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writer who lives again RAW novel - chapter 114
그렇다면 이제 누들 공모전에 보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아까 분명….
“번역에 관해 상의할 게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맞아요. 그래서 두 분을 불렀어요. 지금 한 문장을 못 옮기고 있거든요. 이 부분을 어떻게 옮기느냐에 따라… 이 소설의 주제가 결정 나죠.”
장르 문학에서 소설의 주제를 가를 문장.
말할 것도 없이 대단히 중요했다.
“어느 부분입니까?”
그는 원고를 보지도 않고 내용을 읊었다.
“마지막 챕터. 양오빠의 심문을 하는 수지. ‘대체 날 입양한 이유가 뭐야? 남자는 의외로 바로 대답했다. 부모들이야 무서웠겠지. 나 하나만 기르기엔. 그게 정답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중요한 부분이 맞네요. 하지만 글의 방향은 명확한데요. 이 가족이 가진 아이러니죠.”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값진 주제 의식입니다. 하지만 이 문장 때문에….”
그가 픽 하고 웃었다.
자신도 이런 말을 하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 집>은 누들 공모전에서 탈락할 수도 있어요.”
110화
“이 문장 때문에 <그 집>은 누들 공모전에서 탈락할 수도 있어요.”
피터 한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나는 그가 지적한 부분을 다시 읽어 보았다.
― 대체 날 입양한 이유가 뭐야? 남자는 의외로 바로 대답했다. 부모들이야 무서웠겠지. 나 하나만 기르기엔. 그게 정답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남들과 다른 성향의 아들.
그 아들이 두려워 충동적으로 입양한 딸.
그리고 그 딸이 자라나 아들을 체포한 상황.
가족 위계의 전복과 삶의 아이러니를 동시에 보여 주는 부분.
“이 부분을 왜 바꾸라는 거죠?”
“내용 자체로는 훌륭합니다. 다만, ‘누들’이란 곳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요.”
출판사 별로 선호하는 작품의 분위기가 있다.
한국 출판사도 마찬가지라, 지망생들은 자신의 작품과 통할 만한 출판사에 투고를 한다.
생각해 보면… 누들도 그런 면이 있을 수 있지.
“저는 개인적으로 누들을 좋아하진 않습니다. 남들은 누들의 취향이 독특하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캐릭터만 밀어붙이는 힙스터들 같아요. 진지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죠.”
“지루한 걸 싫어하는 모양이네요.”
“네. 이를테면 이런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 주는 주제 의식을 드러내면… ‘지루하다’며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죠. 그리고 튀는 캐릭터만 내세운 거칠기 짝이 없는 작품을 선정하는 겁니다. 그런 경우를 왕왕 봤어요.”
흠.
뽑히는 작품엔 두 종류가 있다.
첫째, 안정적이고 주제 의식이 뚜렷한 작품.
둘째, 새롭고 낯선 작품.
사실 이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작품이 제일 좋다.
피터 한의 말대로라면 누들은 이런 식일 것이다.
두 요소를 모두 갖춘 작품을 뽑느니,
두 번째 요소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을 뽑는 것.
“그래서 저는 이 문장의 수정을 권하는 바입니다. 받아들이는 건 작가님의 뜻이지만요.”
“이를 테면요?”
“삶의 아이러니보단 이 사이코패스 킬러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게 정답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라는 말보단, ‘틀린 답이었지’로 가는 겁니다.”
‘틀린 답이었지’.
즉, 수지 너를 입양해선 안 됐다는 말.
그렇게 되면 양오빠의 이기심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모든 서사가 양오빠라는 인물에 빨려들고.
“캐릭터를 끝까지 밀고 가란 뜻이군요.”
“어느 쪽이 더 낫다곤 못 합니다. 다만 누들 공모전에 내기엔 그편이 더 낫다고 말씀드리는 거죠.”
“….”
“이 소설, 좋은 소설입니다. 꼭 빛을 봤으면 해요.”
그의 연갈색 눈이 말하고 있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조언이라는 걸.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 번역 한 줄에, <그 집>의 주제가 달라진다.
내가 닦아 놓은 길이냐,
공모전의 취향에 맞춘 길이냐.
잠시 후.
나는 피터 한에게 말했다.
“이대로 가겠습니다.”
