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18
018화 드러내다 4
* * *
하지만 꾸준히 상승해도 늘 모자랐다. 해야 할 일이 저 앞에 있기에 발걸음이 절로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해갈되지 않는 갈증이 항상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비약을 구하고 싶은데 말이지. 하다 못 해 환약이라도 있으면.’
애당초 영약은 바라지도 않았다. 구할 수 없다는 걸 아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움만 남는다. 성년이 되기 전에 예전의 기량을 되찾지 못하면 과거로 돌아온 의미가 없었기에.
기운을 갈무리한 카인이 옷을 갈아입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멀리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손님이에요. 기, 기다리게 하면 안 돼요.”
“누구길래 호들갑이야.”
“나, 나가시면 아실 거예요.”
도깨비라도 본 건지 방 안으로 들어온 피아가 허둥지둥 등을 밀었다. 쫓겨나듯이 방 밖으로 나온 카인은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볼 수 있었다.
먼젓번에 싸웠던 아이들과―.
“안녕하십니까, 카인 님.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에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아침 일찍부터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면식이 있는 기사였다.
앞머리를 멋들어지게 뒤로 넘긴 중년 남성은 성에서도 유명한 인물이었다. 짙은 눈썹과 매끈한 피부 때문인지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청년처럼 보였다.
그는 라프만의 뒤를 이어 백작령의 이인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매튜 브라암히트.
듣기로는 오더 링크의 일부분도 전수받았다고 했으니 넓은 의미에서 후계자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괜찮아요. 저도 개인적으로 궁금하거든요. 기사단장이 무슨 말을 할지.”
기사단장인 매튜가 찾아온 건 예정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끼는 제자를 그렇게 만들어 놓았는데 스승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카인도 각오하던 바였다.
강압적으로 나올까? 그것도 아니면 은근하게 돌려 말할까? 어느 쪽이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카인은 느긋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대처를 기다렸다.
하지만 매튜가 오자마자 취한 행동은 둘 다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카인 님. 사정은 모두 들었습니다. 제 제자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어떤 말을 하시더라도 변명할 말이 없습니다.”
이내, 허리를 깊이 숙인다. 솔직하게 사과한 것처럼 보이나 그 안에 깃든 저의는 전혀 달랐다.
‘이거 봐라?’
매튜를 보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익히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저건 뒤를 노리는 자의 눈빛. 반평생 그림자 속에서 산 카인이었다.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생각보다 음흉한 부류인 듯했다.
카인을 응시하던 매튜가 멀뚱히 서 있는 제자의 머리를 짓누른 건 그때였다. 본의 아니게 고개를 숙이게 된 데이론이 입술을 삐죽이자 엄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데이론.”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 날에 있었던 일을 잊지 못한 건지 의기소침한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카인은 어깨를 으쓱였다. 스승과 제자가 한마음이 되어 고개를 조아리는데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심하게 대응했습니다. 먼저 양보했다면 좋게 끝났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이렇게 사과를 받을 처지가 못 됩니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니 다행입니다.”
고개를 든 매튜가 한결 가벼운 목소리로 고했다.
“이렇게 되니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계기라도 없었다면 서로에게 다가가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그 말은…….”
“네, 저도 처음엔 카인 님이 탐탁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게, 6년 만에 귀환하신 가주님이 갑자기 데려온 제자였으니까요. 아닌 밤중의 홍두깨라고나 할까요.”
지금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은데. 매튜를 쳐다본 카인이 말을 아꼈다.
“즉흥적인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군요.”
“가주님은 보기완 다르게 내키는 대로 행동하시는 편입니다. 최고의 결과를 내는 선택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선택도 있었지요.”
“스승님의 선택이 후자가 될까 봐 걱정했다는 겁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되겠지요.”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입은 꿀이 발라진 것처럼 매끄러웠으나, 배 속에는 칼이 있으니 어떤 면에서는 저돌적인 로건보다 더 껄끄러운 상대였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건 아니다 싶더군요. 늦었을지 모르겠지만 제 사과를 받아 주시겠습니까?”
“그건 저를 스승님의 제자로 인정하겠다는 건가요?”
