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writer who lives again RAW novel - chapter 174
조나단 감독과의 편집 회의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하지만… 해 보자.
이런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다.
“사흘 후 저녁, 세 시간 정도라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보죠.”
여차하면 북콘서트가 끝나고, 다시 조나단 감독에게 가는 수밖에.
“약속하신 거죠?”
나는 마지막 확인차 금홍에게 물었다.
“우리, 다른 스케줄 없죠?”
“음… 네. 없어요.”
나는 크리스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크리스는 휴대폰을 들어 올리더니 씩 웃었다.
그의 커다란 손에 들린 휴대폰.
크리스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뭔가를 썼다.
우웅―
내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엉겁결에 휴대폰을 확인했는데, SNS 알림이 하나 떠 있었다.
“설마….”
나는 중얼거리며 SNS를 확인했다.
알림을 울린 건 방금 크리스가 작성한 누들의 피드.
― <그 집>의 작가 ‘이상’! 미국에 오다!
그 아래엔 사흘 후에 있을 북콘서트의 일정이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홍보 끝.”
그는 양손을 들어 모든 일이 끝났음을 알렸다.
놀라운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출판사’의 일인데, 이렇게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다니.
‘누들’이란 출판사가 얼마나 유연한지 새삼 느껴졌다.
영업에 성공한 크리스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그제야 쇼핑백을 내게 내밀었다.
그 안에는 온갖 선물이 가득했다.
“이게 뭐예요?”
“제가 작가님의 열성적인 팬이라는 거, 그냥 한 말이 아니거든요. 존경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거예요. 먼저 드리면 북콘서트 해 달라는 뇌물처럼 보일까 봐.”
내가 느낀 첫인상처럼, 그는 신중하고 생각이 깊은 타입이었다.
나는 마다하지 않고 받기로 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저희 팀과 나눠 쓸게요. 저 때문에 먼 길을 오느라 고생이 많았거든요.”
“그럼요. 뜻대로 하세요.”
그는 상관없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이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생색을 내는 건 아닙니다만… <그 집> 단행본을 조나단 감독님께 보낸 건 저였어요. 누들이 보낸 척을 했지만, 저의 독단적인 행동이었죠.”
“…네?”
나는 깜짝 놀랐다.
조나단 감독이 <그 집>을 읽게 된 건, 누들의 홍보 덕분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눈앞의 이 한 사람의 행동이었다고?
“<그 집>을 읽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거든요. 보시다시피, 저는 흑인이잖아요?”
그는 자신의 손등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래, 그는 피부는 명백하게 어두웠다.
“흑인에 관한 문학은 수없이 많아요. 하지만 대부분 정치적 메시지를 주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죠. 차별을 하지 말아야 한다. 뭐 이런… 그런데 작가님 작품은 달랐어요. 흑인 한 명 나오지 않는데… 제 삶을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비단 흑인들만 이런 감정을 갖진 않을 거예요. 아마 자신이 미국 사회의 하위 계층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기분을 느꼈겠죠. 그러니까 <그 집>은 저와 같은 독자들에겐….”
“….”
“정치적이면서도 예술적이죠. 그런 ‘인생 소설’을 만난 거예요. 지구 반대편의 작가에게서.”
그는 조곤조곤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설사 금홍의 번역을 통했다 하더라도… 내게 따뜻하게 스며들어 왔다.
지구 반대편의 작가라….
내게는 크리스가 지구 반대편의 독자겠지.
전생이었다면 꿈도 못 꿨을 만남이다.
일본조차도 벗어나기 힘들었던 걸 생각해 보면….
크리스와 나는 좀 더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그 집>에 관해 궁금한 게 많은 듯했다.
대체 몇 번을 읽었는지 감도 잡히지 않을, 깊고 심오하면서도 학술적인 질문들.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하나씩 하다 보니,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시애틀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호텔에서 저물어갔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이런 독자는 미국을 다 뒤져도 만나기 힘들 테니.
* * *
다음 날, 오전.
미국에 온 지도 하루가 지났다.
우리 셋은 아침 일찍 조식을 먹고 나갈 준비를 했다.
약속대로라면… 곧 조나단 감독이 보낸 벤이 올 것이다.
그 벤을 타고 그의 사무실로 가게 되겠지.
“형, 나가시죠? 시간 다 된 것 같은데.”
세미정장을 차려입은 지훈이 말했다.
