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Doctor RAW novel - Chapter 376
376화 호흡곤란 (3)
수혁과 신현태가 영상에 집중하는 동안, 바루다는 그렇게 얻어 낸 정보를 차곡차곡 정리했다.
약간의 어지럼증을 동반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앉아 있었기에 별 무리는 없었다.
오히려 방해가 되는 건 알코올이었다.
그렇게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연산 능력에 심대한 장애를 초래하고 있었다.
[이딴 건 대체 왜 마시는 겁니까?]‘비싼 와인은 좋다며.’
[그건 비싸니까요. 대우받는 느낌이랄까?]‘맛은 모르죠?’
[쓰죠.]‘그래…….’
당연하게도 바루다의 타박이 이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놈이었다.
인공지능 주제에 돈의 노예가 되어 버리다니.
[영상이나 보시죠. 저는 분석 중입니다. 가뜩이나 부족한 연산 쥐어짜고 있으니까 말 걸지 마시고.]‘알았다…….’
뭐라 반박하기는 어려웠다.
하여간에 바루다가 정리하는 문제 목록은 진단에 결정적이지 않겠는가.
해서 수혁은 녀석이 자기 할 일을 하는 동안, 영상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건 어제 찍은 거라고?”
“네.”
“여기서도 침윤이 증가했네?”
“네. 치료를 계속했는데도 이러네요?”
“아까 분명 특발성 기질화 폐렴을 의심한다고 했지?”
“네.”
“그거…… 그거 예후가 그렇게 나쁜 질환이 아닌데?”
특이한 질환이기는 했다.
또 예후가 좋다고 하기엔 약을 오래 써야 하는 질환이었다.
그 약이 오래 써도 아무 문제 없는 약도 아니었고.
하지만 스테로이드를 썼다면 반응이 있어야만 했다.
이렇게 계속 진행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죠?”
“진단명이 틀렸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겠는데.”
“영상학적 소견은 확실히…… 그 병과 가깝긴 한데요.”
“조직검사도 했다고 했지? 싱가포르 의학 수준이 그렇게 만만한 건 아닌데. 요새 좀 그렇다고는 해도…….”
명색이 선진국 반열에 올라있는 나라 아닌가.
개발도상국에서 오는 의사들처럼 황당한 짓거리를 하지는 않는단 얘기였다.
“하긴 이게 뭐 다 같은 코스로 가진 않지. 답을 알려면 환자를 봐야겠는데.”
신현태는 그런 말을 하면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벌써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출근하기엔 지나치게 늦은 시간이었다.
게다가 자기 병원도 아니고 남의 나라 병원은 더더욱 그랬다.
정신 나간 말이란 생각이 들어야 정상이라는 건데, 안타깝게도 수혁 또한 제정신은 아니었다.
“그러니까요. 지금 갈 수 있냐고 물어볼까요?”
“그럴래?”
“네. 근데…….”
“근데 뭐?”
“지금 문자 보낸 사람은 제 여기 친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에요. 싱가포르인이긴 한데.”
“그래? 누군데?”
지금 분위기상 신현태를 떼어 놓고 가는 건 절대 무리였다.
그랬다간 삼촌이고 나발이고 입이 사발만큼 나와서 삐져 버릴 터였다.
해서 털어놓기로 했다.
리홍이에게는 이런 문자를 남긴 채였다.
[어제 따로 만난 건 비밀로 해 주세요. 같이 온 교수님이 개인행동을 엄금하는데, 친구 핑계 대고 만난 거라서요.]수혁은 알겠다는, 오히려 고맙다는 답장을 확인하고는 신현태를 돌아보았다.
수혁의 일이라면 뭐든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날 이런 눈으로 바라봐줄 여자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꿈 깨시죠.]‘하.’
이런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리홍이요.”
“응? 리홍이? 그 사람이 개인적으로 연락을 했어? 네가 한 것도 아닌데?”
“네.”
“허……. 아, 벌써 좋아졌나 보네?”
“네. 약 쓰고 바로 좋아진 모양이에요.”
“아이구, 그럼 가야지. 가는데, 이러고 가도 되나?”
신현태는 급히 몸을 일으키고는 자신의 차림새를 내려다보았다.
