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핸드폰을 붙잡고 있기를 잠시.
나도 모르게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기특한 일을 다 하네.’
지구 반대편, 한국에 남아 있는 팅 식구들이 릴레이 방송을 한단다.
그것도 내가 돌아올 때까지 24시간 내내 계속.
‘내가 가는 게 늦어지면 어쩌려고.’
흡사 성화 봉송을 보는 듯한 행동에 나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은 팅 식구들의 머릿수가 늘었다지만, 그래 봤자 꾸준히 활동하는 사람은 10명이 채 안 되는 게 현실이지 않나.
매일매일 인당 3시간은 갈려 나가겠네.
‘컨텐츠 기획 시간만 생각해 봐도 수면 시간이 없겠는데.’
방송이라는 게 딱 카메라 앞에 서는 시간만 계산한다고 끝이 아니다.
기획에 섭외에 회계에 뭐에 하나하나 고려하려면 시간이나 비용이나 눈덩이처럼 부풀기 마련이지.
주구장창 매일같이 방송만 해도 컨텐츠가 안 줄어드는 건, 그냥 내가 특이한 거고.
‘고생하겠네.’
하지만 이런 고생, 나쁘지 않다.
뭐가 됐든 하나는 얻는 게 있으리라.
오히려 팅이 알아서 잘 활동해 준다니까 내 시름도 조금이나마 풀렸다.
나는 그 정신력을 다른 곳에 집중하기로 했다.
바로.
“와아아아아!”
공연장이었다.
나는 그 뒤편 대기실에서 모니터링 화면을 보며 작게 놀랐다.
‘누가 미국 아니랄까 봐 스타디움이 널렸네.’
이곳은 캘리포니아 도시 대학 부설 경기장.
CCU 스타디움.
벡 딕슨 LA 투어의 시작 지점이자, 미식 축구장을 겸하는 초대형 공연장이었다.
‘수용 인원이 2만 명쯤 된다고 했나.’
일개 학교 캠퍼스에 소속된 경기장이라는 게 감히 믿기지 않을 정도.
에이, 아무리 그래도 2만 명은 선 넘었지.
한국에서는 1만 명만 넘어도 꽤 대형으로 꼽히는데, 여긴 기본이 만 명 단위로 노는 모양이다.
‘역시 천조국, 스케일이 남다르다.’
문제는 그 숫자였다.
왜 뮤지션들이 공연을 크게 못 하겠는가.
사람들이 잘 안 모이는 것도 있지만, 조금만 실력이 어설퍼도 그 사람들에게 존재감이 한껏 묻혀 버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오늘의 공연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이 거대한 스케일조차도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와아아아아아!”
“벡! 딕슨! 벡! 딕슨! 벡! 딕슨! 벡! 딕슨!”
그 2만 명의 관객이 한 남자의 이름을 외치며 이 거대한 공연장을 뒤흔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벡! 벡! 벡! 벡!”
“벡! 벡! 벡! 벡!”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함성이 너무 거대해서 이 세상을 대홍수처럼 뒤엎어 버릴 것만 같다.
기세가 놀랍다.
더 놀라운 건 그 기세를 마주한 남자였다.
벡 딕슨.
열혈 관객이 몇만 명쯤이나 되면 조금이나마 기가 눌릴 법도 한데.
“Follow your heart, sometimes it is better than your brain.”
벡 딕슨은 반대였다.
그가 홀로 세상을 압도했다.
“As your guide――!!!”
“……!”
그의 트레이드마크, 4옥타브 샤우팅이 쩌렁쩌렁하게 터져 나오며 허공마저 뚫었다.
늙은 사자의 포효.
쇳가루를 한껏 털어 넣은 듯한 금속성 목소리가 관객들을 압도했다.
‘미쳤네.’
관객들을 넘어, 내 피부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말이다.
‘살아 있는 역사가 되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건가.’
라이브로 듣자마자 깨달았다.
이런 음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이 사람, 벡 딕슨 한 명뿐이리라.
대체재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 어느 사람을 데려다가 놓더라도 그의 음악을 선보일 수 없다.
압도적인 오리지널리티.
그것이야말로 뮤지션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이고, 벡 딕슨이라는 괴물이 당연하다는 듯이 가진 것이었다.
‘그나마 늙어서 전성기보다 한풀 꺾였다는 게 이거라고?’
우습기 짝이 없다.
“NANANANANANANANA! NANANANANANANANANANA! NANANANANANANANA! NANANANANANA!”
거센 포효를 쉬지 않고 내지르는 것 하나만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음악이 되었다.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알겠다.
이 정도는 하니까 늙어서도 몇만 명을 당연하다는 듯 공연장에 끌고 다니는 거구나.
그의 실력은 대단하다.
인정하겠다.
벡 딕슨은 다이아몬드다.
그렇기에 내 어깨에 걸린 부담이 한층 더 무거워졌다.
‘어떻게 해야 여기에 안 묻힐까.’
내가 벡 딕슨의 뒤를 이어 공연해야 할 차례이기 때문이었다.
