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쇠사슬 1
* * *
“끝까지 검을 놓지 않은 건 칭찬해주지.”
매튜가 벽에 부딪치기 직전, 다시 한 번 손바닥을 가슴에 가져다 댄다.
이번에도 준비 동작은 필요 없었다.
쿵.
“커흑!”
개념은 아니었다. 하물며 오의 같이 거창한 기술도 아니었다. 그저 근육을 조율해 운동에너지를 한곳에 모은 것뿐이었으니까.
이건 현대 문명에서 흔히들 말하는 촌경의 응용. 달리 말하자면 운동 역학에 충실한 기술이었다. 그 시대에는 효율이 낮아 아무도 찾지 않았지만, 헤브니아는 달랐다.
물리법칙의 한계를 부수는 원소, 마소가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다음 것도 간다.”
쿵!
두 손바닥이 닿는 것과 동시에 볼품없이 나뒹군 매튜가 피거품을 한 바가지 쏟아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벌떡 일어나 카인에게 달려들었다.
눈앞에 아련했던 승리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잖아도 클로젯에 이성을 빼앗기고 있던 그였다. 있을 수 없는 충격까지 더해지니 반응은 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지간히 하고 떨어지시기 바랍니다. 이제 충분하지 않습니까.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날 떨어뜨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두서없이 지껄인 매튜는 거품을 토해내며 클로젯을 휘둘렀다.
“내가 너 같은 어린아이 뒤치다꺼리나 하자고 그 마을을 떠난 지 알아? 나는 꼭 백작이 되어야 해. 되어야 한다고!”
그래야 가족들에게 미안하지 않으니까. 그래야 나중에라도 찾아갈 수 있으니까.
입술을 꽉 깨문 매튜는 경맥을 돌렸다. 혹시나 해서 여력을 남겨두었지만 그것도 여기까지.
이 순간만큼은 명예고 명분이고 다 잊었다. 그는 오직 카인만 바라보며 클로젯을 휘둘렀다. 두 팔이 떨어질 정도로 강렬하게.
공격 횟수가 늘어날수록 검격 또한 거세지는 건 당연지사.
강격 연계와 전력 전개가 동시에 터져 나오며 연신 가속하자 칼날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허공에 날리는 불티를 피하며 카인은 내달렸다. 손바닥에 닿는 건 뭐든지 찌그러뜨리고, 짓누르며 맹진했다.
클로젯에 베이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더 이상 동결은 넘어야 할 벽이 아니었다. 그저 거치적거리는 장애물일 뿐이었다.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할 수 있을 정도로 요령이 좋은 건 아닌지라 카인은 방어를 포기하고 공격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자칫 잘못하면 우둔한 선택이 될 수 있지만, 이쪽이 버린 만큼 저쪽도 버린 상태였다.
확인할 것도 없다. 매튜의 눈동자 안엔 이지가 사라진 지 오래였으니까.
흐리멍텅한 유리구슬 안에선 시커먼 감정만이 요동칠 뿐이었다.
지금 그를 움직이는 동력은 몸에 각인된 본능. 불에 타 죽더라도 끝은 보고 말겠다는 자기 파괴 충동이었다.
“죽어, 죽어! 가주고 슈발체베인이고 다 죽어!”
잔상이 검의 궤적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오더 링크는 일격필살에 가까운 검격을 제한 없이 쏟아내는 성절이었다.
개념의 보정을 받은 카인도 매튜가 얼마나 많은 공격을 쏟아내고 있는지 가늠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클로젯을 막고 있는 팔이 걸레짝이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하지만 카인은 주저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손바닥만 닿을 수 있다면 되었다.
그곳에서부터 타격이 시작되었으니까.
쿠웅, 쿵, 쿵.
준비 동작도 없이 발해진 삼연격에 전신 갑주는 차다 만 깡통이 되어 주인과 함께 한껏 우그러졌다.
버틸 수 있는 임계점은 옛적에 넘어간 상태.