남국 여행이라고 기분을 내고 싶었는지, 분홍색, 심지어 카라가 아주 넓은 반팔 남방에 흰 반바지 그리고 샌들을 신고 있었다.
클라키에 오기엔 합장한 옷차림이었지만 병원에 가기엔 글쎄올시다였다.
“저도 뭐 다를 게 없는데요.”
그에 비하면 수혁은 양반이었다.
다친 다리가 가늘어지고 있는 탓에 반바지는 차마 입지 못한 까닭이었다.
“뭐래? 오래?”
“네.”
“그럼 가야지. 가자.”
“네. 바로 가죠.”
조금 민망한 차림이긴 했지만 하여간 둘은 병원으로 향했다.
1층 로비에 도착하자마자 검은 양복의 산사 하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너무 점잖은 옷차림이라 더더욱 대비되는 느낌이었다.
‘분명 놀란 거 같은데…….’
[티는 안내는 군요. 비서일까요?]‘그럴 거야.’
그는 둘을 사람이 뜸한 엘리베이터를 통해 병실로 안내했다.
안에는 리홍이뿐 아니라, 이름 모를 여자도 앉아 있었는데, 어쩐지 분위기가 영 이상했다.
아니, 냉랭했다.
“외국인 의사를 부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래, 이런 사람들입니까?”
적대적이기까지 했다.
리홍이는 그 앞에서 쩔쩔맸다.
퍼스트 패밀리가 이럴 수도 있다니, 신현태는 대체 상대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반팔 반바지 입고 온 원죄가 있다 보니 닥치고 있어야만 했다.
“옷차림으로 평가하지 마십쇼, 싱가포르는…… 더운 나라 아닙니까.”
“그렇긴 해도, 의사라기엔 신뢰가 하나도 안 가는데요?”
“아뇨. 다를 겁니다. 여기…… 이수혁 선생님은 정말 실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지금 의원님 질환도 원래 진단명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사실이었다.
수혁과 신현태 둘만 얘기할 때는 어쩌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특발성 기잘화 폐렴이 아니라 다른 질환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뭐 이 정도 수준이었다면.
바루다의 문제 목록까지 더해진 다음에는 아마도 아니겠군이 되어 있었다.
결정적인 단서는 역시나 CT였다.
[침윤 정도만 심해진 게 아닙니다. 자, 이게 환자의 폐동맥입니다. 이걸 찍힌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고 겹쳐 보겠습니다.]사람은 절대로 불가능한 과정이었다.
세상에 각기 다른 날 찍힌 CT를 어떻게 머릿속에서 정확히 겹쳐 본단 말인가.
이건 아마 영상의학과 쪽 장비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어려운 일일 터였다.
하지만 바루다는 가능했다.
녀석의 연산은 놀라운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수혁의 뇌를 빌려다 쓰는 데도 그랬다.
[보시면…… 확실히 늘어나 있죠? 환자의 좌측 폐동맥이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습니다.]아무 커다란 변화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아마 누구라도 눈치챘을 터였다.
하지만 아주 사소한 변화더라도 변하긴 했다.
그것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꾸준히.
이건 의미가 있다고 봐야 했다.
리홍이에게 괜한 자신감을 내비친 게 아니란 얘기였다.
“이 사람이 날 언제 봤다고…….”
할리마 의원은 리홍이의 강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전혀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해가 안 가는 일은 아니었다.
이미 환자 의사 간의 라포가 생긴 다음엔 깨지기가 쉽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어제 딱 실려 왔을 때라면 가능성이 크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할라미는 확실히 좋아져 있었다.
“환자분.”
물론 그런 반응 따위에 굴할 수혁은 아니었다.
‘나는 긴바지잖아?’
[그렇죠. 뭘 잘못했습니까?]합리화를 잘하는 편이기도 했거니와, 1년 차 때부터 뛰어난 모습을 보여 온 그 아닌가.
이보다 훨씬 더 적대적이거나 의심 섞인 시선을 지겹도록 받아 온 참이었다.
덕분에 자신감 있는 얼굴로 할리마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당황한 것은 할리마였다.
“응?”
“환자분 처음 이 병원에 와서 진단받은 게 8개월 전이죠? 당시 조직검사까지 했다고 들었습니다.”
“어……. 그래요, 그랬습니다.”
