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Doctor RAW novel - Chapter 85
85화 미국 가야 돼 (2)
“아……. 그래서 응급실로 온 거야?”
“네. 흉통이기는 한데, 환자가 너무 젊으니까 인턴이 보다가 저한테 노티했습니다.”
이현종은 가는 시간도 아까운지 연신 환자에 관해 물었다.
수혁 또한 이현종과 의학 관련한 대화를 하는 건 무척 즐기는 편인지라 상당히 열심히 말을 받아 주었다.
[잘 들으십쇼. 이현종은 진짜 명의니까요.]심지어 바루다 또한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가 말한 대로 이현종은 명의였기 때문이었다.
단지 지식적인 측면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경험이나 생각마저도 그러했다.
한 마디로 배울 점이 아주 많은 사람인데 그 배움을 딱히 꽁꽁 싸매고 있지 않았다.
“음. 트리아지를 어떻게 하는 거야. 흉통이면 흉통이지. 젊은 사람들이 그거 조금 아프다고 응급실까지 오겠어? 여기까지 왔으면 일단 증상 무시하면 안 돼.”
“아……. 그것도……. 그렇네요.”
지금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수혁이나 바루다는 18살이라는 환자 나이에 집중해 처음에는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었는데.
이현종은 바로 그게 문제라는 식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젊은 사람이 오죽하면 이렇게 큰 병원에 왔겠는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돈도 비싼데.
그만큼의 불편감이 있다는 뜻이었다.
“젊은 사람뿐만이 아냐. 어지럼증도 있지? 그거 단순 유병률로 보면 당연히 이석증이 제일 많지. 제일 많은 정도가 아니라 압도적이야. 근데 태화 의료원 응급실 통계로 봐도 그럴 거 같아?”
“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수혁이나 바루다나 외부로 발표된 통계는 빠삭했지만, 오히려 내부 통계에는 무지한 편이었다.
애초에 별로 볼 일이 없다는 생각이 있기도 했다.
어차피 임상적으로 중요한 것은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라 보편적인 통계였으니까.
도리어 한 병원의 통계에 너무 얽매이면 비틀린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바루다의 지론이었다.
수혁도 다르지 않았고.
하지만 이현종이 그 통계를 들먹거리고 있으니 이건 또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해서 수혁은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태화 의료원 응급실 통계에서도 물론 이석증이 더 많기는 하지. 그런데 거의 근소해. 신경과적 원인의 어지럼증하고 이석증으로 인한 어지럼증이 거의 근소하게 나온다고.”
“그……럴 수가 있습니까?”
상식으로만 보면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이석증과 뇌혈관 질환의 유병률 차이는 열 배는 우습도록 많이 났으니까.
“너도 그놈의 근거 중심 의학에 매몰됐구나.”
이현종은 헉 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수혁을 보며 쯧쯧 혀를 찼다.
물론 그도 근거 중심 의학을 매도하고자 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신봉하는 축에 속했다.
하지만 이현종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한 발짝 더 뒤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추게 되었을 뿐이었다.
“수혁아. 너 만약에 열나면 바로 응급실 가겠냐?”
“아뇨. 일단은……. 약을 먹어 보거나, 동네 의원에 가겠죠.”
“그래. 근데 열이 42도야. 그럼 어떻게 할래?”
“그럼 바로 응급실…… 아?”
이현종은 무턱대고 성질을 내거나 가르치려고 드는 대신 일단 질문을 던졌다.
똑똑한 녀석들이라면 이 질문을 통해 스스로 뭔가 배우게 되기 마련인데.
수혁은 당연히 깨닫는 바가 있었다.
“증상의……. 정도가 다르겠군요. 특히 태화 의료원이라면.”
“그래. 어지간해서는 여기로 안 와. 어지러워서 여기까지 오게 된 사람이라면, 그 정도가 일반적인 거랑은 아예 다른 거라고. 너 이석증 환자, 인턴 때 본 경험 있지?”
“네.”
어지럼증은 중년 이상의 여성에서 상당히 흔한 증상이었다.
그중에서도 이석증은 가장 흔한 원인이었고.
제대로 인턴을 돌았다면 당연히 본 경험이 있었다.
“그 환자들 죄 토하고, 난리였지?”
“네. 어휴……. 그……. 네.”