사이좋게 주고받는 것도 여기까지였다.
순식간에 매튜의 뒤를 점한 카인은 그를 들어 차가운 땅바닥에 메다꽂았다.
육중한 진동과 함께 진득한 핏물이 사방에 튀어 올랐다.
매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일어섰지만, 얼마 걷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뒤통수가 깨지며 뇌가 흔들렸으니 한동안 저 상태일 터.
승패는 갈렸다. 바로 이 자리에서.
“이것뿐인가?”
아쉬움과 개운함이 동시에 가슴을 휘젓는다.
카인이 경험한 오더 링크의 정수는 고작 이런 게 아니었다. 보다 날카롭고, 보다 빠른 검술이었다. 또한 인지하고 있어도 당할 수밖에 없는 완전무결한 성절이기도 했다.
“하긴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운 녀석에게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우습군.”
애석하게도 그런 카인의 탄식은 매튜에게 닿지 않았다. 그는 이미 클로젯에게 많은 걸 넘겨준 뒤였던 것이다.
“크흐흐흐으으으, 으으.”
“가주가 되는 것보다 짐승이 되는 걸 택한 건가. 너다운 최후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처음에 기세등등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정신을 차리겠지만, 지금은 그런 단순한 생각조차 못 하는 상태. 아마 다른 사람이 멈출 때까지 본능이 이끄는 대로 검을 휘두르리라.
“끝까지 책임지는 게 우리네 인정이겠지.”
주저앉은 매튜에게 다가간 카인이 그의 이마에 검지를 가져다 대었다.
순간, 근육이 요동치며 손가락에 힘이 집결되었다. 한 점에 체중을 고스란히 담은 카인은 모든 게 끝났다는 듯 나지막이 읊조렸다.
“발파.”
검지에 닿은 이마가 푹 꺼진 건 거의 동시.
우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매튜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 * *
매튜의 명에 따라 성 밖으로 나가려던 살리자르의 눈에 등불을 들고 걸어오는 여성이 보였다.
색소가 옅은 머리카락과 가련하기 짝이 없는 자태.
살리자르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슈발체베인 성, 아니 백작령 안에서도 보기 드문 미모의 여성이었으니까. 당연히 이름도 알고 있었다.
“피아란 양.”
“어머, 살리자르 경인가요? 야밤이 되었는데도 완전 무장이라니……. 기사님들은 큰일이네요.”
“괜찮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까요.”
이제 막 반란의 서막에 동참한 이가 입에 담기엔 부끄러운 말이었지만, 살리자르는 있는 대로 지껄였다.
‘일이 잘만 풀리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테니까. 피아의 몸을 위아래로 훑던 그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오른 건 그때였다.
“그보다 피아란 양은 무슨 일입니까?”
“가주님이 부르셔서요.”
“아, 그렇군요. 그러면 저는 용무가 있어서 그만.”
가주, 그 단어에 현실로 돌아온 살리자르는 황급히 등을 돌렸다. 생각해 보니 수다나 떨고 있을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나가려던 찰나,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 살리자르의 눈에 주먹만 한 무게추가 보였다.
마름모 모양의 추에는 유려한 곡선이 보석처럼 양각되어 있었다.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그 끝에 걸린 건 쇠사슬이었던 것이다.
모양으로나 용도로나 무서운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건…?”
“별거 아니에요. 호신용으로 들고 다니는 무기거든요. 요즘 세상이 워낙 흉흉하잖아요?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게 허벅지에 걸고 다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일에는 지장이 없으니까요.”
살리자르가 뭐라 묻지 않았음에도 피아는 신이 난 듯 말을 이었다.
“아버지에게 듣기론 하샤 왕국에서 죄인을 압송할 때 쓰이던 쇠사슬이었다고 해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반란을 꿈꾼 귀족들을 대대로 결박하던 물건이라고 하더라고요.”
천연덕스럽게 내력을 읊은 뒤, 무게추를 들어 올린다.
