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82
82화
아침이 밝았을 무렵.
나는 퀭한 눈길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버그 걸렸나?”
버그.
버그가 아니고서야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48위라니.
아무리 새벽 틈새시장을 노리고 몇몇 운이 따랐다고는 하나, 48위라니.
실시간 순위라고는 하나 48위라니.
‘보통 기획사에서 밀어 주는 신인이나 이게 되지 않나.’
요즘 시장이 얼마나 척박한지는 한윤태에게 귀가 저릴 만큼 들었다.
또 몸으로도 겪었다.
그렇기에 이게 얼마나 비정상적인 일인지도 뼈저리게 알았다.
물론, 지금은 많이 내려가서 90위대까지 추락했다고는 하나.
그래도 100위 안이었다.
“돌으신? 님 정말 돌으신? 휴먼, 제정신입니까?”
고희범이 손가락을 귓가에 대고 빙글빙글 돌렸다.
“어케 했냐.”
“낸들 알겠냐.”
뭐라도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검색해 본들,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이 나눈 대화만 간간이 보일 뿐이었다.
그냥 그런 분위기였나 보다.
이 말 외에는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48위.
누군가에게는 하잘것없는 순위일 터.
하지만 내게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순위였다.
‘미튜버 영향력이 강하기는 강하구나.’
하기야.
내 구독자가 근 20만 명 가까이 된다.
요즘 들어서는 올리는 영상마다 족족 10만 조회 수를 가뿐히 넘기지.
10만 명의 고정 수요자가 있다고 생각해 보면, 굳이 불가능한 일도 아니겠지.
‘아, 모르겠다.’
이미 일어난 일을 어쩌겠나.
그보다 급한 일이 있었다.
“개강이네.”
그렇다.
이제 중경대의 2학기가 시작되었다.
당분간은 학업을 병행해야 할 터.
“한영아, 그냥 자퇴할까?”
“……지금 그 말이 솔깃하게 들리는 내가 싫다.”
부모님에게 대학을 다니겠다고 했으니 다니기는 해야겠지.
또한, 내 방송이 대학생 컨셉을 유지하는 이상 아예 손해라고 보기도 애매하고.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삑삑삑! 삑! 철컹!
작업실 현관문이 열리더니 한 사람이 다짜고짜 들어왔다.
“야! 김한영!”
홍윤서였다.
그는 잠에서 깨자마자 달려왔는지 숨을 한참이나 헐떡이기를 한참.
멋들어지는 손길로 이마의 땀을 닦아 내고는 말했다.
“저녁에 치킨.”
“네.”
* * *
등굣길.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지인들에게서 축하 인사가 쏟아졌다.
[임선우: 임선우(님)이 기프티콘을 보냈습니다.] [조은솔: 이렇게까지 빠르게 뜰 줄은 몰랐는데.] [성민아: 진짜 말도 안 나온다.] [김예담: 한영이는 우리 자랑이야.]간단하게는 팅 식구들부터 시작해서.
[김이철: 무슨 일을 한 건지 감도 안 오지?] [강유미: 축하해요^^] [모노: 나중에 방송 나오기로 약속한 거 아직 기억하고 있죠?]업무적으로 얽혔던 사람들의 연락까지.
축하 인사를 하나하나 받는 게 피곤할 정도로 쌓였다.
하지만 이런 건 감당할 수 있다.
정말로 부담스러운 건 따로 있었다.
‘이야.’
학교였다.
강의실에 앉아만 있어도 사람들의 시선이 팍팍 꽂혔다.
어디로 눈을 돌리든 나를 슬쩍 훔쳐보는 눈빛이 하나씩은 보였다.
애초에 숨길 생각도 없는 듯했다.
‘어메이징 스펙타클이네.’
은근 부담스럽다.
내 얼굴에 꿀이라도 발라 뒀나.
하지만 몇 발자국 떨어져서 은근히 바라보는 시선만 가득할 뿐, 정작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드물었다.
