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232
232화 진실 2
* * *
내키지 않는 물품이었다.
광증의 위험성은 카인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또한 광증으로 인해 2급 살귀였을 때는 돈에 눈이 멀어 모든 걸 도외시할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회귀한 후에도 그 영향은 없어지지 않고 일부분 남아 있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 놀리고 싶어지잖아.”
“그러면 진지하게 제안하고 있는 건가?”
“너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텐데. 내게는 조직이 건 족쇄가 느슨하게 적용된다는 걸.”
“그 해답이 광증에 있다는 건가.”
“크롬을 보면 알 수 있잖아? 신의 인형을 배제하라는 조직의 명령을 받았는데도 너를 수집하고 싶다는 욕망을 견디지 못하고 싸웠으니까.”
같은 목표를 두고 광증과 족쇄가 상충할 시 우세한 건 광증이라는 소리일 터.
확실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둘 모두 정신에 깊이 관여하는 강박 관념이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카인이 우라를 쳐다보았다. 그런 소리를 한다는 건―
“너도 그런 광증이 있다는 거겠지. 조직의 족쇄와 상충되는 그런 광증이. 그게 뭐지?”
“뭐야, 누나의 비밀이 알고 싶은 거야? 너도 벌써 그런 나이가 된 걸까. 이거 부끄러운걸.”
어깨에 팔을 걸친 우라가 능글맞게 웃는다. 허허실실이라 했다. 보나 마나 깊게 캐묻지 말라는 신호일 터.
카인은 말을 돌렸다.
“어째서 나를 도와주는 거지?”
“아, 그거 말이지. 별거 아니야. 나중에, 부탁하고 싶은 게 있거든.”
대강 짐작이 가는 게 있었다. 십좌의 자리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우라였다. 그런 그녀가 섣불리 손을 쓸 수 없는 대상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면 할 말은 다 했으니까 이만 가 볼게. 아무리 나라고 여기에서 활보하는 건 부담 되니까.”
그렇게 말한 우라가 주머니에 광증 유도약을 집어 넣는다.
“이건…….”
“선택지가 많아서 나쁠 건 없잖아?”
슬쩍 윙크한 우라가 손을 흔들며 멀어진다.
홀로 남은 카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충격이었다.
복수를 이루면 이룰수록 세상은 신의 시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진다니. 여태까지 악의 축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조직이 사실 마지막 방파제였다니.
‘그래도.’
이미 굳게 결심한 사안이었다.
조직이 품은 대의는 알았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영문도 모른 채, 톱니바퀴가 되어 생을 마감했던 자신은? 그 과정에서 덧없는 마지막을 맞이했던 아리아는?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한다니, 취지는 좋았다. 잘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응당 취해야 할 판단이기도 했으니까.
하나, 도려내진 소의 입장에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었다.
* * *
성황청 안.
일시에 멈추었던 행정적인 절차가 다시 진행되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선별식에 참석한 이들에게 예성녀가 우선적으로 배정되었다.
카인 또한 그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비에나와 만난 그는 웃을 수 없었다.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하, 좀 많죠?”
비에나의 뒤에는 수십여 명의 예성녀 무리가 서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그 말에 대답한 건 비에나가 아니라 미리 대기하고 있던 성녀, 마리에트였다.
“공작님께서 단언하셨잖아요? 얼마든지 와도 된다고.”
“그래서 정말 우르르 몰려온 건가?”
“그러면 선별식 때 했던 발언은 거짓이었나요?”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비에나만 선택하면 뒷말이 나올 게 뻔했으니까. 자칫 잘못하면 수석을 얻기 위해 선동한 거라는 오욕을 뒤집어쓸 수도 있었다.
사실 이번 선별식은 건너뛰고, 내년에 다시 개최해도 후견인들은 별말 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대범람이란 초유의 재앙이 터졌던 것이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예성녀―신관―를 필요로 할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했다.
그런데도 일을 이리 처리하는 걸 보면 성황교는 어지간히도 자신들이 건재하다는 걸 자랑하고 싶은 듯했다.
“이만한 수의 예성녀를 한 명이 도맡는 건 특혜의 일종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만.”
“그건 성황교 측에서 해결할 문제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끝까지 저희를 믿어 주신 공작님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니까요.”
편의. 꿀처럼 달콤한 말이었지만 그 속내를 모를 카인이 아니었다.
대범람이 터졌을 당시, 나 몰라라 도망쳤던 이에게까지 다시 기회를 주기 싫어서 선회한 것일 테니까.
‘아예 포용할 수 있는 이에게 떠넘긴다는 건가.’
쭉 둘러보니 성녀가 될 만한 인재는 보이지 않았다. 성황교 측에서도 그걸 알고 승인한 것이리라.
이게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온 잔꾀인지 알 것 같았다.
“마리에트 성녀.”
십중팔구, 그녀일 터. 세 치 혀로 성녀가 된 여자다웠다.
“네.”
“성황교 측의 배려는 잊지 않고 기억하지.”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가볍게 목례한 마리에트가 저 멀리 사라진다.
예상 밖의 일이라서 놀랐지만, 그것뿐이었다. 예성녀는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유용한 자원이었다.
앞으로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간 카인이 지팡이로 기둥을 두드렸다.
“자, 집중해라. 한 가지 통보할 게 있으니까. 내 영지에 머무르는 동안, 비에나 예성녀가 너희들의 대표가 될 거다. 따르지 못하겠거나, 이의가 있는 사람은 당장 나가라.”
나서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비에나 예성녀, 너라도 성녀가 되어 주어야겠다.”
괜찮았다. 그녀가 어떤 식으로 성녀가 되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정 안 되면 대륙을 관통하는 순례라도 보내면 그만이었다. 다른 예성녀들까지 끼워서.
