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30
030화 정리하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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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의 선술집은 위험천만한 장소였다.
정체도 알 수 없는 물건을 내미는 행상인, 한탕 하고 돌아온 용병, 술에 전 폐인, 다음 희생자를 물색하는 범죄자. 이루 다 말하기 힘든 인간 군상들이 모이는 곳이었기에 생각 없이 들어가면 잡아먹힐 뿐이었다.
특히나 그곳이 슈발체베인 백작령에 있다면 한 번 더 고심해야 했다. 십좌 중 한 명인 라프만이 다스리는 영지임에도 대륙 각지에서 범죄자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아울은 개의치 않았다. 굳이 그를 건드리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장대한 기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고, 투박한 손과 날카로운 눈은 얼마나 많은 수라장을 거쳤는지 듣지 않고도 저절로 깨닫게 만들었으니까.
맹수 같은 이를 보고 덤벼든다면 용기의 소치가 아니라 만용의 소치였다.
구석에 앉은 아울이 맥주잔을 드는 것과 동시에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시선을 돌리니 주먹다짐을 하려는 것인지 땀내 나는 남자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주위를 둘러쌌다.
“저딴 녀석은 냉큼 죽여버려! 잭.”
“나는 너에게 걸었다고 메기!”
“솜방망이에 쓰러지면 안 된다고. 어서 일어나.”
“아래에 달린 게 부끄럽지도 않냐, 자식아!”
평소부터 알고 지내던 무리인지 고함 소리가 자연스러웠다. 저러한 광경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소리.
“쓰레기들.”
볼 것도 없었다. 인생을 낭비하는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시간은 없었으니까. 외면하듯 창밖으로 시선을 던져 어두운 골목길을 관찰한다.
약속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나타나지 않았다. 벌컥벌컥. 기다리는 건 익숙하지 않았기에 아울은 다리를 떨며 시간을 죽였다.
그렇게 맥주잔을 네 잔이나 비우고 나서야 익숙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후우, 미안해. 아울.”
상대방은 허겁지겁 달려온 기색이 역력했다. 사소한 거로 말싸움을 하는 것도 귀찮았기에 아울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자리에 앉은 진에게 맥주잔을 밀었다.
“아, 고마워.”
아울과 진. 두 사람은 동기였다.
아울은 1급 마귀. 진은 3급 아귀.
3급 아귀밖에 되지 못한 무술 사범과 엘리트 코스를 밟아가며 성장한 1급 마귀의 우정은 조직에서도 드문 케이스였으나 없는 건 아니었다.
“늦었군.”
“말도 마. 갑자기 처리할 일이 생겨서 말이야. 나도 약속 시간에 늦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
“조직에서?”
“그래, 무술 사범 중 하나가 죽어서 대신할 사람을 찾았거든. 계획표도 처음부터 조율해야 했고.”
“무술 사범이 죽었다고? 조직의 흔적이 잡힌 건가?”
“그럴 리가 없다는 건 아울, 네가 더 잘 알고 있잖아. 해프닝이야.”
“어째서 그렇게 단언할 수 있지?”
“그야 그를 죽인 게 라프만이니까.”
“이곳의 주인, 검성을 말하는 건가?”
“그래, 경맥과 동맥을 정확하게 갈라놓았다고 하던데. 과연 검성이라고 해야 할까. 버터나이프만으로 사람을 떡으로 만들다니.”
진의 설명을 들은 아울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검성과 3급 아귀가 싸우면 검성이 이긴다. 이건 어린아이도 아는 사실이었다. 문제는 그 이유였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도 없는 검성이 검을 빼든 이유.
“왜 죽인 거지?”
“이번 기수 중 하나를 데리고 가다가 들킨 모양이야. 산속에서 우연히 마주친 거지.”
“운도 지지리도 없군.”
다른 사람도 아닌 검성에게 죽은 것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또 없으리라.
대륙에서 열 명밖에 없는 초인에게 걸리려면 전생에 얼마나 많은 과업을 저질러야 하는 걸까. 쓸모없는 상상을 이어가던 아울은 진의 설명이 비어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래서.”
“응?”
“예비 귀신은 어떻게 됐지?”
