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writer who lives again RAW novel - chapter 105
지훈이 노트북을 열어 피피티를 켰다.
먼저 첫 번째 챕터.
<다시 사는 날>의 표지와 두 칸으로 나누어진 표.
“<다시 사는 날>, 에세이죠. 이 표의 왼쪽은 <다시 사는 날>을 내면 좋을… 그러니까 에세이로 유명한 출판사들이에요. 오른쪽은 <다시 사는 날>을 내겠다고 연락이 온 곳이고요.”
“겹치는 곳은 없어?”
“있죠. 보세요.”
지훈이 마우스를 한 번 클릭했다.
그러자 몇 개의 출판사의 이름이 파란색으로 변했다.
“이 출판사들이 교집합이에요. 지금 두 곳이 있죠.”
마우스를 또 한 번 클릭.
두 출판사의 장단점이 주욱 나열되어 있었다.
“읽어 보시고 선택하시면 될 것 같아요.”
“준비 많이 했네. 일단 알았어. 너 가고 내가 생각 좀 해 볼게.”
“좋아요. 그럼 다음을 좀 볼게요.”
<내외인>과 <등>의 경우도 비슷하게 진행됐다.
언제 이렇게 연락들이 와 있었지?
하나하나 정리를 해 놓은 송지훈도 대단하다.
“이번에는 스릴러 전문 출판사예요.”
수십 개의 출판사 리스트가 쫙 떴다.
“미국은 스릴러가 인기가 좋아서 출판사도 굉장히 많아요. 사실 어딜 선택해야 할지 전 잘 모르겠어요.”
“일단 1위부터 10위까지만 보자. 그 아래는 웬만하면 보지 말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 출판사 별 대표적인 특징 같은 거 좀 정리해 뒀으니 한번 보세요.”
나는 피피티를 휙휙 넘겼다.
챕터가 끝도 없다.
나라가 커서 그런지 출판사들도 참 각양각색이다.
돈이 많은 출판사.
신인을 잘 밀어주는 출판사.
책에 삽화를 싣는 출판사.
미국 남부에만 책을 납품하는 출판사.
반대로 북부에만 책을 납품하는 출판사.
매월 잘 나가는 작가의 순위를 매기는 출판사.
SNS 홍보를 잘하는 출판사.
공모전으로 유명한 출판… 사?
공모전?
“지훈아, 이 ‘공모전’이라는 게 뭐야?”
지훈이 피피티를 슥 보더니 말했다.
“아, 여기 좀 웃긴 출판사예요. ‘누들’이라는 곳인데, 장르 판에서는 십오 위 정도 되는?”
십오 위라.
그리 큰 곳은 아니지만… 미국 시장의 규모를 생각하면 작다고 할 수도 없지.
그나저나.
“뭐가 웃기다는 거야?”
“공모전으로만 운영되는 출판사거든요. 한 해에 두 번 공모전을 열고 장르 당 다섯 명 정도의 당선인을 내요. 그 사람들의 책만 내는 거죠. ‘누들’에서 책을 내려면 무조건 공모전을 통과해야 해요. 기성이고 뭐고 얄짤 없이. 무기명 원고라서 실력으로 정면 승부 해야 하고요. 그래서 특이한 신인들이 많이 등장해요. 공포물 쓰는 할머니라든가, 로맨스 판타지 쓰는 트럭 운전기사라든가.”
…그래?
이 ‘누들’의 운영 방식, 마음에 들었다.
공모전이란 일종의 기회의 평등.
이름값 없이 그 평등한 기회를 통과하면… ‘장르 소설을 쓰는 이상’에게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겠지.
하지만 지훈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비추예요. 대중적으로 잘 팔린다기보단 코어 팬층이 좋은 출판사거든요. 훨씬 더 큰 데로 갈 수 있으니, 그냥 이런 곳이 있다는 것만 알아 두시고….”
“공모전 일정은?”
“네?”
“공모전 일정은 어떻게 되는데?”
“에… 잠시만요.”
지훈은 휴대폰으로 뭔갈 검색했다.
“3월 초네요.”
앞으로 약 두 달.
충분하다.
집필에 한 달, 번역에 한 달.
나는 씨익 미소지었다.
“왜 웃어요? 형… 설마?”
“누들에 <그 집>을 보내야겠어.”
“엑? 왜요? 더 좋은 곳이 열네 개나 있는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가 최선이야. 이름값을 지우려면 확실하게 지워야지.”
