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275
275. 음악의 경계 (5)
전생엔 누군가를 놀라게 했던 기억만큼이나 내가 누군가를 보며 놀랐던 기억도 많다.
수많은 음악가들을 보았고, 수없이 놀라워했지.
음악은 내게 늘 신비했고, 그것을 행하는 음악가들은 그 신비한 것을 만들어내는 조물주들이었다.
그들이 하는 모든 ‘음악’이란 행위가 놀라웠지만, 그중 가장 신기했던 것을 꼽으라면 작곡에 이어 초견(初見)이 빠질 수 없었다.
내겐 암호만큼이나 복잡해 보이는 악보를 처음 보고 연주하는데, 박자조차 흔들리지 않는 모습은 그야말로 신기(神技)에 가까웠다.
한 줄로 쓰인 글자들을 막힘없이 읽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열 손가락이 각기 다른 음표를 이어가다니.
놀라워하는 나에게 하이든은 대수롭지 않게 신기의 비밀을 말해준 적이 있었다.
“수없이 악보를 보고 연주하다 보면, 계산하지 않아도 손이 먼저 움직이게 되는 거지.”
내겐 아무리 의식을 쏟아부어도 결코 움직이지 않는 게 바로 이 두 손인데, 저절로 움직인다니.
그런 기분을 내가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니 내 스승이기도 했던 아버지는, 음악을 머리가 아닌 두 손과 가슴으로 하는 거라 하셨네.”
“······.”
“물론 그 생각이 지금에 와선 조금 바뀌긴 했어.”
하이든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턱을 괴며 말한다.
“자넬 보니 손까지도 필요 없지 싶네. 가슴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게 음악인 것이지.”
나는 작게 웃었다. 그게 조소인지, 미소인지조차 모르게.
“저 위로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렇게 들렸나. 진심이었는데 말이지.”
턱을 쓸어내리며 진지한 표정으로 답하는 하이든.
별다른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나는 질문을 이어나갔다.
“아무튼, 신기하네요. 그래서요? 저절로 손이 움직이면요? 그건 대체 어떤 기분인가요?”
“······이런 얘길 들으면 속상한 게 아니었나?”
하이든이 조심스레 물었다.
왜 아니겠나. 고개를 주억였다. 그리고 덤덤하게 말했다.
“상하죠. 답답하고, 아프죠. 근데 그래도 알고 싶은 것들이 있잖아요.”
“······.”
“제겐 음악이 그래요.”
늘 그래왔다.
음악은 내 명확한 한계이자, 좌절의 경계.
하지만 동시에 희망의 시작이자, 삶의 이유.
동전의 양면처럼, 음악은 늘 알고 싶었고, 알고 나면 닿을 수 없어 답답해지는 영역이었다.
그렇기에 오늘도 나는 동전의 뒷면을 뒤집어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확인한다.
“악보를 수없이 보고, 초견을 계속 연습하다보면.”
그렇게 하이든이 내가 알 수 없는 또 다른 음악을 알려주었다.
“······어느 순간, 건반 위에 길이 보이기 시작해.”
#
피아노 의자에 털썩 앉자, 사회자가 악보 하나를 가지고 다가왔다.
코드가 거칠게 적혀있는 1단짜리 악보.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자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설마 하는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설마 양손 악보를 원했던 건 아니지?”
“있나요?”
“······.”
곧바로 어처구니없는 표정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런 그의 얼굴을 보며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양손 악보가 없다는 것과 그가 나를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
“정말 할 수 있겠어요?”
지금이라도 얼른 내려가라는 듯한 눈빛에 어깰 으쓱였다.
“해볼게요.”
“끙······.”
사회자가 머리를 흔들며 무대를 내려갔다.
조금 얄미웠을지도 모르겠네.
그때,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주자가 자신의 키만 한 더블베이스를 세우며 툭 말했다.
“이봐, 음악은 보고 치는 게 아니야.”
날 서 있다기보단 재밌다는 듯한 말투라 나도 그냥 웃어넘겼다. 게다가 그보다 얼른 해야 하는 게 있었지.
‘근데, 어두워서 그런가. 좀 어지럽네.’