“수정을 안 하시겠다는 겁니까?”
“네.”
“샘….”
금홍이 걱정된다는 듯 날 불렀다.
난 금홍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대로 한다면, 당선이 될 확률은 높아지겠죠. 하지만 글의 핵심을 바꾸고 싶진 않아요.”
“….”
“공모전에 참여하는 건, 제 글을 미국 땅에 효과적으로 알리는 것이지… 수상 자체가 아니잖아요.”
“떨어질 수도 있을 텐데요?”
“제겐 다음 작품이 있을 테니까요. 그게 스릴러건 아니건.”
급할 것 없다.
누들 공모전에 투고하려 했던 이유.
내 이름의 후광 없이 미국 시장과 정면 승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수상을 위해 <그 집>의 중심 문장을 바꾸는 것?
그것이야말로 본말전도다.
중요한 건 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내 글’이니까.
침묵이 흘렀다.
피터 한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양손으로 무릎을 탁 내리쳤다.
“좋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글이야 작가님 마음이죠.”
뒤끝 없는 태도였다.
그는 원고를 그러모아 자신의 책상으로 갔다.
“마지막 문장을 번역하는 대로 메일로 보내 드리죠. 그럼 제 역할은 끝입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나는 그에게 가서 한 손을 내밀었다.
그는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런 건 잘 하지 않는데….”
그는 내 손을 꽉 부여잡았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good luck(행운을).”
* * *
오늘은 <그 집>을 누들에 보내기로 한 날.
‘팀 이상’이 간만에 우리 집에 모였다.
피터 한은 며칠 전 <그 집>의 번역본을 보내 줬다.
금홍이 그간 최종 확인을 했고.
“이제 진짜 보낼게요.”
금홍은 양식에 맞춰 메일을 작성한 후, 내게 물었다.
“연락처는요? 누구 걸로 할까요?”
“모집 요강에 당선 결과 메일로 알려 준다고 했죠?”
“네.”
“그럼 그냥 다 제 걸로 해 주세요. 어차피 메일 주소는 지훈이도 같이 보니까.”
“그리고… 무기명 심사이긴 한데, 그래도 다른 필명을 쓰실래요?”
“아뇨. 이상으로 해 주세요.”
당선이 되면 내가 이상임을 숨일 이유가 없고, 당선이 안 되면 누가 썼는지도 모르게 폐기될 원고다.
필명을 더 지을 이유가 없지.
“어휴… 고생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네요.”
다들 고생이 많았지만, 지훈이 애를 많이 썼다.
번역자 구하는 일로 속앓이를 했으니.
“고생 많았다. 원고 보내면 다 같이 맛있는 거나 먹자.”
“좋아요, 형.”
“이제 보낼게요?”
금홍이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보내세요.”
클릭―
메일은 순식간에 날아갔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이제 끝이네….”
지훈이 중얼거렸다.
금홍도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힘 좀 썼네요, ‘팀 이상’.”
나는 그렇게 말하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짝!
두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이 손바닥을 부딪쳤다.
이 두 사람이 아니었으면… 힘들었겠지.
‘누들’의 공모전을 알아 와 준 것도, 번역자를 찾아 준 것도.
글은 누가 뭐래도 혼자 하는 작업이다.
본의 아니게 고집스러워지기도 하지.
하지만 집필 외의 ‘작가의 활동’은 다르다.
이렇듯 많은 도움이 필요하니까.
전생과 이번 생의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날 도와줄 이들이 둘이나 있단 거겠지.
* * *
독일, D― TV 방송국 회의실.
회의실엔 생소한 조합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D― TV의 교양 간판 프로 ‘철학 스터디’의 PD,
다큐멘터리 전문 프로 ‘인간과 세계’의 PD,
그리고 철학자 틸 버켈이었다.
이 세 사람의 연결고리는 이랬다.
얼마 전 방영했던 ‘철학 스터디’.
틸 버켈과 이상의 대담은 독일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대담의 내용을 떠나서….
일명 ‘모두까기 인형’으로 통했던 틸 버켈.
그가 이상에게 보인 태도 때문이었다.
예술에 대한 이상의 관점은 명확했다.
예술이란 무용함의 미학이라는 것.
그리고 틸 버켈은 그의 주장을 타파하기보단… 궁금해했다.
