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331
331화 압도 1
* * *
문제가 있다면 대체 누구를 위한 미끼냐는 것인데, 그걸 유추해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엔지니어.’
녀석들은 지금껏 신의 인형만 졸졸 따라다녔다. 벌써 몇 명이나 포획했다고 들었다. 적지 않은 경험이 쌓였을 테니, 이제 슬슬 별미가 먹고 싶을 터.
‘괴성이 오토마타와 비슷한 부류라는 걸 눈치챈 건가.’
엔지니어의 수장이나 되는 자가 움직였으니 근거는 충분했다.
카인의 설명을 들은 괴성이 머리카락을 거칠 게 쓸어넘겼다.
“그러니까 엔지니어가 날 노린다는 거지? 오토마타는 나를 통해 녀석들을 처리하려는 거고. 조직은 순 핑계였다는 거네.”
“돌아가는 사정이 그렇게 보인다는 거다. 맞는지 아닌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해.”
“확인할 게 뭐 있어. 딱 봐도 연계 퀘스트잖아. 하긴 로몬 그 녀석이 직접 왔을 때부터 예견했던 거지만, 생각보다 더 악질이네.”
송곳니가 드러날 정도로 입꼬리를 올린 괴성이 연신 주먹을 휘둘렀다.
“조심해라. 녀석들이 언제 어디에서 덮칠지 모르니까.”
“하, 괜한 걱정이야. 엔지니어든 뭐든 닥치는 대로 쳐부숴 줄 테니까. 기대해도 좋아.”
그래 준다면 카인이야 고마웠다.
엔지니어의 수장, 세트.
그는 후딘과도 연결 고리가 있을 거라 예상되는 난적이었으니까.
* * *
64강, 그리고 32강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면서 십좌전의 열기는 점점 더 뜨겁게 피어올랐다.
재야에 묻혀 있던 강자들이 나와 다시금 그 용맹을 떨치는가 하면, 당연히 올라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들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십좌전은 혼란 그 자체였다. 모든 기대와 기준이 엎치락덮치락 했다. 무엇 하나 분명한 게 없는 상황이었지만 사람들은 열광했다. 반전과 변수야말로 그들이 원하는 향신료였던 것이다.
물론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별이 뜨고 지길 반복하는 격전 속에서 용케 제자리를 지키는 인물.
카인 슈발체베인.
불순물처럼 이질적인 사내는 십좌전이 시작할 때부터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되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실력이 진짜인지 아닌지, 의구심을 품던 이들도 다시 한 번 고심해 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번은 우연이라 할지라도 두 번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쉬이 납득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카인이 확실하게 보여준 게 없었기 때문이다.
지팡이를 휘두르고, 아슬아슬하게 이긴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수수한 공방은 그의 활약을 퇴색시키기에 충분했다.
카인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필요 이상으로 나서지 않았다. 싸울만한 상대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미래가 바뀌었어.’
회귀 전에는 제네갈과 바울이 16강에서 맞붙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태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상황과 조건이 그때와 같을 리 없으니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지만, 마냥 수긍하기엔 석연찮은 점이 많았다.
유력한 우승 후보란 후보는 모두 피해 갔기 때문이다.
16강에 진출했는데도 말이다.
거기에서 카인은 묘한 위화감의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다. 애당초 대진표가 그 둘에게 유리하게 편성되어 있었다.
‘어느 쪽이든 나와는 결승전에서 맞붙게 되어 있군. 그 전에는 만날 수조차 없어.’
이러한 꾀를 낼 수 있는 건 한 사람뿐이었다. 이번 십좌전을 개최한 주체이자 자신이 십좌에 준하는 실력을 지녔다는 걸 알고 있는 인물.
‘후딘.’
알게 모르게 세트를 배려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차기 십좌들에게 만벽서고를 개방하겠다고 선언했을 땐, 배포가 크다 여겼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감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후딘은 이걸 노린 게 틀림없었다.
당장에라도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만, 그가 순순히 당해 줄 리 없었다. 오히려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뗄 가능성이 높았다.
더구나 어딘가에서 보았던 양상이기까지 했다.
‘세라.’
그녀도 이와 비슷하게 올라간 전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엔 운이 좋았다고 여겼지만―
‘미리 울타리 안에 넣은 건가.’
정말 얄미운 인물이었다.
그렇다고 질책할 수도 없었다. 덕분에 세라가 수월하게 우승을 쟁취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니까.
이제 와서 알았다고 한들, 몰아붙일 명분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아차 하는 사이에 공범 비스름하게 되어 있었으니.
‘나이는 허투루 먹은 게 아니라 이거지.’
피식 웃은 카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번만큼은 후딘의 잔꾀를 인정해 주어야 했다.
* * *
수천, 수만에 달하는 참가자 중에서 거르고 걸러진 열여섯의 강자. 그들은 스스로를 증명하지 않더라도 자국에서 최강이라 숭상받는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십좌전은 16강부터가 진짜라 할 수 있었다. 초인의 영역에 들어선 이만이 그 자리에 설 수 있었으니까.
십좌가 되었을 때, 어떠한 이명을 붙일지에 대한 논의도 이즈음 이루어졌다.
흩어져 있던 관중들의 이목이 한 곳으로 집중되는 건 당연했다.
더구나 그게 16강, 첫 번째 경기라면 그 감회는 더욱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좌측에서 에이스 테디라우스가 나타난 건 그때. 사자 갈기처럼 풍성한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남자의 모습에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하인탈 왕국의 왕세자이자 그곳을 대표하는 최강자.
분쇄기.
마수 학살자.
인두겁의 사자.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칭호를 달고 다닌 그의 실력은 틀림없이 초일류였다. 사람들도 그런 행적을 알고 있는바 일찌감치 파성(破星)이라는 예비 이명을 붙여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측에서도 한 사람이 등장했다.
