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58
058. 자작곡
빅토르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들어섰다.
무거운 줄도 모르고 들고 온 첼로를 문 앞에 내려놓고, 곧바로 자신의 아내를 찾았다.
“제냐, 제냐!”
목소리가 격양된 탓인지, 부엌에서 한가로이 티를 마시던 아내가 놀라서 뛰어나왔다.
“뭐예요?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 있죠. 있어요.”
“어디 몸이라도 아픈 거예요?”
“아녜요. 오히려 날아갈 것 같은걸요.”
“······?”
빅토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 안도한 아내는 이내 갸우뚱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렇게 아이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걸까.
“흐음─. 홍차 끓였나 본데?”
“네. 한 잔 드려요?”
“그럼 정말 고맙죠.”
헤벌쭉 웃은 빅토르가 얼른 아내를 따라 부엌으로 향했다.
이윽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홍차를 건네받은 빅토르.
그에게 아내가 마주 앉아 재촉하듯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요? 왜 이렇게 일찍 들어온 거고요. 사람이 많이 없었어요?”
“내가 사람이 없다고 그냥 들어오는 거 봤어요?”
첼로를 배우기 시작한 지난 십수 년 동안, 광장은 빅토르에게 공연장이자 연습실이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아내가 고갤 저었다.
“아니죠······ 그럼 대체 뭐 때문이에요? 뜸 들이지 말고 얘기해봐요.”
빅토르가 입을 달싹이다 갑자기 찻잔을 홀짝인다.
아내는 그게 일부러 말 안 하는 걸로 보이지 않았다. 마치 숨이 차오르는 걸 누르기 바쁜 사람 같다.
그리고 숨을 고르더니, 좋은 꿈을 꾼 아이처럼 활짝 웃었다.
“······내가 오늘 누굴 만났는지, 누구와 연주를 함께 했는지. 정말 상상도 못 할 거예요.”
#
“서호 왔니?”
나를 본 임진규가 손을 흔들었다.
이어서 다른 단원들도 하나둘 고갤 돌려 반겨주었다.
모두에게 인사하며 첼리스트들 뒤쪽 자리에 앉았다.
협주에서 바이올린을 맡게 되었지만, 아직 주된 선율을 맡게 되는 제1 바이올린으로 들어갈지, 아니면 이를 받쳐줄 제2 바이올린으로 들어갈지 정해지지 않았기에 따로 앉은 것이다.
그러자 단원들 중 가장 붙임성이 좋던 레토라는 첼리스트가 홱 돌아보더니 내 어깨에 걸려있는 바이올린 케이스를 눈여겨보았다. 어쩐지 살짝 기대하는 눈치 같았는데, 역시나. 슬쩍 꺼내는 물음에서 뭘 기대했는지 알게 되었다.
“과르네리······야?”
그 목소리가 신호탄인 것처럼 단원들의 시선이 몰려든다. 첼리스트인 그가 이토록 관심을 보이는데, 하물며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어떻겠나.
하지만 난 실망스러운 소식을 전해야 했다.
“아뇨, 그냥 일반 바이올린이에요. 그건 후원받았던 거라 다시 한국으로 갔어요.”
짐칸도 아니고 좌석에 앉아서.
그 가치와 양가호 대표의 악기 사랑을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긴 한대, 아무튼.
“아하.”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레토.
다른 단원의 반응도 이와 비슷했다.
금세 흩어지는 관심에 웃으며 바이올린을 꺼내 들었다. 회사에 있던 바이올린은 아니고, 콩쿠르 전에 아버지가 새로 사준 바이올린이었다.
이것도 좋은 바이올린이다. 가격이 절대적인 척도가 될 순 없지만, 나름 300만 원이나 한다.
당연히 수십억씩 한다는 과르네리와 비교할 바는 못 되겠지만······.
지금 어쩌면 내겐 이 정도가 알맞을지도 모르지.
파가니니는 과르네리를 갖기 전에도 이미 최고의 연주가였잖나.
반면 나는 내 부족한 음색을 과르네리로 메꾸고 있다. 아직 기교도 한참 부족하고.