쇠사슬의 이름은 단죄자.
그 안에 깃든 의념은 ‘속박’이었다.
그래, 이건 보구. 평범한 쇠사슬이 아니었다.
촤르륵.
치맛자락이 펄럭이며 허벅지에 걸려 있던 단죄자를 꺼낸 피아는 손목을 빙글빙글 돌렸다. 그러자 무게추도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빠르게 돌아갔다.
“대상의 혈통이 좋으면 좋을수록 효과가 좋다고 하던데 아직 써 보지 않아서 자세한 사항은 모르겠어요. 한 번 쓰게 해 주실래요? 살리자르 경.”
둘밖에 없는 복도에서 솜사탕처럼 달콤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 처음이라 자신 없지만, 살리자르 경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한 살리자르는 짐짓 인상을 찌푸리며 강하게 부정했다.
“난데없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군요. 어서 내려놓으세요. 다칩니다. 위험해요.”
“위험한 건 살리자르 경이잖아요?”
“저 말입니까?”
“가주님의 뒤를 치기 위해서 기사단장님과 함께 사병을 모았잖아요? 그것만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중죄예요.”
“물러나시죠. 어디에서 그런 말을 듣고 온 건지 모르겠지만…….”
곤란하다는 듯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댄 피아가 들릴 듯 말 듯 속살거렸다.
“부정해도 상관없지만, 그쪽에 있는 분들은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살리자르 경처럼 시녀와 말싸움이나 하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죠.”
돌연히 살리자르의 이마 위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피아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겨를이 없지만, 최악의 경우도 고려해야 했다. 이간계가 아니라면 큰일이었으니까.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 했다. 아니, 한시라도 빨리 매튜에게 가서 알려야 했다.
‘아니지.’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수상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어쩌면 우연히 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협박하는 걸 수도 있었다.
피아가 맡기엔 사안이 너무 무거웠으니까. 온다면 그녀가 아니라 기사들이 와야 했다.
그래, 저건 기만술이었다.
그리 결론을 내린 살리자르는 머릿속에서 피어나는 의문을 잠재웠다.
마음을 다잡고 나니 피아의 몸짓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렸다. 그녀가 부기사장 바질의 딸인 건 살리자르도 알고 있었다.
물론, 카인의 전속 시녀라는 것도.
하지만 말 몇 마디면 물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니. 그건 그를 너무나 무시하는 처사였다.
“피아란 양의 의기는 높이 삽니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런 대책도 없이 말하는 건 어떨까 싶군요. 여기엔 피아란 양을 도와줄 수 있는 기사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조용히 검을 빼 든다. 피아가 일의 전모를 알게 된 이상, 살려 보내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차라리 여기에서 깔끔하게 청소하는 게 나았다.
“그동안 본 정이 있으니 단칼에 끝내드리겠습니다. 가만있으면 아프진 않을 겁니다.”
피아가 비명을 지르기 전, 있는 힘껏 검을 내리친다.
최고 속도로 최단 거리를 돌파한 검은 그대로 목을 치는 듯했으나…….
‘막았다고?’
그보다 먼저 피아가 쇠사슬을 가로로 잡아당겨 검의 궤적을 막았다.
철그렁.
익숙한 쇳소리에 정신을 차린 살리자르는 다시 한 번 검을 내질렀다.
이번에는 우연에라도 막지 못하게 마력을 섞어서.
철그렁.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똑같았다. 분명 막지 못해야 정상이건만, 피아는 당연하다는 듯 쇠사슬을 늘어뜨려 검의 진입을 끊었다.
그제야 살리자르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활짝 미소 지은 피아가 입을 열었다.
“살리자르 경이야말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나요? 제가 어째서 기사분들도 대동하지 않고 홀로 온 건지.”
그러잖아도 묻고 싶던 참이었다. 하지만 살리자르가 입을 열기도 전에 피아가 의기양양하게 입을 열었다.
“당연히 살리자르 경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