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분탕 1
* * *
그런 관점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바, 알렉산더는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반박했다.
“하샤 왕국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면 우리 나름대로 유감을 표했네. 델리아가 저지른 건 어디까지나 그녀가 혼자 짊어져야 할 업보지. 인간도 그렇지 않나? 살인자가 이웃이라고 같이 잡혀 들어가지는 않을 테니까.”
“아, 개인의 일탈일 뿐이다? 어디에서 많이 듣던 문구인데 말이야.”
말끝을 늘린 카인이 천연덕스럽게 탄성을 터트렸다.
“그래, 위선자들이 자주 써먹던 문구였지. 제 꼬리를 잘라 낼 때 말이야.”
반푼이로 알려져 좋은 점이 있다면 아무렇게나 말해도 찰떡같이 이해한다는 거다. 하염없이 선을 넘어도 그래 그런 사람이었지, 하고 포기하는 건 덤.
그만큼 세간에 알려진 카인이라는 인간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는 망나니였다.
알렉산더 또한 그 점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비난하기보다 겸허히 받아들였다.
“마음 아픈 일이네. 믿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는 건, 진심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자네 같은 이들이 있기에 우리가 세상에 나온 걸지도 모르지. 그래, 우리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게.”
고해 성사에 가까운 발언이었으나, 카인에게는 가소로울 뿐이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당연히 너희들이 그렇게나 부정하는 델리아도 한 번 만나 보았지. 제법 많은 지원을 받은 것 같던데 말이야.”
“다른 인간과 손을 잡은 거겠지. 우리의 뜻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뿐이네.”
“세계 정복?”
“인, 류의 평화라네.”
“믿기지 않지만 말이지.”
비릿하게 웃은 카인이 첨언했다.
“델리아가 무사히 하샤 왕국을 차지했다면 너희들은 과연 이 자리에 나와 그녀를 지탄했을까, 아니면 묵인했을까. 나는 그게 궁금하단 말이지.”
“물의의 소지가 있는 발언은 삼가하게. 우리는 성황교의 초청까지 받은 몸이니까.”
고작 그런 경고가 무서워 물러날 거였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과연 긴 역사 동안 일탈한 건 그녀 혼자뿐일까? 혹시 성공한 녀석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들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닐까?”
툭툭 던지는 것 같은데 하나같이 핵심을 꿰뚫는 주제밖에 없었다. 외통수는 아니지만, 거론해서 좋을 건 없는 화두였기에 알렉산더는 그 의문을 가르듯이 단언했다.
“우리를 어떻게 보는 건지 모르겠지만, 당연히 나섰을 거라네.”
“그렇겠지. 이거, 당사자의 의견도 묻지 않고 몰아붙인 것 같군. 사과하지.”
실컷 당기더니 이번에는 놓아 버린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논답. 무언가 석연찮지만, 기껏 긍정적인 대답이 나온 것이다.
무턱대고 부정하는 건 우스울 뿐인지라 알렉산더는 카인이 생각을 바꾸기 전에 냉큼 그 말을 받았다.
“그래,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로군. 우리도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 위해 노력할 테니 자네도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봐 주게.”
반사적으로 덕담을 늘어놓던 알렉산더가 묘한 분위기를 감지한 건 그 순간.
한 박자 늦게 비에나의 표정을 확인한 그는 카인이 무엇을 노렸는지 깨닫고 말았다.
여태까지 시비를 걸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카인이 제 의견을 들려주고 싶었던 건 그가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소녀였다.
방금 사과한 건 여지를 주지 않고 빠져나가기 위해 부린 수작에 불과했다. 하지만 실책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비에나의 입이 조가비처럼 굳게 닫혀 버렸으니까.
