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51
051. 결승 (3)
레오 뒤보셸의 스승.
장 오슬로.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를 꼽으면 반드시 거론되는 그가 콘서트홀 안으로 들어서자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
몇몇은 놀란 목소리를 그대로 내뱉었다.
하지만, 반대로 장도 내심 놀라고 있었다.
이 거대한 콘서트홀이 거의 가득 찼다는 것에.
그리고 그들의 면면을 살펴봤을 때, 연령대가 낮은 이들이 적지 않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아무래도 참가자들인 것 같은데······결승이라서인가?’
결승전에 오르지 못한 이들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구경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레오가 주변을 훑으며 말한다.
“오늘도 역시 많이들 모였네요. 오히려 2라운드 때 보다 많은 것 같기도 하고······.”
“2라운드 때도, 이런 분위기였나?”
“네.”
“······그렇구나.”
그도 이미 수많은 콩쿠르를 보았고, 겪었다. 그 최고의 성과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우승이잖나.
그렇기에 그게 얼마나 비정상적인 풍경인지 잘 알고 있었다.
‘대체 어떤 연주를 보여줄지 더욱 궁금해지네.’
솔직히 비행기를 타고 올 때까지만 해도 그리 큰 관심은 없었다.
두 악기 모두 결승까지 오른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든 소년이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제자가 2라운드에서 보여준 성장이 더욱 중요했다.
그런데, 그 성장에 소년이 큰 지분을 갖고 있다는 순간부터.
그리고 다른 참가자들조차 객석으로 불러모으는 연주자라는 걸 알게 된 지금.
궁금증은 더욱 커지고 있었다.
곧 참가자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기 시작한다.
장과 레오도 그들을 따라 손뼉을 마주쳤다.
이윽고, 무대 위로 나타나 지휘자와 인사하는 소년.
너무 먼 거리에 얼굴을 볼 순 없었다.
단지 지휘자 바로 옆에 선 그가 바이올린을 턱에 괴고 활을 들어 올리는 움직임만 식별 가능했다.
“시작이군.”
“네.”
힐끗 본 제자의 눈이 형형하다.
그 모습에 만족스러워 미소를 짓는 순간.
──!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들이 연주하는 선율이 먼저 귀를 자극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현악 5부와 목관 악기들의 가세.
협주 속에서 소년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듯 천천히 활을 들어 올린다.
오케스트라의 총주가 옅어지는 순간 자리를 꿰차고 들어오는 소년의 바이올린 연주.
장은 낮게 감탄했다.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새로운 느낌의 음색.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파도 뒤에서도 소년의 음색은 유의미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를 통해 만들어내는 선율은 시리게 아름다우면서도 날카로워서 듣는 이들을 끊임없이 긴장하게 한다.
동시에 조율적인 면모도 보여주며 악장과 악장 사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나간다.
독보적인 음색과 안정적인 기교, 탁월한 스토리텔링이 한데 모이니 자연스레 연주의 기풍이 드러났다.
유럽 스타일이긴 하지만······.
‘묘하네.’
장은 갸웃거렸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대체, 누구의 아래에서 배웠길래···.’
놀라움이 연속으로 이어지고, 어느새 막바지에 이른 연주.
1악장의 아름다움과 2악장의 잔잔함을 벗어나 전율의 3악장으로 접어든 소년의 활은, 쉴 새 없이 현 위를 뛰어다녔다.
차이코프스키 조차도 연주자를 찾느라 애먹었던 난이도.
연주는 각 악장의 주제를 정직하게, 혹은 변형하여 훑으며 클라이맥스로 접어든다.
고조되는 바이올린과, 이를 받쳐주는 오케스트라.
마침내, 코다(Coda-종결)!
장은 어느새 주먹을 콱 움켜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박수로 가득 찬 장내를 둘러보며 숨을 골랐다.
“어떠세요?”
제자가 물어왔다.
장은 솔직하게 말했다.
“훌륭하구나. 기교는 아직 너에 비해 미숙하지만 충분히 안정적이고, 음색은 가히 독보적이야. 그리고 표현력은······.”
혹시나 마음이 상할까. 고민하며 돌아본 장.
그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제자의 표정에는 시기가 없었다.
오히려 별로였다 말하면 울적해질 것 같은 얼굴로 기대한다.
“완벽했다.”
“그렇죠!?”
“···그러네.”
제 일인 양 좋아하는 제자에게서 시선을 떼고, 꽃다발을 받고 무대를 나가려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의아한 눈으로.
“······.”
완벽했던 표현 속에 이상한 점 한가지.
너무 뜬구름 같은 이야기라 제자에겐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저 소년의 연주에서···
그는 자신의 스승보다도 더욱 오래된 유럽의 정취를 느꼈다.
#
······연주가 끝나고.
날 바라보는 거장들의 강렬한 눈빛을 헤치며 무대를 내려왔다.