눈앞이 빙빙 돌아가고 있으니 먹었던 것을 다 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물론 그 토사물을 뒤집어써 가며 진료를 봐야 하는 의료진들은 무척 애를 먹기 마련이긴 했지만.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이석증이란 인턴들에게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근데 그 이석증, 다 그런 건 아냐. 대부분은 그냥 핑글 하는 느낌이라고.”
“아……. 그렇습니까?”
“그래. 그런 환자들은 다 동네 이비인후과로 가. 걸러진 환자들이 온다고 보면 돼.”
“아…….”
“흉통도 똑같아. 우리가 흔히 양성 증상이라고 보는 흉통은 대개 동네 병원으로 가. 일단 여기까지 왔으면, 그 환자는 심각한 환자라고 봐야 해. 안 그러면 놓쳐.”
“그렇군요. 와……. 진짜 원장님하고 대화하다 보면 배우는 게 많습니다.”
수혁은 정말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최근 바루다와 팀을 이루어서 이것저것 진단명을 맞추다 보니 마음 한쪽에 교만함이 똬리 틀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현종의 말을 듣고 있다 보니 역시 아직 멀었단 생각이 들었다.
“뭘 또 그렇게까지. 나야말로 너한테 배우는 게 많지.”
이현종은 허허 웃고는 앞을 가리켰다.
이제야 겨우 본관 3층에 있는 흉부외과 중환자실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과연 중환자실로 향하는 문이 보였다.
삑.
수혁은 자신의 명찰을 가져다 대어 문을 연 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도 상당한 유명 인사지만, 뒤이어 들어온 이현종은 원장이지 않은가.
당연하게도 중환자실 간호사 중 몇몇이 황급히 달려왔다.
일단 머릿속으로 이현종 앞으로 입원한 환자는 없다는 걸 떠올리면서였다.
“원장님,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그중 제일 먼저 다가와 입을 연 사람은 흉부외과 중환자실의 수간호사였다.
원래 같으면 스테이션에 나와 있기보다는 안쪽에 들어가서 간호 인력 관리를 하겠지만.
보통 흉부외과와 같은 외과 계통 과들은 회진을 수술 들어가기 전에 몰아 돌기 때문에 수간호사도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 어제 여기 입원한 환자 보려고 왔지.”
이현종은 수간호사와 안면이 있을 뿐 아니라, 말을 놓는 사이였기 때문에 상당히 편안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수간호사는 친분이 있는 사이이니만큼 이현종의 괴벽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기 댁 환자 없는데요.’와 같은 쓸데없는 소리는 꺼내지 않았다.
“어떤…… 환자요?”
“그……. 로이스 디에즈 증후군.”
“네?”
“아, 대동맥 박리라고 해야 알아듣나?”
“아……. 네네. 그 여자 환자분 말씀하시는 거죠? 이리로 오세요. 새벽에 수술 끝나서 아직 정리 중이에요.”
보통 외과에서는 환자의 진단명보다는 수술명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흔했다.
흉부외과야 외과 중에서도 가장 험한 외과에 해당하니 이러한 전통도 강했다.
심지어 간호사들도 같이 공유할 정도로.
“여기 있습니다.”
“아.”
무심결에 이현종을 따라 환자를 보러 오게 된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생각했던 모습보다도 환자의 몰골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내과계 중환자실 환자들도 물론 중했지만.
이렇게 상처가 덕지덕지 나 있진 않지 않던가.
게다가 몸 안과 밖으로 연결된 수많은 관들은 보다 기괴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인턴 때도 본 거 아닙니까?]‘그땐 내 환자가 아니었잖아.’
[느낌이 다르다는 말입니까?]‘그래.’
[이해하기 어렵군요.]‘너는……. 너는 그럴 거야.’
당장 어제 봤던 모습이 겹쳐 보였기에 수혁은 상당히 심란해져 있었다.
그에 반해 같이 온 이현종은 적극적으로 환자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일단 수술 기록을 까 봤고, 환자의 활력징후와 모습 그 자체를 관찰했다.
“아직 유전자 검사 안 나갔나?”
“네, 그런 지시는 없었습니다.”
“그럼 나가.”
“어……. 주치의 연락 없이요?”
“어, 나가. 내가 책임질게. 어차피 여기 보니까 사회 복지과로 연락 가게 되어 있던데…… 그럼 비용 관계없는 거 아냐? 내가 처리할게.”
“아……. 네. 알겠습니다.”