“뭘 그렇게 차려입었어?”
“그래도 비지니슨데, 매니저라면 이 정도는 해 줘야죠.”
“…그런데 왜 내 옷은 이런 걸 가져왔어?”
사실 떠나기 전까지 원고 때문에 워낙 바빠서, 내 짐은 지훈이 챙겼다.
남자 짐이야 뻔해서 별문제는 없는데… 옷이 하나같이 너무 ‘무드’가 살아 있다.
베이지색 셔츠에 슬랙스, 단추 없는 가을 코트.
뭐 이런 ‘나 작가요’ 하는 듯한 옷들.
그런데 저는 저런 딱 떨어지는 정장을 입다니.
하지만 정작 지훈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
“작가는 꾸안꾸를 해 줘야 작가스럽죠. 각 잡고 정장 입고 가면 그것도 촌스러워요.”
“꾸안꾸가 뭔데?”
“꾸민 듯 안 꾸민 듯 꾸민 거요. 형님 요즘 유행을 모르시네.”
“너 많이 알아라, 유행. 됐으니까 얼른 가자.”
옷이 이것뿐인데 별수 있나.
그렇게 방에서 나갔는데, 금홍이 기다리고 있다.
검은 정장 투피스를 입고.
“준비 끝났죠? 어서 가요.”
말끔하게 포니테일까지 한 금홍은… 완벽한 비즈니스우먼이었다.
뭐야, 이러면 나만 철없어 보이는 거 아냐?
나는 지훈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이걸 어떻게 할 거냐는 원망을 담아.
그러자 지훈은 괜찮다는 듯 내 등을 툭툭 밀었다.
“아유, 절 믿으시라니까. 형 패션 하나도 모르잖아요.”
지훈은 얼른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뭐… 패션 하나도 모르는 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전생에도 단벌 신사에 봉두난발 신세였는데.
다시 태어난다고 없던 패션 감각이 생기는 건 아니지.
억울하지만 믿고 가는 수밖에.
호텔 밖을 나서니 정말 벤이 하나 대기하고 있었다.
차에서 낯익은 사람이 한 명 내렸다.
예전에 도쿄에서 조나단을 만났을 때, 조나단이 데리고 온 직원이었다.
그와 가볍게 인사를 하고 벤을 탔다.
“조나단 감독의 사무실로 가는 거죠?”
내 물음에 그가 킥킥댔다.
“아니요. 여러분들을 다른 곳으로 납치하는 거예요.”
…납치?
“우린 동양인들이라 힘이 없어서 값을 별로 못 받을 텐데.”
내 농담에 그가 낄낄거렸다.
“멋진 말이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조나단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이니까.”
“…조나단 감독의 집이요?”
지훈이 놀라 물었다.
그러자 그가 눈썹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기대해도 좋아요. 감독님 집, 꽤 좋거든요. 꽤 가야 하니까 좀 쉬어 두세요.”
“그래요. 그럼 운전 잘 부탁할게요.”
그는 걱정 말라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지훈이 팔꿈치로 날 툭 쳤다.
“형.”
“응?”
“아마 엄청 부촌으로 갈 것 같은데요.”
“…그렇겠지.”
“그냥 형 정장 입힐걸.”
“…야.”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지훈을 봤다.
그러자 녀석은 장난이라는 듯 작게 웃었다.
금홍이 말했다.
“꽤 간다는 걸 보니 부촌이 맞긴 한 것 같아요. 미국은 도심에서 떨어질수록 집이 크고 비싸거든요.”
물론 나도 사람이기에, 미국 톱클래스 감독의 재력이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무실이면 충분한데.”
나는 진심을 담아 중얼거렸다.
일하는 장소는, 부담이 없을수록 좋았다.
그런 의미에서 집 초대는… 굉장히 부담스러웠고.
벤은 한참을 달렸다.
낮은 산등성이가 보이고, 잘 닦인 도로를 올라갔다.
양옆으로 영화에서나 봤던 저택들이 줄지어 있었다.
사람 하나 없이 간간이 차만 다니는 풍경.
끼익― 하고 벤이 멈췄다.
철제 대문 앞이었다.
하지만 아직 내릴 때는 아닌 것 같았다.
운전을 한 직원이 경비와 무슨 얘길 나눴다.
철컹, 하고 철제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대박.”
지훈이 중얼거렸다.