“제가 정할 일은 아닌 것 같군요. 지금 말씀드리는 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반박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겁니다. 카인 님이 무사히 가주님의 가르침을 계승하면 자연스럽게 제 충성도 따라가겠죠.”
“제가 하기 나름이라는 건가요.”
“정확하게 들으셨습니다.”
“솔직하군요.”
말을 배배 꼬아 하는 재주도 제법인 것 같고.
성취에 따라 충성하겠다는 말은 기대에 벗어나면 절대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백작령을 지키는 기사단장은 생각보다 연기를 잘하는 듯했다.
“부디 저희에게 걸맞은 주인이 되어주시길.”
“저희라는 말은 저 아이들도 포함된다는 겁니까?”
“미덥지 않겠지만 모두 도련님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어느새 호칭이 바뀌었지만 카인은 지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속내를 감춘 매튜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을 지경이었으니까.
고개를 돌려 뒤에 서 있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그에 놀란 아이들은 어제 일어났던 일이 떠오른 건지 이리저리 고개를 비틀었다.
세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데이론, 줄리앙, 소마.
무리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 일렬로 선 세 아이를 보니 도미노가 생각났다.
크고, 어중간하고, 작고.
“너희가 날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너희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 앞으로 볼 날이 많을 테니까.”
쉽게 잊고, 쉽게 친해지는 시기가 아니던가. 더구나 격차를 보여 주었으니 함부로 대하기도 힘들 터. 지금부터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해도 늦지 않았다.
“서로에게 서운했던 점은 털고 다시 시작하는 게 어때?”
손을 내밀어 화해를 청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악귀가 되어 자신들을 후려 팬 이가 태도를 바꾸자 아이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어찌 반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인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엇갈린다.
“누가 너 같은 거랑!”
심하게 당했던 기억이 사라지지 않은 것인지 데이론은 콧김을 내뿜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단연 돋보이는 반응이었지만 그것도 삼일천하였다.
“데이론.”
“죄송합니다.”
하늘보다 높은 스승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만다.
카인은 그런 그를 보며 비웃었다. 매튜가 지켜보고 있기에 손을 내민 것이다. 미래의 상사가 곁에 있는데 정중한 사과를 거절할 이는 없을 터.
아이들은 매튜를 힐끗 쳐다보더니, 내민 손을 붙잡았다. 시꺼먼 속내를 숨긴 채 은원을 정리한 카인은 밝게 웃었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잘해준다는 보장은 없지만.
착한 사람이 못되게 굴면 두고두고 기억하며 곱씹지만, 못된 사람이 착하게 굴면 기뻐하며 따른다.
채찍이 먼저냐, 당근이 먼저냐의 문제였지만 안타깝게도 효과는 정반대였다.
데이론, 줄리앙, 소마. 세 사람을 번갈아 쳐다본다. 관계가 정리됐으니 새로운 호칭이 필요했다.
“음, 그러니까, 대중소 브라더스, 너희도 잘 부탁해.”
* * *
시간이 흐를수록 수련은 격렬해졌다. 이게 정말로 수련이 맞는 건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신전에 다녀온 라프만이 본격적으로 검을 들었던 것이다. 그것도 죽일 기세로.
머릿속에 실전밖에 없는 듯했다.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활자로 표현할 수 있는 건 전부 몸에 때려 넣었다.
“어차피 너는 둔재다. 머리를 써서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버려라.”
“네게 필요한 건 압도적인 피지컬이다. 네 우둔한 머리로도 수 싸움을 이어갈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피지컬.”
“패배가 눈앞에 있어도 멈추지 마라. 물론 죽고 싶은 게 소원이라면 멈춰도 된다.”
신기에 이른 검술이 내장을 밀어내고 배와 가슴을 분리하는 근육을 건드린다. 한 치라도 벗어나면 죽을 수도 있건만, 라프만의 얼굴엔 망설임의 조각조차 보이지 않았다.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내는 철저하게 계산된 연극에 불과했다.
“이곳이 바로 횡격막이다.”
“이곳은 경동맥.”
“그리고 여기는 힘줄이다. 절대로 베이면 안 되는 곳이지.”
