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석양 2
* * *
[???]물음표 투성이라 어떠한 곳인지 알 수 없지만, 케이가 말한 롤랜드 왕실의 보물이 저곳에 있다는 건 알 것 같았다.
신의 무덤이 아직까지 무사한 걸 보면 조직은 눈치채지 못한 게 틀림없었다. 일단 네메시아의 왕자, 파르발부터가 귀신이었던 것이다. 파악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있었을 터.
‘아니, 그 전에…….’
괴도 케이는 왕궁에 신의 무덤이 있는지 어떻게 알아낸 것인가.
카인은 검지로 팔걸이를 툭툭 두드렸다. 단언하건데, 케이는 단순한 도둑이 아니었다. 어쩌면 케이가 노린 보물이 전부 알게 모르게 신기와 관련된 건 아닐까.
불쑥 드는 생각에 카인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케이의 이름을 빌려 이득을 취하고 빠지려고 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만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의 귀신도 아닌 사람이 어째서 신의 무덤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알아내야 했기에.
그럴듯한 가설이 떠오르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쉽게 단정할 수 없었다.
섣불리 행동하는 건 금물이었다. 수풀만 건드리려다 뱀까지 상대하는 수가 있었으니까.
어차피 케이가 지정한 날이 다가오고 있으니, 싫어도 마주칠 수밖에 없을 터.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카인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어.”
“무엇이 궁금한 겁니까?”
“신의 무덤이 휑한 이유. 현대 문명이 예기치 못하게 사멸했다고 해도 그렇게 깨끗한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야.”
종종 신기가 발견되긴 하지만, 규모를 감안하면 비정상적으로 적은 수였다.
하지만 이브의 입장에서는 추론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애당초 그녀는 고작 그런 걸로 의문을 품지 않았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었기에.
“전에 나노 마테리얼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그래, 만능기라고 했잖아.”
“현대 문명의 소비는 나노 마테리얼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원하는 물건이 있다면 따로 구입하는 게 아니라 나노 마테리얼로 구성하는 편이 더 빠를 정도니까요.”
“그만큼 일상에 스며들었다는 거네. 그렇다면 남은 신기는……?”
카인이 탄성을 터트리자 이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마도 공장에서 생산된 물품일 겁니다. 나노 마테리얼의 도움 없이.”
“사라진 물건은 나노 마테리얼로 구성했다는 소리고.”
“정확합니다. 나노 마테리얼은 개체이자 군체. 범용성과 효용성이 뛰어나다고는 하나, 본질은 수많은 알갱이니까요. 가용 한계가 지나 대기 중에 흩어졌을 겁니다.”
납득할 수 있었다. 6500년 후의 미래까지 감안해서 설계된 건 아닐 테니까.
무언가 맥이 빠지는 듯했다. 결국, 자연 증발했다는 소리이지 않은가.
카인이 허탈하게 웃고 있자니, 스피터 패스를 즐기고 온 나이아가 가까이 다가왔다.
팔짱을 낀 그녀는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내밀었다.
“내 활약을 잘 보았겠지?”
“글쎄, 네가 스피터를 학대하는 건 본 것 같은데 말이야.”
“섭섭한 말이구나. 바다 위에서 스피터와 나는 일심동체였다. 저기 오리올도 내 솜씨에 감탄한 게 보이지 않더냐.”
“아니, 그런 적 없다만.”
수건으로 머리를 털던 오리올이 냉담하게 답했다.
“크흠, 아무튼! 자연과 교감했더니, 목이 마르구나. 카인, 너도 그렇겠지?”
카인은 두말하지 않고 동전을 몇 개 던졌다. 빠르게 동화를 낚아챈 나이아가 밝게 웃었다.
“역시 말이 통하는구나.”
“귀찮은 건 딱 질색이라. 어차피 줄 수밖에 없다면 미리 주는 게 이득이지.”
“까칠하기는. 너도 마침 목이 마른 게 아니더냐. 자, 마시고 싶은 걸 말해 보거라.”