“아, 그 무술 사범에게 걸린 녀석 말이지. 라프만이 데려간 거로 알고 있는데. 여러모로 애매하게 됐어.”
“설마, 그 녀석인가.”
“들은 이야기라도 있어?”
“얼마 전에 검성이 제자를 받아들였다는 소문이 떠돌더군. 거리에서 보았다는 사람도 있으니 확실할 거다.”
슈발체베인 백작령은 조직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었다. 발로 뛰어서 정보를 수집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건질 만한 정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지만 검성의 제자라는 키워드는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생각해보니 아쉽군. 조직에 들어왔으면 촉망받는 루키가 되었을 텐데.”
그도 그럴 게, 라프만의 눈에 들 정도의 재능인 것이다. 조직을 위해서 쓰였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금상첨화였으리라.
진이 감자튀김을 콕 찍으면서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번 기수에 그런 루키가 들어왔으니까.”
“고작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두각을 드러내는 녀석이 있다고?”
“이거 왜 이래. 너도 비슷한 케이스잖아.”
“이때 즈음이라면 인자 적성 검사밖에 하지 않았을 텐데?”
“그래, 그 인자 적성 검사에서 적성률이 역대 최고치야. 평균 97퍼센트. 전에 있던 기록이 91퍼센트라는 걸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야. 말하자면 인자의 모든 능력을 끌어낼 수 있는 천재라는 거지.”
“적합한 인자는 몇 개나 되지?”
조직에서 보유하고 있는 인자는 총 열한 가지였다. 동물의 특징과 특성을 본뜬 인자는 신체가 개조되는 것과 동시에 본능에 각인되었다.
적성률이 높다면 적합한 인자도 많을 터. 그 기대에 부응하듯이 진의 입에서 나온 숫자는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열 가지.”
“미친.”
열한 가지 중 열 가지라니. 무엇이든지 심을 수 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울이 놀란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인자는 대상의 적성률에 따라 천변만화했다. 같은 인자를 부여받았다고 해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용도와 위력이 바뀌었다.
인자는 대상을 비추는 거울. 내면에 내재되어 있는 본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결코 바꿀 수도 바뀌지도 않는 본능. 인자란 쉽게 말하자면 그 사람의 성향이나 다름없었다.
적합한 인자가 많다는 건 그만큼 많은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그릇은 한꺼번에 많은 걸 가질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적합한 인자의 수가 많으면 적성률이 낮고, 적성률이 높으면 적합한 인자의 수가 적었다.
한 번에 하나씩. 그게 정론이었다.
정론에서 벗어나 모순되는 성향이 많다는 건 태생부터 망가진 인간이라는 소리였다.
이기적인 성자가 있을 리 없고, 인자한 살인자가 있을 리 없었다. 이기적이면 성자가 될 수 없고, 인자하면 살인을 저지를 리 없기 때문이다.
감정 제어와 정신 제약을 통해 목줄을 건다고 해도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
“적합한 인자가 일곱 가지나 되었던 크롬 님도 지금은 퍼스널 네임까지 올라갔잖아. 문제없어.”
“그 사람도 불안한 건 똑같다.”
무술 사범인 진은 모르겠지만 1급 마귀인 아울은 크롬과 같이 작전을 수행한 적이 많았다. 그때 보았던 퍼스널 네임의 위용은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았다.
그래, 그때 보았던 기행만큼이나.
크롬의 수집욕은 장난이 아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눈알을 모으고, 손가락을 모으고. 패배자에게서 갈취할 수 있는 전리품이란 전리품은 모두 취했다.
정도를 넘지 않도록 조직에서 감정 제어를 받았는데도 그 모양이었다.
진은 어두워진 아울의 표정을 걷어 내기 위해 어깨를 으쓱이며 맥주잔을 비웠다. 어차피 예정된 일이지 확정된 일이 아니었다. 왈가왈부해도 결론이 나올 리 없었다.
“그나저나 네가 맡은 일은 잘됐어?”
“잘됐다면 이렇게 같이 술을 마실 이유도 없겠지.”
쓰게 웃으며 맥주잔을 비운다.
아울이 백작령에 뿌리를 내린 건 조직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가장 중요한 임무이자 가장 어려운 업무이기도 했다.
