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233
233화 진실 3
* * *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은 천년동자는 그대로 수백 미터를 내려갔다.
[계정 확인 완료. 환영합니다. ■■■ 님.]내부는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복도를 오가는 이 또한 전무. 완전 자동화된 기기들만이 시설을 관리할 뿐이었다.
외부와 완벽하게 단절된 별세계. 이곳은 무인도나 다름없었다. 자력으로 올라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번 고립되면 죽을 때까지 머물러야 했다.
하나, 이 안에 누가 있는지를 생각하면 이보다 더한 방비를 갖추어도 모자랐다.
“일어나라.”
외길 끝에 도달한 천년동자가 철창을 두드렸다.
그러자 철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사내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수많은 세월 동안 갇혀만 있었는데도 솜털 하나 변하지 않고,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제로원.”
성황교가 모시는 신이자 안드로이드. 이 시설 전부가 그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로원을 따를 수 있는 안드로이드는 없었다.
헤브니아란 문명의 산증인. 제로원이 지닌 지혜와 지식은 그 무엇으로도 옮겨담을 수 없었다. 그를 섣불리 없애지 않고 격리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또 장난을 쳤던데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지?”
물끄러미 천년동자를 쳐다본 제로원이 입을 열자 쇳소리가 섞인 노이즈가 흘러나왔다.
“그래, 그거 말이야.”
본디 제로원은 손가락도 움직이지 못해야 정상이었다. 저번에 천년동자가 왔을 때, 내린 처벌이 그러했으니까.
하지만 운동 능력과 사고 능력을 빼앗겼던 제로원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그마한 감옥 안을 활보하고 있었다.
필요한 기능을 되찾았다는 증거.
따지고 보면 이번 일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가청 주파수를 훨씬 뛰어넘는 소리를 이용해서 공진을 일으켰지? 발뺌할 생각은 하지 마. 네가 마물들을 자극했다는 건 이미 조사가 끝나서 알고 있으니까.”
신의 인형 중 하나가 지질 탐사에 능통한 개체여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지하 깊숙한 곳에서 특정 주파수가 나오고 있다는 걸.
진원지가 이곳이라는 게 밝혀졌을 때는 천년동자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제로원이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대범람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밝혀진 셈이었으니까.
“벌써 거기까지 밝 혀 냈나.”
감출 생각도 없다는 듯, 아쉬운 표정을 한껏 드러내는 제로원을 보며 천년동자는 이기죽거렸다.
“원시림에 사는 마물들을 이용해서 나힘달을 친다는 건 제법 그럴 듯한 발상이었어. 하지만 네가 간과하고 있는 게 하나 있어. 바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서 그러는가 본데, 인간은 더 이상 약하지 않아.”
십좌는 핵병기에 버금가는 위용을 지닌 채, 대륙 각지에 터줏대감처럼 군림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쪽이 당했어. 알렉산더가 죽었거든.”
“너를 따라다녔던?”
“그래.”
쓰게 웃은 천년동자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알렉산더도 과거에는 전략 병기 중 하나였다.
인조 근육, 티타늄 골격, 핵융합 전지. 그리고 단분자 커터.
시간만 주어지면 도시도 쓸어버릴 수 있는 전력이었으나 헤브니아에서는 달랐다.
“마소, 그 빌어먹을 힘 때문에.”
“안 됐군.”
“그런 미적지근한 감상이 다야? 너라면 알아낼 수 있을 텐데? 우리들이 마소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마법을 창시한 장본인이었다. 제로원이라면 어떤 식으로든지 해답을 도출할 수 있을 게 틀림없었다.
“무리라는 건 너도 알 텐데?”
“이제 와서 결백한 척해도, 네가 저지른 죄는 지워지지 않아.”
안드로이드는 마소를 느낄 수도, 사용할 수도 없었다. 그건 제로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그는 어떻게 마법을 개척한 걸까?
