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330
330화 십좌전 2
* * *
주인을 잃은 창이 날아온 건 그때. 고개를 살짝 비틀어 피한 카인은 턱을 긁적였다. 그가 태연자약하게 겉도는 와중에도 경쟁자들의 수는 차근차근 줄어들고 있었다.
‘나는 매력이 없는 먹잇감이라는 건가.’
어쩌면 언제든지 해치울 수 있는 상대에게 할애할 시간은 없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카인에게는 호재였다. 본선이 아닌 곳에서 힘을 빼고 싶은 마음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가만히 서 있는 건 곤혹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다른 조의 진행 상황을 엿보게 되는 건 필연.
카인의 눈에 띈 건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J조였다.
‘저건…….’
명화에서 뛰쳐나온 듯한 미청년이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분전 중이었다.
관중들도 그런 그의 활약에 호응했다. 수백이나 되는 무인들이 이 자리에 서 있는 걸 감안하면 무척이나 이례적인 일.
그만큼 청년의 외견은 훌륭했으나, 카인의 흥미를 끄는 건 다른 것에 있었다.
그건 바로 움직임.
청년은 자신의 등을 노리고 내질러지는 창을 맨손으로 잡아, 그대로 우그러뜨렸다.
일련의 과정만 보면 놀라울 거 하나 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본인이 인지하지 않았는데도 몸이 알아서 피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대체 뭐지?’
마치 사지가 따로 노는 것 같았다. 기괴하면서도 꺼림칙한 동작이었지만, 위력은 발군이었다. 청년의 손짓에 대적하던 이들이 하나둘씩 장외로 튕겨져 나갔다.
마력이나 마나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데도 저 정도.
카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런 이가 있다는 건 회귀하기 전에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 상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한눈을 판 사이, 자신이 속한 H조가 어느덧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던 것이다.
경기장에 서 있는 사람은 이제 카인을 제외하곤 한 사람뿐.
끝까지 살아남은 중년인이 흉흉한 눈빛을 감춘 채 입을 열었다.
“슈발체베인 공작님. 기권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대로 계속하시겠습니까?”
제안에 가까운 명령에 카인은 헛웃음을 삼켰다. 그 말을 듣고서야 깨달은 게 하나 있었다.
“어째서 건드리지 않았나 했더니 내 작위 때문이었나. 이렇게까지 무시를 당하면 도리어 흥이 식는데 말이야.”
“그래서 결정은 하셨습니까?”
지팡이를 검처럼 움켜쥔 카인이 손짓했다.
“와라.”
“죄송하다고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미 이겼다고 여기는 듯했다.
물론 중년인은 그 발언에 걸맞은 기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아마 자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일 터.
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그를 보호해주지는 못했다.
타앙!
카인은 코앞까지 달려온 중년인을 지팡이로 후려쳤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인지라 문외한의 눈엔 엉겁결에 휘두른 것처럼 보일 테지만, 그 안에는 발파의 묘리가 담겨져 있었다.
인간이 맨몸으로 버틸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하고 뒤로 쓰러진 중년인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정신을 잃었다.
“이거 미안하군. 아무래도 너보다 내 행운이 더 강했던 모양이야.”
피식 웃은 카인은 경기장에서 내려왔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다크호스의 등장이었다.
* * *
“이름은 세트. 출신도 이력도 불명. 최근에 발견된 행적도 없어.”
호른의 보고를 들은 카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반쯤 예상한 결과지만, 그렇다고 기꺼운 건 아니었다.
“정말 자그마한 정보라도 얻은 게 없나?”
“전혀. 마치 유령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 같아.”
“십좌전에는 어떻게 참가하게 된 거지? 아무리 그래도 확실한 신분은 있어야 할 텐데?”
“맥시모스가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한 것 같아. 아마 둘 사이에 어떠한 거래가 오간 거겠지.”
“더욱더 수상하군.”
음지를 집어삼키고 성장한 리벨리온의 정보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세 곳밖에 없었다.
조직, 오토마타, 엔지니어.
지팡이를 툭툭 두른 카인이 한 곳을 배제했다.
“일단 귀신은 아닐 거다.”
인명록이 그의 손에 있었다.
더구나 세트가 보여 준 기예는 인자에서 기인한 게 아니었다. 그보다 더 이질적인 곳에 연원을 두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고 해서 신의 인형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어지는 이브의 조언에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괴성의 정체도 밝혀낸 그녀가 오판을 내릴 것 같지 않았다. 남은 건―
“결국 엔지니어라는 건가.”
대체 누구길래 제 모습을 드러낸 걸까.
그에 대한 해답은 카르비나에게서 얻을 수 있었다.
“세트, 그 아이 말이지.”
브로치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석연찮은 기색이 담겨져 있었다.
“그다지 내키는 질문이 아닌가 보군.”
“속이 시꺼먼 아이거든.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극에 달했다고 해야 하나? 얼핏 보면 나르시시즘이 상당한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자신이 나서면 풀리지 않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야.”
“신랄하군.”
“쓸데없이 감추지 않는 것뿐이야. 그나저나 그 아이가 십좌전에 참가했다고?”
“그래, 너에게 연락한 것도 그걸 묻기 위함이다.”
“자세한 건 몰라도 좋은 의도는 아니라는 게 확실해 보여.”
“왜지?”
“말했잖아, 속이 시꺼멓다고. 단순히 십좌가 되고 싶어 거기에 간 건 아닐 거야. 용건이 없으면 절대로 엉덩이를 들지 않는 타입이니까.”