“비에나 예성녀, 슈발체베인 공작의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사견일 뿐이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째서 알렉산더 님이 이렇게 열을 올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의뭉스러운 어투였지만 그 의도까지 의뭉스러운 건 아니었다. 왜 의심스럽게 구느냐고 묻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사족이 길어지면 발목만 잡힐 것 같아 알렉산더는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하하, 나도 모르게 서러움을 토해 내느라 비에나 예성녀에게 못 볼 꼴을 보여 준 것 같군. 이것도 모두 진심이기에 그런 것 아니겠나. 그러면 선별식 때 보도록 하지.”
알렉산더를 위시한 무리는 처음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장내에 정적이 흐르자 비에나는 의례적인 인사말을 던졌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됐군요.”
“너 좋으라고 나선 게 아니니까 고마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속은 시원했습니다.”
모진 말을 할 수 없는 입장이라 괴로웠는데 제삼자가 나타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니,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물론 공작님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건 아니겠지만.”
보나 마나 경쟁자를 쳐내기 위해서 나선 것이리라.
비에나의 의심병은 한결같았다.
카인도 그녀의 기질을 알고 있기에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애당초 처음부터 끝까지 사익을 위해 끼어들었던 것이다.
“나도 너에 대한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그거 다행이군요.”
등을 돌린 비에나가 차가운 바람을 일으키며 멀어진다. 그에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인 몬타가 서둘러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홀로 남은 카인은 느긋하게 일어났다.
공작으로서 해야 할 일은 모두 마쳤으니, 이제 외유를 나갈 차례였다.
* * *
오토마타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델리아가 그런 짓을 저지를 거라는 걸 모두 알았다는 듯이, 그녀를 대신해 속죄하겠다는 변명을 무기 삼아, 야금야금 일상 속에 스며들었던 것이다.
성황교의 위세를 빌려 자신들만의 세력을 구축하려는 조짐까지 보였다. 호가호위의 전형이지만, 몸집을 불리는 데 이만한 방법도 없었다.
경이와 경외는 미지에서 나왔다.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할 현상이나 대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배척받아 왔다. 그렇기에 오토마타는 대중들이 수긍할 수 있는 선까지 눈높이를 낮췄다.
신기라는 건 보구의 연장선이고, 신의 인형도 아인종의 일종일 뿐이라며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뿌리 자체가 다르다는 걸 알려 줄 이가 없으니 사람들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건 카인도 막아설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었다. 미지가 아니게 된 신의 인형은 더 이상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남들보다 조금 다른 존재였을 뿐이었으니까.
알렉산더가 주장했던 대로 델리아의 야심 또한 개인적인 탈선으로 일축되었다.
조직이 심상치 않은 변화를 느끼고 금지인 나힘달에 귀신들을 집합시킨 것도 공감할 수 있을 정도.
‘오늘만 해도 여럿 보았지.’
솔직히 말해 행렬에 천년동자가 나타났을 때, 습격을 감행할 줄 알았다. 하지만 책임자로 예상되는 크롬이 선택한 건 방관이었다.
막중한 임무인 만큼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는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재미없지.’
이것저것 다 재 본 다음에 들어가는 게 무슨 싸움이란 말인가. 자고로 싸움이란 뒤가 없어야 박진감이 넘치는 법이었다.
눈에 뻔히 보이는 대립은 카인이 바라는 게 아니었다. 그가 바라는 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난전.
이렇게 된 거, 어차피 터질 분쟁 조금 앞당길 생각이었다.
서로 좋아서 죽고 못 사는 눈치인데 고백하지 않고 지지부진하게 시간만 끌고 있으니 말이다.
“준비되었어.”
어깨에 앉은 아투의 입에서 호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카인은 가면을 고쳐 썼다. 다행히 오늘은 눈이 내렸다. 빠르게 처리하고 도망치면 눈 감아 주겠다는 듯이.
정면을 응시한다.
그러자 자그마한 폐공장이 눈에 들어왔다. 본디 방직 공장이 들어설 예정이었으나, 자금이 부족해 부지만 남았다고.
흔히 말하는 노는 땅이었다.
당연하게도 임자 없이 방치된 장소에는 벌레가 꼬였다. 귀신들도 그중 하나.