‘쉽지 않네. 이쪽이 강하게 나왔으니까 나도 조금 더 힘을 넣을까? 아니면 아예 힘을 풀고? 훨씬 더 집중해야겠어. 아니다. 곡을 바꿔 볼까?’
그렇게 나도 모르게 적당한 긴장감에 잡힌 와중이었다.
“재밌죠?”
어느 누군가가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레베카 로드리게즈였다.
그녀가 긴장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얼굴로 히죽히죽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국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공연을 함께 뛸 수 있다니, 한영 씨는 정말 축복받은 거라고요.”
“글쎄요.”
나는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이게 축복일지 저주일지, 어쩌면 독이 든 성배일 수도 있겠는데요.”
“왜요?”
“저쪽 실력이 너무 대단해서?”
이번에는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어지간하면 남 실력을 크게 인정하지 않는 나지만, 세계 1위를 앞두고 턱을 빳빳이 세우는 건 만용에 지나지 않았다.
내게도 부족한 구석이 있다.
그 사실을 빠르게 인정하고 대안을 물색하는 게 현명하니까.
필요하다면 남의 조언에라도 귀를 기울여야지.
“어떻게 해야 덜 묻힐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왜요?”
레베카 로드리게즈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하면 되잖아요.”
말은 쉽다.
그냥 하면 된다니.
누구라도 그런 대답을 못 꺼내겠나.
하지만 프로라면 단순히 하는 수준을 넘어, 잘해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까 저쪽이 너무 잘해 버려서.”
그런 생각으로 반박하려는 와중인데, 레베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한영, 그 말은 좀 이상해요.”
무엇이 이상하다는 건가.
여전히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목소리의 뒤로, 내 의식 바깥에 있었던 말이 흘러나왔다.
“한영도 이미 저만큼 하잖아요.”
내가 저쪽에 안 밀린다는 말이었다.
“네?”
“생각해 봐요. 평소 하던 대로만 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왜 걱정을 하죠? 오히려 남한테 맞춘다고 평소 스타일에서 억지로 바꾸면 그게 더 듣기 거북하지 않을까요?”
“…….”
“난 저 아저씨보다 한영 씨 노래가 더 듣기 좋던데. 저 아저씨 노래는 안 맞아서 나도 잘 안 들어요. 자극적이라서 듣다 보면 귀가 아프기도 하고.”
태연하다.
마치 상식을 논하는 것만 같은 그 말을 들은 찰나, 내 머릿속으로 번개같이 내려꽂히는 게 있었다.
‘초보적인 실수를 했다.’
그것도 너무나도 초보적인 실수.
흔히 음악을 시작한 지 오래 안 된 뮤지션들이 하는 실수가 하나 있었다.
[자기 페이스를 잃어버릴 때가 많아. 어딜 가든 자기가 할 수 있는 자기 음악을 해야 하는데, 그걸 못 하고 휘둘리는 거야. 앞에 무대 했던 사람이 고음 질렀다고 자기도 무심코 격하게 불러 버린다거나. 이게 거의 최면술이거든.]흔들려 버리는 것.
이건 누구나 한 번쯤 빠지는 딜레마라고 불러도 좋았다.
막상 음악을 시작하고 한 30초만 지나도 머릿속이 깨끗해지지만, 그전까지는 앞선 무대 탓에 자극에 취해 버리는 것.
내가 그 상황이었다.
벡 딕슨의 노래를 듣다 보니까, 거기에 취해 나도 모르게 중심을 놓쳐 버렸다.
‘나답지 않게.’
마이페이스를 잃어버렸다.
어째서일까.
여간해서는 긴장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설마 나는 미국이라는 무대에서 잘해야겠다는 압박감에 눌린 나머지, 긴장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의 놀이터에 같이 놀자고 불려 왔으면서, 면접장에 온 것만 같은 기분에 취해 있던 게 아닐까.
“한영의 장기는 편안한 음악이죠?”
상념에 빠진 사이 레베카 로드리게즈가 말을 이었다.
“가만히 틀어 놓고 휴식하기 좋은 음악. 하루를 마치고 소파에 누워서 쉬면서 들어도 좋고, 산책하면서 들어도 좋고. 전 그게 한영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짬짬이, 시간 날 때마다 듣는 거.”
그런가.
레베카의 말에 따르자면 나는 벡 딕슨의 경쟁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협력자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나는 문득 머릿속으로 떠오른 문장에 고개를 살며시 들고는 말했다.
“이렇게 해 보는 거 어떨까요?”
* * *
김한영이 벡 딕슨의 투어에 합류했다.
이는 대다수 사람에게는 기쁜 소식이겠지만, 모두에게 그런 건 아니었다.
[김한영? 아무리 그래도 벡 딕슨한테 비비는 건 조금.] [마케팅도 적당히 해야 보기 좋지.]벡 딕슨에게 묻어가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인 뮤지션이 미국에 진출할 때 흔히 나왔던 비판이었다.
