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잠입 1
* * *
블랙 미러는 어디까지나 성절에 기인한 능력이었다. 대인전에서는 무적에 가까운 무위를 보여 줄 수 있으나, 그 외의 전투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읽을 개념이 없으면 우위를 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련정심은 구태여 개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극강한 성절.’
블랙 미러의 맹점을 정확하게 찌를 수 있었다. 이렇듯, 개념을 활용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아는데 왜 덜미를 잡힐 짓을 하겠는가.
단번에 치달으며 거리를 좁힌다.
제네갈이 검을 내려쳤지만, 카인은 오히려 보란 듯이 팔뚝을 내밀었다.
기기긱.
기묘한 소리가 나며 검격이 엇나간다.
갈고 닦은 육신은 블랙 미러라 해도 흉내 낼 수 없었다. 이건 수련의 증거이자 범재의 훈장이었으니까.
갈 길을 잃고 헤매는 칼날을 잡아당기자 그 끝에 걸린 제네갈이 속절없이 끌려왔다. 반쯤 넋이 나간 게 눈에 보였다. 아마 그도 이런 구도는 처음일 테지.
하지만 카인은 방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부지리로 주도권을 잡았다고는 하나, 제네갈은 이 시대가 인정하는 천재 중 한 명이었으니까. 여유를 주면 금세 따라잡힐 게 분명했다.
조금이라도 앞질러 있을 때, 결판을 내야 했다.
쾅.
제네갈이 옴짝달싹 못 하는 사이에 그의 배에 주먹을 꽂아 넣는다. 다만, 방금 전과는 다르게 단단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방어에 특화된 개념을 꺼낸 걸 테지.
제네갈이 모험가 생활을 하며 수많은 개념을 수집했다는 건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개념은 서로 맞물려야 의미가 있었다. 무가에서, 혹은 유파에서 대를 이어 성절을 보완하는 건 그만한 연유가 있어서였다.
그런 의미에서 개념을 한 번에 하나씩밖에 꺼내지 못하는 블랙 미러는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뭐, 들은 이야기지만.’
재능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한 번만 보고 이런 허점을 알아내겠는가.
카인은 후일 무신과 광성이 겨루며 알려질 사실을 떠올렸을 뿐이었다.
“……통하지 않는다고?”
탄식하듯이 흘러나온 목소리는 아주 자그마했지만, 카인의 귀에는 천둥처럼 크게 들려왔다.
“뭘 그리 놀라는 거지? 결함투성이인 성절을 익혀 놓고.”
“내 스승님이 누구인지 아나? 그대는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할 분이야. 그런 분의 절기를 가지고 폄하한다고? 이건 내가 미숙한 거지, 결코 그대가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야.”
광성의 제자가 검성의 제자에게 나무라다니. 말세였다.
하긴 평생 이기기만 하는 싸움을 했을 테니 어깨에 바람이 들어간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아휀 또한 그러했으니까.
하지만 제네갈도 한 방 맞고 나면 깨닫는 바가 많을 거다.
마침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두 성절 간의 상성은 극과 극이었으니까. 모든 능력을 제한해도 몰아붙일 수 있었다.
“크흑.”
“조금 더, 조금 더 발악해 봐라.”
개념의 보조 없이, 발파의 도움 없이 오직 순수한 힘만으로 제네갈을 구석에 몰아넣는다.
폭우처럼 난타를 퍼부으며 전진하자 제네갈이 활용하는 개념의 수 또한 늘어났다. 제네갈은 개념의 보고나 다름없었다. 숨 쉴 때마다 개념이 바뀌니 굳이 여러 무인과 겨루지 않더라도 많은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방어를 도외시한 탓에 긁힌 상처가 늘어났지만, 카인은 멈추지 않았다. 마음껏 칠 수 있고, 그것도 모자라 수련 효율까지 높은 상대를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만나 보겠는가.
카인에게 있어 제네갈은 최고의 샌드백이었다.
여태 쌓은 걸 되돌아보는 계기까지 되어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라 할 수 있었다.
“보물 창고가 따로 없군.”
“이 빌어먹을 새끼가…….”
항상 정갈한 모습을 유지하던 제네갈의 품새가 흐트러졌다.
굴욕적이었다. 누군가를 발판으로 삼은 적은 있어도, 누군가에게 발판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기에, 충격은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그보다 뛰어난 무인이었다면 또 몰랐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상대는 평범했다. 특출난 건 힘밖에 없었다. 천재도 아닌 범재의 영양분이 된다는 사실에 제네갈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기필코 너는…….”
“뻔한 소리는 듣기 싫으니 잠이나 자라.”
빠각!
팔을 굽혀 관자놀이에 주먹―훅―을 꽂아 넣자, 제네갈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뒤로 넘어졌다. 눈구덩이가 가라앉은 게 제대로 맞은 듯했다.
그래도 일단 죽이진 않았다.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인사였으니까.
적당히 구석진 곳에 제네갈을 내팽개친 카인은 등을 돌렸다. 우라도 떨어뜨리고, 제네갈도 쓰러트렸으니 이제 목적을 이룰 때였다.
* * *
얼마 가지 않아 익숙한 수풀이 눈에 들어왔다. 인적이 드물어 길도 형성되지 않았지만, 카인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 앞에 훈련소가 있다는 걸.
언덕과 언덕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갈 정도로 잘 조경된 환경 속에 자그마한 동굴이 자리 잡고 있었다. 훈련소로 들어가는 길이라는 건 두말할 것도 없었다.
입구에 다다른 카인은 정심을 활용해 혈관을 몇 개 터트렸다.
“우욱.”
사정없이 피를 토한 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다리까지 절뚝거렸다. 아무리 통제가 잘 이루어지는 곳이라 해도 위기 상황이 발발하면 허둥지둥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봐도 중상을 입은 사람이 왔는데 반응이 없을 리가.
