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writer who lives again RAW novel - chapter 49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내 물음에 그는 멈칫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작가님. 식사부터 좀 하시겠습니까?”
“음… 방금 주스를 마셔서요. 그리 배가 고프지 않은데요.”
“그럼 저와 커피나 한잔하고 가시죠. 집에 보리로 만든 디카페인 커피가 있습니다.”
그는 나와 대화를 하고 싶은 것 같았다.
나도 조인후 감독이라면 얼마든지 좋았다.
우리는 소파에 마주앉았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커피와 빵을 가져다주었다.
“아, 원하신다면 술을 드릴까요? 좋은 와인이 있습니다만.”
“아닙니다. 술은 잘 하지 않습니다. 감독님께서는…”
풍채만 보면 술을 아주 잘할 것 같긴 한데.
“그게…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많이 마셨더랍니다. 그 덕에 집사람이랑 의사한테 많이 혼났죠. 지금은 금주 중입니다.”
저런.
그러고 보니 안색도 많이 안 좋다.
“상심이 크신 모양입니다.”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제가 아버님을 심적으로 많이 의지하고 있었나 봅니다.”
나 역시 그렇노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더 클 것 같아서.
그는 손을 불안하게 놀리더니, 테이블의 담배를 잡았다.
“죄송합니다만, 한 대만 태워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감사합니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한숨처럼 연기를 내뱉었다.
“후우… 지금 제가 굉장히 안 되어 보이겠군요.”
“그렇긴 합니다만… 상을 당하셨으니 그 마음이야 여북하시겠습니까.”
“상도 상이지만 고민이 있습니다. 작품적으로요.”
순간 흥미가 동했다.
한국 최고의 예술영화 감독의 고민이라.
“무엇입니까.”
“작품이 써지질 않아요.”
“영화 시나리오 말입니까?”
“예. 저는 지금까지 시나리오 작가 없이 영화를 찍어왔습니다. 아버지와 대화를 하면 여러 영감이 쏟아졌거든요. 그것이 언제나 제 영화의 시작이었고요.”
이 사람, ‘시작점’을 잃었군.
저 방에 들어가기 전의 나와 닮았다.
“혼자 해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확신이 안 서는 것이겠죠.”
“고통스럽죠. 그런 거.”
“오늘도 시나리오 작가를 구하기 위해 미팅을 하고 오는 길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시나리오를 남에게 맡길 마음의 준비가 안 됐나 봐요. 계약을 못 하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아주 답답해요.”
그리고 또 한숨처럼 연기를 뱉어내는 것이다.
“저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만… 교수님의 방이 도움이 많이 되던걸요.”
“저 방이야 저도 들어가 봤지만…”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눈에 보일 듯했다.
그가 조인창 교수의 책상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내는 모습.
그리고 터덜터덜 나오는 모습.
“작가님도 글을 준비 중이신 모양이군요.”
“네. 장편 소설을 쓰려고 합니다.”
“소설가의 정수를 보여주시길 기대해야겠네요.”
그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조인창 교수를 닮았다.
“이상 선생이라도 영감을 얻어서 다행입니다. 저도 언젠가는 시나리오를 다시 쓸 수 있겠죠.”
“물론입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겠죠. 충분히 마음을 다스리고 쉬실 시간이.”
그가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눌러 껐다.
“그래, 어떤 영감이 왔는지 얘길 들어봐도 될까요?”
내는 내 소설의 대략적인 내용을 풀어놓았다.
아직은 거친 단계.
그래도 말로 풀어내다보니, 머릿속 서사가 한층 정리가 된다.
그는 어느새 몸을 내 쪽으로 쭉 빼고 있었다.
뭔가에 홀린 듯한 눈을 하고.
내 입속으로 빠져들 것처럼.
“…여기까지입니다.”
그는 흠칫 놀랐다.
그리고 한동안 말이 없더니,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 하하… 그것 참… 참… 허허…”
“어떻습니까?”