카인 슈발체베인.
에이스의 상대이자 ‘자칭’ 흑기사였다.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그의 실력에 의문을 가졌다. 64강에서도, 32강에서도 가장 약한 상대와 붙었기 때문이다. 운수가 대단하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일.
그 탓에 예비 이명조차 부여받지 못했다.
경기장 위로 올라온 에이스는 카인을 보더니, 나지막이 으르렁거렸다.
“말한 대로 아리엘에게 수작을 부린 대가를 받아가겠다.”
“저랑 상관없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겨뤄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인지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남기는 자리였다. 역사에 기록되어 대대손손 전해지기까지 할 터.
“네 민낯을 드러내 주마.”
에이스가 꽂아 두었던 대검을 들었다. 아리엘이 사용했던 것보다 배는 더 커다란 대검을.
그가 익힌 백팔군도는 철저하게 파괴력에 초점이 맞춰진 성절이었다.
파쇄, 분쇄, 격쇄, 강쇄.
오직 적을 타도하기 위해서 형성된 개념을 몸에 두른 에이스가 대검을 휘둘렀다.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팔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만근거석도 움직일 수 있을 정도.
압도적인 괴력에서 비롯된 일격은 폭풍을 불러일으켰다.
카인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순간, 거친 와류가 머리카락을 거칠게 휘감고 지나갔다. 후폭풍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지축까지 뒤흔들었다. 경기장을 지탱하던 봉우리에 금이 가자 몇몇은 일어나 자리를 피하기까지 했다.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 만들었다고 보기 힘든 재해.
빠르게 거리를 좁힌 에이스가 전의를 다지듯 고함 소리를 내질렀다. 심약한 이라면 가까이에서 들은 것만으로 졸도할 정도.
강렬한 기백이 느껴지는 게, 그만 보아도 하인텔 왕국이 어떠한 곳인지 알 수 있었다.
몇 번 합을 주고받았을 뿐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에이스는 스스로에게 너그러워도 되는 사내였다. 그는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쾅.
지팡이를 지면에 깊이 박아 넣는다.
이내, 카인이 두 발로 오롯이 서자 관중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난데없이 일어난 들불처럼.
에이스 또한 두 눈을 부릅떴다.
“너, 절름발이가…….”
“아니지.”
“하, 여태까지 사람들을 속여 왔단 건가.”
“흑기사라고 밝히지 않았나. 그때 짐작했어야지.”
한 걸음, 두 걸음. 에이스에게 다가간 카인이 팔을 들었다.
“하긴 인간이란 동물은 항상 그렇더군. 아무리 호소해도 직접 볼 때까지 믿지 않아. 그래서 때때로 재앙을 초래하기도 하지.”
십검, 자상.
무언가 번쩍이자 에이스는 옆으로 굴렀다. 극한까지 단련된 생존 본능이 가져다준 행운.
자칫 잘못했으면 단박에 승부의 향방이 결정됐을지도 모르는 한 수였으나,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기세에서 밀렸다는 생각에 얼굴을 붉힐 뿐이었다.
“그게 어쨌다는 거냐!”
치욕스러운 감정을 감추듯 크게 소리 지른 에이스가 비호처럼 달려들어 대검을 내질렀다.
허공에 아로새겨지는 궤적을 따라 지평선이 일그러졌다.
동산도 허물어뜨리는 검격의 진행을 가로막은 건 다름아닌 카인의 검지였다.
에이스는 이번엔 다른 의미로 얼굴을 붉혔다. 안간힘을 다해도 밀려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밀어내려고 하면 할수록 그가 내디딘 지면만 깊숙하게 꺼질 뿐이었다.
가슴팍에 낯선 손바닥이 닿은 건 그때.
“뭣.”
발파 오백십이중첩.
전조 동작이 없이 발해진 일격에 에이스는 속절없이 경기장 끝까지 밀려나야만 했다.
“하아, 하아.”
중간에 대검을 내리꽂아 속도를 줄이지 않았더라면 십중팔구 장외로 떨어졌을 게 분명했다.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
굴욕적인 건 카인이 그걸 알고도 방치했다는 거다.
한쪽 무릎을 꿇은 에이스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고수가 하수에게 베푸는 듯한 지도 대련이라니. 이건 그가 바란 양상이 아니었다.
이래서야 아리엘을, 아니 왕국민을 볼 낯이 없었다.
“이길 기회를 저버리고 선처를 베풀다니 우습군. 그 방만함 때문에 너는 후회하게 될 거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 정말 날 후회하게 할 수 있겠나?”
“이 새끼가!”
무언가 뚝, 끊어지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린 듯했다. 이성을 잃고 득달같이 쇄도한 에이스는 카인을 향해 자신이 쌓은 모든 걸 쏟아부었다.
수백, 수천의 검격이 한 번에 퍼부어지자 대기가 일렁였다. 그 과정에서 터져 나온 충격파에 주위는 엉망이 되었다.
경기장은 반파되어 장내와 장외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관객석 또한 일부가 무너져내려 사람들이 황급히 대피하는 소동까지 일어났다.
태풍이라도 쓸고 지나간 것 같은 진풍경이 펼쳐졌으나, 카인은 경기장에 올라왔을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마치 그가 서 있는 자리만 다른 시간대에서 똑 떨어진 듯했다.
에이스의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도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결코 메울 수 없는 격차가 있다는 걸.
“……제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까.”
에이스를 오연하게 내려다본 카인이 검지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그었다.
십검, 창상.
순간, 에이스의 가슴팍이 불쾌한 파열음을 내며 둘로 갈라졌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
한 차례 핏물을 토해 낸 에이스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가 해답을 구하는 일은 없었다.
털썩.
기력이 다해 쓰러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