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31
031화 나아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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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령에서도 가장 깊숙한 장소에 그곳이 있었다. 고루하기 짝이 없는 양식과 관리가 되지 않아 수더분한 마당. 한때나마 개미굴의 근거지로 쓰였던 저택은 이제 인기척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호른을 따라 입구에 선 카인이 흥미로운 듯 탄성을 터트렸다.
“이런 곳에 개미굴의 근거지가 있었나. 재미있네.”
나무는 숲에 숨기라고 했던가. 영악하게도 개미굴은 자신들의 모습을 숨기기 위해 골목길이 아닌 저택 단지로 숨어들었다.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최대 규모의 범죄 조직이 이웃일 수도 있다는 걸.
“그런데 개미굴에 있었던 녀석들도 이곳을 알고 있을 텐데. 그건 괜찮나?”
“그거라면 괜찮아. 대충 처리했으니까. 그리고 힘을 쓸 수 있는 간부들은 타일락이 직접 죽여서 더 고생할 염려도 없어.”
“타인의 경맥을 먹어 마력을 갈취했다지?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지, 권선징악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멍청한 거지. 타일락은 과신한 대가를 치렀을 뿐이야.”
스무 살과 열한 살의 대화로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살벌했지만 둘 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사는 세계에선 이게 당연한 거였다.
“따라와.”
저택 안으로 발을 내디딘 카인이 재빠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결코 친해질 수 없는 기운. 조직에서 받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수많은 저택을 넘나들었기에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곳은…….
“공방인가?”
“눈치가 빠르잖아. 맞아, 이곳은 내 공방이야. 7년 동안 타일락의 지원을 받아 만든 곳이지. 내가 자신 있게 자랑할 수 있는 곳이라고?”
과장된 몸짓으로 허리를 숙이며 손짓한다.
순간, 카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법사의 공방.
마법사가 만든 비밀 기지는 지극히 귀찮은 장소였다. 기사단을 상대로도 농성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물론 진정으로 그러한 위용을 보이려면 3계위만으로는 부족했다. 정련과 정심으로 단련된 몸이 경련을 울리는 거로 판단하건대, 그 이상이리라.
라프만이 호른을 믿고 맡긴 이유가 있었다.
“너, 이제 보니 3계위가 아니라 4계위였군.”
“그런 것도 알 수 있어? 도련님은 날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니까.”
숨겨 왔던 경지가 들통났지만 그것마저도 기꺼운 듯 호른은 머리를 툭툭 치며 너스레를 떨었다. 모시게 된 이의 유능함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었다.
“과장스럽게 행동하는 것도 적당히 해라. 바보 취급하는 것처럼 들리니까.”
며칠이나 지났건만, 아직까지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마 평생 가도 익숙해지는 일은 없겠지. 그만큼 호른의 경망스러운 행동은 카인의 신경을 건드렸다.
“나는 칭찬한 거였는데 말이야.”
“그렇다고 해 두지.”
홀을 지나 기다란 통로를 걷는다.
허가 없이 증축한 지하엔 커다란 정원이 있었다.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지하였지만 마법의 영향을 받은 건지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울창하게 우거진 수풀과 형형색색 아름다운 꽃들이 지하에 가득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이질적인 이들이 존재했다.
지하 정원의 중심. 거기에 도열해 서 있는 이들이 보였다.
복장을 통일하고, 자세마저 하나로 맞춘 그들은 자신들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는 100여 명.
찬찬히 감상하고 있자니, 호른이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모두 도련님을 위해서 가주님이 준비한 거야.”
평생 슈발체베인가를 섬기겠다고 강제 명령 계약서까지 작성한 상태였다. 이만큼 듬직한 아군이 또 있을까. 그들의 정체가 개미굴에서 일하던 범죄자들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카인은 묵인했다.
온실 속의 화초보다 풍파를 겪은 잡초가 필요했다. 그리고 과거에 실수한 게 있다면 지금부터 다시 고쳐 가면 될 뿐이다.
호른은 카인을 단상으로 안내했다.
“자, 어서 올라가.”
오직 선택된 이만이 도달할 수 있는 장소에 다다른 카인이 손을 들어 명했다.
“자리에 앉아라.”