“하지만… 그럼 손 볼 일이 많아져요. 형은 이제 이름이 알려진 기성 작가니, 모든 일이 비밀리에 진행되어야 할 거고… 또….”
지훈이 조심스레 말했다.
“…번역을 정말 잘해야 해요. 공모전이잖아요.”
아차 싶었다.
‘공모전’에 원고를 낸다는 건… 영어가 원어민인 작가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그게 ‘누들’을 포기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지훈아, 번역가부터 구하자.”
101화
유로문학상 신인상 수상 이후.
전 세계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인터뷰만이면 다행이게?
신작 요청, 토론의 패널 요청, 웬 사진집을 내자는 출판사까지.
별의별 연락을 다 받았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모두 거절했다.
문제는 언론이 멋대로 내게 별명을 붙였다는 거다.
‘신비주의 작가 이상’.
혹은 ‘괴짜 작가 이상’.
괴짜라니.
너무한 것 아닌가.
전생의 내 별명도 ‘광인’이었는데….
어째 좀 비슷해져 가는 기분이다.
더 이해가 안 가는 건 사람들의 반응이다.
내게 붙은 ‘괴짜’라는 말에 그들은 더 열광했다.
대중의 취향이란 참 알 수가 없다.
어쨌건 나는 묵묵하게 <그 집>을 썼다.
한 달간, 어두운 오피스텔에서, 혼자 남아.
물론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다시 사는 일>과 <내외인>, <등>….
모두 각각 다른 미국의 출판사와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리고 또 하나.
<내외인>이 유로문학상을 수상한 후.
독일의 수많은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들의 생각이야 뻔했다.
<내외인>의 이름값이 탈프랑스 급이 되었으니, 프랑스와 자존심 싸움을 할 필요도 없다는 것.
지훈은 괘씸해서 못 견디려 했다.
― 이것들이 진짜… 무슨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것도 아니고… 나 몰라라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책을 내 쟤?
좀 더럽고 치사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을 안 낼 순 없는 일.
독일 쪽 계약 건은 지훈에게 맡겼다.
지훈은 지금까지의 설움을 갚듯, 수많은 계약 조항들을 하나하나 따졌다.
녀석은 잘 하지 않던 흥정까지 열심히 하더니… 결국 큰 계약금을 받고 뮌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
하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
바로 <그 집>의 번역자 문제.
다행히 금홍이 초벌 번역을 맡아 주기로 했다.
며칠 전에 온 금홍의 톡.
― 해 볼게요. 책임지고.
담백하고, 명료한 답이었다.
이걸로 번역의 첫 고비는 넘긴 셈.
이제 원어민 번역자만 구하면 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공모전 투고의 기본은 무기명이다.
아무에게나 번역을 맡겼다가… 원고가 새어나가거나, 내 이름이 밝혀진다면?
공든 탑이 보기 좋게 무너지겠지.
나는 지훈에게 이렇게 말해 놨다.
― 번역자를 좀 찾아봐. 미국에 있는 사람은 불안하니까, 한국에 있으면서 수준급의 문학 번역이 가능하고, 충분히 소통 가능하고 믿을 수 있는… 미국인으로. 아, 그리고 비밀리에 찾아야 된다? 내가 공모전에 출품을 한다는 게 알려지면 안 되니까.
내 말도 안 되는 제안에, 지훈은 이렇게 대답했다.
― …유니콘 찾는 게 빠를 것 같은데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훈이나 나나 알아보긴 했으나…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니.
어쨌건!
나는 오늘 한 달만에 오피스텔을 떠난다.
<그 집>의 초고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 * *
오랜만에 돌아온 집.
극성스러운 기자들도 웬만큼 사라진 것 같다.
‘신비주의 괴짜 이상’의 인터뷰를 포기했겠지.
언론의 입방아도 도움이 될 때가 있다니까.
“오피스텔은 완전히 안녕이에요?”
지훈은 짐 푸는 걸 도와주며 물었다.
“한 달이 계약 기간이었으니까. 쓸 것도 다 썼고. 맞아, 번역자 건은 아직도?”
“네. 아무래도 미국 쪽에서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곤란한데.”
“공모전을 포기하는 건?”
지훈이 슬쩍 물었다.
사실 공모전에 대해 지훈은 아직도 좀 회의적이다.
“그렇잖아요. 이름의 후광을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이런 것도 쓸 수 있다! 이렇게 당당하게 나가 보는 것도 좋잖아요?”
“그렇긴 한데, 내가 날 시험해 보고 싶은 것도 있어서.”
“엥? 뭘요?”
