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writer who lives again RAW novel - chapter 48
지훈이 몇 개의 사진을 동시에 띄운다.
그것은… 한국 언론의 기사들이었다.
<한국 문단의 풍운아, 일본 독자들을 사로잡다>
<이상의 에세이, 일본의 베스트셀러로?>
<한국 문단은 언제까지 이상의 성공을 외면할 것인가>
<이상 붐, 한국으로 역수입?>
“넌 정말 이 시대의 인재다, 송지훈.”
“크흠… 형, 이렇게 일 잘하는 동생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죠.”
“부탁?”
“일주일 후에 논문 발표회 있잖아요. 같이 좀 가주시면 안 돼요?”
“아, 너 예비발표지?”
안 될 건 없다.
송지훈은 대학원 아웃사이더.
같은 아웃사이더인 내가 가줘야지.
“그래. 가줄게.”
“정말요? 아싸!”
“안 가줄 줄 알았어?”
“아니, 이현강 교수도 올 테니까요. 오희라 선배가 이번에 본발표를 하거든요. 신경 쓰이시면 안 오셔도 되고요.”
“됐어. 오건말건 상관없어.”
이현강이야 당연히 오겠지.
그런데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것보다, 오희라가 논문을 썼다고?
그게 더 놀랄 일이군.
***
집으로 돌아온 후.
간단한 운동 후 샤워를 했다.
고민이 많아서 그런지, 머리가 개운하지 않다.
현관에서 들고 온 택배를 다시 자세히 살폈다.
하나는 일본에서 온 국제 택배.
“이게 이제야 왔네.”
그 안에 들어있는 건 일본판 <다시 사는 일>이었다.
서른 권쯤 보내줬군.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예뻤다.
앞면은 부드러운 파스텔 블루.
뒤쪽은 같은 채도의 먹색이었다.
표지의 글자는 모두 흰색.
마치 파도와 조약돌을 보듯 마음이 평안해지는 디자인.
내가 일본에서 첫 책을 내다니…
사람 일이란 참 모를 일이다.
<다시 사는 일>을 책장 한가운데에 꽂아놓았다.
그리고 다음 택배.
신라문학에서 온 것이었다.
…혹시?
바로 포장을 뜯었다.
들어있는 것은 역시나.
조인창 교수의 <위대한 문학에 대하여>
조인창 교수의 유작이 세상에 나왔다.
물론, 이미 읽은 원고였다.
하지만 침대에서 한 번 더 그 내용을 훑어보았다.
장편 소설에 대한 답답함 때문이었을지도.
조인창 교수가 살아있었다면, 분명 물었을 테니까.
“자아… 전 어떻게 할까요, 교수님…”
그렇게 중얼거리며 책장을 넘겼다.
“…문장 좋네.”
한 장 한 장,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을 무렵.
나는 한 문장 앞에서 멈칫했다.
-문학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창자를 파보이는 일이다.
작가 자신조차 몰랐던 바로 그 내면을 말이다.
그러므로 작가란 반드시 해체되어야 하는 존재다.
그것이 겁이 난다면 소설을 쓸 수 없다.
특히나 삶이 서사를 여실히 보여줘야 하는 장편 소설은 더더욱.
“…!”
창자를 파보이는 일.
그 문장을 보는 순간이었다.
불현듯, 한 장소가 떠올랐다.
그래. 내겐 내 뱃속 같은 곳이 있지 않은가.
나는 급히 어디론가 문자를 보냈다.
-이상입니다. 밤늦게 죄송합니다. 혹시 내일 ‘그 방’에 가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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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 38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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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47) – 수정완료
다시 사는 천재 작가 47
부웅-
내 차가 부드럽게 연희동 언덕을 올랐다.
저 위에 익숙한 저택이 보인다.
조인창 교수, 아니 이제 조인후 감독의 집.
어젯밤.
조인후 감독은 내 갑작스러운 연락에도 흔쾌히 방문을 허락했다.
-그럼요. 그 방은 이상 작가님에겐 항상 열려 있지 않습니까. 저는 오후에 스케줄이 있어서 저녁에 들어갑니다. 시간이 맞으면 뵙지요.
지금은 오후 두 시.
만나지 못할 확률이 클 듯 싶은데.
끼익-
주차를 한 후, 차에서 내렸다.
여전히 조용하고 고즈넉한 저택이다.
벨을 누르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상 작가님?
조인후 감독의 부인이다.
“네. 맞습니다. 실례합니다.”
-실례는요. 어서 들어오세요.
삐익, 하는 소리와 함께 철컹, 하고 대문이 열린다.
정원을 가로질러 부인이 마중을 나온다.
우리는 함께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양반한테 얘기 들었어요. 편하게 있다 가세요. 마실 걸 드릴게요.”
“갑자기 들이닥친 것 같아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을요. 아버님 방은 작가님께서 물려받으셨는데요.”
부인은 정갈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백화점에서 사 온 생과일음료를 내밀었다.