쩝. 잠시 쓴맛을 다셨지만 이내 기대감으로 가득 차 악장을 바라보았다.
곧 연습이 시작될 시간이었으니까.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악장인 연주자가 시간을 확인하더니 천천히 일어난다. 그리고 단원들을 훑는다.
아무리 소곤거린다고 해도 단원이 백 명이 넘는 심포니다. 그런데도 지휘자 다음가는 리더의 움직임에 일순 조용해진다.
“조율 시작할게요.”
그리고 호 모양으로 배치된 자리 끝쪽에서 명쾌하면서도 쭉쭉 뻗어 나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
오보에(Oboe)였다.
음계는 A(라).
일정한 높이의 소리가 관악기 전체로 번져나간다.
그리고 그 바통을 현악기가 이어받는다.
───.
“···?”
일어나 활을 현에 올린 악장이 홱 하고 내 쪽을 바라보았다.
이어지는 보잉과 A(라)─.
이번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할 것 없이 현악부에서 몇몇이 내 쪽에 시선을 던진다.
음의 높이는 정확하다. 즉, 조율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음색을 바꿀 필요는 있겠네.
콩쿠르 때처럼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할 게 아닌,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 연주에 참여해야 하니까. 그러기엔 내 음색이 꽤 튀는 것 같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앞에 앉은 레토가 나를 돌아보며 입을 달싹였다.
“과르네리 때문이 아니었······.”
그리고 그때, 파벨이 연습실로 들어온다.
단원들 모두가 그에게 인사했다. 단상에 올라선 그가 빙그레 웃었다.
“이런, 일찍 왔더니 조율을 방해했네. 다음부턴 차라리 지각해야겠어.”
파벨의 능청에 웃는 단원들.
함께 웃던 파벨이 맨 뒤에 앉은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서호는 자릴 좀 옮기자.”
바이올린을 들고 일어나자, 그가 가장 앞쪽을 가리켰다.
“제 1 바이올린으로.”
#
바드 컬리지에는 곳곳에 공연장이 마련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여러 형태의 수업에서 잘 활용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학생들이 무대에 오르는 경험을 자주 할 수 있도록 만들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무심코 지나치던 복도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건 여기선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셀린 교수인 것 같군.”
클라리넷 전공 교수, 커크가 조교와 함께 거닐다 툭 하고 말했다.
이에 조교가 벙벙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 번에 아시네요?”
“그녀의 음색이니까. 동시에 과르네리 특유의 음색이 섞여 들어가 있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커크 교수가 씩 웃으며 덧붙였다.
“그냥 연주가 끝내주잖아.”
다른 건 몰라도 그 말엔 조교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 확인해 볼까?”
두 사람은 소리가 흘러나오는 공연장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무대 위에서 셀린 교수가 바이올린 연주에 몰입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자연스레 빠져들어 연주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활이 멈췄다.
진한 여운을 느끼듯, 활을 천천히 내린 셀린 교수는 그제야 두 사람을 확인했다.
“어? 커크 교수님.”
빙그레 웃으며 다가가는 커크 교수와 뒤따르는 그의 조교.
“오늘은 운이 좋네요. 교수님 연주도 듣고.”
그의 반응에 셀린 교수가 하하 웃었다.
무대에서 내려온 셀린 교수에게 커크 교수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
“왜 교수실이나 연습실 두고 여기서 연주하고 계세요?”
“무대에 설 일은 점점 줄어드는데, 이럴 때라도 무대에 좀 서둘려고요.”
셀린 교수의 말에 커크 교수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바흐 스페셜리스트로 유명하신 교수님이 그런 걱정을 하시면 어떡합니까.”
“그것도 장에게 얼마든지 뺏길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의 이번 리사이틀을 봤는데,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를 아주 멋들어지게 소화하더군요.”
“······괴물이긴 하죠.”
“어떻게 제자까지 키우면서 그런 기량을 유지하는지···”
“그렇게 따지면 저흰 제자가 수백 명인 걸요.”
“아, 그건 또 그렇네요.”
미소하는 셀린 교수에게 커크 교수가 다른 화두를 꺼냈다.
