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301
301화 구출 1
* * *
쾅.
지팡이를 내던진 카인이 지면을 밟고 도약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구부려 쏟아지는 불꽃을 베었다.
십검, 동상.
서릿발처럼 차가운 기운에 잠식당한 불길이 단번에 사그라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더 링크의 보정을 카인은 검의 이치에 통달한 상태. 그는 정확하게 핵심을 찌르고 들어가 철저하게 찢어놓았다.
“뉴후후, 제법 실력이 있는 건 알았으니 즐겁게 놀아 보자고요.”
날개를 한 번 퍼덕여 거리를 벌린 쥬시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덩달아 커진 날개에서는 고운 가루가 흘러나와 허공에 흩날렸다.
돌연 쇠냄새가 풍기자 카인은 코를 막았다.
‘분진 폭발?’
한 가정이 돌연 떠올랐지만, 바로 지울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개방된 공간이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인의 의문은 쥬시가 손가락을 튕기는 것과 동시에 해소되었다.
“Fire.”
사방에서 생겨난 불티가 타닥타닥 불길한 소리를 내었다. 마치 폭죽이라도 쏘아올린 듯한 모양새였다.
이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불티는 카인이 대처하기도 전에 폭발했다.
콰광!
지축이 흔들리며 왕궁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실내와 실외의 경계선이 무너지며 푸르른 하늘이 훤히 보였다.
불티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미친듯이 튀어올랐다.
‘알루미늄과 마그네슘. 그리고 산화철.’
쥬시가 흘린 건 테르밋 반응을 유도하기 위한 준비물이었다.
“Fire.”
“Fire.”
“Fire.”
쥬시가 손가락 총을 쏘자 프레넬 렌즈에 집광된 빛이 테르밋을 자극했다. 그리고 그 일련의 행위는 연쇄 폭발로 이어졌다.
폭발, 고온, 폭발, 고온.
한 번 시작된 연소 반응은 도무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걷잡을 수 없는 악순환의 연속.
순식간에 인세의 지옥이 펼쳐졌다.
왕궁을 지탱하던 거목이 전소하고, 바닥엔 용암이 들이찼다. 하늘 높은 치솟은 아지랑이는 지평선마저 흐트러뜨렸다.
“아, 괜히 열냈네요.”
자신이 일으킨 참상을 내려다본 쥬시가 머리를 두드렸다. 오랜만에 놀아서 그런지 힘 조절이 쉽지 않았다. 아마 카인도 후폭풍을 견디지 못하고 잿더미가 되었을 터.
김이 팍 샜다는 듯 고개를 숙인 쥬시가 날개를 접으려던 순간, 먼지구름을 헤치고 카인이 나타났다.
쥬시는 두 눈을 번쩍 떴다.
그 난리 속에서도 카인은 제 모습을 유지했다. 고작해야 살짝 그을린 게 전부였다. 추측과는 상반된 결과. 처음으로 쥬시의 미소에 금이 갔다.
“어떻게 된 거죠?”
“어떻게 된 거냐니.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피식 웃은 카인은 몸 안에서 맥동하는 용의 인자를 느꼈다.
그가 이번에 활용한 생물의 인자는 서관충.
해저의 화산 분출구에 서식하면서 섭씨 500도에 달하는 기온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생물이었다.
물론 적성률이 낮아 완전하게 적용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부족한 부분을 정련된 육신이 채워 주었다.
쥬시의 불꽃이 마력이나 마나에 기인한 현상이 아니라는 점도 한몫했다. 문명 이기가 인위적으로 일으켜 봤자 그 효과는 뻔했으니까.
말하자면 근처에서 화산이 터진 것과 다를 게 없었다.
거기에 신비나 기적은 없었다.
단지 뜨거울 뿐.
물리 법칙 안에 있다면 이쪽이 우위라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혹시 20년 전쯤에 마을 하나를 불태운 적 있나?”
뜬금없는 물음이었지만 쥬시는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연결 고리가 하나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곧 죽을 사람. 말해 주지 못할 것도 없어 그녀는 깃털처럼 가벼운 입술을 놀렸다.
“뉴후후, 설마 카르비나 선배에게 들은 거예요?”
