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40
040. 신동 (3)
“그럼, 아역 배우는 일단 지원한 애들로 오디션 보는 거고······이제 성인 배우들이 문제네요.”
M&ACT 직원 중 한 명이 운을 띄우자, 건너편 남직원이 기다란 화이트 보드를 응시했다.
“시놉을 다 돌리긴 했는데······.”
그곳에 붙은 사진들을 훑으며 말끝을 흘린다.
내부 회의를 거쳐 우선적으로 시놉을 보낸 여배우들의 얼굴이 주르륵 붙어있었다.
인지도와 연기력 모두 출중할뿐더러 뮤지컬에서도 활약하고 있는 이른바, 올라운드 엔터테이너들.
운을 띄웠던 여직원이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배지연 쪽 반응은 어땠어요?”
“매니저가 워낙 로봇 같은 사람이라 그냥 확인해볼게요, 하고 끝이었어.”
“이수진은요?”
“거긴 이미 잡혀있는 스케줄이 있다고 확인해보겠다더라.”
“다들 뭔 확인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그럼 한세경은······.”
“거기야 뭐, 좀 바빠야지.”
“하긴, 그럴 줄 알았어요.”
작년에 천만 영화 하나를 찍고, 돌연 뮤지컬로 복귀하더니 연일 티켓을 매진시키고 있는,
명실상부 영화와 뮤지컬에서 모두 탑을 찍은 그녀였으니 바쁘다는 말에도 큰 실망 없이 주억거렸다.
덩달아 답답한 표정을 짓던 남직원이 고갤 돌려 박동진 감독에게 물었다.
“어쩌죠? 저희가 생각했던 베스트들은 다들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정 연락이 안 온다 싶으면, 차선책으로 꼽은 배우들한테도 돌려 봐야지.”
차선책이라면 노래도 잘 부르고 연기도 괜찮지만, 인지도가 약한 배우들이었다.
당연히 인기 좋고 연기 잘하는 배우 데려다가 노래만 더빙을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박동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상 없는 방법이라 생각하는 게 편했다.
그렇기에 남직원도 아쉬운 소리 않고 주억거렸다. 그때 회의실로 다른 업무를 보던 직원이 들어와 그를 찾았다.
“이 대리님. 지금 자리에 전화 왔는데요.”
“급한 거야?”
“네, 한세경 매니저 전화예요.”
순간, 남직원이 움찔하더니 벌떡 일어나 회의실을 나섰다.
그러자 직원들의 시선은 파발마 역할을 한 직원에게로 몰려들었다.
“뭐, 뭐라는데?”
박동진 감독까지도 고갤 돌려 묻자, 직원이 저도 얼떨떨한 눈빛으로 말한다.
“한세경이···하고 싶다 했대요. 우리 영화.”
몇몇이 헛바람을 삼켰다.
주먹을 움켜쥐며 흔드는 직원도 있었고,
우리 영화사 급이 확 높아졌다며 우쭐하는 직원도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음 날엔 배지연이.
-그, 지연이가, 박동진 감독님하고, 꼭 작업하고 싶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며칠 뒤엔 이수진까지.
-M&ACT죠? 수진이가 스케줄은 잘 조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디션 날짜는 언제가 좋을까요?
···직원들의 표정에 생기가 돌았다.
시놉을 돌린 모든 배우에게 이 영활 하고 싶단 연락이 온 거다.
“윤짜르트 초대박 났으니 이제 탑 급 배우도 충분히 가능하겠다 싶었는데······그래도 전부 다 하고 싶다고 달려들 줄은 몰랐어요!”
“달려든 정도는-.”
눈치 없이 잿밥을 뿌리는 직원의 말을 자르고 김관우 대표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 달려들었단 표현 좋다. 언론에 소스 좀 슬쩍 흘려보자. 투자자들도 덩달아 달려들게!”
“넵!”
“저도 아는 기자들한테 연락할게요!”
김관우 대표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직원들의 들뜬 반응을 보며 피식 웃는 박동진 감독.
그에게 옆에 있던 직원이 슬쩍 물었다.
“그래서 감독님은 배우들 중 누가 가장 마음에 드세요?”
“···나?”
“역시 한세경이겠죠? 티켓 파워면에선 압도적이잖아요.”
잠시 고민하던 박동진 감독이 흐뭇하게 웃으며 끄덕인다.
“오디션을 진행해 봐야 알겠지만, 지금으로선 한세경이 가장 베스트인 것도 사실이지.”
그리고 여전히 사진들이 붙어있는 화이트 보드를 바라보며 턱을 만지작거렸다.
