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irt spoon's way to escape debt RAW novel - Chapter 144
143
진(1)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땅이 울렁거린다.
샤샤샥-
파도가 밀려가듯 땅 전체가 우르르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도 갈까?
“음.”
읏차-
가볍게 몸을 일으킨 남자가 앞으로 발을 스륵 내밀었다.
옆의 남자와 함께.
****
다시 체스의 시야.
푸왓-
땅에서 뭔가가 솟구친다.
땅에 시체가 되어있는 것들과 똑같은 시커먼 동체.
데몬 스코르피다.
하지만 한 마리가 아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수.
푸왓- 푸왓- 푸왓-
연이어 땅을 뚫고 나타난 데몬 스코르피들.
어떻게 보면 장관이었다.
수많은 데몬 스코르피들이 체스 하나를 노리고 적의를 드러내고 있는 모습은.
‘시발. 이게 본대였구나. 조졌네.’
저들이었다.
사냥단 하나를 전멸시킨 것들이.
저 정도 수라면 당연히 전멸을 당하고도 남았겠지.
꿀꺽-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는 체스.
2마리야 어째어째 처리했다손쳐도 이 정도 수라면 자신이 없는데.
글쎄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체스는 중단과 상단을 열어젖혔다.
하지만 머릿속에 그려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공격할 의도는 없는 건가?’
긴장한 체스와는 달리 마수들은 부채꼴로 퍼진 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자세를 한껏 낮춘 채 가만히 있는 마수들.
꿀꺽-
‘올테면 와라…’
바로 그때 하늘에서부터 뭔가가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려왔다.
슈와아아아아아아악-
순간 뒤로 동체를 사사삭 물리는 데몬 스코르피들.
뭔가 위험을 감지한 듯한 빠른 움직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헬캣이었다.
그리고 양껏 뻗은 그의 앞발.
그의 앞발은 정확하게 마수들과 체스 사이의 땅을 내려찍었다.
강력한 단 한 방.
단 한 번의 내려침에 쩌저적 갈라진 땅.
물론 두어 마리 정도가 그 여파에 휩쓸리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어 보였다.
-뭐냐? 네 녀석들. 도대체 너희가 왜 여기까지 이 많은 무리를 이끌고 온 것이지?
하지만 미동조차 하지 않는 마수들.
그들 또한 헬캣이라는 존재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저 침묵을 지키는 중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으로.
‘이것들. 무슨 꿍꿍이지?’
헬캣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달려들어도 시원찮을 녀석들이 오히려 몸을 뺀다?
동족의 시체를 앞에 두고도?
분명히 뭔가 있다.
“무슨 생각이죠? 이 녀석들. 왜 가만히 있는 거에요?”
뭔가 생각을 좀 하려면 꼭 이렇게 끼어든단 말이지.
생각을 할 시간을 줘야 대답이라도 해주겠구만.
-나도 잘 모르겠다. 왜 빠지는지.
바로 그때 뒤편에서부터 마수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물길이 양 갈래로 갈라지듯 촤라락 갈라지는 마수들.
‘뭐지?’
의문을 품는 사이.
갈라진 길 사이로 2명의 남자들이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저 얼굴은…?
분명히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녀석이다.
‘저…놈…마저?’
젠장.
헬캣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였다.
****
-하하하. 여기에 있었군? 너무 오랜만인걸?
반가운 듯 인사를 건네며 웃음을 터뜨리는 남자.
-…네가 왜 여기에 있지? 너는 다른 녀석들과 다르지 않나?
-내가 다르긴 뭘 달라. 소속이 있으니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다 그러면서 사는 거 아닌가?
-하지만 너는.
-주인이 가라면 가야지. 뭘 굳이 물어보는 거야? 새삼스레. 크흐흐흐.
-하아. 진. 넌 참.
그의 이름을 부르긴 했으나 말을 채 잇지 못하는 헬캣.
그의 입에서 주인이 언급되었다.
그렇다면 이 녀석이 넘어왔다는 말은 곧 주인의 지시가 있었다는 말이다.