조사는 끝마친 상태였다. 그네들은 들키지 않았다고 여길 테지만, 그 확신은 오만에 가까웠다.
조직이 사용하는 표어와 표식은 모두 카인의 머릿속에 들어 있었으니까. 절조 없이 벽에 끄적인 낙서는 치명적인 약점을 낳았다.
이곳에 리벨리온이 오게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확실히 통제해라.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르게.”
그 말과 함께 높이 치솟은 카인은 유성이 되어 폐공장의 천장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쿵.
지면에 깊은 족적을 남기며 착지한 그는 재빨리 장내를 훑었다.
1급 마귀 하나에 2급 살귀 다섯. 그리고 3급 아귀 열하나.
기사단이라 자칭해도 될 정도로 많은 인원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이마저도 나힘달에 온 귀신들의 수를 고려하면 별거 아니겠지만, 반면교사로 삼기엔 충분했다.
카인이 자세를 바로잡은 것과 귀신들이 어리둥절한 기색을 지우고 무기를 든 건 거의 동시.
양 진영 간에 오가는 대화는 없었다.
그저 몸으로 제 의지를 보여 줄 뿐.
카인도 바라던 바였다.
“크랴랴야앗!”
고함을 지르며 쇄도한 귀신 한 명이 머리를 깨부술 기세로 해머를 내리찍자, 카인은 그에 대항하듯이 오른 주먹을 쳐올렸다.
쇠와 살의 충돌.
성사될 리 없는 대결을 지켜본 귀신들은 전자의 승리를 점쳤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들의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부딪치기가 무섭게 바윗덩이만 한 해머가 섬뜩한 파열음을 내며 산산이 조각났던 것이다.
“무슨……?”
카인은 물어볼 기회도 주지 않고 사내를 걷어찼다. 제기를 차는 것 같이 경쾌한 스텝에 시작된 발차기였으나, 그 위력까지 가벼운 건 아니었다.
쾅!
벽에 처박힌 사내는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고개를 내리깔았다.
상대방의 역량을 인지한 귀신들이 진형을 이룬 건 한순간이었다. 카인은 돌아가지 않고 그 안으로 몸을 던졌다. 보란 듯이 우리 안으로 들어온 카인을 비웃은 귀신들은 반격에 나섰다.
동, 서, 남, 북.
동시다발적인 맹공에 사각지대는 없었다. 거기에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계까지 이어졌다. 주도권은 넘겨주지 않겠다는 생각이 역력한 공세.
실제로 카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온갖 날붙이가 급소를 노리고 지나갔지만, 꽂히는 일은 없었다. 철판에 맞은 것처럼 맥없이 튕겨져 나갈 뿐이었다. 들끓는 마력을 담은 검기도, 거력을 선사하는 개념도 소용없었다.
카인의 진의를 파악한 귀신들의 표정에 금이 간 건 당연지사.
숫제 괴물을 보는 듯한 시선을 뚫고, 그들에게 접근한 카인은 손에 잡히는 대로 귀신들을 찢어 놓았다.
하지만 거침없이 전진하던 그도 한 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세상이 명멸할 것처럼 밝은 빛이 눈앞에서 터진 것이다.
반사적으로 팔을 앞으로 내밀어 방패 대용으로 사용한 카인은 침음을 흘렸다. 대응하자마자 뼛속까지 시큰거릴 정도로 무자비한 충격이 전신을 내달렸으니까.
숨을 깊게 삼킬 수밖에 없는 일격.
고계위 마법 중 하나가 분명했다. 그것도 대인이 아닌 대군을 상정해 만들어진 마법일 터.
아니나 다를까, 빛이 사그라들자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린 땅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끈한 열기와 매캐한 냄새도 함께.
자칫 기가 죽을 수도 있는 광경이었지만, 호른의 기행을 옆에서 보아온 카인에게는 마술쇼보다 못한 구경거리였다.
“깜짝 놀랐잖아?”
눌어붙은 장갑을 벗어 던진 카인은 물러섰던 만큼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