“솔직하게 말할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숨을 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세상에. 질투가 날 정도예요. 그 정도로 멋진 이야기입니다. 특히 그 ‘연결’ 방식이요. 정말 잘 짜여진 퍼즐이에요.”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안심이 되는군요.”
빈말이 아니었다.
조인후 감독의 영화는 대단하니까.
해외 영화제에서 받은 상만 하더라도, 이 테이블을 가득 채울 거다.
그는 내 이야기를 다시 곱씹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작가님의 소설처럼… 우리는 언제 외로움의 구렁텅이로 빠질지, 또 언제 구원을 받을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는 벌써 내 소설을 자신의 방식대로 의미화했다.
확실히, 똑똑한 사람이군.
“저는 이 소설을 구상할 때, 이런 상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남자2가 있는 곳은 안온한 안쪽의 세계. 남자1이 떠도는 곳은 매서운 바깥 세계라고요.”
“확실히 그렇군요. 이를테면, 내인內人과 외인外人일까요.”
이번엔 내가 흠칫 놀랐다.
내인과 외인.
내인과 외인.
그 말이 대단히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저… 괜찮다면 방금 말씀하신 걸 제 소설의 제목으로 정해도 되겠습니까?”
“네?”
“<내외인>. 내외인이란 단어가 생각이 났습니다.”
내외인이란 단어는 없다.
즉, 그 역시 소설과 호응하는 일종의 퍼즐.
그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단박에 내 의도를 이해한 것이다.
“…멋집니다. 정말…”
그가 말끝을 흐리곤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나는 멈칫했다.
혹시 실수를 한 게 아닐까.
안 그래도 작품의 난항을 겪는 사람이다.
성급하게 들떠버린 걸지도.
그러나 그는 어느새 단단한 눈으로 날 봤다.
“이상 작가님. 감사합니다.”
“네?”
“작가님이랑 대화를 하니… 작가님의 작품에 이렇게 빠져들고보니, 저 역시 가슴 속에서 뭔가가 들끓는 듯합니다.”
그의 얼굴에 놀라울 정도로 생기가 돌았다.
“오늘 밤은, 뭐든 쓰지 않으면 못 배길 것 같아요. 이런 기분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이에요.”
조인후 감독의 집을 나올 무렵.
그는 내게 악수를 청했다.
“좋은 작품 기다리겠습니다.”
“감독님도요. 좋은 작품 쓰시리라 믿어요.”
우리는 손을 꽉 잡았다.
연희동을 벗어나는 길.
나는 가슴이 간만에 후련해진 걸 느꼈다.
드는 생각은 단 하나.
어서 가서 소설을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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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48) – 수정완료
다시 사는 천재 작가 48
‘소설의 몸’이라는 게 있다.
긴 소설을 쓸 때 필요한 건 순간의 집중력이 아니다.
지루함을 견딜 인내력이다.
그 인내를 갖춘 몸이 바로 ‘소설의 몸’이다.
즉, 언제든 집필에 들어갈 수 있는 습관 말이다.
아침 6시 기상.
8시까지 출근.
12시까지 집필.
2시까지 식사 및 휴식.
6시까지 집필 후 퇴근
이후 휴식 및 취침.
<내외인> 집필에 들어간 후, 내 생활은 이 루틴으로 움직였다.
매일 일정 분량의 원고가 안정적으로 쌓여갔다.
남자1과 남자2는 각각의 세계에서 열심히 움직였다.
남자1이 울면 남자2가 눈물지었고,
남자2가 폭소하면 남자1이 미소지었다.
마치 서로를 의식한 것처럼, 비슷하게.
내 소설지만 조금은 섬뜩하다.
그리고 그 섬뜩함이 싫지 않다.
오늘은 ‘소설의 몸’에서 잠깐 벗어나는 날이다.
지훈의 논문 예비발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문대 교학팀 옆 대형 발표실로 향했다.
“형… 바쁜데 같이 와줘서 고마워요.”
지훈은 벌써부터 떨고 있었다.
아까 우황청심환도 먹던데.
“준비 잘 해놓고 뭘 그렇게 떨어?”