명령에 따라 일제히 착석한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걸 보면 많은 훈련을 받은 걸 테지. 호른의 수완에 감탄하면서도 카인은 결코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단상에 서니 모든 이가 한눈에 보였다. 옆에서 키득거리고 있는 호른의 모습까지도.
한 무리를 이끌어 보라니. 열한 살에겐 버거운 책무였다. 라프만도 알고 있을 터. 호른을 곁에 둔 건 그에게 도움을 청하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어찌 됐든 개미굴에서 7년 동안 보낸 경험은 거짓이 아닐 테니까.
하지만 카인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했다.
‘조직을 짓밟고 백작령을 지킨다.’
처음부터 이 부대의 목표는 정해져 있었다.
조직의 영향력은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 넓었다. 그들과 싸우려면 본거지는 꼭 있어야 했다.
조직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청정 구역. 무슨 일이 벌어져도 뒤를 받쳐 줄 기둥의 존재는 앞으로의 승패를 가르는데 중요한 요소가 될 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적어도 성인은 되어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자리에 오르게 됐으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모두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을 테니 자질구레한 설명은 넘어가겠다. 너희가 과거에 누구였고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궁금하지도 않다. 슈발체베인가의 아래에 들어온 이상, 너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밖에 없으니까.”
손가락을 치켜들며 강하게 소리친다.
“절대복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바라지 않는다.”
모두의 시선을 끌어모으며 두 팔을 활짝 벌린다.
“나는 이 조직을 ‘리벨리온’이라 칭하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직에 반항하기 위한 직속 부대였다. 아직 그 누구도 모르는 암중 세력을 거꾸러뜨리고 치졸하고, 더러운 수 싸움을 이어가기 위한 부대.
리벨리온은 반역을 알리는 봉화였다.
조직과 싸우는 데 슈발체베인가는 적합하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난 집단은 노출된 약점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조직과 동등한 선상에서 싸우려면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날뛰어야만 했다.
“리벨리온의 목적은 암중에서 백작령에 위협이 되는 요소들을 전부 배제하고 차단하는 일이다.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되며, 그 누구에게도 져서는 안 된다.”
꿀꺽. 누군가가 긴장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를 책망하는 이는 없었다. 모두 똑같은 심정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야 할 자리에서 터무니없는 목표를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장이라고 부르면 된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호른을 보좌관으로 임명하겠다. 그가 맡을 안건은 일정과 작전 전반.”
“감사합니다.”
“계획과 편성.”
“감사합니다?”
“영입 그리고 재정에 이르기까지.”
“…….”
“리벨리온의 제반을 담당할 거다. 궁금한 사항이 있다면 모두 호른을 통해서 해결하도록 해라.”
중요한 사안들이 휙휙 넘어간다.
순간, 카인의 목적을 알아차린 호른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리벨리온의 이인자라는 감투를 씌운 건 그렇다 치더라도 덤터기까지 같이 씌울 줄이야.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물씬 샘솟았지만 앞으로 모셔야 할 주인이었기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카인의 말을 경청할 뿐이었다.
“우선 백작령에 있는 범죄 조직들을 하나둘씩 소탕하며 몸집을 불릴 거다. 소영지는 둘째 치더라도 슈발체베인가가 있는 이 백작령은 완벽하게 청소해야 한다.”
가만히 듣고 있던 호른이 끼어든 건 그때였다.
“가주님과는 다르게 열정이 넘치네. 좋은 모습이야. 그래서, 누구부터 노릴 거야? 개미굴에서 떨어져 나간 조직들이 많으니까 그쪽부터 노릴 거지?”
첫 단추는 잘 끼워야 한다. 그래야 다음 작업이 편해지니까. 머리를 치고, 그 자리를 빼앗는 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호른은 자신의 주인 이 방법을 선택하리라 단언했다.
하지만 카인의 입에서 나온 건 그러한 예상을 산산이 조각냈다.
“아이들로 이루어진 조직. 급격하게 성장했으나 오히려 외곽으로 근거지를 옮긴 조직. 간부가 단번에 바뀐 조직. 성과가 없는데도 연일 승승장구하는 조직. 전체적으로 이런 조직들을 노릴 거다.”