유명 뮤지션의 스페셜 게스트로 투어를 따라다니며, 콩고물을 주워 먹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
[유명 걸그룹 ‘A’ 공연을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찾아와서 봤대.] [그거 조작임] [사실 다른 유명그룹 게스트로 따라간 건데, 거기에 트럼프가 보러 왔던 거라는데?] [ㅋㅋㅋㅋ 진짜 언론 플레이 수준] [따라다니는 밴드가 5만 명 동원하니까 게스트가 5만 명 왔다고 말하는 수둔] [팩트가 없는 곳에서 이 정도의 수둔을?]김한영도 같은 논란에 맞부딪쳤다.
벡 딕슨을 이용하려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건 한국에서의 시선일 뿐, 미국에서는 또 다른 논란 하나가 더 따라붙었다.
[김한영이 누군데 벡 딕슨 뒤에 붙냐?]벡 딕슨의 팬들 시점이었다.
그것도 다소 올드한 코어 팬들의 시점.
[이름도 모르는 한국인 뮤지션인데] [지난번 방송 나왔잖아. 한영 아카데미. 도라 쇼도 나왔고.] [안 봤다.] [쇼는 쇼지.] [내가 왜 벡을 보러 가서 김한영 노래를 들어야 함?]좋아하는 가수의 라이브에 잘 모르는 뮤지션이 게스트로 따라붙었다.
이게 예로부터 관대한 사람은 관대하게 보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굉장히 싫어하는 행동이기도 했다.
더욱이 벡 딕슨처럼 오랜 골수 팬덤을 자랑하는 뮤지션이라면 더더욱.
[근본도 없는 음악 하는 애잖아.]무릇 리스너들은 10대 20대에 취향이 굳으면 나이가 들수록 다른 음악을 수용하기 어려워진다고 했던가.
하물며 벡 딕슨은 90년대에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사람이다.
그의 팬들은 상당수가 20년 이상 그의 음악을 들으며 취향을 굳힌 사람들.
자연히 김한영의 음악에 큰 관심이라고 할 것이 없었다.
“진짜 기대 하나도 안 되네.”
지금, CCU 스타디움에 찾아온 관객 중에서도 그런 목소리가 잦았다.
“레베카 로드리게즈도 그렇고, 왜 동양인들은 매번 미국 아티스트를 데려가서 자기 발판으로 쓰려고 하지?”
“그게 다 돈을 따박따박 꽂아 주니까 그러는 거 아냐.”
“케이팝은 정부에서 육성 산업으로 삼고 활동 자금을 후원해 준다는데.”
그중에서도 벡 딕슨의 팬들은 유명했다.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큰 탓인지 기준이 철골처럼 뻣뻣한데, 그 탓에 다른 뮤지션들에 대해 공격적일 때가 잦았다.
김한영에게도 그러했다.
이 자리에 찾아온 팬의 상당수는 김한영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한창 벡 딕슨의 음악에 취해 있었는데, 그 분위기를 김한영이 해치는 거 아닌가.
더욱이 앞으로 투어 내내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니.
벡 딕슨이 선택한 일이라고는 한다만, 팬들 관점에서는 살짝 짜증이 날 정도였다.
“김…… 한영…… SUCKS. 트윗.”
“말조심해. 인종차별 한다는 소리 들을라.”
“나는 당당해.”
그렇게 불안으로 가득한 와중이었다.
틱.
멀리서 현을 가볍게 당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둔탁한 소리.
그 소리를 자아낸 주인공은 바로, 김한영이었다.
그가 시큰둥한 얼굴로 무대 위에 올라와서는 현을 이리저리 퉁기며 손을 풀고 있었다.
“얼른 한 곡 하고 꺼져라.”
“우우우우!”
“꺼져!”
누군가는 아예 대놓고 고함을 지를 정도.
하지만.
김한영은 그 모든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 말없이 기타 현을 퉁길 뿐이었다.
묵묵히.
아무런 말도 없이 자기 음악에 집중하며 집중력을 고조시켰다.
마치 무대 바깥과 유리 벽을 두고 격리된 듯.
압도적인 집중력으로 기타와 자기 자신을 조율하는 데만 파고들었다.
그럴수록 관객들의 야유는 짙어져만 갔고.
“우.”
“우우우우!”
그러한 불만감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하늘을 가릴 지경이 되었을 때.
팅-.
호수에 이는 파문과도 같이 맑은소리가 야유를 한순간 걷어 냈다.
그와 함께 김한영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더없이 차분한 눈빛.
이 세상에 그밖에 없다는 듯한 눈빛.
마치 공연장이 아닌 바닷가 너머를 바라보는 듯 잔잔한 눈빛이었다.
“……!”
그 눈빛 하나에 2만 명의 관객이 자기도 모르게 움찔한 순간.
김한영이 마침내 마이크를 향해 입을 열었고.
“――.”
휘파람이 흘러나왔다.
잔잔한 휘파람.
그 휘파람이 CCU 스타디움에 가을바람을 가져왔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