아무리 그래도 빈손으로 올 수야 있나.
“어머- 이런 걸 다. 감사해요. 어서 들어가 보세요.”
우린 어느새 조인창 교수의 방 앞에 서 있었다.
부인은 주방으로 가고, 나는 혼자 남았다.
굳게 닫힌 문.
“후우….”
심호흡을 했다.
이곳에 과연 답이 있을까.
나는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훅 불어오는 책 냄새.
오래된 나무 냄새.
희미하게 남아 있는… 사람의 냄새.
천천히 걸어가서 그 방의 가운데에 섰다.
나, ‘이상’에 대한 모든 자료가 모인 이곳.
이곳이야말로 나의 창자가 또아리를 튼 곳.
즉, 나의 뱃속이 아닌가.
그 조용한 공간을 천천히 걸었다.
산처럼 쌓인 책과 책 사이를,
몇 바퀴고 몇 바퀴고.
그렇게 몇 바퀴를 도는 동안,
부인은 주스를 가져다주었고 나는 열댓 권의 책을 골랐다.
<이상 김해경 평전>
<이상의 비화>
<시대의 외인, 이상>
<일제강점기의 이방인들> 등등.
조인창 교수의 원목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그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제 3자의 눈으로 본 ‘이상’들.
나조차 잊고 지냈던 나의 삶.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나의 기억과 조금씩 다르긴 해도, 떠올려보면 떠올리지는 일화들.
큰아버지의 집에 얹혀살던 일.
건축기사로 일하며 ‘지루해 죽겠다’고 말한 일.
때때로 기생들과 놀아난 일.
씻지도 않은 봉두난발로 거리를 쏘다닌 일.
나는 피식 웃었다.
“…나도 참 사람 됐군.”
남자와 도망간 여동생에게 ‘잘 살라’고 편지를 쓴 일.
친구 김유정과 막역한 우정을 나눴지만…
우리 둘 다 요절한 일.
도망을 갔던 금홍1과 재회했지만…
허무하게 안부만 확인하고 다시 헤어진 일.
도쿄 거리를 홀로 걸어 다닌 일.
나는 책을 덮었다.
“….”
잊고 있던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 외로움.
내가 잃은 것은 가난도 폐병도 아니었다.
환생을 한 후, 나는 외로움을 잃었다.
곁을 지켜주는 믿음직한 지훈.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편안한 금홍.
스승, 조인창.
동료, 김미소.
사람들의 관심과 성의, 등등…
나의 인생은 반년 만에 급변했다.
포만감이 느껴질 정도로 만족스러운 삶.
당연히 ‘나’의 내면에 분열이 올 수밖에.
제대로 보이지 않을 수밖에.
순간 머릿속에 뭔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얼른 펜과 종이를 꺼내 그것을 적었다.
‘분열. 두 개의 인생. 하나의 인간’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미친듯이 뛰어대고 있었다.
비로소 찾은 것 같았다.
내 소설의 ‘키워드’를.
종이 한가운데에 세로 선을 주욱 그었다.
왼편에는 남자1의 인생을,
오른편에는 남자2의 인생을.
거침없이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남자1의 삶은 모든 것이 빈곤하다.
돈도, 사람도, 사랑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에게 주어진 건 외로움뿐이다.
그는 외로움밖에 모르기에, 언제나 허기가 진다.
남자2의 삶은 모든 것이 풍요롭다.
돈도, 사람도, 사랑도 한순간도 비지 않는다.
그에게 주어지지 않은 건 외로움뿐이다.
외로움을 모른다는 것이, 그에게 허기로 다가온다.
남자1과 남자2는 같은 인물이다.
다만 상황이 다를 뿐이다.
이 두 남자의 서사를 마치 퍼즐처럼 엮어보자.
두 남자의 움직임은 아주 바쁘다.
다른 환경과 다른 조건.
그러나 두 사람의 행동은 어딘지 비슷하다.
묘하게.
두 남자의 행동을 번갈아가며 장면화한다.
남자1의 행동을 남자2가 이어받듯이.
남자2의 행동을 남자1이 이어받듯이.
중요한 건 연결.
이 연결에서 나 ‘이상’의 스타일이 탄생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나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어감을 느낀다.
그대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두 남자는 사라지고 없다.
나는 눈을 뜬다.
“…됐다.”
이젠 소설을 쓸 수 있겠다.
그때였다.
불현듯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
놀랍게도 창밖은 이미 어둑했다.
휴대폰 시계를 확인했다.
일곱 시.
소설 생각에 빠져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구나.
손도 대지 않은 주스를 벌컥벌컥 마셨다.
가방에 종이와 펜을 밀어놓고 얼른 방을 나섰다.
한 남자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머리카락이 슬슬 희끗희끗해지는 남자.
조인후 감독이었다.
“작가님, 끝나셨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오래 있었죠?”
“무슨 말씀을요. 밤을 새셔도 됩니다. 작가님 방인 것을요.”
그는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이내 어딘지 불편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