“용건인가.”
백이면 백, 현대 문명과 관련된 사안일 게 분명했다.
“그 녀석도 너와 같은 엔지니어의 일원이겠지. 혹시 접촉할 수 있겠나?”
“정보를 캐내는 것보다 내가 잡히는 게 더 빠를걸. 세트는 수장이니까.”
“뭐?”
“엔지니어의 수장이 바로 그 아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한 말에 카인은 허탈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바뀐 미래가 거물을 불러들인 것 같았다.
* * *
성련 무술 대회의 우승 상품 중에 가장 값진 건 타나의 가르침이라 할 수 있었다. 말이 가르침이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나 다름없었다.
무인이라면 탐낼 수밖에 없는 기연.
그건 세라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날이 바뀌자마자 맥시모스가를 찾았다.
카인은 세라의 옆에 서서 하품을 터트렸다. 그가 동행하게 된 건 순전히 그녀의 요청 때문이었다.
혼자서는 안심이 안 된다나.
무리도 아니었다. 지금 맥시모스가에는 십좌가 여섯이나 머무르는 중이었으니까.
다행히 맥시모스가는 다급하게 찾아온 손님을 내치지 않았다. 이는 타나에게도 적용되었다. 이른 아침임에도 그녀는 불편한 기색 없이 세라를 맞이해 주었다.
“그러면 일단 세라 여왕, 너는 나를 따라오거라. 그 열의를 봐서라도 하나부터 열까지 교정해 줄 테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냐.”
대륙 회의 때 만나서 투닥거린 보람이 있는 건지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두 사람은 스스럼없이 서로를 대했다. 아니, 나이 차이를 고려하면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가까운 감이 없잖아 있었다.
“카인 너는 어떻게 할 거지? 기다릴 테냐?”
“네, 오늘 경기가 시작할 때까지 시간이 꽤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어차피 타나 님도 참석하실 텐데, 맞춰서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적당히 앉아 있거라. 나가려면 내 이름을 대고 돌아다니고.”
그렇게 말한 타나가 세라를 둘러멨다. 당황한 세라가 비명을 터트리는 것보다 타나가 비상하는 게 더 빨랐다.
담벼락을 넘어, 큼지막한 봉우리를 넘어가는 건 한순간.
더 이상 타나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카인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니 익숙한 실루엣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바울과 제네갈.
후딘이 특히나 아낀다는 제자 둘이었다.
“오랜만이군, 제네갈.”
사실 주기적으로 전서구를 주고받는 사이였지만, 심지어 사선 여단이 구한 신기를 구매하는 큰손이기까지 했지만, 카인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제네갈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원조를 받고 있는 터라, 제네갈은 그 손길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사제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카인에게 고개를 숙이자 바울은 새삼스럽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제네갈. 설마 너 공작과 알고 지내는 사이였나?”
“네, 우연한 기회로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교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네가 말이지.”
바울은 무언가 수상쩍다는 듯 카인과 제네갈을 번갈아 보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간 거래를 알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이대로는 건질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그는 서둘러 화두를 돌렸다.
“슈발체베인 공작, 예선을 통과했다고 들었다. 이거 축하한다고 해야 하나?”
“속내가 훤히 보이는 인사말이지만, 일단 고맙다고 해 두지.”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더군. 듣기로는 어부지리를 취했다던데?”
카인은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면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까지 한계를 조절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
사람들은 십좌에 준하는 강자가 작심하고 날린 일격을 그저 우연으로 치부했다. 단지, 이름표만 보고.
카인이야 나쁠 건 없었다. 상대가 누가 나오든 방심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던 것이다.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파악하는 건 의미없었다. 눈앞에 서 있는 바울부터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갔으니까.
“오늘도 운이 따를 거라 생각하지 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이군.”
솔직히 말하자면 바울에 대한 관심은 꺼진 지 오래였다. 그는 제네갈에게 패배할 운명이었다. 그것도 더할 나위 없이 처참한 형태로.
같은 유파라는 게 치명적이었다.
‘블랙 미러.’
개념을 모사하는 성절끼리 맞붙으면, 역으로 기본기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었다.
여러모로 오랜 시간 동안 수련한 바울이 유리해야 이치에 맞으나, 안타깝게도 제네갈의 재능은 그러한 이치에서 벗어나 있었다.
“한 치 앞도 못 보는 삶이란 고달픈 법이지.”
“뭐?”
무어라 더 말하려던 제네갈은 돌연 입을 다물었다. 등 뒤에서 괴성이 나타났던 것이다.
“오, 있어, 있어. 역시 여기에 있었구나.”
허겁지겁 달려와서 카인의 팔을 잡아당긴 괴성은 바울과 제네갈을 밀어내며 다시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녀를 따라 구석진 곳에 도착한 카인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긁적였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진정해라.”
“됐고. 우리는 친구지?”
“그렇지……?”
“휴, 다행이야. 마침 상담하고 싶은 게 있었거든.”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지만 카인은 괴성의 말을 경청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 난리를 피울 리 없었으니까.
그녀가 늘어놓은 이야기는 한마디로 축약할 수 있었다.
“오토마타 그 녀석들이 조직을 처리하자고 너에게 손을 내밀었다고? 희한하군.”
“역시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무리 전력이 필요하다지만, 제어할 수 없는 변수를 넣는 건 오토마타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괴성이 참전하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었다는 말.
해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제일 유력한 건―
‘미끼인가?’
그렇지 않다면 이 구도는 설명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