“그나저나, 난 우리 작곡가가 누굴 마음에 들어 할지가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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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경아, 안 피곤해? 좀 자는 게 낫지 않겠어?”
매니저의 말에 안마 시트에 기대어 시놉시스를 확인하던 한세경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자면 오디션 때 목이 잠길 것 같아서.”
“에이, 한세경이 오랜만에 영화 출연한다는데, 목 잠긴 게 대수겠어? 가면 오디션 보기 전에 계약서부터 쓰자고 할지도 몰라.”
매니저의 너스레에 픽 하고 웃은 그녀가 시놉시스를 한 장 넘기며 답했다.
“그렇게 간단치 않을걸? 경쟁자들이 다들 쟁쟁하잖아. 지연이나 수진이도 엄청 욕심내는 것 같던데.”
“전 작품이 재밌기도 했고, 시놉시스도 너무 재밌었고.”
“재밌긴 하더라. 감독이랑 작가 콤비가 믿고 보는 조합이라 시놉에 비해 재미없게 뽑힐 것 같지도 않고.”
그렇게 대화를 하다가 시놉시스 몇 장을 더 보니 어느새 M&ACT 사무실이 있는 충무로였다.
곧장 매니저와 함께 사무실로 올라온 한세경은 회의실로 안내를 받았다.
베테랑인 그녀에게 오디션이라고 해서 딱히 떨릴 건 없었고,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환하게 웃으며 들어간 그녀가 금세 갸우뚱했다.
보통 오디션을 볼 때 감독과 작가 정도가 오디션을 보는데, 여긴 한 자리가 더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건, 웬 앳돼 보이는 학생이었다.
“어서 와요. 전 박동진 감독이고, 이쪽은 송은혜 작가님.”
“두 분이서 만드신 영화들 모두 재밌게 봤어요.”
“하하, 감사해요. 그리고 이쪽은······.”
박동진 감독이 비로소 오른쪽에 앉은 학생을 소개한다.
“이번 영화 OST를 작곡해줄 한서호 작곡가님.”
“······.”
순간 한세경의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작곡가? 아무리 봐도 아직 미성년자인 것 같은데? 이거 몰래카메라였나?
놀란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박동진 감독을 비롯한 세 사람은 그게 익숙한 듯 덤덤한 얼굴들이었다.
학생을 뚫어져라 보다가 퍼뜩 실수를 깨달은 한세경이 얼른 덧붙인다.
“앗, 죄송해요. 순간 너무 깜짝 놀라서······.”
그러자 학생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괜찮아요.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격하지 않은 반응이었어요.”
“아···.”
자연스럽게 넘기는 모습에 한세경이 속으로 감탄했다.
엄청 어른스럽네···?
그 사이, 박동진 감독이 대본 한 부를 건네며 말했다.
“자, 그럼 이제 오디션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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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작가는 어땠어?”
일주일간 불규칙하게 진행된 오디션의 마지막 순서, 한세경까지 끝이 나자 박동진 감독이 목을 좌우로 꺾으며 물었다.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이면지를 내려다보던 그녀가 답했다.
“노래를 좋아하긴 하지만 잘 아는 건 아니라 조심스럽긴 한데······전 역시 한세경이다 싶었어요.”
짧게 끄덕인 박동진 감독의 시선이 이번엔 내 쪽으로 향한다.
“서호 넌 어때?”
“······.”
그의 물음에 고민은 필요 없었다.
어떤 목소리가 내 곡에 더 필요한지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까.
한세경의 목소리가 그랬다.
그럼에도 잠시 뜸을 들인 건, 그 목소리를 머릿속에서 다시 한번 떠올려서였지.
또다시 감탄이 새어 나온다.
“···저도 한세경 배우님 목소리가 가장 좋았어요.”
내 대답에 어쩐지 안도하는 박동진 감독과 송은혜 작가.
송은혜 작가는 휴, 하고 한숨까지 내쉬었다.
어리둥절해 하자 그녀가 실없는 사람처럼 피식피식 웃으며 말한다.
“이거 좀 직업병 같긴 한데, 보통 이런 상황에서 꼭 한 명이 반대하는 게 클리셰잖아. 다른 무명 배우에게서 잠재력을 봤다면서 독불장군처럼 밀고 나가고. 근데 네가 갑자기 뜸 들이길래 혹시나 했지.”
아, 그건 다시 생각해도 감탄스러워서였는데.
내가 웃으며 고갤 흔들었다.
“전혀요. 최고이신 이유가 있더라고요.”