“더 더블 리스트레토 벤티 하프 소이 논팻 디카프 올가닉 초콜렛 브라우니 아이스드 바닐라 더블샷 진저브래드 프라푸치노 엑스트라 핫 위드 폼 윕프드 크림 업사이드 다운 더블 블렌디드 원스윗엔 로우 엔드 원 너트라스윗 엔 아이스.”
“뭐, 뭐라고?”
“아이스 커피면 돼.”
한 박자 늦게 장난이었다는 걸 눈치챈 나이아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등을 돌렸다. 화났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쿵쿵거리며 걸어가는 그녀를 보며 카인은 입꼬리를 올렸다.
오리올이 입을 연 건 그때.
“제가 같이 가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굳이 그래야 하나?”
“그래야 말썽이 없지 않겠습니까?”
오리올이 나지막이 고갯짓했다.
나이아의 머리칼은 바닷물에 푹 젖어서 어딘가 모르게 처연해 보였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윤기가 흐르는 다갈색 피부는 건강, 그 자체였다. 눈에 띄는 건 당연지사. 그녀가 어디를 가든 다른 남자들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군. 갔다 와라.”
“알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오리올과 나이아가 투닥거리는 게 보였다. 새삼스레 느끼는 거지만, 바깥세상에 나와 수많은 것을 경험한 나이아는 회귀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때는 부족 중심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염려가 무색하게 나이아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카인은 그게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찜찜하기도 했다. 그녀의 인생을 강제로 비튼 것 같아서.
하지만 그런 사색을 이브가 알 리 없었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건 자제를 모르는 치한이었다.
“그쯤 하시죠, 공작님의 눈빛 때문에 나이아의 엉덩이가 꿰뚫릴 것 같습니다.”
“그럴 리가 있냐. 그냥 수영복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 말은 곧 꼴린다는 거군요.”
“…….”
카인이 질색하며 노려보자 이브는 빠르게 정정했다.
“오타가 났습니다. 그 말은 곧 끌린다는 거군요.”
“오타 내지 마.”
힘없이 답한 카인이 이브의 정수리를 두드렸다.
* * *
나이아는 기어코 따라온 오리올을 힐끗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저기에서 파는 팥빙수도 먹고 싶구나. 나는 여기에 줄을 설 테니, 그사이에 너는 저기에 가서 냉큼 사 오거라.”
“하지만 너와 함께 다니라는 가주님의 지시가 있었다.”
“건너편에 있는 가게에 다녀오라는 것뿐이지 않더냐.”
그렇게 오리올을 보낸 나이아는 자신의 차례가 오길 기다리며 주변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하필이면 맨 끝에 있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진 건 그때.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나이아는 음울한 기운을 흩뿌리는 남자를 볼 수 있었다.
금발을 아무렇게나 기른 사내와 나이아의 눈이 마주친 건 거의 동시.
순간, 사내의 입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말이 새어나왔다.
“그 귀, 알브인가.”
화들짝 놀란 나이아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걸 어떻게?”
그녀가 착용한 귀걸이는 호른이 제작한 물건이었다. 고계위 마법사라고 해도 쉬이 파악할 수 없는 마법이 새겨져 있었다.
“그쪽으로 발달된 감이 좋을 뿐이다, 하등 쓸모없는 능력이지만. 어찌 됐든 걱정하지 마라, 동족을 고발할 만큼 타락하지는 않았으니까.”
그제야 나이아는 사내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다. 그의 오른쪽 귀는 뭉툭하게 잘려 나가 있었다.
사내도 그 시선을 눈치챈 건지 나지막이 읊조렸다.
“이 나라의 왕 때문이지.”
“그게 무슨 소리더냐.”
“날 모르는 건가? 하긴 관광객이 타국의 사정을 알 리 없지.”
자조적으로 웃은 사내가 첨언했다.
“내 이름은 마힌. 이 도시의 근위대장이다.”
마힌이라면 나이아도 알고 있었다. 네메시아의 왕, 톨란이 구입한 노예이자 절정의 검사. 리벨리온에서도 주시하는 인물이었다.
