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88
088화 이인삼각 1
* * *
소리 소문도 없이 쏘아진 쇠구슬이 뺨 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조금이라도 거리가 좁혀지면 다진 고기가 될 터, 이를 악물고 거리를 벌린다.
대체 차이점이 뭘까?
빨간 녀석은 피하고, 노란 녀석은 맞고 파란 녀석은 곧바로 로이나를 노렸다.
각양각색.
믿기지 않지만, 드론은 렌즈의 불빛에 따라 반응이 달랐다.
‘간단하게 생각하자, 간단하게.’
저 많은 드론이 전부 다른 공정을 통해 제작됐을 리 없었다.
소재부터 마감 처리까지, 외견은 똑같았던 것이다. 다른 건 색깔밖에 없었다.
그래, 렌즈 그 안에 있는 것.
센서.
정신이 번뜩였다.
색깔에 따라 센서의 종류가 나뉜다고 가정하면 말이 되었다.
허겁지겁 달리는 와중에 고개를 돌려 힐끔 쳐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불빛이 두 개 들어와 있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세 개 들어온 놈도 있었다.
이로써 모든 게 확실해졌다.
다른 게 아니었다. 다른 것처럼 보이는 거였다.
한 문명이 저물고 다른 문명이 부상할 정도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신의 무덤 내부가 부식되지 않아 잊기 쉽지만 이 안에 있는 건 모두 그만한 시간을 보낸 골동품이었다.
유지와 보수가 제대로 이루어졌을 리 없었다.
드론이 날아다니는 것도 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 아마도 정밀 기기인 센서 또한 비슷한 경위로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렌즈가 빨갛게 빛나는 녀석은 시각 센서로 외부 환경을 인식하는 걸 테지.’
그렇다면 나이아의 화살을 피한 것도 설명할 수 있었다.
다행히 대처하는 건 쉬웠다. 유용한 인재가 이 파티 안에 있었던 것이다.
“오리올, 환상도요를 펼쳐라!”
그 말에 짐작이 가는 게 있는 듯 오리올이 창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내, 창을 감싸고 있던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기어 나와 벽을 이루었다.
일전에 대련에서 보여주었던 아지랑이의 응용이었다. 일행은 너나 할 것 없이 오리올의 등 뒤에 바짝 붙었다.
시각 센서를 가진 드론들은 갑자기 대상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리라.
예상대로 빨간 녀석들은 갑자기 선회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렌즈가 파랗게 빛나는 드론들은 하나같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로이나가 억누른 소리를 듣고 반응했던 걸 감안하면 녀석들이 가진 건 청각 센서일 터. 아지랑이가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발목에서 단검을 꺼낸 카인은 반대편을 향해 던졌다.
쿵.
벽에 맞은 단검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자 파란 녀석들은 일제히 방향을 틀었다.
남은 건 렌즈가 노란 녀석.
화살에 맞은 걸 보면 생물이 아닌 것엔 반응할 수 없는 센서가 분명했다.
십중팔구 진동 감지나 열 감지 센서이리라.
카인은 놈들이 더 다가오기 전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로이나, 도깨비불은 사용할 수 있나?”
“당연하죠. 기초 중 기초니까요.”
“사람이 만져도 안전한 불꽃, 다섯 개만 흩뿌려라.”
“고온이 아니라 저온 말인가요? 그래봤자 녀석들을 녹이는 건 불가능할 텐데요.”
고온을 뿌려봤자 드론의 눈길은 돌릴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체온에 가까운 열을 감지하는 걸 테니까.
“왈가왈부할 시간 없으니까 어서.”
이해할 수 없는 주문이었지만 로이나는 첨언하지 않고 부채를 펼쳤다.
카인의 대처가 올바르다는 건 방금 전에 보았으니까.
화르륵.
부챗살에 양각된 금실이 타오르며 푸른 불꽃이 떠올랐다. 이윽고 호롱불처럼 은은하게 타오르던 불꽃이 사방에 흩어졌다.
난데없는 움직임에 노란 녀석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나이아가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현대 문명의 산물이 야만인에게 격추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발치에 걸린 드론을 걷어찬 나이아가 가슴을 내밀었다.
“내가 없으면 어쩔 뻔했더냐.”
“다른 사람 불러왔겠지.”
“뭣이?!”
요령을 알면 공략하는 건 쉬웠다.
그렇게 땅바닥에 나뒹구는 드론을 밟으며 나아갔다.
