 만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연주를 해야 하는지.
회사를 빠져나오자마자, 깊은 고민이 시작됐다.
“도일이 발가락 귀여웡.”
“진심…?”
“응! 꼼지락 꼼지락. 히히”
“….”
봄이는 아무래도 특이 취향이 맞는 것 같았다.
“집에 이번에 업라이트 피아노 들였는데, 내일 보러올래?”
“콜.”
물론, 나는 그 무서운 취향 앞에서 계속 발가락을 보여줘야 할 것 같지만.
* * *
강선자동차 마캐팅부 대리 민재현은 최근 들어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입사한 지 이제 4년 차.
부서에 잘 적응하고, 맡은 일도 잘 처리하고, 중소규모 프로젝트를 자기 이름으로 하나로 수행해 낸 적도 있고.
물론 경력에 비해서 커리어가 보잘것없기는 했지만.
그건 뭐, 날 때부터 소인배인 성격 탓이었다.
앞에 나서는 것보다는 뒤에서 보좌를.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보다는 안정을.
비록 동기들과의 승진 경쟁에서 밀릴지언정, 민재현은 그래도 자신의 회사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었다.
불과, 2주 전까지.
“시….”
‘시… X럴.’
하지만 지금은?
업무시간에도 간간이 흘러나오는 욕지거리를 간신히 삼키기 바빴다.
손에 스멀스멀 배어 나오는 땀을 계속해서 바지에 닦아냈다.
이유는 다름 아니다.
회사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고혈을 짜내어 만들어낸 신형 전기 SUV, ‘우드랜드’의 마케팅 기획에, 자신의 의견이 채택되었기 때문이다!
“대리님! 김도일님이 촬영 전까지 곡이 완성될 것 같다고 하세요! 샘플은 이틀 뒤랍니다!”
“아… 좋은 소식이네요.”
‘혼날 각오 하고 낸 제안인데…!’
회의 전날에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 술자리를 가졌고, 그러다 보니 과음을 해버렸고.
다행히 아이디어 따위는 준비조차 안 했고.
-절벽에서 다른 회사들 차랑 같이 달리다가, 뛰어난 성능 덕에 혼자만 살아남는 컨셉-
달랑 이것만 적어서 냈는데!
이게 대체, 왜 채택이 된 거지?!
“저는 모레 외주 팀이랑 같이 현장 답사 다녀올게요!”
“힘내세요.”
“아니요, 첫 대형 프로젝트이신데, 대리님이 힘내셔야죠!”
“하하하….”
부하직원의 천진난만한 응원에, 웃음만이 나왔다.
목젖의 떨림과 함께, 소인배스러운 새가슴이 더더욱 옥죄어 오는 것만 같았다.
‘뭔가 규모가 커지고 있어….’
선택될 리 없다고 생각하고 냈었던 아이디어였다.
그냥 야생을 질주하는 씬만 찍어도 나름 괜찮은 광고일 터인데,
경쟁사의 SUV들이 낭떠러지로 떨어뜨리는 지점에서 스케일이 너무 커진달까.
실제 타사에는 없는 ‘절벽감지 보조모드’라는 게 탑재된다고 하니 비교광고가 문제없지만서도.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달리는 자동차 위에서 발가락으로 피아노까지 친다니…!’
이게,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진짜?!
마치 이 세상이 자신을 억까하는 것 같다.
당장에라도 자신의 원룸 방에 돌아가, 불을 끄고 이불 속에 틀어박히고 싶어졌다.
‘그러면 잘리겠지.’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대리님, 광고 파급성 보고서 기일이 하루 단축됐어요.”
“그렇군요.”
“힘내세요!”
이러나저러나,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에야, 이 미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아….”
민재현은 작은 소리로 한숨을 내쉬며 보고서 작성을 위한 인터넷 서칭을 시작했다.
필요한 것은 신차에 대한 인터넷 여론과 작곡가 김도일에 대한 정보.
“신차 기대감은… 다 좋은 것 같고. 김도일 쪽은….”
딱히 비밀유지 조항은 넣지 않았다고 했고, 그 덕에 인터넷에는 이미 ‘음주가 강선자동차 광고를 찍는다’는 정보가 퍼져 있는 상태.
아직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인터넷의 반응은 엄청나게 뜨거웠다.
“…와우.”
순수하기 그지없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간단하게 편곡된 엘리제를 위하여를 기괴한 발가락들이 연주해 내고 있는데, 놀랍게도 꽤… 괜찮게 들렸다.
김도일 : 신곡 만들려고 손, 아니, 발푸는 중입니다 ^^
잉스타 피드 첫 페이지에 올라와, 줄곧 내려가지 않는 이유가 아주 잘 알겠다!
-김민철 : 폐하는 대체 무엇을 하시려는 의중이실까.
└oooseo : ㄹㅇ 추측이 안됨
└보라돌이 : 그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우리의 지능이 모자란거같다.
-2_min : 강선자동차 광고 찍는다는데 그거랑 관련이 있을듯.
└tommot : 근데 발가락이랑 자동차랑 무슨 상관? 뭘 어케함?
└2_min : 흐음.
-Alexxia : (번역) 나 뭘 보고 있는 거임?
└김민철 : ‘신인류’
└Alexxia : (번역) 그렇구나 아무리 봐도 저 발가락이 인간의 것 같지 않았거든.
탁- 타타탁.
-광고모델로서 김도일을 추가로 채용한 것은 비용 이상의 여론 집중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되며….
민재현은 보고서를 써 내려갔다.
신차와 김도일에 대한 국내 기대치 수집은 순식간에 마쳐졌고, 남은 것은 해외 반응에 대한 분석뿐.
국내보다는 조사가 어렵기는 하지만 뭐.
공식 트짹 팔로워들의 반응을 추적하면 그래도 대체적인 분위기는 알 수 있었다.
그래,
트짹을 조사하다 보면….
–
Melon ask : He is the best musician!
(사진)
10분 전.
–
“어…?”
의문이 튀어나왔다.
원래 회사에서는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어?’ 하고 놀라는 게 금지되어 있는데.
그게 암묵적인 사칙인데.
지금은 도저히, 그걸 지켜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턱! 막히는 숨.
일순간 멍해지는 머리.
민재현은 눈을 비볐다.
전 세계 최대의 전기차 회사 니슬라의 소유주이자, 지금 켜고 있는 트짹의 주인이 올린 게시글을 보면서.
“어!?”
그 게시글은, 짧은 문장과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대한 몸과, 번쩍이는 광선검을 들고 피아노를 가르는 남자.
김도일.
최대 경쟁사의 대빵이, 강선자동차가 채용한 광고 모델을 언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아니, 저… 부장님! 부장님!”
“뭔 일이야?!”
“이거 보세요!”
자신의 자리에 달려오는 것은 부장뿐만이 아니었다.
근처에 있는 모든 눈동자가, 모니터로 향함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와… 와.”
“이게 무슨 일이야.”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자신과 같은 반응을 보이는 동료들.
그리고 그중에서도,
“광고 나가면 파급력이 장난 아니겠는데….”
유일하게 진지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는 부장님.
“네?”
“너 보고서 작성할 때 김도일 씨한테 연락이 왔었거든.”
“무슨….”
“자기가 직접 다른 경쟁사 차 절벽으로 밀어도 되냐는데?”
“….”
경쟁사 자동차에는, 니슬라의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
민재현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가는 스케일에, 정신이 나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