그리고 계단 중간에 멈춰 서서 숨을 몰아 내쉬었다.
가득 차 있던 숨이 모두 비워지자 고동 소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최고였어요!”
마지막 계단을 내려오자 주최 측 직원이 날 반겼다. 결승전이 끝나자 마음껏 말을 걸어온다. 그의 재잘거림을 듣고, 호응하며 백스테이지를 나선다.
그렇게 복도로 나와, 이제부턴 홀로 걷기 시작했다.
그제야 내 연주에 대한 감상이 떠오른다.
여전히 무대 위에서 내려다본 광경이 잊히질 않았다.
저토록 큰 무대에 오른 것도 처음이었지만,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나를 향해 보내오는 박수는···
처음으로 갔던 만하임의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하이든을 향해 보내는 박수와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며 무대 위에 서는 순간을 꿈꾸었던 내가, 오늘은 현실에서 그걸 이룬 거다.
······무려 200년 만에.
마치 그 간극을 시간 여행하듯, 긴 복도를 지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활짝 웃음 지으며 로비로 향했다.
저 멀리, 가족이 보였다.
#
“모두가 기대했던 만큼······.”
타닥타닥-.
“아니, 그 이상의 연주로······.”
타닥타닥-.
“······결승전의 오프닝을 장식했다.”
탁!-.
마지막 문장까지 타이핑한 최성령이 팔짱을 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자신이 쓴 기사를 쭉 훑으며 아쉬워했다.
기사는 만족스러웠다. 다만···
“아쉽죠?”
카페 사장이 조각 케이크 한 접시를 가져와 건네며 느릿느릿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최성령이 푸스스 웃으며 답했다.
“어떻게 아셨어요?”
“우린 4년에 한 번씩 매번 느껴왔던 아쉬움이니까요.”
카페 사장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한다.
곳곳에서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악기를 등에 멘 이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벌써, 콩쿠르가 끝나가네요. 기자님.”
“···그러게요.”
“아 참, 이거 봐봐요. 기자님 덕분에 한서호와 사진 찍어서 난생처음 좋아요를 수 천 개나 받았어요.”
“와, 서호 인기가 엄청나네요.”
최성령의 감탄에 카페 사장이 끄덕였다.
“앞으로 더 유명해지겠죠.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를 거친 연주자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다음 콩쿠르를 기다려야겠네요. 음악원 주변에서 4년마다 이 커다란 축제를 지켜보는 우리에겐 이런 게 낙이에요.”
최성령이 노트북에 손을 얹었다. 계속 얘기해달라는 신호를 보내며.
“어머, 제 인터뷰를 하시는 건가요?”
“네. 재밌을 것 같아서요.”
“저도 그럴 것 같긴 한데··· 어떤 얘길 해야 하죠?”
“여기서 지켜보신 것들 아무거나요.”
잠시 고민하던 카페 사장이 말문을 열었다.
“음······ 아주 옛날에 세르게이 보드로프가 가게에 왔던 적이 있어요.”
“그 천재 첼리스트 세르게이요!?”
“네. 하루는 그가 본선 끝나고 와서 펑펑 우는데······.”
그녀의 얘길 들으며 최성령은 생각했다.
다음 콩쿠르 땐, 이 카페 사장이 다른 기자에게 이런 비슷한 얘길 하지 않을까?
그 한서호가, 이곳에 왔었다고.
매우 어색한 표정으로 사진도 찍었고, 유명인사란 말에 부끄러워하더라고.
그리고.
······그런 그가 지금 세계를 무대 삼아 연주하고 있다고.
시간이 흐른다.
······축제의 열기는 절정으로 향하고.
······사람들은 아쉬움을 잊으려는 듯 더욱 열광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승 마지막 날에 종착한 콩쿠르.
길어진 인터미션 동안 카페에서 기사를 쓰던 최성령이 노트북을 덮었다.
그리고 자신이 방금 전 올린 기사를 확인하며 그레이트홀로 향한다.
모스크바의 여름은 더웠다.
태양은 평소보다 4, 5시간 더 떠 있고, 내륙 지방이라 바람까지 없기 때문에 체감 온도가 더욱 높다.
그리고 그런 여름의 절정인 6월 말.
에어컨조차 없는 공간에 1700여 석의 객석이 거의 다 차버렸다.
얼마나 넓은지는 열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저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후끈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기자들이 앉는 구역이 따로 있어 땀이 주르륵 흐를 정도는 아니라는 거.
파일 하나를 꺼내 부채질하던 동료 기자가 객석을 훑으며 혀를 내둘렀다.
“저긴 진짜 쪄죽겠다. 그런데도 엄청 많이 왔어.”
“그러게. 그만큼 모두들 한서호의 연주가 보고 싶은 거겠지.”