더욱이 가까운 곳에 이 모든 상황을 대변해 줄 탐사대까지 있으니 금상첨화였다.
풀썩, 힘없이 쓰러지니 등 뒤로 두 명의 사내가 나타났다.
“멈춰라.”
“그 이상 움직이면 베겠다.”
역시 훈련을 받은 귀신답게 밖으로 나온 이들의 어투는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쿨럭. 검을 내려라. 나는 1급 마귀, 크루스다.”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이곳에서 쓰러져서는 안 될 텐데? 그리고 이 근방에서 임무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리는 사전에 통지받지 못했다.”
상급자가 다 죽어 가는데도 의심을 거두지 않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래, 조직은 이런 곳이었다.
“무술 사범, 진을 불러와라. 그 녀석은 내가 우라 님과 합석했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나에 대한 걸 알고 있을 거다.”
우라가 거론되자 귀신들의 표정은 삽시간에 바뀌었다.
지난 삶 속에서 카인이 깨달은 게 있다면 조직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거였다.
조직이 정한 테두리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 무엇이든지 통용되었다. 귀신끼리 사랑을 나누고, 우정을 설파하며, 은연중에 파벌을 형성할 수도 있었다.
우라라는, 이곳 최고위급의 이름이 통하지 않을 리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황급히 달려간 귀신 하나가 진을 데리고 왔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게…….”
말끝을 흐린 카인이 피를 한 바가지나 토하자 진은 서둘러 그를 일으켰다. 카인이 우라와 함께 활동 중이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여기에 있다는 건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뜻.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시죠.”
“고맙군.”
진의 보증하에, 훈련소 안으로 들어간 카인은 가벼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가 병상에 누워 길게 숨을 내쉬자 진은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입을 열 수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적습이 있었다.”
“적습이라니요?”
“이번에 사선 여단에서 편성한 탐사대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나?”
“테로스탄을 사냥하기 위해 모이는 탐사대라고 들었습니다.”
하탄달 백작령에서 주로 활동하니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소문이었다.
“나는 우라 님과 함께 그 탐사대에 참가했다.”
“그러면 우라 님이 말씀하셨던 재미있는 의뢰라는 건…….”
“그래, 마물을 사냥하는 거였지.”
“그러면 테로스탄에게 이렇게 당한 겁니까?”
그럴듯한 추론이었다. 테로스탄은 압도적인 크기로 유명한 마물. 아무리 탐사대가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해도 모자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카인의 입에서 나온 건 진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대답이었다.
“알고 보니 탐사대는 테로스탄을 사냥하는 게 아니라 이쪽을 노리고 온 거였다. 돌아가는 상황을 깨달은 우라 님은 지금 그들과 대치 중이고. 나는 이 사실을 전하기 위해 겨우 그곳에서 빠져나온 거다.”
“그 말은 적들이 이 훈련소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소리가 아닙니까?”
벌떡 일어난 진이 마른침을 삼켰다.
다른 곳도 아니라 사선 여단이 중심이 된 탐사대였다. 우라가 있다고 해도 부딪치면 어떻게 될지 가늠할 수 없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군요. 기다리고 계십시오. 제가 사정을 알리고 오겠습니다.”
카인은 말릴 틈도 없이 뛰어나가는 진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히죽 웃었다. 병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귀찮게 증인을 처리하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한결 놓였다.
“어서 대대를 편성해라.”
“개조실에도 현황을 전파해!”
“기본 훈련은 잠시 중지한다.”
진이 제대로 알린 건지 슬쩍, 문을 열어 그 틈 사이로 주변을 둘러보자 여기저기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황급히 달려가는 모습이 그만큼 경쾌할 수가 없었다. 시선도 바깥으로 쏠렸겠다, 이제 정보만 구하면 된다.
휙, 손목을 돌려 시계를 활성화시킨다.
지겹도록 돌아다닌 훈련소지만,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야 하는 법. 기억과 다른 길이라도 나왔다간 돌이킬 수 없으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했다.
갱신된 지도를 쳐다본 카인은 숨이 멎는 듯했다. 혹시나 싶어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허공에 떠오른 아이콘은 변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제네갈의 말대로 이곳은 고대 유적지가 맞는 듯했다.
따지고 보면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정신 제약과 감정 제어에 사용하는 기술은 현대 문명의 것일 테니까.
그런 기술을 활용하는 장소가 신의 무덤이 아닐 리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인력 갱생 수용소라니. 어감이 좋지 않았다. 인간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릴 수 있는 도구까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역시 조직은 상종할 수 없는 곳이었다.
‘아니지.’
조직은 그저 현대 문명의 잔재를 활용했을 뿐이었다. 저런 이름이 붙여진 건 수천 년 전일 터.
순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등골을 훑고 지나갔다. 현대 사회에서 저런 이름이 허용될 리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머리를 돌려도 마땅히 떠오르는 해답은 없었다.
* * *
대부분 3급 아귀밖에 없는 훈련소지만, 그래도 고급 인력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개조실.’
정신 제약과 감정 제어, 그리고 신체 개조가 일어나는 장소. 이곳에서 실질적인 귀신이 태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무술 사범이었을 때도 카인은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개조실에 들어갈 수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1급 마귀뿐이었다. 그만큼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진 구역이었다.
평상시라면 들어가기도 전에 들켰을 테지만, 진이 전파한 소식을 들은 건지 최소한의 인원만 남아 있었다.
경비는 어느 정도인지, 길은 얼마나 복잡한지, 기기는 어디에 배치되어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카인에게는 시계가 있었다.
한 번 손목을 흔든 카인은―
‘중앙 제어 시스템.’
허공에 떠오른 아이콘을 보며 방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