빨리 떠올리지 못한 건 장소 때문이었다.
“이곳엔 왜 온 것이더냐?”
괴도 케이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어렸을 때 자주 온 곳이라서. 불시 검문은 은밀하게 이루어져야 하니까.
구질구질한 변명이 머릿속을 떠돌았지만, 마힌은 그 어떠한 것도 입에 담지 않았다.
“나야말로 묻고 싶군,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지. 이곳은 인간들의 땅이다. 결코 너같이 어린 알브가 와도 되는 장소가 아니라는 거다.”
“그런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더냐.”
“의미야 많지.”
마힌의 눈에 비친 소녀는 금방에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녀는 인간과 알브가 물과 기름처럼 결코 섞일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먹잇감으로 전락할 뿐이니까.
그래, 바로 그처럼.
“인간은 태생적으로 다름과 틀림을 구별하지 못하고 무턱대고 차별하는 종족이다.”
“그건 알브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더냐.”
“말은 좋군. 그러면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거지?”
마힌이 목에 달린 초커를 만지작거렸다. 나이아는 그게 단두대처럼 활용되는 마법 도구라는 걸 단번에 눈치챘다. 말하자면 개목걸이. 마수에게나 사용할 법한 물건이었다.
“힘들다면 나랑 함께 가는 게 어떻겠더냐. 도와줄 만한 사람을 알고 있다.”
“듣지 않은 걸로 하지. 인간들 사이에서 웃고 떠드는 알브의 도움은 받고 싶지 않으니까.”
애당초 초커는 지정된 구역에서 벗어나면 목을 옥죄었다. 도망치기 전에 먼저 죽을 거라는 건 자명한 일. 마힌은 미래가 훤히 보이는 결말에 목숨을 걸고 싶지 않았다.
“너도 귀를 감췄기에 이곳에서 어울릴 수 있을 뿐이다. 언제나 기억해라. 알브는 인간과 다르다는 걸.”
“설령 다르다 해도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서로 배려하고 행동하는 것이지 않더냐.”
“그러면 네가 귀를 드러내도 사람들이 좋아할까?”
“그건…….”
쉬이 대답할 수 없었다.
아인종이 차별당하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다. 대륙에 깊이 뿌리박힌 사상은 결코 얕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녀도 바깥세상으로 나오자마자 귀걸이부터 구했지 않은가. 마힌의 일갈을 일부분 허용한 거나 매한가지인 행동이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보아하니 충분히 즐긴 것 같은데 한시라도 빨리 미미르로 돌아가라. 이곳은 네게 어울리지 않으니까.”
점점 마힌이 멀어졌지만 나이아는 그를 잡지 못했다.
* * *
신기를 찾으라는 조직의 명에 따라 네메시아로 간 아리아는 도착하자마자 해당 구역을 맡고 있는 귀신을 찾았다.
자신을 파르발이라 소개한 사내는 예의 바르게 그녀를 응대했다.
“왕궁에는 그런 물건이 없습니다. 그건 1급 마귀인 저 파르발이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괴도 케이가 예고장을 날렸다는 소문이 돌고 있던데, 그건 어떻게 설명하실 거죠?”
“글쎄요, 저도 찾지 못한 걸 일개 좀도둑이 찾았다고 하니 의아할 따름입니다. 아마 허탕만 칠 겁니다.”
“확신할 수 있습니까?”
“확신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믿고 맡기겠습니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알려 주시길.”
묘하게 으스대기 좋아하는 귀신과의 만남을 뒤로한 채, 거리로 나온 아리아는 탐색에 나섰다. 눈에 띄는 이변은 없었다. 낮에는 환희, 밤에는 환락으로 바뀌는 도시의 정경이 흥미로울 뿐. 이렇다 할 진전은 없었다.
크롬의 말대로 우르르 몰려다닌다고 살펴볼 거리가 늘어나는 건 아닌 듯했다.
어느덧,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타닥.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한 시계탑. 그 정상에 착지한 아리아는 온누리에 깔리기 시작한 석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네메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찾은 장소라 그런지, 명당이 따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