“역시.”
물었을 때부터 카인은 반쯤 확신한 상태였다.
마을 하나를 통째로 불태울 수 있는 신기가 그리 흔할 리 없었던 것이다. 신의 인형이라면 또 모를까.
“그때는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실수한 거예요, 실수. 그 정도 실수는 인간들도 하잖아요?”
아무래도 카르비나가 엔지니어에 들어가게 된 동기는 쥬시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서 카르비나의 뒤를 그렇게나 따라다녔나?”
“물론 그런 것도 있지만……. 뉴후후, 그 이상은 말해 줄 수 없겠네요.”
“듣고 싶은 마음도 없다.”
역시 기준점이 달랐다. 신의 인형에게 인간은 멸종되지 않도록 잘 다스려야 하는 가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뉴후후, 선배 대신 복수해 줄 셈인가요? 하지만 이거 어쩌죠. 상대를 잘못 골랐는데.”
여태껏 카인의 말에 장단을 맞춰준 건 변덕도 있지만, 전력을 다하기 위함도 있었다.
즉, 시간 벌기.
필요한 힘이 충전된 이상, 잡담은 필요치 않았다.
뻥 뚫린 천장 위로 태양이 얼굴을 내비쳤다. 날개를 구성하는 프레넬 렌즈에 빛이 집광되는 건 한순간. 이론상 초신성에 근접한 열기가 한곳에 집중되었다.
“BANG!”
쥬시의 검지를 따라 초고온의 불꽃이 쏘아졌다. 궤적에 닿는 건 모두 얼음처럼 사르르 녹아 없어졌다. 실로 전율적인 광선이었으나, 카인은―
[정련정심 ― 비상천]발로 걷어차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런 걸로는 더 이상 날 죽일 수 없다.”
만년거석도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 불꽃을 그대로 꿰뚫고 날아오른 카인은 손가락을 휘둘렀다.
신의 인형은 최신 기술의 총아였으나, 약점이 뚜렷했다. 마소를 활용하지 못해 이치와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보구도 쓰지 못해 처박아 두어야 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커다란 약점은 근성이나 노력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태생을 지녔다는 것.
녀석들은 날 때부터 스펙―사양 명세서―이 정해져 있다.
수리와 보수라는 개념은 덤.
재생이라는 단어는 그들의 사전에 없었다. 한 번 부서진 건 부서진 거였다.
단번에 쥬시가 있는 곳까지 치달은 카인은 그녀의 이마에 검지를 가져다 대었다.
[정련정심 – 개수일촉]손가락 끝에서 터져나온 파동이 동심원을 그리며, 전선에서부터 회로까지 하나하나 터트리며 나아갔다.
내부 소재의 강도를 무시하는 일격.
“뭐, 엇?!”
경악한 쥬시가 손을 뻗어 카인을 잡으려고 했지만, 그의 행동이 더 빨랐다.
수도(手刀)를 휘둘러 날개를 벤 카인은 추락하는 쥬시를 따라 착지했다.
쿵.
그녀의 머리를 밟고 선 카인이 나지막이 고했다.
“이제 너희들이 설 자리는 없다.”
* * *
신의 무덤으로 가는 입구는 왕궁의 정원에 위치해 있었다. 외진 곳에 있는만큼 돌아서 가야 했다. 다행히 인적이 드문 장소인라 다른 사람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들어가기 직전, 센서가 경종을 울렸다.
주저하지 않고 뒤로 물러난 타르한이 손을 휘저었다.
얼음 방패가 형성된 것과 마나 화살이 충돌한 건 거의 동시.
겨우 1계위 마법에 자신을 지키는 방패막이 꿰뚫릴 뻔했다는 사실에 타르한은 자세를 낮췄다.
“누구지?”
그 말에 청년이 한 명 구석에서 나왔다. 헤실헤실 웃고 있지만, 감정이 읽히지 않는 실눈은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이제 보니 슈발체베인 공작령에서 만난 녀석이군.”
“빚진 것도 많으니 설욕전을 치러야 하지 않겠어?”
“역시 그때 죽였어야 했나.”
