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잘했어요.”
레베카 로드리게즈의 얼굴에 웃음이 만연했다.
“인터넷 반응 봤죠? 잘한다는 말도 있고 못한다는 말도 있지만, 어쨌든 반응은 많아요. 그럼 성공이죠.”
“왜요?”
“우선 화제가 되는 거. 그러려고 출연한 거니까요. 여기에 더불어 한영 씨 음악을 더 듣고 싶다는 사람도 많잖아요? 트래픽도 엄청 늘었고. 봐요, 차트 조사해 뒀어요.”
마치 내 성공이 자기 성공이라는 듯한 열정이었다.
왜 저럴까.
나한테 성공을 맡겨 두기라도 한 걸까.
고민하기를 잠시.
나는 곧 깨달았다.
‘이 사람, 내 팬이었지.’
팬이라면 뮤지션 당사자의 성공에 기뻐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가 내 매니저를 자처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아니지, 이 사람은 매니저가 없나?’
너무 혼자 다니는 것 같은데.
이상하다.
레베카 로드리게즈가 아무리 말괄량이라고 보인다고는 하나, 그녀의 정체는 빌보드 1위 뮤지션이었다.
신보 준비한다고 쉬느라 인기가 살짝 빠졌다고는 하나, 클래스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이게 의아해서 물었다.
“레베카 씨는 매니저 같은 사람 없어요?”
“아, 매니저라면?”
“따라다니면서 스케줄 관리해 주는 사람이요. 운전도 대신해 주고, 짐도 들어 주고, 필요하면 이런저런 심부름도 해 주고.”
엄밀히 말하자면, 뮤지션이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게끔 그 외 일을 맡아 주는 사람.
레베카에게는 그런 사람이 없는 건가 물어본 찰나였다.
“있긴 있어요.”
레베카 로드리게즈의 입에서 어딘가 새초롬한 대답이 나왔다.
“제 매사를 다 관리하려고 하는 그런 사람 말이라면요.”
“그게 누군데요?”
“한영 씨도 만난 적 있을 텐데요?”
그런 사람이 있었나.
누구지?
잠시 고민하려니 곧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올리버 맥튼?”
올리버 맥튼.
레베카 로드리게즈를 발굴한 장본인이자, 그녀를 빌보드에 올려놓은 초일류 프로듀서였다.
“그 사람이 매니저 일도 해요?”
“올리버는 옛날부터 스타일이 그랬거든요. 자기가 맡은 뮤지션이라면 음악부터 어디 사는지, 뭐 먹는지까지 다 관여하려고 하는 사람이라.”
어딘가 화가 난 듯한 목소리였다.
전에 한국에서 봤을 때는 점잖은 삼촌과 재기발랄한 조카의 관계를 보는 듯했는데, 불만이 가득하다고나 할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싸웠어요?”
“…….”
잠시 대답이 없었다.
“싸웠죠.”
“……싸운 것까지는 아니고.”
“싸웠네.”
“그러니까.”
“왜 싸웠어요?”
레베카 로드리게즈의 이마에 차차 주름이 잡혔다.
조금만 더 자극하면 터질 것만 같은 눈치에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말하기 싫으면 말 안 해도 되고요. 안 들어도 되니까.”
궁금하긴 궁금하지만, 굳이 벌집을 쑤실 필요는 없다.
누구든 비밀 하나는 있지 않나.
함께 작업을 진행해야 할 사람에 대해 최소한의 배려심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아뇨.”
그녀는 고개를 털레털레 젓더니 말했다.
“말할게요. 어차피 만나야 할 사람이니까.”
“……흠, 말해 보세요.”
“올리버는요. 나랑 한영이 곡을 같이 내는 걸 반대했어요.”
참 대단한 결론이다.
그런데 왜.
마땅히 반대할 이유라고 할 게 있나.
분위기 탓에 더 물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먼저 입을 연 건 의외로 레베카 본인이었다.
“조만간 나올 제 앨범에 한영 씨 곡이 여러 개 들어가길 바라지 않았거든요. 이미 불협화음(Disharmony)을 넣을 예정이기도 했고.”
“아.”
순간적으로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이 왔다.
나는 눈을 깜빡이다가 물었다.
“프로듀서로서 가치관이 부딪친 거네요. 제 음악이 너무 묻을까 봐.”
“그렇죠.”