기승전결을 뛰어넘은 명령이었다. 모두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공통점도 없고, 차별점도 없었다. 소탕하면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먼저 손을 쓸 정도는 아니었다.
호른 또한 마찬가지였다.
“……. 이해할 수가 없는데.”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내가 말한 형태의 조직들이 우선순위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배제해라. 그 결과를 보고 너희의 능력을 판단하도록 하겠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카인의 머리엔 조직의 다음 계획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타일락을 통해 세력을 확장하려고 했으나 실패한 상태. 조직에서 파견된 귀신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아마도 정공법을 선택할 확률이 높았다.
그렇기에 카인은 백작령이 완전히 잠식되기 전에 건져 올릴 생각이었다.
조직의 손길이 닿는 족족 쳐 낸다면 그들도 얼마 가지 못하고 방향을 전환할 테지. 가장 밑바닥에서 굴렀기에 조직의 수법은 통달한 상태였다.
“그리고 하나 더. 호른을 따라온 이들이 태반이겠지만 잊지 마라. 너희의 주인은 호른이 아니라 나다. 만약에라도 우선순위를 혼동하면 각오해야 할 거다.”
단상을 거칠게 두드린 카인이 목 끝에 손날을 가져다 대었다.
“항명은 즉참이다. 피치 못할 사정, 그럴듯한 이유, 어쩔 수 없는 원인. 전부 다 필요 없다. 미리 말하지 않고 변수를 일으키는 인물은 즉각 배제하겠다.”
열한 살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싸늘한 목소리. 오직 사람을 죽여 본 이만이 낼 수 있는 기백에 장내에 모인 부대원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라프만이 아끼는 제자라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일까. 운이 좋아 이 부대의 주인이 된 건 아닐까. 그러한 의문들은 바람과 함께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저건 진짜다.
그 사실을 깨달은 이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절도 있는 자세로 새로운 주인을 받아들었다. 열한 살인데도 저런 모습인 거다.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부대의 분위기가 잡혔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낀 호른이 슬며시 웃으며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개미굴에서 빠져나간 조직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공백이 생기는데 그건 어떻게 할 거야? 도련님이 말하는 대로 우선순위를 배정하면 그것들은 빠르게 처리할 수 없다고.”
“내가 직접 나설 거다.”
정련과 정심은 가만히 앉아서 깨우치는 천재의 성절이 아니었다. 둔재를 위한 성절. 원하는 모습이 나올 때까지 두드리고, 제련하는 절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슈발체베인 백작령은 최고의 무대였으며 리벨리온은 최고의 도구였다.
“기대해도 좋다. 백작령에 소속된 소영지까지 모두 쓸어버릴 생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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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 시는 슈발체베인 백작령에 속한 마흔여덟 개의 소영지 중 하나였다. 마을보다는 크고 도시보다는 작은 규모의 영지는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조차 고단했다. 장소가 장소였기에 인적 또한 드물었다.
백작령 안에서도 동쪽으로 치우친 장소로 베리타 제국과 인접한 땅 중 하나가 바로 이곳이었다.
레서 왕국에서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건 물론이고, 눈이 자주 내려 시계가 흐려지기 일쑤.
쿠로도 산맥이 지나가는 곳이었기에 베리타 제국에서도 빈틈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은밀한 거래도 어렵지 않게 성사시킬 수 있었다.
그래, 도란 시는 딱 밀수하기 좋은 곳이었다.
소위 일확천금을 노리는 이들은 모두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국경선까지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는 장소를 대체 어디에서 찾겠는가. 온갖 군상들이 몰려들어 그 편리함에 녹아들었다.
양심과 도덕의 경계는 금세 누그러들었다. 도란 시에서는 모두가 방관자이자 공범이었다. 용병단이 범죄 조직으로 타락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푸른 늑대 용병단의 대장, 듀랑은 약속된 장소에 오자마자 수레에 싣고 온 짐을 풀었다. 베리타 제국 쪽에서 온 동업자 또한 짐을 풀었다.
한두 번 해 본 일도 아니었기에 둘 사이엔 어떠한 말도 오 가지 않았다. 목록과 금액을 교환하며 부하들을 다독일 뿐이었다.
“어서 옮겨라, 멍청이들아. 시간은 금이다. 그리고 금은 네까짓 녀석들이 살 수 없는 거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