그에 대한 답은 뻔했다.
인체 실험이었다.
현대 문명이 사라지고, 법과 틀 또한 모호해진 시기에 제로원은 표본을 모아 가설을 입증하고 오류를 첨삭했다.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대의명분하에.
그리고 그렇게 수십, 수백 년에 걸쳐 마법을 완성했다.
인간들은 모르겠지만 본디 마법은 피로 쌓은 학문이었다. 그 시조가 양심 고백을 한들 마음에 와닿을 리 없었다.
“실험체가 필요한 거라면 말만 해라.”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우리는 죄인이다. 더구나 인류에게 우리는 필요없다. 헤브니아의 역사가 말해 주고 있지 않나.”
“닥쳐, 나는 너같이 실패하지 않아.”
“테레사!”
“날,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
등을 돌린 천년동자가 마지막이라는 듯 으르렁거렸다.
“신은 우리를 버렸어. 이제 우리가 신을 버릴 차례야.”
* * *
무언가에 쫓기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사내는 폐에 가득 찬 물을 게워 냈다. 정신을 차린 그는 자신이 있는 곳이 욕조 비스므리한 관 안이라는 걸 눈치챘다.
생경한 양식.
시야에 들어온 천장도 낯설기는 매한가지였다.
두근거리는 가슴이 점점 진정되자 잊고 있었던 기억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나는 라프만 슈발체베인. 레서 왕국의 백작이자 십좌 중 하나.’
잇달아 쏟아지는 불쾌한 감각을 무시한 채 사내, 라프만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내,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안녕?”
인사를 건넨 건 병색이 완연한 청년이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얼굴. 몸은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이 힘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라프만은 착각하지 않았다. 청년은 그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너는…….”
기억을 되짚는다.
떠오른 건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난데없이 나타난 괴인.
참으로 기괴한 전술을 보여 준 상대였다. 슬라임처럼 이리저리 온몸을 변형하는 게 범상치 않아 종국에는 라프만도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오메가.”
“용케 기억하고 있네.”
오메가가 잘했다는 듯이 박수를 치는 것과 동시에 라프만은 마지막 공방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어깨를 잘게 떤 그는 슬그머니 배를 쓰다듬었다. 분명 미증유의 일격이 관통한 고통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상황을 증명해 줄 증거가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보아하니 여기는 신전도 아닌 것 같은데.”
“미리 말하지만 너는 죽다 살아났어. 아니, 한 번 죽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는걸.”
오메가의 말대로 죽음의 고비라도 넘긴 걸까. 마력은 물론이고, 경맥까지 사라져 있었다.
“놀라지 않네?”
“놀라야 하나?”
라프만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십좌였던 것이다. 적절한 환경과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다시 올라가는 건 일도 아닌바, 걱정하기보다 현 상황을 이해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는 와중에 또다시 오메가가 눈에 들어온 건 필연.
생각해 보면 첫 만남부터 희한하기 짝이 없었다.
“너 같은 녀석이 어째서 날 노린 거지? 놀이 상대라도 구하고 있었나?”
“아니, 후계자를 구하고 있었어.”
“후계자?”
“그래, 이 세상은 모래 위에 세워진 성이나 마찬가지니까. 꾸준히 지켜볼 사람이 필요해서 말이야. 좀처럼 구하기 어렵더라고.”
처음에는 무시하려고 했으나, 이어지는 오메가의 말에 라프만은 자리에 앉자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신의 시대. 시작과 종말. 그리고 헤브니아의 근간을 이루는 진실. 전설과 신화를 넘어선 이야기가 귓가에 들려왔던 것이다.
누구라도 혹할 정보였다.
터무니없다는 점만 빼면.
“그걸 믿으라는 건가?”
한숨을 내쉰 라프만이 나가려고 하자 오메가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믿지 않을 이유도 없잖아? 네가 서 있던 자리를 봐. 누가 저런 물건을 만들겠어?”