“그러면, 만장일치네. 주인공엔 한세경으로.”
박동진 감독이 홀가분한 얼굴로 수첩을 덮길래, 내가 얼른 물었다.
“아 참, 어제 본 아역 오디션은 어떻게 됐어요?”
하필 회사 이전하는 날과 겹친 데다가, 콩쿠르에 보낼 프로필도 만들어 임진규에게 검사 맡느라 아역 오디션엔 불참했었다.
다행히 영상으로 남길 계획이라길래 안도했지.
내 말에 박동진 감독이 옆에 있던 패드를 집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그거 보여주려고 했어. 영 아니다 싶으면 공개 오디션으로 돌리려 했는데, 지원한 아역들이 연기뿐만 아니라 노래까지 다 수준급이더라고.”
“또 너무 배운 티 나면 안 되잖아요.”
극 중에서 주인공이 재능을 깨닫기 전이니까.
“그치. 그런 것까지 고려해서 제일 괜찮다고 생각하는 앨 뽑아 봤는데······신기한 건, 나도 알고, 너도 아는 애야.”
우리 둘 다 아는 아역 배우?
의아해하며 그가 건넨 패드를 받아들자, 정지된 화면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제야 박동진 감독의 말이 이해가 갔다.
“···이연이네요.”
화면 속에서, 채이연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노래 부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옆에서 박동진 감독이 작게 감탄했다.
“걔가 그런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어. 노래를 아주 담백하게 잘 부르더라. 배운 적도 없어서 그런지 괜한 기교 같은 것도 없고. 안 그래도 윤짜르트에서 외모로 시선 강탈이다 뭐다 인지도도 확 뛰었는데, 여러모로 괜찮겠더라고.”
느릿하게 끄덕이며 영상을 재생했다.
그녀를 보고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노랠 시작하자 더욱 복잡해진다.
‘목소리가······엄청 맑네.’
잘 부른다는 건 어디까지나 미래의 정보였을 뿐.
내가 직접 들어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듣는 채이연의 노래는 나에게 꽤나 충격이었다.
아역에게 원하던 목소리와 유사할뿐더러, 한세경과 음색의 결까지 비슷했다.
역할에 완전 찰떡이긴 한데······.
그때 송은혜 작가가 입을 열었다.
“같은 반이라면서. 노래 잘 부르는 거 몰랐어?”
“알긴 했어요.”
“그럼 추천을 해주지 그랬어! 완전 딱이던데.”
그러니까.
딱이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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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혜 작가가 내게 그랬었다.
네가 영감을 준 덕분에 소프라노를 다시 잡을 생각을 했다고.
아니, 그 전에.
내가 윤짜르트 대역을 하면서 송은혜 작가가 내 연주를 보게 되었고, 박동진 감독에게 인터뷰 연결을 부탁했지.
결국, 애초부터 미래는 바뀌고 있었다는 건데······.
쩝.
그렇다고 얘 칸느 가야 해서 이거 하면 안 돼요, 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이미 박동진 감독과 송은혜 작가가 채이연을 너무 마음에 들어 하기도하고,
솔직히 나조차도 그녀의 음색을 듣고 ‘이거다’ 싶었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연신 입맛을 다시며 핸드폰을 들었다.
송은혜 작가가 나더러 합격 소식을 전하면 되겠다고 말한 덕분이었다.
[나: 너 영화 소프라노 아역 배우에 지원했지?]톡을 보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채이연: 어, 맞아! 어떻게 알았어???] [나: 그 영화 곡들, 내가 만들게 됐거든.] [채이연: 대박! 그럼 나 만약에 만약에 캐스팅되면 내가 네 노랠 부르는 거야?] [나: 그렇지 않을까?]신나 하는 온갖 이모티콘이 연달아 쏟아진다. 무슨 종류가 이렇게 많아?
그리고 도착한 톡.
[채이연: 와······나 진짜 됐으면 좋겠어. 제발.]그걸 읽고 다시 한번 물었다.
[나: 그렇게 하고 싶어? 이 역할이?] [채이연: 응!!! 진짜 너무 하고 싶은데!]해맑기 그지없는 답장을 보며 나는 조금 안도했다.
하고 싶은 걸 하는 거라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거기까지 생각하자 픽 하고 웃음이 튀어나왔다.
회귀 전, 당장 하고 싶은 것보단 미래에 뭐가 더 나을지 계산만 하던 내가 맞나 싶다.
[나: 네가 좋다니 다행이다.] [채이연: 뭐야 갑자기~.] [나: 방금 감독님 뵙고 가는 길이야. 그 역할, 네가 캐스팅됐어.]내 답장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보내는 동시에 읽음 표시가 사라진다.