심지어는 처방도 제멋대로 내리고 있었다.
사실 환자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그냥 임상적인 추정만으로 내린 진단과 유전자 검사로 확실히 감별된 진단은 아예 다른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왜 엔지오텐신 인히비터 안 들어가? 아까 협진에 의견 남기는 거 봤는데.”
“아직 주치의 선생님이…….”
“뭐 하느라 아직도 안 봐?”
“오늘 5시에 나왔어요, 이 환자.”
수간호사는 이제 막 7시를 지나고 있는 시계를 가리켰다.
그 말은 이 환자의 주치의가 이제 겨우 자리에 누운 지 한 시간 반 정도 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이해를 하라는 뜻이었는데.
이현종은 딱히 그런 종류의 이해심을 발휘하지는 않는 사람이었다.
“뭔 상관이래? 환자가 있으면 의사가 봐야지. 아무튼, 아직 안 봤다는 핑계 대지 말고 약 줘.”
“그…… 노티 없이요?”
“잔다며. 그리고 나 순환기내과 교수야. 이 병, 아주 잘 알아. 이러다 또 터져.”
“그……. 네. 알겠습니다.”
수간호사는 뭐라 대꾸를 하려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흉부외과 교수가 온다 해도 결과가 달라지진 않을 터였다.
지금보다는 고성이 오가긴 하겠지만.
결국, 이현종이 이길 것이 분명했다.
“검체는 병리과로 보냈다고 되어 있네. 이건 수술방에서 보낸 거지?”
“네? 아, 네. 검체는…… 중환자실 소관은 아닙니다.”
“좋아. 그럼 일단 처방 낸 거 지시대로 하고. 수혁아. 넌 나랑 병리과로 가자.”
“네? 병리과요?”
이제 다 끝났나 하고 있던 수혁은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물론 이현종은 별로 설명할 생각이 없었다.
그냥 수혁을 데리고 나갔다.
“소문은 들었지만……. 역시 이현종 원장님은 괴짜시네요.”
그렇게 휭 하고 나가 버린 이현종을 바라보던 선임 간호사 하나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수간호사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만하면 양반인 거야. 옛날에 우리 왕 교수님 계실 적엔 진짜 매일 싸웠어. 딱 여기. 무슨 권투 선수도 아니고…… 주먹다짐도 했다니까?”
“네? 진짜요?”
“그래. 이렇게 가면…… 다행인 거야.”
“그럼 처방은 일단 주치의 샘이나 교수님 의견 기다리는 거죠?”
선임 간호사는 수간호사의 이현종에 대한 감정이 별로라는 걸 느끼며 질문을 던졌다.
당연히 자신이 속한 흉부외과에 대한 자부심도 섞여 있었다.
어딜 감히 내과가 와서 처방인가 하는 생각도 있었고.
하지만 수간호사는 이번에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대로 해.”
“네? 왜요?”
“이현종 원장님이…… 잘못한 것도 많았는데, 적어도 의학적인 판단에서 잘못된 적은 없더라. 괜히 천재라고 하는 거 아냐. 그냥 그대로 해.”
“아……. 네.”
중환자실 측 일이 정리되는 사이, 수혁은 이현종과 함께 벌써 병리과 사무실 앞에 도달했다.
어차피 제일 많은 검체가 나오는 곳이 3층 수술실이라 병리과도 3층에 위치해 있는 덕이었다.
띵동.
이현종은 출입문 옆에 달린 초인종을 냅다 눌렀다.
그러자 곧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급 검체예요?”
아직 정규 검체 시간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환자 보러 왔어요.”
“환…… 자? 여기 환자는 없는데요.”
검체만 있는 곳이 병리과였다.
당연하게도 상대는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얼굴이 되었고.
옆 방에서 일과 전 회의를 주관하려던 과장은 ‘이놈이 또 왔네’ 하는 얼굴이 됐다.
“혹시 원장님이에요?”
해서 인터폰을 붙잡고 이렇게 물었더니, 이현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철용이냐? 문 열어. 검체 하나만 꺼내 주고.”
“지금 회의…….”
“회의 내내 초인종 소리 듣고 싶어?”
“아뇨. 지금 열게요.”
수혁은 그런 이현종을 보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혹시 제일 싸움 잘해서 원장이 됐나?’
[지금 태도를 봐서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가설이라고 생각합니다.]– 86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