검이 지나갈 때마다 몸 위로 상흔이 아로새겨진다. 라프만은 시체를 해부하는 것처럼 차분하게 급소를 노렸다. 실험대에 오른 카인의 얼굴은 시시각각 변할 수밖에 없었다.
“정련은 이런 곳도 모두 단련해야 한다. 신체의 한계를 활용하는 성절이니까. 네 경맥은 신체를 단련시키기 위해 흐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주일이나 지속된지도. 이제는 카인도 포기한 상태였다. 정련과 정심은 이렇게 배우는 거라고 말하는 듯했으니까.
하지만 괴이하게도 라프만의 지도를 받을 때마다 신체 능력이 급격하게 성장했다.
뼈는 단단해지고,
피부는 질겨지며,
근육은 압축되고,
혈관이 요동쳤다.
마치, 강철이 되어가는 듯했다.
마력이 주는 특유의 고양감은 언제 느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강렬하고 개운했다.
헤브니아는 전생과 다른 세계였다.
기본적인 포텐셜 자체가 달랐다. 예를 들면 항우장사의 기준이 그러했다.
성인 남성이라면 수련 여하에 따라 바위도 깨부술 수 있는 완력을 지닐 수 있었다. 그것도 마력이나 마나의 보조 없이.
물론 한계까지 몰아붙여야 얻을 수 있는 결과로, 평범한 인생을 사는 소시민이라면 그렇게 될 이유도 없거니와 그렇게 할 이유도 없었다.
중요한 포인트는 인간에게 허용된 한계가 높다는 점이다.
물론 카인에게 해당 사항은 없었다. 맞으면 맞은 대로 아팠다. 기본적인 신체 능력은 전생과 비슷했다. 라프만이 재능이 없다고 타박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정심은 어떤 효용을 가지고 있나요?”
“익히면 정련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그러면 정련은 어떻습니까?”
“익히면 정심을 확실하게 활용할 수 있다.”
선문답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카인은 한마디라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해석하기 어려울 뿐이지 허튼소리가 아니라는 건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이다.
“순환 구조라는 거군요.”
“그래, 서로 다르나 결국엔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순간, 빛이 터져 나온다. 검의 궤적을 읽은 카인이 팔꿈치로 내려찍었다. 동체 시력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직감에 맹신한 결과. 팔꿈치는 정확하게 검면을 후려쳤다.
하지만…….
이변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엿가락처럼 출렁인 검이 팔꿈치를 무시한 채 가슴을 꿰뚫고 들어간 것이다.
심장에 도달한 날붙이는 아슬아슬하게 치명적인 부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피부와 근육, 혈관을 모두 건드렸음에도 불구하고 피는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의지가 담긴 검은 더 이상 검이 아니었다. 생사조차 선별할 수 있는 힘. 십좌의 경지를 단편적으로 맛보았지만 감상할 여유는 없었다.
죽음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머리보다 먼저 인지한 몸이 제멋대로 굳은 탓이다.
“심장은 가장 중요한 기관이자 네게 꼭 지켜야 하는 부위다. 가슴이 꿰뚫리는 고통을 알고, 피하기 위해 발악해라. 몸에 새겨진 본능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경험 중시라니. 완전히 악독하지 않은가.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매정한 교육 방침에 카인은 쓰러지며 불만을 토해냈다. 체력은 물론이고, 기력까지 바닥난 탓에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 날 수련은 그걸로 끝이었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연무장 밖으로 나온 카인을 피아가 맞이했다.
“어, 어서 방으로 가요. 치료액은 받아놓았으니까요.”
목소리가 떨린다.
기괴하게 꺾인 팔과 근육과 핏줄이 훤히 보이는 상처. 카인의 모습은 처참했다. 무덤을 파고 기어 나오는 좀비가 따로 없었다.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질 수 없었기에 피아의 얼굴은 삽시간에 사색이 되었다.
“왜 네가 울먹이는 거야? 누가 보면 네가 수련한 줄 알겠어.”
카인의 입장에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허례허식 없이 정수만을 전하고 있었으니까. 몸을 망가뜨리는 거로 강해질 수 있다면 팔이라도 헌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