한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토론 시간을 넘기기까지.
그리고 더 놀라운 건.
틸 버켈이 방송 후 ‘철학 스터디’ PD에게 한 말이었다.
― 이상 작가와 대담을 더 이어 가고 싶은데…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철학 스터디’의 스케줄은 꽉 차 있었다.
게다가 상대는 성격 급한 틸 버켈.
방송 TO가 나는 걸 기다릴 바에야… 이 폭탄 아닌 폭탄을 다른 프로에 넘기기로 한 거다.
그리고 그 대상이 된 건 다큐 ‘인간과 세계’.
그 팀은 마침 다음 달 방송이 하나 비어 있었다.
틸 버켈과 이상의 예술론 대담은 이미 화제였다.
<등>의 인기가 <내외인>을 넘어설 정도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다큐를 만들지 않겠냐는 제안.
‘인간과 세계’ PD는 바로 받아들였다.
그 역시 ‘철학 스터디’를 흥미롭게 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정해야 할 게 산더미.
이상에게 연락을 하기 전에 모두 결정해야 했다.
“자, 저는 이렇게 연결을 해 드렸으니, 먼저 가 보겠습니다. 저희 쪽 작가와도 미팅이 있어서….”
‘철학 스터디’ PD는 슬쩍 발을 뺐다.
틸 버켈과 회의를 하는 건 좀 피곤한 일이기 때문.
“에이, 그래도 같이 상의도 좀 하고….”
‘인간과 세계’ PD가 그의 탈주를 막아 보려 했지만.
“어서 시작합시다. 시간이 없는데.”
틸 버켈은 이미 경주마처럼 흥분해 있었다.
어쨌건 그렇게 남은 두 사람.
어색한 순간도 잠시.
‘인간과 세계’ PD는 프로였다.
그는 진지한 태도로 다큐의 구성을 설명했다.
“저희 프로는 철학자를 다루거나 작가를 다루는 데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함께 다뤄 본 적은 아직 없어서….”
“우리 두 사람의 연결 고리는, ‘예술론’으로 하지요.”
대화의 중간 과정을 다 빼먹는 대화법.
상대가 머리가 좋지 않으면 알아먹기도 쉽지 않다.
PD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그 주제론으로 가는 건 저도 찬성입니다. 대략적인 방식은, ‘철학 스터디’에서 못다 한 대담을 이어 나가는 거로 하죠. 그 대담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높으니까요.”
“이번에는 온라인으로 할 순 없어요. 감질나서 어디 해 먹겠나. 제가 가죠.”
가겠다고?
“한국을요?”
“마침 한국에서 좋은 행사가 있던데.”
틸 버켈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아니, 그래서 한국에 가겠다는 거야? 대체 왜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거지?’
PD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면서도, 틸 버켈의 화법에 말려들 수밖에 없었다.
“보십시오.”
틸 버켈이 보여 준 휴대폰 화면.
바로 <등>을 주제로 한 미술가협회의 전시회였다.
“곧 시작하려 하던데.”
“여기를 가시려고요?”
PD의 머릿속에 스치는 건 두 가지.
첫째, 다큐의 구성.
대담으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다큐.
전시회의 내용을 섞으면 보다 다채로워질 수 있다.
둘째… 돈.
제작진이 멀고 먼 한국으로 가느니,
이상을 독일에 데려오는 게 훨씬 저렴하게 먹힐 텐데.
PD가 이상과 현실의 갈등에 빠져 있을 때였다.
“이 전시회는 이상의 예술론을 한국의 미술가들이 재해석하는 장입니다.”
“…흠.”
“이 전시회장 안에서 대담을 하는 겁니다. 예술철학에 대한 깊고 깊은 대담 말입니다.”
틸 버켈의 눈이 빛났다.
그의 눈만 보면 이미 한국으로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독일에도 전시회장은 많습니다. 이상 작가를 베를린으로 모시는 건 어떻습니까?”
PD가 슬쩍 물었다.
“모자란 제작비는 내가 내겠습니다.”
“아, 아니. 제작비 때문이 아닙니다.”
맞았다.
아니란 말은 훅 들어오는 틸의 화법 놀란 나머지 튀어나온 말일 뿐.
독일은 철학자들에 대한 대우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