1학기 내내 동기들과 거리를 두고 자발적인 아웃사이더로 살았던 덕일까.
‘이런 게 익숙하기는 한데, 조금 그렇네.’
옛날에도 이런 시선이 잦았다.
나를 인정하는 사람이 많으면서도 살짝 겉도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질시하는 사람도 있고.
우스워하는 사람도 있고.
마냥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고.
‘윤태가 아니었더라면 오래 못 버텼겠다.’
강의실의 이방인이라도 된 기분에 갑작스럽게 옛 생각에 잠긴 찰나였다.
“야.”
누군가가 대뜸 내 옆자리 책상에 짐을 얹더니 말했다.
“왜 톡 안 읽어.”
고개를 들고 보니 성민아였다.
나는 흡사 구세주라도 강림한 기분을 느끼며 말했다.
“아, 톡이 너무 쌓여서 보낸 줄도 몰랐네.”
“인기 많아서 좋겠다.”
“내가 좀.”
“……칭찬으로 한 말 아니야. 그래서 희범이는?”
“화장실.”
그런데 성민아가 내 옆자리로 오자 시선이 한층 더 쏠렸다.
하지만 이제 그 시선이.
‘오.’
딱히 부담스럽지가 않았다.
‘생각보다 편하네.’
새삼스럽다.
성민아 덕분인가.
그러고 보니까 그녀 또한 1학기에만 해도 거리감이 좀 있었지.
말이 같은 동아리지, 과에서는 남남처럼 굴러다녔다.
그랬던 게 방학 중 부쩍 사이가 가까워졌지.
1학기에는 그녀가 옆자리에 있으면 은근히 불편한 구석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사람 하나 있구나 하는 느낌.
하지만 그 정도로도 학생들의 눈길을 흘리기에는 충분했다.
‘사람은 누구나 역할이 있다더니.’
성민아도 그러했나 보다.
“이번 수업 유명하더라.”
그녀는 이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짐을 차례차례 풀며 입을 열었다.
“선배님들한테 물어봤는데, 아주 질색을 했어.”
“왜?”
“과제가 지랄 맞대.”
이번 수업의 제목은 [미디어와 문화].
전형적인 학점 때우기용 교양 수업인데, 그 교수가 조금 독특한 사람인 듯했다.
“교수님이 이상하게 참신한 걸 좋아하신다나. 그때그때 교수님 기분 따라 수업 내용도 바뀌어서 강의계약서도 믿을 게 못 된대. 그래서 족보도 쓸모없고. 흐아암.”
성민아는 잠이 덜 깼는지 하품을 하며 말했다.
“미디어라는 단어를 끼워 맞출 수만 있으면 뭐든 낸다나.”
미디어라.
생각해 보면 요즘 미디어는 인터넷 방송으로 힘이 많이 쏠린 경향이 있었다.
몇 년만 더 지나도 인터넷 방송이 텔레비전을 완전히 대체하리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
“그래도 작년에는 혜자였다더라.”
“어땠는데?”
“중간에 자꾸 출장 간다고 수업 16주 중에서 교수님이 수업 나오신 게 4번밖에 안 됐다나.”
“…….”
진짜로?
그래도 되나 싶은데 성민아가 말을 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영상만 틀어 주고 끝났대. 과제도 강의 감상문 정도만 쓰면 됐고. 애니메이션 보고 감상문.”
들을수록 유감, 아니, 가관이다.
이거 괜찮은 건가.
그냥 수업 날로 먹었다는 말 아닌가.
중경대 등록금, 과연 그 역할을 다하고 있나.
나도 모르게 의문을 품은 순간이었다.
“헬로우. 에브리바디. 상쾌한 아침이에요.”
몹시 산뜻해 보이는 목소리를 과시하며 한 여자 교수님이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희범이 아직 안 왔는데.’
화장실에 전세라도 냈나.