엄청나게 커다란 정원과 수영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앞을 벤은 천천히 지나갔고, 이윽고 현관 앞에 선 조나단 감독이 보였다.
그는 벤을 보자마자 큰 보폭으로 다가왔다.
챙이 곧은 캡모자, 편안한 셔츠 차림.
내가 입고 온 옷들과 큰 위화감은 없었다.
“제가 말했죠?”
지훈이 씩 웃으며 어깨를 폈다.
아무래도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 같긴 하지만.
“…그래.”
인정을 안 할 수가 없다니까.
아무튼 우리는 벤에서 내렸다.
그리고 조나단 감독과 뜨거운 악수와 포옹을 나눴다.
그는 날 보고 굉장히 좋아했다.
감정을 숨기거나 돌려 말하는 법 따윈 모르는 사람이었다.
“현관 앞에서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새 한 마리 날아갈 때마다 움찔움찔했다고요. 다들 들어와요. 오, 그런데 당신은 처음 보네요. 누구시죠?”
조나단 감독은 지훈을 보고 말했다.
맞다. 도쿄에서 금홍을 봤지만, 지훈은 초면이지.
“제 매니저예요.”
“역시 대작가는 다르군요. 매니저라니. 전 영화를 세 개를 찍고 나서야 한 명 겨우 고용했는데요.”
하고 또 호탕하게 웃었다.
할 말이 없었다.
난 데뷔하자마자 이 두 사람을 고용했으니까.
“어쨌든 들어오시죠. 제 성에.”
그는 그렇게 말하며 저택의 현관문을 열었다.
173회
“어쨌든 들어오시죠. 제 성에.”
조나단 감독은 그렇게 말하며 저택의 현관문을 열었다.
당연한 일일 테지만, 그의 집은 굉장히 좋았다.
단순히 재력이 좋다기보단… 집안 여기저기에 그의 취향이 한껏 반영되어 있었다.
거실은 영화 관련 전시품들과 기념품들이 잔뜩이었고, 그의 영화 포스터가 화려한 액자에 끼워져 있었다.
또한, 금인지 은인지 아니면 다이아몬드인지.
거실 한편엔 온갖 장신구가 진열되어 있었다.
마치 힙합으로 성공한 흑인 래퍼처럼 말이다.
조나단 감독은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었다.
둠둠, 하는 비트와 함께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거지.”
지훈이 비트를 듣고 좋아라했다.
하긴 저번 ‘팀 이상’ 파티를 할 때, 녀석은 음악 결정권을 피터 한에게 빼앗겼다.
애써 준비한 힙합 대신 클래식을 들어야 했지.
“맥주 마실래요? 아니면 커피?”
조나단이 소파를 가리키며 물었다.
“커피로 할게요. 일을 해야 하니까요.”
“그래요. 내가 내려 줄게요.”
그는 직접 주방으로 갔다.
우리는 소파에 앉아서 집을 둘러보았다.
…정말이지 좋은 집이었다.
한 번쯤은 살아 보고 싶은.
집이란 등 누일 공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견물생심일까.
언젠간 이런 곳에서 살아 보고 싶었다.
잠시 후, 조나단 감독이 커피를 내려 왔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일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상 편집은 전혀 하지 않은 상태인가요?”
내 질문에 조나단 감독이 손을 내저었다.
“그럴 리가요. 최소한의 것은 해 놨죠. 다만….”
다만?
“상의하고 싶은 점이 있어서 몇 군데 남겨 두긴 했어요. 물론 감독으로서 저 나름의 답을 내긴 했지만, 그래도 작가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요.”
말인 즉슨.
상의하고 싶은 ‘특정한’ 부분이 있다는 거군.
“그럼 회의 시간은 얼마나 예상하시나요?”
“음… 아마 넉넉잡아도 내일 안으로는 끝날 것 같군요. 우리 둘이 싸우지만 않는다면 말이에요.”
조나단 감독이 양 주먹을 쥐고 권투 흉내를 냈다.
편집에 들어가기 전, 우리의 긴장을 풀어 주려는 듯.
나는 그의 애교 아닌 애교에 웃음이 나왔다.
“즐겁게 하자구요, 긴장할 필요 전혀 없으니까.”
그리고 내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좋아요. 하이파이브.”
나는 그의 커다란 손에 내 손바닥을 맞부딪쳤다.
“사실 사흘 뒤에 개인적인 일정이 잡혀 걱정을 좀 했거든요.”
“개인적인 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