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87
087화 물타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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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설 출입구 손상을 확인. 제2 경계경보를 발령합니다. A 구역에 비상 격벽이 설치됩니다. ]정신없이 달리면서 안내 방송을 확인했다. 바뀐 건 없었다.
머리 위로 B 구역이라 적힌 표지판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이내, 마지막 격벽이 내려와 통로를 틀어막았다.
다행히 모든 격벽이 내려오기 전에 A 구역을 돌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아차, 하는 사이에 따라잡힐 수 있었다.
상대는 수준을 알 수 없는 1급 마귀. 더구나 곁에는 추적에 특화된 귀신이 붙어 있었다.
변수가 많은 만큼 여유가 있을 때 거리를 벌려야 했다.
순간, 익숙한 기계 장치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숫자와 특수 문자가 새겨진 패드였다.
통로와 통로 사이에 있는 걸 보면 용도는 명약관화했다.
[격벽 해제 시 별도의 비밀번호가 필요합니다.] [비밀번호 혹은 계정을 확인해 주십시오.]가까이 다가가 아무렇게나 누른다.
삐빅. 경고음을 무시하고, 또 누른다.
삐빅. 경고음을 무시하고, 또다시 누른다.
[3회 연속 입력 오류. B 구역에 비상 격벽이 설치됩니다.]예상대로 신의 무덤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무어라 말하지도 않았건만, 알아서 방패막이를 세워준 것이다.
도미노처럼 내려오는 격벽을 요리조리 피하며 다음 구역을 향해 내달린다.
그렇게 C 구역임을 알리는 문구가 나타나서야 카인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무슨 함정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알고 그렇게 누르는 건가요.”
불평과 노기가 섞인 로이나의 목소리가 어깨 위에서 들려왔다.
지당한 말이다. 하지만 카인은 확신할 수 있었다.
비밀번호 좀 잘못 입력한 거 가지고 사달은 나지 않을 거라고.
솔직히 익숙한 기기를 보아서 더더욱 과감하게 저지른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신의 무덤은 던전이나 미궁처럼 신기막측한 장소가 아니었다. 하물며 인간의 탐욕을 건드려 나락으로 빠트리기 위한 곳도 아니었다.
지켜야 하는 규칙만 알면 지극히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선 안에서 돌아가는 공공시설일 뿐이었다.
“걱정하지 마. 전에도 한 번 와 본 적이 있으니까.”
“전에도?”
로이나의 의문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녀가 지적하는 것보다 먼저 카인이 고개를 갸웃거렸기 때문이다.
“그보다 무슨 꼴이지?”
방금 전까지는 죽자 사자 달리느라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제 보니 로이나의 모습이 바뀌어 있었다.
“무슨 말씀인가요. 저는 저인걸요.”
머리 위에 솟아난 귀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쫑긋거렸다. 푹신한 털이 달린 걸로 보아 여우 귀일 터.
이내, 윤기가 흐르는 꼬리까지 나타나 코끝을 간질이니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었다.
“어쩐지 엉덩이 부근에 노출이 있다 했더니 이런 때를 염두에 둔 것이더냐. 실로 파렴치한 여자로다.”
“그런 말은 당사자 앞에서 하는 게 아니다. 나이아.”
나이아와 오리올이 쑥덕이는 소리에 로이나는 반사적으로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이건!?”
펄쩍 뛰어오른 로이나가 이리저리 손을 바삐 움직인다.
딴에는 감추느라 힘을 들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귀를 누르면 꼬리가 나오고, 꼬리를 누르면 귀가 나오니 희극이 따로 없었다.
로이나가 떨어뜨린 양산을 주운 쿤달락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듯 먼 산을 바라보았다.
“아가씨는 오늘도 아름다우시군요, 본인조차 어쩌지 못할 정도로.”
“태, 태평한 소리는 그만 하고 어서 가리세요. 쿤달락.”
카인은 우왕좌왕하는 듀오를 바라보았다.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할아버지인 고딘이 남부 출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어렴풋이 짐작했던 일이었다.
더구나 여기에 들어오기 전에 주술까지 사용했던 것이다.
주술은 대륙 남부에서 성행하는 마법의 한 갈래.
그것도 혈통에 영향을 많이 받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주술을 주로 사용하는 마법사는 대개 조상이 수인인 경우가 많았다.
로이나가 귀와 꼬리를 감추며 한숨을 내쉬자 카인도 따라 고개를 저었다.
“걱정하지 마라. 고대 유적지에서 본 건 그게 무엇이든지 발설하지 않는다. 그게 계약 조건이었을 텐데?”
“아.”
탄성을 내뱉은 로이나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부채를 펼쳤다.
“그, 그런 거예요. 그러니 이견은 듣지 않겠어요.”