“아까 러시아 기자 얘길 들어보니 마에스트로 파벨에 바이올리니스트 장,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의 교수들과 세계적인 악기 브랜드의 스카우터들까지 앉아있다더라고.”
동료의 말에 최성령이 고갤 들었다.
자연스레 객석을 훑어보게 되었고, 시선은 심사위원들 바로 뒤쪽에서 멈췄다.
“저기엔······.”
“러시아 고위 관료들.”
“아.”
최성령이 끄덕이며 혹여나 눈이 마주칠까 얼른 다시 무대를 보았다.
“···그나저나, 1라운드부터 계속 여기서 진행됐는데, 오늘은 뭔가 좀 더 웅장한 것 같네.”
“그치? 나도 그렇더라. 결승이니까 후광효과라도 생겼나 봐.”
전 세계에서 국제적인 음악가의 추천서를 받은 이들 중 200여 명 만이 이곳 러시아에서 본선을 치렀다. 그리고 34명만이 걸러내 져 결승에 오른 거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진짜 그런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며 마지막 경연을 기다린다.
어쩐지 더 커 보이는 무대와 오케스트라.
이윽고, 쏟아지는 박수 속에서 한서호가 무대 위로 나타났다.
이것도 후광효과인지 모르겠지만,
그새 좀 더 큰 것 같은 모습으로.
#
경쟁은 시기를 만들고, 시기는 음악을 더럽힌다.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는 얘기가 바덴바덴까지 풍문으로 들려왔을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정말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시기해 살해했든, 누군가 살리에르를 시기해 그런 소문을 퍼트렸든, 진위는 알 수 없지만···
모두 시기에서 비롯되었으니까.
그래서 난 경쟁에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다.
게다가 가장 좋은 연주로도 입상하지 못하는 참가자를 보며 ‘역시나’라 생각했다.
‘경쟁은 음악을 더럽힌다.’
······그게 판단의 오류일지도 모른다고 느낀 건 수년이 지나 두 번째로 찾은 콩쿠르에서였다.
과거, 떨어진 연주자는 여전히 도전하고 있었다. 그때보다 더 성장했고, 결국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냈지.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을 바꿨다.
그리고 지금은······.
콩쿠르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
연주를 준비하고, 다른 이의 연주를 보았다. 수준이 높든 낮든 상관없었다.
영감은 ‘격’에서만 오는 게 아니니까.
그러다 내 차례가 오면 행복해하며 연주하고, 다른 이들의 연주에서 무언가를 또 배웠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막바지에 이르렀다.
“······.”
내 마지막 연주,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2번.
나는 오케스트의 투티(Tutti-동시 협주)를 들으며 준비했다.
그들이 끌어올린 웅장함을 이어받아 독주할 준비를.
─!
본격적인 연주가 시작되고 나서도 이런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
내가 격정적으로 연주하면,
──!
오케스트라가 뒤따른다.
그러다 어떤 주제에선 반대로 오케스트라가 선행하고 그것을 내가 따라친다.
마치 탁구의 랠리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연주.
나는 곡 전체에 깔린 이 형식이 참 마음에 들었다.
꼭 내가 다른 참가자들에게 영감을 받는 순간이 표현된 것 같아서.
그런 생각에 항상 한가지 바람을 갖게 된다.
내 연주도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었다면······.
‘정말 기쁠 것 같은데.’
물론 나는 알 수 없다.
내 연주가 아주 작은 영감이라도 되었던 적이 있는지는.
하지만 지금.
이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이런 게 진짜 콩쿠르란 걸.
#
1시간 후.
최성령은 밖에서 동료 기자들과 휴식하다가 다시 음악원을 찾았다.
백야마저 잠들어버린 늦은 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음악원에 남아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님.”
누군가 불러 돌아보니, 사복으로 갈아입은 한서호가 서 있었다.
손을 흔드는데, 옆에서 한 관객이 다가가 사진을 요청한다.
목각인형처럼 삐그덕 대며 사진을 찍어주는 한서호.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인기 많네?”
“하하···.”
어색하게 웃는 한서호의 반응에 최성령은 새삼 이런 애가 어떻게 무대 위에선 그토록 격정적으로 연주하는지 신기하단 생각을 했다.
특히나 오케스트라의 협주 속에서도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는 모습은 가히 천부적인 음악가와 같았지.
그런 감상을 이어가는데, 예고없이 문이 열리며 차이코프스키 조직위원회 의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이곳저곳에서 플래시가 팍팍 터져댔다. 최성령도 생각을 멈추고 얼른 셔터를 눌렀다.
천천히 기자들, 그리고 참가자들 앞으로 다가서는 의장.
점차 플래시는 잦아들고, 웅성이던 소리마저 볼륨을 줄이듯 사그라들었다.
의장은 은은한 미소를 보이며 마이크 앞에 선다.
그리고 의장에게.
정확히는 그의 손에 들린 종이 한 장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