골치가 절로 아파오는 걸…
시커먼 남자.
얼굴이 시커멓다 못해 속까지 시커멓게 보이는 이 자.
그는 데몬 스코르피의 수장이자 SS등급의 환수 진 데몬 스코르피이다.
데몬 스코르피 종족이 사는 곳.
그들은 하르무가 다스리는 지역에 속한 종족이었다.
데몬 스코르피 정도는 별반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무리의 수장인 이 녀석.
진 데몬 스코르피는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셔하기로 유명한 녀석이다.
호전적인 마수들 중에서도 특히나 호전적인 성격으로 유명한 녀석.
좋게 말해서 그 정도지 심하게 그것도 아주 심하게 광적으로 전투에 미친 놈이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진 데몬 스코르피 이 녀석은 하르무의 지역 내에서도 거의 선봉대 역할을 담당하곤 했다.
그런 그가 주인의 지시를 받았다는 말인즉슨.
그때 끼어드는 자.
“아직 이야기 안 끝났나? 우리 바쁘지 않나?”
갈수록 길어지는 이야기에 시커먼 놈 옆에 서있는 남자가 입을 뗐다.
-아~ 그렇지. 너무 간만에 저 녀석을 만나서 말이야. 여기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 뭐 친우를 만난 것 쯤으로 해두지.
혀 끝으로 날카롭게 세운 자신의 손날을 살짝 핥으며 살기를 마구 내뿜는 진.
키힛-
진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
사락-
갑자기 진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모습을 감추었던 진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헬캣의 바로 코앞이었다.
딱히 말도 필요없다.
다짜고짜 공격을 해버리는 진.
까아아아앙-!!!
진의 손날과 헬캣의 발톱이 정확하게 허공에서 교차했다.
-여전하네. 인간계에 계속 머물러 있다길래 반병신이 된 건 줄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니네. 킬킬.
-나도 네가 그렇게 된 줄 알았는데.
-이거 미안한걸? 너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해서. 낄낄낄.
-지금부터 그렇게 될 거니까 내 기대는 충분히 충족될 것 같으니 그런 말은 말아줘.
헬캣의 대답에 진이 슬쩍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역시 즐거운 녀석이야.
자신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녀석 중 한 명.
이 둘의 인연은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함께 환수계에 있었을 때.
그 때는 심심할 틈이 없었다.
그럴 때면 헬캣 이 녀석을 찾아가면 되었으니 말이다.
귀찮아하면서도 어찌나 발끈을 잘하는지 심심할 틈이 없을 정도로 둘은 싸우곤 했다.
한 마디로 자신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리액션이 너무 좋다는 말이지.
지금처럼.
-좀더 보여봐봐~
끼릭-
갑자기 손날을 격하게 비트는 진.
순간 헬캣의 몸이 그 자리에서 팽그르르 돌기 시작했다.
거기에 발맞춰 진의 몸 또한 팽이처럼 격한 회전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둘이 일으키는 바람은 순식간에 모두를 덮어갔다.
흙먼지가 마구 휘날린다.
허나 둘이 뿜어내는 기운은 오롯이 둘에게 집중이 되어 있었다.
수십여 바퀴를 연달아 회전한 둘.
탁-
갑자기 둘의 회전이 멈췄다.
-…이 개놈이.
도대체 몇 바퀴를 돈 건지 모르겠다.
헬캣은 정신도 제대로 못 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이제 막 시작한 싸움.
둘은 회전이 멈추자마자 다시 후속편을 찍는 듯 연이어 손속을 교환해 갔다.
순수한 힘과 힘의 대결.
그 어떤 잔기술도 없는 순수하게 자신의 힘 만으로 전투를 벌이는 그들이었다.
간간이 튀어 나오는 진의 웃음소리.
진심으로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웃음소리다.
****
침묵.
누구 하나 소리를 내지 않는다.
들리는 건 오로지 둘의 격렬한 전투음.
“그만. 진.”
나지막이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
진의 옆에 서있던 남자가 단어 몇 마디로 달아오른 전장을 식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