청년, 호른의 등장에 타르한은 응전 태세를 갖추었다. 귀신의 뒤를 쫓기도 바쁜 마당에 거치적거리는 장애물까지 나타난 것이다. 봐줄 이유가 없었다.
그가 손을 들기가 무섭게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방금 전까지 화창한 날씨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
몸소 체험해 보았던지라 호른은 당황하지 않고 마나를 끌어올렸다. 동시에 그의 몸 밖으로 6개의 고리가 나타나, 서로 교차하며 회전했다.
격돌은 한순간에 이루어졌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선공을 가했다.
송곳처럼 날카로운 얼음이 기류를 타고 범람하자, 수백 수천에 달하는 마나 화살이 날아가 하나하나 요격했다.
호른은 그렇게 마나 화살을 외우는 중에도 다른 마법을 시전해 타르한을 견제했다.
결코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이미 한 번 무참하게 패배했던 것이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나이아를 빼앗기기까지 했다.
카인을 대신해 대리인 자격으로 슈발체베인가를 다스렸던 호른에게는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오점이었다.
“마음대로 슈발체베인 공작령을 헤집고 다녔으면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지 않겠어?”
6계위를 넘어 7계위에 가까워진 호른이기에 내보일 수 있는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그에 맞서는 타르한 또한 평범한 신의 인형은 아니었다.
일찍이 그는 전략 병기로 운용되었다.
그 말인즉슨, 유사시에 국가도 전복시킬 수 있는 수준까지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소리였다.
빙하기의 화신.
제작되었을 당시에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멈춰라.”
그런 타르한이 선언하니, 일대가 얼어붙었다. 서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가고, 형체가 있는 건 모두 단단하게 굳어 바닥에 나뒹굴었다.
일부 고계위 마법은 기어코 추위를 뚫고 나아가 타르한을 꿰뚫으려고 했으나, 얼음 방패에 먼저 막혔다.
모든 가능성을 옥죈 타르한이 한 발자국 내디뎠다.
한기가 더욱 강하게 느껴졌지만 호른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하나 말하는 게 잊었는데, 빚진 건 나뿐만이 아니야.”
순간, 사각지대에서 뻗어나온 빛살이 타르한의 팔뚝을 찌르고 지나갔다.
자가 방어 기능이 먼저 반응했지만, 위협적인 공격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바, 화들짝 놀란 타르한이 뒷걸음질치며 경계했다.
난입한 이는 창을 꼬나쥔 사내.
‘센서에 잡히지 않는다고?’
등 뒤를 치고 들어오는데도 확인하지 못한 건 예삿일이 아닌지라 타르한의 움직임은 절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기세등등했던 모습은 어디로 갔지?”
한껏 도발한 사내, 오리올이 창을 앞으로 내밀며 자세를 낮췄다. 먹잇감을 덮치기 전에 몸을 수그리는 맹수처럼.
연이은 수련 끝에 환상도요는 물이 올랐다. 성절에 내포된 환상은 더 이상 시각에만 한정되지 않고 오감으로 뻗어 나갔다.
방금 전 타르한에게 먹인 일격 또한 그 연장선.
‘네 번째 개념, 무영.’
새롭게 얻은 무기는 환상도요의 주축이라 할 수 있었다. 오리올의 선조가 십좌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도 이 개념 덕분이었으니까.
무영(無影)은 그 명칭대로 그림자마저 숨겨 주는 능력. 말하자면 상대방에게 닿기 전까지 그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더구나 이 상태가 된 오리올을 감지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아지랑이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개념.
“자, 막아 봐라.”
“큭.”
갑자기 사라진 오리올을 찾아 타르한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하지만 감지되는 건 없었다. 그저 센서가 고장난 것처럼 켜졌다가 꺼지기를 반복할 뿐.
순간, 창날이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타르한이 반사적으로 얼음 송곳을 난사했지만, 오리올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신출귀몰하기 그지없는 공세.
귀신이라도 상대하는 듯한 기분에 타르한은 얼음 방패를 높이 세웠다. 접근 자체를 불허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오리올만 있었다면 유효했겠지만, 이 자리엔 그 말고도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나를 잊으면 섭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