주도권을 가져왔다고 해도 안심하기엔 아직 일렀다. 이제 한고비 넘겼을 뿐이다.
신의 무덤 안에 있는 드론 부대가 얼마나 될지 카인도 가늠할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짐작이 옳다는 듯 모퉁이를 돌 때마다 드론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결국엔 센서가 모두 정상적인 드론도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 상대가 가세하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구석에 몰리면 외통수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피해야 했다.
정신없이 달리길 몇 분.
제법 깊숙한 곳에 들어왔을 거라고 판단이 설 즈음, 원통처럼 볼록 튀어나온 문이 눈에 들어왔다.
카인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본 사람처럼 탄성을 터트렸다.
엘리베이터였다.
서둘러 아래로 가는 버튼을 누른다. 하지만 묵묵부답. 옆에 있는 버튼을 연타해도 마찬가지였다.
다급한 마음에 문틈 사이로 손가락을 욱여넣어 양쪽으로 벌렸지만, 이렇다 할 반응은 없었다.
그저 휑한 공간만이 불청객을 반겨줄 뿐이었다.
“멈췄나?”
이제 보니 드론만 고장 난 게 아닌 듯싶었다. 그때, 로이나가 시큰둥하게 물었다.
“급한 일이 아니라면 어서 나가는 게 어떨까 싶은데요. 막다른 골목에서 고심한다고 길이 열릴 리 없잖아요?”
그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엘리베이터는 비효율적이면서도 협소한 공간일 터.
막다른 골목이라 착각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이 유일한 활로였다.
쿵, 쿵.
발을 강하게 굴린다. 다행히 아래는 텅 비어 있는 듯했다.
“바닥을 꿰뚫는다.”
“네?!”
“계몽의 빛은 쓸 수 있겠지?”
“두, 두 번 정도 사용할 수 있어요. 하지만 괜찮겠어요? 위력이 아무리 높아도 지면을 뚫는 건 달걀로 바위치기라고요.”
“괜찮다. 이 아래에 공간이 있다는 건 파악했으니까.”
“아직 멀었더냐!”
나이아가 날아오는 드론을 족족 쏘아 떨어뜨리며 재촉했다.
오리올이 창을 내밀어 드론의 시야를 가린다고 해도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청각 센서와 열 감지 센서를 지닌 녀석은 기어코 이곳을 뚫으려 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순 없었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쿤달락의 얼굴을 쳐다본 로이나는 다시 한 번 양산을 펼쳤다.
“틀리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몸 밖으로 경환이 드러난다. 이내, 세 개의 고리가 맞물리며 가속하기 시작한다. 그 위로 경환이 하나 더 늘어나자 귀와 꼬리가 나타났지만 로이나는 개의치 않았다.
양산 끝에 집속된 마나가 한계에 다다르자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양산을 접었다.
동시에 보석이 산화되며 광선이 쏘아졌다.
“계몽의 빛.”
엘리베이터 바닥을 뚫고 나아간 빛무리는 저 지하까지 내려가 폭음을 터뜨렸다.
비틀, 하고 쓰러지려는 로이나를 카인이 붙잡았다.
“정말 공간이 있었네요.”
“난 도박을 즐기지 않는다. 확실한 곳에 확실한 것만 걸지.”
한쪽 무릎을 꿇은 카인은 어두운 심연 안으로 쇳덩어리를 하나 던졌다.
하나, 둘….
마음속으로 숫자를 센 순간, 땡그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떨어진 시간으로 판단하건데 깊어 봐야 3층 높이일 터. 마력을 사용하면 어찌어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심호흡을 내뱉은 카인은 당연하다는 듯 로이나를 둘러멨다.
“또 짐 덩이 취급이네요. 공주님 안기 같은 건 못 하나 보죠?”
“1인 안기 운반법 말인가? 애석하지만 그러면 여차할 때 손을 쓸 수 없으니까 이게 낫다.”
“…1인 안기 운반법. 두근거렸던 가슴도 차갑게 식는 마법의 단어네요.”
“중얼중얼 대꾸할 거면 직접 뛰어내려라. 코끝이 찡할 정도로 아프겠지만, 죽지는 않을 거다.”
헤브니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강골이었다.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진다고 죽지는 않았다. 어디 한 군데 부러질 각오는 해야겠지만.
“성급하네요. 싫다고 한 건 아니잖아요? 가만있을 테니 어서 뛰어내리세요.”