“무대공포증 있거든요. 또, 싫은 사람들 있으면 저 되게 예민해져요.”
이게 지훈의 성격이다.
좋은 사람한텐 한없이 퍼주지만,
싫은 사람한텐 타협의 여지가 없지.
“형은 대체 강연 같은 거 어떻게 해요?”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하면 돼. 자기암시랄까.”
“반박할 수 없어서 더 열 받네요.”
“뭔 소리야. 평론가가 소설가보다 똑똑하지.”
그렇게 발표회장 앞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우웅- 우웅-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먼저 가 있을래?”
“…후우… 네.”
지훈이 발표회장으로 들어간 후, 나는 전화를 받았다.
“네, 이상입니다.”
-안녕하세요. 여긴 가라사대 편집부입니다.
…황당한 곳에서 전화가 왔군.
받지 말 걸.
“무슨 일이십니까.”
-네. 저희가 이번에 이상 선생님의 에세이집을 제작하고 싶어서 연락을 드렸는데요.
일본에서 <다시 사는 일>이 3쇄에 들어갔다.
한국판을 내고 싶다는 출판사의 전화가 수없이 많이 오고 있었다.
모두 정중하게 거절하고 있긴 하지만,
가라사대가 전화를 할 줄이야.
“안 합니다.”
-하하하… 저희 가라사대에게 서운한 점이 많으시죠? 하지만 이상 선생님께서 한국에서 활동을 하시는 데에 있어서 저희 가라사대와 인연을 만들어 두시는 것도,
“안 합니다.”
-물론 인세와 계약금도 충분히 챙겨드리고. 홍보도,
“안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끊습니다.”
난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
히루키 책의 추천사를 거절했던 일.
벌써 두 번째니 그쪽도 약이 오를 대로 올랐을 거다.
나는 통화를 그대로 녹음했다.
이대로 가다간, 언젠가 쓸모가 있을 날이 올지도.
한국에서 책을 낼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첫 책은… 소설이었으면 한다.
난 어디까지나 소설가니까.
***
대학원 논문 발표는 두 단계다.
예비 발표와 본 발표.
예비 발표는 논문 계획서를, 본 발표는 논문 전체를 심사받는다.
걸리는 시간은 두 학기, 총 1년.
혜경도 FM으로 이 과정을 거쳐 석사 논문을 받았다.
작가들은 대학 강의를 위해 학위를 따놓는다.
지훈은 문학을 공부하는 비평가이기에 박사 논문은 필수다.
나 역시 언젠가 논문을 쓰고 싶다.
재밌지 않은가, 문학 공부.
발표장엔 문창과 대학원생들과 교수진들이 있었다.
싫은 얼굴들이 곳곳에 보인다.
오희라와 이현강.
“어머, 혜경아- 오랜만이야.”
오희라가 힘없이 인사를 한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다른 발표자들은 지도교수와 발표를 상의하느라 바쁘다.
덩그러니 앉은 건 오희라 뿐이다.
마침 발표를 위해 유인물을 나눠주던 지훈이 왔다.
“그 동안 과에 무슨 일이 있던 거냐?”
“저도 얼마 전에 알았는데, 희라 선배 이혼했대요. 한동안 안 보이더니 갑자기 다시 나타나서 갑자기 논문을 쓰기 시작하더래요.”
“이혼? U대학 국문과 교수라는 사람이랑?”
“네. 제자랑 바람이 났다나요.”
끔찍하구만.
이현강과 콩고물 받아먹으려던 패거리들이 오희라를 버린 것도.
남의 후광으로 떵떵거린 자의 최후란 이렇게 씁쓸하다.
“예비발표 패스하고 바로 본 발표 하게 해달라고 이 교수한테 엄청 졸랐대요. 등단 못 했으니 학위라도 받아가야겠다는 거죠. 더는 학교에 눌러 붙을 상황도 아닌 것 같고.”
지훈이 툴툴거린다.
“내버려둬. 빨리 졸업해주면 우리야 땡큐지.”
“쩝… 그래요. 저 그럼 발표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