안경을 슬쩍 빼서 보면대 위에 올려두었다.
이 정도로 어두우면 얼굴이 좀 드러나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맑아진 눈으로 손에 들린 악보를 내려다본다.
보통 초견이라 함은 한눈에 많은 것들을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많은 정보를 순식간에 캐치하고 얼른 연주해야 하니까.
그러니 지금 나는 코드를 읽고 그것을 선율과 비교해 어떻게 연주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음표들에 집중했다. 그것들이 그리는 라인에 집중한다.
그것만으로 멜로디가 머릿속에 선명히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나에게만 들리는 선율.
문득, 하이든이 말해주었던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초견은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능력이야.’
그의 음성과는 별개로 자연스레 눈은 음표를 훑는다.
‘처음에는 악보를 느리게나마 그대로 연주할 수 있게 되고. 조금 더 연습하면 악보대로 연주할 수 있게 되지.’
선율과 맞는 화성이 건반 위에 그려지기 시작했고.
‘거기서 좀 더 연습하면 다음 마디를 보기도 전에 대략적인 코드나 화성이 유추가 가능해지지.’
88개의 건반을 가진 피아노는 어느새 반 토막이 되었다. 마치 이 곡을 위해 맞춤 건반으로 짜여진 것처럼.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면. 비로소 음악의 길이 보이기 시작해.’
······그렇게, 하이든이 말한 길이 보인다.
처음 보는 악보를 마주하는 순간, 단숨에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 음악의 길.
‘그렇게까지 되는데 베테랑 연주자도 족히 수년은 필요하지.’
그 수년의 과정을, 찰나에 완성시키고.
나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본다.
길이 보이니, 이제 그 위를 어떤 식으로 걸을지 고민해야 할 차례.
이 순간엔 재즈라는 장르에 집중해야 했다.
재즈는 이 길 위를 어떻게 걸어야 할까?
어떻게 건반 위를 걸어야, 그 특유의 느낌을 풍길 수 있을까.
“시간이 더 필요합니까?”
고작 몇 초를 참지 못하고, 사회자가 밑에서 물어왔다.
이어서 정확히 3초.
나는 생각을 마치고 악보를 보면대에 올렸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씩 웃었다.
“아뇨. 이제 됐어요.”
#
‘······공연 하나 망치겠군.’
잼을 하다 보면 흔한 일이었다.
연주자들의 실력은 각기 다르고, 누군가는 저렇게 무모한 도전을 하기도 하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합주이다 보니 한 명의 결함을 나머지가 어느 정도 가려줄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사회자는 별다른 제지 없이 잼을 진행시켰다.
설령 그게 아니더라 해도 사실 저 무모한 동양인을 막을 수 없기야 했다.
‘재즈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게 이곳의 룰이니까.
아니, 애초에 재즈가 가진 정신이니까.
클래식을 할 수 없었던 흑인들이 음악을 하고 싶어서,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재즈니까.
재즈는 우리들의 자유를 상징하니까.
그러니 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해야만 한다. 누구도 그것을 막거나 방해할 권리는 없다.
엉망인 무대와 그것을 지켜보며 인상을 찌푸리는 관객들을 팔짱을 낀 채로 지켜봐야 하더라도 말이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건반에 손을 올리고 준비하는 동양인 남자.
그래도, 저 무대 위로 올라가는 용기만큼은 가상하다고 생각하며 음악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이윽고, 무언의 신호와 함께 엇박자로 치고 들어가며 시작을 알리는 드럼.
더블 베이스가 리듬에 맞춰 워킹(walking)을 시작한다.
기타도 그 위로 리듬을 더욱 잘게 쪼개며 올라탄다.
하나씩 합류하는 소리들이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도 위태로움까지 함께 끌어올리고 있었다. 마치 달리는 말 위에 올라타는 것처럼, 긴장감이 치솟는다. 삐끗하는 순간 낙마와도 같은 처참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단 하나의 악기만을 남겨놓고, 다른 주자들의 시선이 동양인 연주자에게로 향했다.