거기에 한마디 더 덧붙였다.
[나: 리허설 때 보자.]보내는 동시에 전화가 걸려왔다.
믿지 못하는 그녀에게 나는 다시 한번 설명했고,
-으아아, 진짜? 꺄아!
소리 지르는 채이연의 목소릴 들으면서 웃었다.
적어도, 고음은 걱정 없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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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보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박동진 감독에게 받은 콘티들로 곡을 하나씩 완성해나갔다.
대부분의 곡들은 멜로디뿐만 아니라 악기 구성까지 완벽하게 정해졌고, 진도가 빠른 순서대로 다시 송은혜 작가에게 맡겨졌다.
작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노래의 가사조차도 극에선 중요한 부분이라 그녀가 직접 작사하기로 했는데, 그게 쉽진 않나 보다.
곡을 들으며 불꽃처럼 타오르던 그녀의 표정이 숯검댕이가 되는 건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한편, 나도 녹음을 앞두고 고민이 많아졌다.
악기의 종류는 결정되었지만, 각각의 악기들이 얼마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할지 쉽사리 정할 수 없었다.
아직 편곡이 능숙하지 못해서도 있겠지만, 가창자의 노래를 듣지 못한 게 컸다.
그래도 다행인 건, 금방 사전 점검 리허설이 잡혔다는 것.
대본리딩도 전에 감독과 작가, 그리고 몇몇 스태프와 주인공 역을 맡은 두 배우가 연습실에 모였다.
“다들 열심히 연습해왔어?”
박동진 감독의 물음에 한세경이 의미심장하게 웃었고, 채이연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쭈글거렸다.
“아하하···.”
그리고 리허설 직전, 나는 반주를 자처했다.
그래야 목소리에 맞춰 반주를 조절하며 정확한 성량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윽고, 시작된 리허설.
가이드가 빠진 반주에 몇 번 버벅대던 채이연이 점차 내 피아노 연주에 맞춰 안정적인 박자로 부르기 시작한다.
미세하게 떨리던 목소리마저 사라지자, 영상이 미처 담지 못했던 청아한 목소리가 꾸밈없이 흘러나온다.
느긋하게 건반을 누르며 감상했다.
그리고 이따가 어땠냐고 물어보면 해줄 칭찬도 열 가지쯤 떠올렸을 때였다.
채이연은 번뜩이는 재능을 마주한 주인공을 연기하듯, 점점 목소리를 고조시켰다.
그렇다고 과하지는 않아서 미세한 비탈길을 올라가듯 곡을 전환점까지 끌어올린다.
그 순간, 채이연의 목소리에 한세경의 아주 작은 화음이 교차한다.
점차 옅어지는 채이연과 또렷해지는 한세경.
시간의 흐름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둘의 호흡에 감탄했다.
악기가 곡의 모티브를 표현하듯.
목소리가 장면을 연기하고 있었다.
눈에 선할 정도로.
어느새 한세경의 목소리만이 남아서 연습실을 울린다.
점차 강렬하게.
최고의 영화배우인 동시에, 최고의 뮤지컬 배우라 불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마치 자석처럼 단단한 발성과 화려한 기교가 달라붙는다.
그 상태로 곡의 절정까지 끓어오른다.
살짝 흥분해서 반주도 격렬해진다.
상관없었다. 내가 어떻게 치든, 그녀의 목소리는 건반의 장막을 뚫고 나올 힘이 있었다.
하이(-곡의 가장 높은 음)를 끝없이 뽑아내던 목소리가 사그라들며 곡이 끝났을 땐, 연습실에 짧은 정적이 찾아왔다.
이어지는 박수 소리.
박동진 감독은 책상을 가볍게 내리쳤고, 송은혜 작가는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지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내 고민도 끝났지.
악기는 얼마든지 화려해져도 되겠다.
그럼에도, 얼마든지 돋보일 목소리니까.
그나저나···
이런 기분이구나.
이런 기분으로 볼프강은 내게 편지를 썼던 거구나.
밤의 여왕 아리아를 진정으로 불러줄 가수를 찾았노라고!
하.
벌컥거리는 심장과는 달리,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나도 편지로 전하고 싶었다.
나 또한 내 곡을 불러줄 마지막 악기를 만났다고.
그러면, 그가 특유의 장난스러운 문체로 예전과 같이 답장을 보내올 것만 같았다.
······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어서 병마를 무찌르고 밤새 음악 얘기를 하러 후원자께 찾아가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