“그나저나, 방금 연주하신 곡은, 또 새로 찾아내신 거예요?”
셀린 교수가 늘 새로운 곡을 찾고 연주하며 연구한다는 건 같은 교수들도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방금 전 연주곡도 생소했던지라 커크 교수가 그렇게 생각한 거다.
그러나 셀린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아니라 학생이 찾은 곡이에요.”
“학생이요?”
과제에 관해 설명하자 커크 교수가 주억거렸다. 옆에서 듣고 있던 조교는 음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과제 진짜 힘들었겠다······.”
피식 웃은 커크 교수가 다시 셀린 교수를 보며 물었다.
“대체 누구의 곡이었어요? 아, 제가 한 번 맞춰보죠. 이자이? 코페르노?”
그의 물음에 셀린 교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유명한 바이올린 작곡가의 이름이 몇몇 더 나오고 나서야 그녀가 되물었다.
“제가 연주한 곡이, 그 정도의 작곡가가 만든 곡이라 생각되던가요?”
커크 교수는 비록 현악기를 다루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최고의 교수 중 한 명이었다. 당연히 어떤 기준을 가지고 저 작곡가들을 언급했을 터.
그가 답했다.
“군더더기 없는 곡이었어요.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부분에선 충분히 화려한.”
그의 말에 셀린 교수가 동조하며 끄덕였다.
그리고 이제 누군지 밝혀달라는 요청에 툭 던지듯 말했다.
“······브리너(Brynner)의 곡이에요.”
커크 교수의 눈이 가늘어진다.
“브리너? 풀 네임은요?”
“그게 풀 네임이던데요?”
“···?”
푸스스 웃음을 터트리는 셀린 교수.
“사실 실명은 몰라요. 그저 닉네임일 뿐.”
더욱더 아리송해지는 표정을 보며 그녀가 곡에 대해 설명했다.
얘길 들은 커크 교수의 눈동자가 커진다.
옆에서 얘길 듣던 조교는 어느새 핸드폰을 들어 검색하고 있었다.
“······그냥 인터넷에서 찾아낸 곡이라고요?”
“네. 그런데, 어쩐지 들으면 들을수록 낯설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연주해보고 있었어요.”
“그럼 본인이 작곡한 게 아닐 수도···.”
“아뇨, 선율 말고요. 음색이요.”
“음색이 익숙하다고요?”
셀린 교수가 자신의 바이올린, 과르네리를 내려다보며 끄덕였다.
“엄밀히 따지자면 조금 다르긴 한데, 이런 음색이라면······ 아무래도 한 명밖에 떠오르질 않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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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어, 다들.”
연습이 끝났다.
몇 시간에 걸친 연주에 기진맥진한 연주자들이 그제야 한숨을 돌린다.
물론···
“목관 악기 파트는 따로 남아서 연습하도록.”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곡소리가 나는 현장을 바라보는데, 파벨이 지나가며 나를 불렀다.
“ 얘기 좀 할까?”
뒤따라 나가자 파벨이 툭 던지듯 말한다.
“오늘 연주 훌륭하던데.”
“감사합니다.”
“너무 튀지 않게 음색을 조절한 것도 좋았어. 어떻게 단번에 음색을 바꾼 거야?”
“어디에든 잘 어울릴 음색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가 주변에 있거든요. 그리고 음색을 물감처럼 확확 바꾸는 바이올리니스트도 있고요.”
“그래서 그들처럼 해봤다?”
끄덕이자 파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음을 흘린다.
그리고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서며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독주 무대 악기는 정했어?”
아마도 이게 본론인 듯싶지.
“네. 피아노로 해보려고요.”
“좋네! 이왕이면 두 악기를 모두 다루는 게 좋겠지. 그럼 곡은?”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여쭤보려고 했는데···.”
운을 떼며 파벨을 바라봤다. 그리고 지휘봉을 케이스에 넣어 정리하는 그에게 물었다.
“자작곡으로 무대에 올라도 될까요?”
파벨이 홱 하고 날 바라본다.
상상도 못 한 얘기였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달싹였다.
“······자작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