안타깝게도 한배를 탄 이들이잖나. 함께 묶여있으니 그의 합류에 모두가 집중할 수밖에.
그 순간.
———!
피아노가 올라탔다.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이르게.
하지만 그래서 더욱······.
“오······.”
완벽하게.
다른 연주자들의 표정이 확 달라진다.
밑에서 지켜보던 사회자도 마찬가지.
그는 연주에 집중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의 표정.
수십 년간 피아노를 연주해온 그는 이곳의 호스트이기 전에 프로였다. 그렇기에 더욱 잘 알고 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명백하다는 걸.
그리고, 지금 저 연주가 그랬다.
저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명백히······ 프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훌륭한 재즈.
하지만 이상했다. 말이 안 되잖아.
저 남자가······프로였다고? 그것도 상당한 수준을 가진?
음악이 제대로 된 길로 향할수록.
그의 머릿속은 미궁으로 빠져든다.
‘저정도 되는 이가 악보를 왜 달라고 한 거지?’
이쯤 되니 궁금해진다. 그저 관객들을 웃기기 위한 조크였을까? 이렇게 모두가 뒤늦게 전율하도록 만들기 위한 페이크였을까?
저토록 화려한 재즈를 선보이는 이는 대체, 누구일까?
수많은 의문들이 지나가고.
좀 전의 불안감이 무색하게.
‘이제 곧 솔로 파트······!’
기대만이 남았다.
#
카덴차.
언젠가 나는 그것이 왜 음악에 필요한지 궁금했다.
영감을 떠올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면서, 정작 정제되지 않은 즉흥연주를 왜 음악에 넣는 건지.
그 질문에 하이든은 이렇게 답했다.
“악보에 아무리 많은 주석을 달고 설명하더라도 모든 연주는 같을 수 없으니까. 아주 미묘한 차이가 결국 곡의 분위기를 송두리째 바꿀 것이고, 그렇기에 연주 중간에 튀어나오는 카덴차는 그 분위기를 중화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할 테니까.”
같은 질문에 모차르트는 이렇게 편지를 보냈었지.
[나의 후원자여, 영감이 계속 떠오르는 것을 어쩌겠습니까. 머릿속에 가득한 영감을 모두 악보에 적기엔 인생이 너무 짧은걸요.]며칠 전 공연에서도 두 명의 관객을 실신시킨 파가니니가 답했다.
“관객이 열광하니까. 멋지잖아. 잘 생각해봐. 신이 세상을 수천 년에 걸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겨우겨우 만들었다면 그게 멋졌을까? 그저 하루에 하나씩 툭툭. 7일 만에 만들었다. 심지어 하루는 쉬었다? 그게 사람을 열광하게 만드는 거지.”
루드비히 선생의 대답은 뜬금없이 창조론을 언급한 파기니니보단 훨씬 정상적이었다.
“매번 같은 곡을 연주하는 건 싫습니다. 그건 닫힌 음악이니까요. 음악가는 늘 경계해야 합니다. 자신이 만든 곡에 얽매이는 것을요.”
그래도 가장 와닿았던 건 역시 슈베르트의 편지였지.
결국, 모두가 말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같은 얘길 하고 있었다.
즉흥연주. 즉, 카덴차는 본능이라는 것.
그것을 하고 싶은 것도.
그것을 보고 싶어 하는 것도.
“······.”
기억과 본능이 뒤섞인 연주 끝에서 연주자들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마치 내가 합류하기 직전처럼.
그리고 모두가 볼륨을 서서히 줄인다. 내가 앞에 나설 수 있도록 길을 비켜주듯이.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나에게 솔로 파트를 건넸다는 걸.
그리고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
나는 이미 받아냈다.
생각보다 빠르게 손이 움직인다.
깨달음보다 빠르게 손가락이 튀어 오른다.
이제는 의식을 쏟아붓지 않아도 모든 것이 저절로 움직인다.
수많은 길이 보이고, 어디로든 누빌 수 있다.
그렇게, 나의 카덴차가 완성된다.
오늘만 빛나고 사라질······.
그렇기에 어떤 정제된 연주보다 더욱 강렬한.
단 한 번뿐인 연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