사실 거짓말이었다.
고대 유적지와 신의 무덤의 개념은 천지 차이였으니까. 아마 강제 명령 계약서의 효력은 발휘되지 않을 터.
강제 명령 계약서에 순순히 서명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혼혈인 걸 보니 할머니가 수인이셨나?”
“할아버지와 함께 제국에 올라왔던 동료 중 한 명이었어요.”
“뭐,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귀랑 꼬리가 드러난 거지?”
“제 역량 이상의 주술을 사용한 여파겠죠. 귀랑 꼬리도 평상시에는 주술을 활용해 감추고 있으니까요.”
“판토마가에 수인의 피가 섞여 있다니, 밝혀지면 커다란 스캔들이 되겠는걸.”
“강제 명령 계약서 때문에 함부로 발설하지 못하겠지만, 재차 말하죠. 이 일은 비밀이에요. 소문이 퍼지면 카인 씨가 퍼뜨렸다고 생각하고 엄벌을 내리겠어요.”
로이나가 짐짓 엄하게 다그치자 나이아가 불쑥 튀어나와 공감한다는 듯, 그녀의 두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런 건 내게 맡겨라. 이 녀석이 허튼짓 못 하도록 책임지고 관리하겠다.”
“아, 알겠어요. 나이아 양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한 번 믿어보죠.”
같은 아인종이라 할 수 있는 나이아가 친근하게 다가갔지만, 로이나가 그걸 눈치챌 리 없었다.
카인은 나이아의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대체 너는 누구 편이지?”
“정의의 편이지 않겠더냐.”
선과 악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게 되었다고 해도 나이아의 본질은 알브였다.
기본자세가 아이 러브 아인종이니 잔소리를 해도 들어먹질 않을 게 분명했다.
카인이 혀를 짧게 차는 걸 본 오리올은 두 사람이 말다툼하기 전에 보다 건설적인 화두를 던졌다.
“많이 아쉽지 않습니까? 카인.”
“뭐가 아쉽다는 거지?”
“불청객을 피하느라 꽤 많이 지나쳐왔지 않습니까.”
“괜찮다.”
서두른 탓에 A 구역과 B 구역을 그대로 지나칠 수밖에 없었지만, 막상 가도 얻을 건 별로 없었는 게 뻔했다. 이렇다 할 반응이 없다는 걸 초월 감각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미세한 진동도 없던 걸 보면 작동하는 기기도 없었을 터. 크게 아쉬워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확인하지 못한 곳이 있을 수 있으나, 어차피 A 구역과 B 구역은 입구와 가까운 장소였다. 중요한 장치나 물품이 있을 리 없었다.
애당초 카인이 노리는 건 신의 무덤, 심부에 있었다.
오리올과 카인이 대화하는 사이, 로이나는 고대 유적지 안을 둘러보았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인 고딘을 따라 수많은 곳을 돌아다닌 그녀에게도 이곳은 생경하기 그지없었다.
채도가 낮고 명암이 짙었다. 수족관이나 지하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항시 음울하고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
문화나 문명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그보다 근본적인 괴리감 수준이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다른 듯했다.
일단, 외장부터가 달랐다.
다른 유적지는 석회나 대리석이 산재했지만, 이곳을 가득 메운 건 모두 강철이었다. 그것도 고도로 제련한 강철.
간혹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소재도 여럿 있었다.
매끄러운 벽을 매만지던 로이나의 귓가에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시설 내 침입자를 확인. 제2 경계경보를 발령합니다.]등골을 긁고 지나가는 경보음에 카인은 검을 빼들었다. 부품 제조 공장 NWE―543에서 익히 들었던 소리였다.
더구나 제3 경계경보에서 제2 경계경보로 그 수준이 올랐다. 지금까진 격벽이 내려오는 선에서 그쳤지만, 이번엔 직접적인 무력 제재에 나설 공산이 컸다.
NWE―543에서도 비슷했다.
레이저 커터와 레일건이 일행을 반겼으니까. 이곳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서 기묘한 그림자가 빠르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위이잉.
초월 감각을 한껏 끌어올린 카인에겐 폭풍 소리처럼 들렸다.
그림자가 형체를 가진 순간, 카인은 두 눈을 부릅떴다. 복도 끝에서 다가온 건, 아니 날아온 건 드론이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셋.
드론 하단부에는 기다란 총신이 달려 있었다.
희한한 건 저마다 렌즈에 들어온 불빛이 다르다는 것. 하나는 빨갛고, 또 하나는 노랬으며, 남은 건 파랬다.
양산된 기계이니 무언가 규칙성이 있는 건 틀림없지만, 지금 그걸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카인이 자세를 잡는 사이, 나이아가 기민하게 움직였다.