“잠깐만요.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 들린 것 같습니다만.”
“내 희망 사항일 뿐이니 부담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
“그 말 자체가 부담됩니다만.”
“자질구레한 이야기는 됐고,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척 보기에도 수상쩍은 화제 전환이었지만 비에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부터 신세를 져야 했으니까.
“궁금한 점 말입니까?”
“알렉산더가 보이지 않는데 그 녀석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나?”
“알렉산더 님은…….”
“그래, 그 녀석은?”
“순교하셨습니다. 듣기로는 마물에게 당한 것 같다고 하더군요.”
다 아는 이야기였지만 카인은 흥미롭다는 듯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래,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나.”
“덕분에 알렉산더 님이 한 말이 도마에 오르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분은 원시림을 토벌하겠다고 나섰으니까요.”
그리고 그 원시림은 대범람이 일어난 시발점이었다.
“시기가 공교롭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더군요. 밑작업을 하다가 잘못된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가.”
전형적인 물타기에 책임 뒤집어씌우기였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되는 대로 덧붙이는 거였다. 달리 말하자면 그렇게라도 가족을 잃은 슬픔과 마물에게 당한 분노를 풀고 싶다는 뜻일 터.
“정말 그럴듯하고 신빙성 있어 나도 모르게 믿고 싶어지는 소문이군.”
“네?”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비에나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카인은 답하지 않았다.
어찌 말해 주겠는가.
그 헛소문을 꺼낸 게 자신이라는 걸.
혹시라도 천년동자가 재기의 불씨를 지필까 싶어 곁에서 두고두고 밟고 있었다.
비에나의 입에서까지 저런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완벽하게 작업한 것 같았다.
의심병 환자인 그녀가 토를 달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크크.”
* * *
오늘도 대범람에 대한 보고서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하지만 천년동자는 한 번 힐끗 쳐다보는 것만으로 개요를 이해하고, 줄기를 파악했다.
아무리 복잡한 사안도 그의 손에 들어가면 1분 이내에 결론이 나왔다. 이 비정상적인 업무 속도야말로 성황교가 천년 동안 성세를 유지한 근간이라 할 수 있었다.
문제가 고일 틈도 없이 천년동자가 처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천년씩이나 같은 일만 반복하다 보니 그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한 번씩 다른 길도 있지 않았었나, 하고 고심하는 건 덤.
그래도 그때마다 원점으로 돌아왔다.
예나 지금이나 최선의 선택지였으니까.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권력이 무한대에 가까운 자리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아무런 의구심도 품지 않고 따라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런 의미에서 천년동자가 성황교의 교황이 된 건 필연이라 할 수 있었다.
시행착오를 거칠 것도 없이 인류 역사가 증명하는 직업이었다.
다행히 그가 눈을 뜰 때까지도 헤브니아엔 이렇다 할 종교가 없었다.
선점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있지도 않은 신에 열광하며, 있을 리 없는 구원에 목숨을 거는 신자들이 눈처럼 불어났으니까.
그 과정에서 동료를 찾은 건 고무적이라 할 수 있었다.
“749년 하고도 11개월 13일 9시간. 애석하게도 750년은 못 채웠네. 그렇지? 알렉산더.”
알렉산더는 그중에서도 특히나 기억에 남는 안드로이드였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붙어 다녔다는 사실이 주효할지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게, 그는 대륙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파발마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땅에 발을 붙이고 다니면 어떻게든 기록이 남게 되어 있는 이 시대에 알렉산더는 귀중한 자원이었다.
말하자면 남들은 모르는 눈이자 귀.
하지만 그것도 이제 옛말이 되었다.
조직의 명을 받고 나힘달에 들어온 귀신이 조각조각 해체했으니까.
“또, 조직인 거네.”
생각해 보면 지긋지긋한 악연이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누천년이나 되는 악연.
알리파 제국을 두 쪽 낼 때도, 베리타 제국을 건국할 때도 항상 싸워 왔다. 질리도록, 계속해서.
그때, 천년동자의 눈에 한 보고서가 들어왔다.
요 근래 빈번하게 일어난 도난 사고에 관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그래, 너희들도 있었지.”
엔지니어.
조직과 오토마타가 충돌하며 생겨난 제3의 세력.
언뜻 보니 잡동사니란 잡동사니는 전부 털어 간 듯싶었다. 딴에는 목표물을 가린다고 수를 쓴 것 같지만, 천년동자의 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엔지니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훤히 보였던 것이다.
‘카타스트로피.’
알리파 제국의 초대 황제, 알파가 사용한 보검.
카타스트로피가 로 가는 길을 여는 열쇠라는 건 천년동자도 잘 알고 있었다. 몇 없는 알파의 수기에서 그에 대한 내용을 적은 항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리파 제국에서 떨어져 나와 형성된 게 바로 엔지니어니, 그런 비사를 알아냈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천년동자는 연연하지 않았다. 한때나마 그도 카타스트로피를 나침반 삼아 를 찾은 적이 있었으니까.
무려 천년 동안이나.
그런데도 그에 걸맞은 신의 무덤은 발견하지 못했다. 전설이 잘못되었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전시해 놓은 거였다.
쓸모없는 부속품이라는 게 밝혀져서.
“너희들도 천년 동안 찾아다니면 알게 되겠지.”
구태여 를 찾고픈 마음은 없었다. 천년동자에게 그건 그리 좋은 기억으로 남은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천년동자는 침실을 나섰다.
늦은 밤이지만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발걸음을 옮긴 곳은 성황교의 추기경은 물론이고, 오토마타의 일원들도 모르는 장소.
성황청, 깊숙한 지하에 위치한 신의 무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