얌전해진 로이나를 부여잡으며 일행을 부른다.
“그럼 모두 따라와라.”
그렇게 말한 뒤 구멍 속으로 몸을 던진다.
쿵.
추락하는 시간은 지극히 짧았다. 하지만 두 사람분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던 탓인지 무릎이 조금 저렸다.
“보기보다 무거운걸.”
“무슨 이야기인가요? 카인 씨. 갑자기 궁금한걸요.”
“장비 얘기였다, 장비.”
“그런 거라면 한 번 눈감아 드리죠.”
로이나의 잔소리를 들으며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나갔다.
곧이어 나이아와 쿤달락을 짊어진 오리올이 내려왔다. 다행히 드론 부대는 여기까지 내려오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여운이 채 가시지 않는지 나이아는 한참이나 구멍을 올려다보았다.
귀와 꼬리를 감춘 로이나가 입을 연 건 그때.
“이제야 한숨 돌릴 수 있겠는걸요. 아무리 그래도 뒤쫓아 오는 사람들보다 이곳이 더 무서울 줄이야. 예상외예요.”
“반쯤 기대하면서 들어온 거잖아? 우리가 힘든 만큼 저쪽도 힘들 테니까.”
“그건 부정할 수 없네요. 그런데 그 날아다니는 기계 말인데요. 이상하지 않았나요?”
“그게 무슨 소리지?”
방금 전에는 도망치느라 신경 쓰지 못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기계 장치들은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부채를 펼친 로이나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다.
“마력이나 마나를 소모하지 않았잖아요. 아마 마소로 움직이는 기기는 아닐 거예요.”
오로지 물리적인 동력원에 의해서 움직이는 기계 장치.
밖에도 그런 건 많았다.
회중시계, 물레방아, 도르래, 마차 등등.
하지만 저렇게 복잡하고, 난해한 건 처음 보았다.
절로 한숨이 늘어난다.
소문만 듣고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로윈이 보낸 이들을 유인할 수 있을 거라 예상하며. 고대 유적지 탐사는 어디까지나 덤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주객이 전도되게 생겼다.
“평범한 고대 유적지는 아닌 게 확실해요.”
어째서 먼저 간 탐사대의 소식이 뚝 끊겼는지 알 것 같았다.
오기 전에 당했든 와서 당했든 생각보다 큰일이었다.
로이나의 눈에 무덤덤한 카인의 얼굴이 들어온 건 그때였다.
“놀라는 표정이 아니네요?”
“놀라야 하나?”
그 대답에 무어라 말하려던 로이나는 나지막이 탄성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이런 곳을 이미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하셨던가요.”
“기억력은 나쁘지 않는 것 같군.”
그제야 퍼즐 조각이 맞춰진다.
“카인 씨가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네요.”
“이것도 추가 정산 금액에 들어가겠지?”
“물론이죠. 경험자는 어디에서나 환영받으니까요.”
“그러면 내가 지금 내뱉을 정보도 달아놓아라.”
팔짱을 낀 카인이 벽에 기댔다.
무슨 말을 하려기에 저리 뜸을 들이는 걸까. 로이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를 뒤쫓고 있는 녀석들은 귀신이라고 불리는 비밀 요원이다. 툭 까놓고 말해 기사에 준하는 실력자들이지.”
“귀신?”
“‘조직’이란 단체의 하수인이다.”
알지 못했던 사실이 카인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하지만 로이나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녀의 기억 속에 그런 집단은 없었다.
이만한 사안을 처리하면서 수면 위에 떠오르지 않았다는 건 그들의 규모나 수준이 일국에 필적한다는 소리.
판토마 상단이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집단이라는 걸 감안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건 인재와 정보였던 것이다.
“그런 이들이 저를 노리는 거네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너를 노리는 게 아니라 이곳을 노리는 거다. 너는 중간에 가로막는 장애물쯤 되겠지.”
“그러면 로윈과 관계가 없다는 건가요?”
“아니, 로윈의 의뢰도 받았을 거다.”
긴가민가했지만 녀석들이 로이나를 신의 무덤에 데려온 걸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로윈의 부탁이 아니라면 이렇게 구체적이고 세밀한 죽음을 계획할 리 없었다.
심증은 더 있었다.
‘과거에 로윈이 취했던 움직임.’
로이나가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해도 다른 후계자를 내세우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고딘도 로윈이 상단주에 어울리는 재목이 아니라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을 터, 그를 견제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딘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