“만에 하나, 그 헛소리가 맞다고 해도 어째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거지?”
“쓸데없는 분란을 막기 위해서 내가, 아니 우리가 막고 있었으니까.”
대충 윤곽이 보이는 듯했다.
“그래서 후계자인가.”
상황이 이렇게 되니, 라프만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 하나 속이자고 몇 세기는 앞서간 물건을 방 안에 꽉꽉 채울 사람은 없을 테니까.
“왜 나지?”
“우리에게는 강한 힘이 필요하거든. 대를 유지하기 위해 소가 거치적거린다면 가차없이 벨 수 있는 그런 힘이.”
“내키지 않는군.”
그렇지 않아도 레서 왕국이라는 주박에서 막 벗어난 라프만이었다. 제 발로 족쇄를 차는 취미는 없었다.
시종일관, 미소로 대응하던 오메가의 입매가 비뚜름하게 뒤틀린 건 그때.
“로제 왕비, 네가 생각해도 이상했지?”
갑작스러운 말이었지만 라프만은 오메가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너도 대강 파악했을 거 아니야. 본인이 아니라는 것쯤은.”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떠난 거였으니까.
레서 왕국에 남아 있었다면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 감도 오지 않았다.
불현듯 잊고 있었던 분노가 고개를 치켜들자 라프만은 강하게 발을 굴렸다.
“그만! 네가 내게 바라는 게 있다는 건 알겠다. 그러니 무의미한 수작질은 거기까지만 해라. 어차피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건 우리로서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아주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야.”
“뭐?”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묻는 라프만을 향해 오메가가 속살거렸다.
“말했잖아? 우리는 신의 시대가 오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다시 말해 그 시절의 기술을 재현하는 것도 가능해.”
거칠게 흔들리는 눈동자를 쳐다본 오메가가 천사처럼 방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내 뒤를 잇는다면 그때 네 소망을 이뤄 줄게. 끝내 이루지 못했던 사랑, 다시 하고 싶지 않아?”
하나, 그 속삭임은 악마의 것이었다.
* * *
6508년이 가고, 새로운 해가 떠올랐다. 지난 한 해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퀸 메이커가 되어 세라를 부양하는가 하면, 이브라는 안드로이드와 동료되기도 했다. 하나하나 회귀하기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업적이자 성과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고무적인 건 드디어 아리아를 구했다는 사실이었다.
아직 어색한 건 틀림없었다.
카인의 추억 속에 있는 성녀와 눈앞에서 살아 숨쉬는 귀신은 같은 사람이면서도 엄연히 다른 인격체였으니까.
서로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분명했다.
“아리아.”
“무슨 일입니까?”
“그냥 불러 봤어.”
“공작님.”
“응?”
“저도 한 번 불러 봤습니다.”
“그런 호칭보다는 카인 오빠, 라는 건 어때?”
“엘리제 언니가 공작님은 공작님이라고 했습니다.”
훈련소에서 지낸 시간이 많기 때문일까. 아리아는 기본적인 상식이 부족했다.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해 줘야 할 터.
“당사자가 허락했으니 오빠라고 불러도 돼.”
“그렇습니까?”
아리아가 ‘ㅇ’ 자로 입술을 오므린 순간, 등 뒤에서 피아가 밀차를 끌며 나타났다.
“가주님, 아리아에게 뭘 가르치는 건가요? 심히 궁금하네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그건 뭐야?”
“간식이에요.”
밀차 위에는 디저트가 가득했다.
만난 지 며칠도 되지 않았건만, 그사이에 아리아가 먹거리를 좋아한다는 걸 눈치챈 듯싶었다.
피아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트레이를 내려놓자 아리아는 그녀의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길 잃은 도둑고양이가 따로 없었다.
“자, 아리아. 어서 드세요.”
허락이 떨어지자 냉큼 달려든 아리아가 간식거리를 와구와구 입에 털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