레베카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한참이나 설득해 봤는데 좀처럼 말을 안 듣더라고요. 올리버는 프로듀서고, 그 이상으로 고지식한 사람이니까요.”
“흠, 그럼 어떻게 하죠? 그냥 그 사람은 제외하고 진행해요?”
이게 관건이었다.
올리버 맥튼과 싸운 건 알겠다.
그래서 앨범에서 아예 배제하고 진행할 것인가.
‘쉽지 않겠지.’
말처럼 확확 바꿀 일이 아니었다.
음악에서 프로듀서란 일개 하청이나 부품 따위가 아니었다.
뮤지션이 낼 앨범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굳히는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
축구로 치면 감독이었다.
선수 개인의 기량이 아무리 우수하다고 한들, 전체적인 팀의 컨디션을 관리하고 전술을 짜는 건 감독이지 않나.
본선 16강 팀이 본선 4강까지도 갈 정도로.
‘셀프 프로듀싱이 가능한 뮤지션이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꼭 필요해.’
아니, 셀프 프로듀싱이 되는 뮤지션이라고 해도 그렇다.
‘프로듀서 하나 갈아 치웠다가 망한 그룹이 한둘인가.’
음악의 질감부터 믹싱 구성, 넓게는 장르 그 자체까지 프로듀서의 영향력이 지대하기 때문이었다.
아이돌만 봐도 그렇다.
프로듀서 하나 바꿨다고 청순 컨셉 그룹이 섹시 컨셉 그룹으로 변모할 때마저 있지 않았나.
아니나 다를까.
“……아무리 그래도 올리버를 빼놓을 수는 없어요.”
그녀는 앞서 투정을 부렸다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듯, 한껏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될 때까지 설득해 볼 거예요. 지금은 잠깐 갈라졌지만, 올리버도 한영을 더 잘 알거든, 내 이야기를 받아 줄 거라고 믿어요.”
“설득하는 건 좋은데, 성공할까요?”
이어진 말에 나는 작게 웃고야 말았다.
“네, 올리버는 내 음악을 가장 잘 알아주는 프로듀서니까요.”
너무나도 순진무구한 말이었다.
저쪽은 자기 음악을 잘 아니까, 자기 의견을 들어 주리라는 말.
그 안에 깃든 순수한 확신에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왜요?”
“아뇨, 그냥.”
레베카의 의아하다는 얼굴에 나는 마저 웃고는 말했다.
“한국 속담에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게 있거든요.”
“이혼 소송은 먼저 준비하는 사람이 이긴다?”
“……그런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라.”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나랑 올리버 그런 사이 아니에요. 유부남이거든요.”
“아니, 그 뜻이 아니고.”
나는 아찔한 머리를 긁고는 설명했다.
“엄청나게 친한 사람들끼리는 싸워 봤자 금방 회복된다는 거죠.”
“나랑 올리버가요?”
“네, 그런 사이일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화가 나면서도 설득하길 포기하지 않지.
속으로 기대감을 버릴 수가 없는 거다.
그런 내 말이 레베카는 좀처럼 이해가 안 됐던 걸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일단 내일까지는 지켜봐요. 아마 어떻게든 이야기가 올 거예요.”
“만약에 안 오면요?”
내 질문에 그녀는 확고한 믿음이 깃든 목소리로 답했다.
“올 거예요.”
“…….”
이런 믿음, 싫지 않다.
특별히 합리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나 또한 원래 합리적인 사람이 아니기에, 웃으며 말했다.
“집주소 알아요?”
“알긴 아는데, 왜요?”
“정 안 되면 기타 들고 쳐들어가야죠.”
* * *
올리버 맥튼.
30년간 현역으로 활동하며, 손수 뮤지션을 프로듀싱해 빌보드 상위권에 꽂아 넣은 곡만 50곡에 달하는 초일류 프로듀서.
그런 그에게 최근 유독 눈에 밟히는 뮤지션이 한 명 있었다.
‘김한영, 대체 그 사람이 뭐라고 자꾸 얽히는 거지.’
김한영이었다.
오늘은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소파에 앉은 채로 멍하니 정원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점차 분노가 가라앉고 마음에 평화가 돌아오…… 기는 개뿔.
‘짜증이 가시질 않는군.’
불길만 한층 더 거세질 뿐이었다.
‘레베카가 물들고 있다. 이대로면 자기 근본까지 버릴지도 몰라.’
원인을 따져 보자면 레베카다.