* * *
결과적으로 말해서, 성민아의 말이 90%는 맞았다.
“요즘 미튜브 안 보는 사람 없죠? 난 요즘 매일 미튜브만 보고 사는데. 재밌는 게 너무 많은 거 있죠?”
[미디어와 문화] 강의를 담당한 교수, 박정화는 좋은 의미에서도 나쁜 의미에서도 툭 튀는 사람이었다.우선 사람 자체가 무게감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쾌활한 것도 있지만.
“이거 재밌지 않아요?”
수업 내용이 더더욱 그러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크로마키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해요. 그런데 이제 안 쓰는 사람이 없죠? 방송 좀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식이잖아요. 이것 좀 봐요. 재밌죠?”
수업을 빙자한 자기 취미활동을 소개하는 방송이라고나 할까.
그러다가도 갑자기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새어 나가기도 했다.
“이런 면을 보면 서로 장점을 베끼면서 급속도로 발전하는 게 꼭 유럽을 보는 것 같네요. 유럽은 옛날부터 전쟁이 워낙 잦다 보니 그 과정에서 인구 이동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인구 이동은 뭐다? 곧 문물이 널리 보급되기도 했다는 거죠.”
갑자기 역사 이야기로 흘렀다.
“어떻게 보면 전쟁과 미디어의 발전은 서로 닮은 구석이 보이죠. 미디어는 라틴어 미디움(medium)에서 온 말인데, 이게 서로를 연결하는 중간이라는 말이에요. 알겠죠? 미디어를 매개체 삼아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거죠. 그런데 사실, 정보라는 말도 군 용어에서 널리 파생된 용어거든요. 이것도 생각해 보면 재밌죠?”
이야기의 흐름이 우주로 갔다.
“이것 좀 봐요. 요즘은 미튜브에서만 활동하는 아이돌도 있다고 하죠? 옛날에 사이버 가수 애덤도 요즘 시대로 왔다면 잘나갔을지도 모를 일 아닐까요?”
안드로메다은하로 갔다가,
“제가 어제저녁에 보면서 잔 건데, 여러분도 같이 한번 보고 싶네요. 밥만 먹는데 돈이 들어온다니 신기하죠?”
IC 1101 은하로 갔다가.
그러는데도 나름대로 수업 내용은 들을 만하고, 부드럽게 이어져 나간다는 게 신기할 따름.
‘썰 푸는 것 같네.’
이 교수, 방송도 나름 잘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듣고 있는 참이었다.
“결론이 무엇이냐. 우리는 모두 미디어의 노예라는 거죠.”
어느 순간 급전개가 왔다.
“남이 떠먹여 주는 미디어에 종속되는 노예. 사고의 틀을 못 벗으면 평생 미디어에서 흘러나오는 녹을 받아먹으면서 살아야 하는 겁니다.”
뭐지.
중간에 뭐가 많이 생략된 것 같은데.
‘혁명이라도 일으키려는 건가?’
눈을 깜빡하고 나니까 갑자기 결론이 여기로 치달았다.
중간에 흐름을 놓친 것 같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거기, 훤칠한 학생.”
박정화 교수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미디어를 내부에서 깊게 이해하려면 뭘 하는 게 좋을까요?”
“음.”
미디어에 대한 이해라.
그런데 내가 잘 아는 미디어라고 해 봐야 인터넷 방송 정도다.
한때는 가볍게 봤지만, 어느 사이 진지해졌지.
그렇기에 나는 당장의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을 꺼냈다.
“직접 미디어를 활용해 보는 게 최선 아닐까요. 그래야 구조를 잘 알 수 있으니.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음, 훌륭한 의견입니다.”
박정화 교수는 몹시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자, 박수 한 번 쳐 줍시다.”
갑작스레 박수가 쏟아졌다.
“들었죠? 미디어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서, 생산자가 되어 보는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박정화 교수는 이어서 펜으로 화이트보드를 탁탁 치더니 말했다.