의사 가운을 입은 것도 아닌데 어쩜 이렇게 의사처럼 말할까.
할리마는 자신도 모르게 환자 모드로 변화된 채 답변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신현태도 거들까 하는 고민이 들었지만, 마침 종아리에 부숭한 다리털이 보였다.
무례도 이런 무례가 없었다.
‘닥치고 있자…….’
오히려 뒤로 한 걸음 더 물러났다.
“당시 프레드니솔론, 그러니까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았죠? 즉각적인 반응이 있었을 겁니다.”
“맞아요.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그러다……. 2개월 전 악화가 있었죠?”
“네.”
“그 전에는 괜찮았나요? 보니까, 드신 약용량이 그 전에도 한 번 올라간 적이 있던데?”
“아……. 입원은 아니고 외래에서 한 번, 네. 확실히 그랬습니다.”
그사이 수혁은 대화를 쭉 이어 나갔다.
어찌나 물 흐르듯 이끌어 가는지 할리마는 이제 눈앞에 있는 사람이 외국인이라는 사실조차 잊은 듯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늘상 수혁이 쓰는 억양이 아니라, 약간 싱가포르에서 쓰는 영어 억양이 되어 있었다.
‘뭐지? 여기서 산 적이 있나?’
리홍이마저 이런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물론 바루다가 벌인 마법이었지만 알 수가 없지 않은가.
그저 호감만 쌓일 뿐이었다.
“그때 왜 올렸죠? 이유 없는 증량은 없는 법인데.”
“조금…… 숨이 찼어요, 다시. 숨쉬기가 어렵더군요. 기침도 나고.”
“올리고 나니 다시 좋아졌고, 줄이니까 또 안 좋아져서 2개월 전 입원했군요.”
“네.”
“그때 또 고용량으로 치료받으니 좋아졌고, 줄이니까 안 좋아져서 이번에 입원했고요?”
“네.”
“입원해서 고용량으로 약을 쓰니 다시 호전이 있군요.”
“네.”
요약하면 프레드니솔론을 고용량을 쓸 때만 잠시 호전이 있다는 얘기였다.
용량을 줄이면 증상이 악화된다는 얘기이기도 했고.
‘알겠네, 뭔지.’
[그렇죠? 확실히 특발성 기질화 폐렴은 아닙니다.]여기까지만 듣고도 수혁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마 태화 의료원이었다면 지금 당장 입을 털었겠으나, 지금은 적당치 않다고 판단했다.
우선 남의 병원이기도 하거니와 리홍이가 있지 않은가.
‘인상을 남기려면 연출이 좀 필요하지?’
[이런 건 잘하지 않습니까? 저는 관여치 않겠습니다.]수혁의 연출이야 알아주는 거 아닌가.
바루다마저 믿고 맡길 지경이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수혁은 병실 한켠에 걸려 있던 청진기를 집어 들며 입을 열었다.
“지금 대화를 하시면서 뭔가 이상하단 생각이 드셨을 겁니다. 진단이 맞았다면 이렇게까지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겠죠?”
“약은…… 약은 잘 들었는데요?”
“아뇨. 고용량으로 썼을 때만 들었죠. 저용량에서는 안 들었고요. 약 종류도 중요하지만, 용법도 중요합니다. 아예 다른 질환일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어…….”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약 종류가 아니라 용법도 중요하다니.
그게 빗나가도 진단명이 틀렸다는 걸 의심해야 한다니.
멍하니 있으려니 어느새 수혁이 청진기를 들고 다가와 있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청진을 좀 할 수 있을까요?”
“아, 네.”
“호흡음도 호흡음이지만 심장 소리를 들으려 합니다. 평소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릴 수 있어요.”
성인 여성에 대한 청진은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오해할 여지가 있어서인데, 이렇게 설명을 충분히 하고 시행하는 경우엔 대개 괜찮았다.
이번에도 그랬다.
“네, 물론입니다.”
이미 수혁이 마음을 크게 흔들어 놓아서 그랬다.
‘넘어왔군.’
[역시 천재.]‘의학적으로도 좀 그렇게 말해 줄래?’
[아직 멀었습니다.]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고개를 살랑살랑 젓고는 귀를 기울였다.
슉.
슉.
정상 심장에서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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