올리버 맥튼, 그가 여태껏 발굴한 뮤지션 중에서도 가히 독보적이라 불러 마땅한 천재 신인.
첫 앨범부터 빌보드 1위를 찍어 버렸으니 더 할 말이 필요 없겠다.
그런 그녀가 가진 색깔은 소중했다.
잘 갈고닦거든, 어쩌면 다음 앨범에서 미국 음악계의 행방마저 좌지우지할지 모르는 것이니까.
여기에 김한영이라는 불순물을 묻히고 싶지 않았다.
한 곡으로 족하다.
이 이상은 거추장스럽다는 게 그의 생각.
“후우우…….”
한숨만 흘러나온다.
하물며 그를 화나게 하는 건 이 일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하나 더 있었다.
세계적인 프로듀서라고 한들,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난제가 그의 신경을 압박하고 있었다.
“왜 하필 우리 딸까지…….”
그녀의 딸이었다.
에밀리 맥튼.
늦은 나이에 얻은 딸은 올리버의 보물이었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그녀의 모습이 눈에 훤했다.
정원에서 뛰어놀면서 나이를 먹으면 그와 결혼하겠다고 말하던 개구쟁이 딸이.
가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만 같은 딸이었다.
하지만 부모 바라는 대로 크는 자식은 없다고 했던가.
에밀리 맥튼은 최근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갑작스럽게 부모와 거리를 두고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다.
‘커서 뭐가 될는지.’
문제는 그 관계를 개선할 방법조차 떠오르지 않는다는 거다.
워낙 일에 미쳐 살았던 탓이다.
심하면 한 달에 한 번도 얼굴을 보기 어려웠던 탓인지, 에밀리는 자기 부모에게 어떤 거리감마저 느끼는 듯했다.
부모 자식 사이에 학교생활로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아빠는 일밖에 모르잖아. 이제 와서 신경 쓰는 척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아빠도 알잖아. 우리 그런 사이 아닌 거.]최근에 들었던 말이 사무친다.
“후우우우으으으.”
올리버 맥튼이 좌절감에 마른 꽈배기처럼 비틀어졌다.
두 여자 때문에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하나는 김한영한테 물들까 봐 걱정이고, 나머지 하나는 학교에서 나쁜 물이 들까 봐 걱정이다.
굳이 따지자면 후자가 더 거슬리는 상황일까.
‘자식 일도 업무처럼 해답이 있었으면 좋겠군.’
답이라고는 보이지 않아, 2만 달러짜리 소가죽 소파에 앉아만 있는 와중이었다.
부우웅-
핸드폰이 울렸다.
‘……휴일이라고 분명 말해 뒀는데 전화를?’
올리버 맥튼의 이마에 작게 혈압이 솟았다.
딱히 화를 내는 성격은 아니지만, 지금은 상대가 누구라고 한들 화를 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잘 걸렸다.’
그렇게 반은 호기심에, 반은 화풀이를 위해 핸드폰을 집어 든 순간이었다.
“음?”
액정 위에 적혀 있는 발신인은 그가 감히 예상조차도 못 했던 사람이었다.
그녀의 딸, 애밀리 맥튼이었다.
쿠당탕!
올리버 맥튼은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충격을 받으며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딸이 나한테 먼저 전화를?’
최근 반년간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들의 관계는 메시지 중심이었다.
굳이 전화를 건다면, 올리버 맥튼이 먼저 전화를 거는 정도.
“후, 후, 진정하자. 사고라도 난 건가? 아니면 급히 돈이 필요하다거나?”
그답지 않게 혼잣말을 중얼거릴 만큼 긴장했다.
제자리에서 오두방정을 떨기를 잠시.
마침내 진정하고, 아니, 사실은 진정 못 하고 핸드폰을 받아들었을 때였다.
“응, 우리 딸. 무슨 일이야?”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어온 말에 올리버 맥튼은 성대하게 기침을 토해 내야만 했다.
[아빠, 인터넷에서 그러는데 아빠가 김한영이랑 같이 곡 낸다던데 진짜야?]“…….”
또 그놈의 김한영이었다.
지긋지긋한 김한영.
딸의 전화는 달갑지만, 그 안에 끼어 있는 불한당의 이름에 혈압이 치솟은 순간이었다.
[맞으면 나 혹시, 아빠 일하는 거 보러 가도 돼?]말 한마디에 올리버 맥튼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달달 떨렸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