“자, 제가 처음에 한 말 기억하죠? 지금 시대는 인터넷 방송의 시대입니다. 그러니 직접 인터넷 방송을 해 봐야겠네요. 다 함께 미튜브 계정을 만들고 영상 콘텐츠를 제작해 봅시다. 세 명씩 조를 이루세요.”
갑자기 조별과제로 빠졌다.
가관이다.
미튜브 계정을 만들어서 영상도 하나 뽑아 보라는 조별과제라니.
“미디어는 사람 사이를 뜻한다고 중간에 미리 말씀을 드렸듯, 교류와 소통을 잘 살린 작업물에는 가산점을 매기겠습니다. 또한, 기말 과제 평가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사람에게는 제가 개인적으로 상품을 하나 걸겠습니다. 기대해도 좋아요.”
어질어질하다.
기획서를 제출하고 그 기획서를 기반으로 실제 완성해 보는 것까지가 과제였다.
물론, 당장은 아니고 천천히 진행해야 할 일.
그런데 이게.
‘날로 먹을 수 있겠는데.’
내게는 가장 쉬운 과제이기도 했다.
미튜브로 먹고사는 사람 아닌가.
콘텐츠 좋지.
이 수업을 콘텐츠로 살려 보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보통은 일상 영상 찍어다가 올리는 정도를 생각하겠지?’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 이상을 해 보고 싶은 참이었다.
학교 과제로 뭔가 기깔나는 걸 제출해서 방송으로도 써먹고 싶다.
뭐가 좋을까.
한창 고민에 빠진 사이 박정화가 내게 한쪽 눈으로 윙크를 하며 말했다.
“아까 멋진 대답을 준 학생한테는 더더욱 좋은 작업물을 기대해도 되겠죠? 프로 정신이 깃든 작업물로요.”
“…….”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교수님, 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는 것 같은데.
그런 직감이 스칠 무렵 수업이 끝났다.
“그럼 다음 시간에 다시 만나요. 씨 유 레이터~.”
박정화 교수는 명랑하게 수업을 시작했듯, 발랄한 목소리로 떠났다.
그렇게 짐을 싸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였다.
“야, 야, 야. 대박 사건.”
고희범이 내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수업 중에 컨텍 하나 왔더라.”
“컨텍? 무슨 컨텍.”
“테슬라 통해서 연락이 왔어.”
다소 뜬금없는 말이었다.
왜냐.
“우리 테슬라 들어간 거 아직 공개 안 했잖아.”
일반 대중에게는 전혀 안 알려진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내부 사정을 알고 이야기라도 했다는 건데, 은근한 의문을 품은 찰나였다.
“같은 테슬라 소속 미튜버한테서 콜라보 제의가 왔는데?”
“테슬라 소속?”
“응, 상당히 잘나가는 사람이야.”
고희범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구독자가 100만을 한참 넘어.”
100만.
흔히 대박 미튜버의 기준점으로도 불리는 숫자였다.
그 정도 되는 사람이 갑자기 콜라보를 불렀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임대경쯤 되는 거물 앞에서는 막상 그냥 그런 나 자신에게 아이러니함을 느끼기를 잠시.
고희범이 숨 가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메가 무비라고 알아? 10분짜리 초 단편 영화를 찍는 팀인데.”
“어? 메가 무비?”
성민아가 놀란 목소리로 답했다.
“거기 영상 퀄리티 미쳐 날뛰는 거로 유명하잖아.”
그녀가 알 정도면 어지간히 잘나가는 팀인 모양.
고희범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여기에서 자기네 방송이랑 콜라보할 생각 없냐고 묻더라.”
“어떤 콜라보?”
“음악 관련해서 협력을 구하고 싶다던데.”
그 말을 들은 순간이었다.
‘이거,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겠는데.’
일거양득의 길이 눈앞에 깔렸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