그가 하는 선택에 따라 조직의 영향력이 달라지는 것이다.
아울이 조직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선택한 상대는 개미굴의 지배자인 타일락이었다. 마침 라프만에게 씻지 못할 치욕을 겪은 무인이기도 했고, 백작령에서 가장 큰 범죄 조직의 수장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타일락이 선택한 길은 자멸이었다.
“멍청한 녀석이 검성을 건드렸다.”
“세력 싸움에 휘말린 게 아니라? 암흑가에서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잖아. 백작령 같은 곳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잖아.”
“그래, 다른 때였다면 그렇게 판단했겠지. 하지만…….”
호른산에 쌓인 눈이 전소한 걸 보고도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짐작할 수 없다면 어깨 위에 달린 건 머리가 아니라 장식품이었다.
“시기가 너무 공교롭더군.”
아울이 손에 힘을 주자 맥주잔은 힘없이 터져 나갔다.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유난히 자극적이었다. 하지만 선술집에서 그를 신경 쓰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주먹다짐하는 사내들의 신음 소리와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고함 소리만이 가득했다.
“아울,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가 얼마나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는지 알고 있는 진이었기에 순순히 대답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신의 무덤을 찾는 건 조금 더 걸리겠네.”
“백작령에 있다는 건 확실하지만 그뿐이다.”
범위가 넓은 건 둘째 치더라도 기후가 좋지 않았다.
“뭐, 이런 곳이니까.”
슈발체베인 백작령은 사시사철 눈이 내리는 지방이었다. 어디를 어떻게 보아도 눈앞에 있는 건 새하얀 설원뿐이었다.
모든 게 눈에 덮인 곳이라 무언가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눈 폭풍이 몰아치면 길이 막히기도 하고, 시기에 따라 지형이 바뀌기도 하니 목적지를 찾는 건 요원하기만 했다. 대대적인 수색이 필요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개미굴을 먹지 못한 건 뼈아프겠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무술 사범에게는 먼 이야기였다. 공감은 되어도 동감은 할 수 없었다.
“예정보다 빨리 폐관 수련을 마치고 나왔다는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설마하니 그렇게 멍청한 짓을 저지를 줄은 몰랐다.”
“성절을 배운 무인 나부랭이가 십좌가 어떠한 존재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바보라는 소리잖아. 일이 잘 풀렸어도 후에 사고를 쳐도 단단히 쳤을 녀석이었으니까 연연하지 마.”
“너에겐 언제나 위로만 받는군.”
“뭐, 나도 적당히 떨어지는 게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마.”
1급 마귀와의 인연은 돈으로 책정할 수 없는 가치가 있었다. 특히나 무술 사범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는 진에게 아울은 좋은 방패막이였다.
주거니 받거니. 세상살이라는 게 그런 게 아니겠는가.
“그리고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잖아? 조직에서도 주의 깊게 보는 곳이니까 너도 슬슬 다음 계획을 준비해야 하잖아. 따로 생각해 둔 거라도 있어?”
“정공법으로 갈 생각이다. 편법은 짊어지고 가야 할 리스크가 크다는 걸 멍청한 녀석이 가르쳐 주었으니까.”
기존에 있던 조직을 흡수하려고 했던 게 패착이었다. 생각보다 효율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직접 구성하는 수밖에.
방법은 많았다.
눈에 띄지 않는 아이들로 집단을 이루거나 그럴듯한 단체 하나를 점령해 외곽으로 근거지를 옮기면 되었다. 조합의 간부를 중간에 바꿔치기하거나 파티의 성과를 조작해 연일 승승장구하게 하는 방법도 매력적이었다.
조직이 몸집을 불리며 자체적으로 쌓은 노하우는 대륙에서도 수위를 다툴 정도로 은밀하고 기민했다.
그렇기에 아울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조금씩 스며들면 검성이라고 해도 눈치채지 못할 거다.”
“기대되는걸.”
검성의 땅에 조직의 깃발을 꽂는다니. 듣기만 해도 등허리가 오싹거릴 정도로 흥미로웠다.
아울과 진이 서로의 맥주잔을 부딪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모든 건 조직을 위해서.
“슈발체베인 백작령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진창으로 가라앉을 거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