“모두 허리를 숙이거라.”
일찍이 신의 무덤을 경험했던 그녀였다. 누구보다 빠르게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나이아가 노린 건 렌즈가 빨간 녀석이었다.
수웅.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굽이치며 나아갔다.
화살촉이 닿으려는 순간, 빨간 녀석은 공중제비를 돌며 화살을 쏘아 떨어뜨렸다.
‘쇠구슬?’
총구에서 발사된 건 탄환이 아니라 새끼손톱만 한 쇳덩이였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물리적인 한계는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난다는 건 그만한 타협이 필요했다.
하물며 총기는 반동이 심했다. 드론에 탑재할 리 없었다.
물론, 과학이 발달했으니 무반동 소총이나 레일건 같은 대체재가 있겠으나, 그런 걸 드론에 장착할 리 없었다.
‘가성비가 하늘로 날아갈 테니까.’
그리 판단하는 사이, 나이아가 두 번째 화살을 쏘았다.
그녀가 이번에 노린 건 빨간 녀석이 아닌 노란 녀석이었다.
카인은 당연히 피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노란 녀석은 미처 보지 못했다는 듯 화살에 맞아떨어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원하게 관통당한 것이다. 빨간 녀석과는 정반대의 반응.
예상을 아득히 벗어난 결과에 놀란 것도 잠시뿐이었다. 고민할 틈도 없이 세 번째 드론이 범위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읍.”
로이나가 터져 나오는 비명을 억누르기가 무섭게 파란 녀석의 고개가 돌아갔다.
총구는 정확하게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단련된 무인도 날아오는 투사체를 막는 건 쉽지 않았다. 더구나 그녀는 마법사. 힘을 발휘하려면 그만한 시간이 필요했다.
“아가씨!”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쿤달락이 몸을 던져 로이나를 감싸 안았다. 순간, 총구에서 쇠구슬이 쏘아졌다.
드르르륵.
소리와 소리 사이에 빈틈이 없었다. 기관총이라 해도 부족하지 않을 연사 속도.
낮은 자세로 달려간 카인은 손잡이 밑으로 총구를 올려 쳤다.
기우뚱, 하고 몸체가 기울면서도 총구에서는 쇠구슬이 끊이지 않고 뿜어져 나왔다.
드르르륵.
마치 재봉틀로 박음질한 것 같은 선이 벽 위에 그려졌다.
카인은 드론이 다시 중심을 잡기 전에 검을 내질렀다.
기기긱.
불꽃이 튀며 프로펠러가 헛돌기 시작했다. 기어코 날개 사이에 검을 쑤셔 넣은 그는 드론을 땅바닥에 내려찍었다. 하단부에 장착된 총신을 걷어차서 부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니 오리올이 빨간 녀석을 떨어뜨리는 게 보였다. 본능적으로 총구만 조심하면 된다는 걸 깨달은 듯싶었다. 하지만 기뻐할 틈은 없었다.
“쿤달락! 정신 차려요.”
로이나를 감싸 안은 쿤달락이 중상을 입었으니까.
상체를 가로지르며 크게 새겨진 선은 벽에 난 것과 똑같았다.
마력으로 보호한 건지 주요 장기는 다치지 않았지만, 외상이 심각했다. 어깨는 걸레짝이 되어 제대로 붙어 있는 건지 의심이 될 정도.
누가 팔뚝만 한 크기의 드론에게서 이런 위력이 나왔다고 생각하겠는가.
“내 특제 연고를 사용할 때가 온 것 같구나.”
응급 치료에 능한 나이아가 바삐 손을 움직였다.
몸 안에 박힌 쇠구슬은 빼내지 못했지만, 그녀가 조치를 취하자 출혈은 얼마 가지 않아 멎었다. 쿤달락의 안색이 원래대로 돌아오자 로이나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 숨을 길게 내뱉었다.
“안심하긴 이르다.”
“네?”
“후발대가 더 있는 것 같으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 멀리서 드론 부대가 날아왔다. 자그맣고 날랜 기계가 얼마나 무서운지 쿤달락을 보고 깨달은 로이나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한 손으로 열손을 막을 수 없듯 아무리 주술에 능통해도 저런 건 상대할 수 없었다.
하나나 둘이면 몰라도 저렇게 떼를 지어 나타나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와 다르게 카인은 그 앞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지시를 내렸다.
“오리올, 쿤달락을 업어라.”
“알겠습니다.”
“나이아, 너는 되도록이면 노란 녀석만 노려라.”
“맡겨만 주거라.”
오리올과 나이아, 두 사람이 움직이는 걸 확인한 카인은 로이나의 팔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좁은 복도 안에서 항전해 봤자 남는 건 없다. 오직 벌집이 될 뿐이었다.
“그러면 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