“<그 집>이 정말 뛰어난 소설인지 사실 감이 잘 안 와.”
지훈이 심각한 얼굴을 했다.
“형, 왜 그래요? 너무 어두운 데서 글만 쓰다가 우울증 온 거 아니에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난 장르 소설 써 본 적이 없잖아. <그 집>을 준비하면서 많이 읽기야 했지만… 어쨌건 첫 작품이니까.”
“아하.”
“이게 자연스러운 거 아냐? 내가 썼다는 이유만으로 잘 될 거라 장담할 순 없지.”
“그럼 형, ‘누들 공모전’에서 떨어지면요?”
“안 낼 거야. <그 집>.”
“네?! 아, 왜….”
지훈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내 마음을 이해했겠지.
누들 공모전에서 떨어진다는 건….
내 장르적 재능이 크지 않다는 뜻이다.
<그 집>이 내 이름값만 못한 작품이란 뜻이고.
작가로서 <그 집>은 물론 소중하다. 사랑스럽지.
하지만 ‘이상’의 후광을 등에 업게 해 주진 않을 거다.
“그래요. 형 고집을 누가 이겨요. 전 죽도록 번역자나 알아봐야겠어요.”
“아, 그리고 송지훈.”
“왜요?”
“<그 집>의 초고를 가지고 회의를 해야 해.”
“아, 그래요. 초고 주시면 읽을게요.”
“우리만이 아니야.”
“네?”
“‘팀 이상’이 다시 모일 때가 됐어.”
그러니까, 금홍이도 말이다.
* * *
독일, 베를린. 뮌 출판사 해외문학팀.
오늘은 이번 달 판매 지표를 확인하는 날.
다섯 명의 팀장이 회의실에 모였다.
도미닉 팀장은 어깨를 쫙 펴고 회의실로 입성했다.
기세등등한 모습.
최근 그의 실적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회의는 시작됐다.
“확실히 유로문학상의 영향이 큽니다. 수상작들의 판매율이 하나같이 급등했어요.”
“수상 작가의 책들을 세트로 판매했던 것도 꽤 좋은 전략 아니었습니까?”
“네. 썩 인기가 없는 동유럽 문학도 골고루 판매했으니 성공적이라 할 수 있죠.”
“이례적으로 한스 모나한의 시집도 많이 팔렸네요.”
“신문 광고가 들어가서 그렇겠죠.”
“SNS 광고를 한 요한 코치의 소설은… 반응이 그닥이고요.”
“SNS는 그리 효과가 좋지 못하니까요. SNS는 책이 아니라 행사 홍보 중심으로 운영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
도미닉 팀장은 속으로 생각했다.
‘언젯적 신문 광고람… 독일 출판 시장은 너무 보수적이야. 산업적인 혁신이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
물론 그런 걸 논하자고 모인 자리는 아니었다.
다만.
이번 유로문학상 일로 뮌의 자세가 바뀔 순 있을 것.
“<등>의 판매 지표가 눈에 띄는군요.”
도미닉 팀장이 한마디했다.
아주 잠깐 정적이 흘렀다.
한 팀장이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도미닉 팀장님의 혜안이 옳았습니다. 그의 작품을 내길 잘했어요.”
“결국 <내외인>도 내게 됐고 말이죠. 비싼 계약금을 치렀지만.”
도미닉 팀장이 한 번 더 꼬집어 말했다.
팀장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우리라고 이상이 유로문학상을 받을 줄 알았나.
딱 그렇게 말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렇죠.”
한 팀장이 겨우 대답했다.
도미닉 팀장은 웃으며 말했다.
“판매 지표도 상당히 좋고요.”
“그거야… 다른 유로문학상 수상작들과 묶여서 팔렸으니까요.”
약간의 볼멘소리.
<등>의 출간 투표에서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반대표를 던진 팀장이었다.
도미닉 팀장은 생각했다.
‘뭐… 투표는 자유니 뭐라고 할 순 없지. 하지만 끝까지 치사하게 굴기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돈이야 알 바 아니에요. 경영팀이 알아서 하겠죠. 다만, 우리가 적어도 처음부터 프랑스를 의식하지 않았다면….”
그는 네 명의 팀장들을 돌아봤다.
그리고 숨을 고르더니 이렇게 말했다.
“리브레의 마리옹 편집장에게 우려 섞인 조언을 듣지 않아도 됐을 거라고요.”
깊숙한 한 방.
― 음… 독일의 시민들도 훌륭한 문학을 읽을 권리가 있어요. 그 권리를 지켜 주셨으면 좋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