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아이고, 둘 다 아주 열심히네.”
“극단장님!”
“헉, …안녕하세요.”
김상철과 강용휘의 등장에 남연수는 금세 낯을 가리고 작게 인사를 했다.
내가 이곳 연습실을 써도 된다고 해서 오긴 했지만, 여기 들어오기 전까지 남연수는 정말 괜찮은 거냐고 몇 번이고 되물었다.
자기 소속사가 아닌 다른 곳의 연습실에 간다는 게 긴장이 된 모양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랑 열심히 대본에 대해서 떠들어댔으면서 말이다.
“둘이 아주 열심히네. 우리는 이것만 주고 나갈게. 편하게 연습해요들?”
“열심히 해라.”
“네. 조금 이따가 한번 부를게요. 감독님도 한번 봐주세요.”
“그래, 그럼.”
우리에게 과자와 음료수 한 보따리를 준 김상철이 강용휘까지 데리고 연습실을 나갔다.
둘만 남은 연습실에서 우리는 다시 대본에 대해 열띤 토론을 나누기 시작했다.
“아니, 동아리방은 교실이랑은 구조가 다르지.”
“어떻게 다른데?”
우리는 조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 설정에 관해 이어서 말했다.
남연수가 지적한 부분은 바로 타미와 라이키가 동아리방에서 처음으로 둘만 남아서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었다.
거기서 내가 교실을 떠올리며 이런저런 동선을 이야기했더니 남연수가 그게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본에서도 딱히 동아리실이 어떤 구조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상세하게 나와 있지 않았다.
특이한 공간이 아닌 이상, 대본에 공간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는 건 거의 없다.
초등학교 동아리실 또한 한국이건 미국이건 특이한 공간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아직 초등학교를 가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인생을 두 번 살고 있다지만, 초등학교에 다닌 기억은 없단 말이다.
“……음. 사실 학교마다 달라. 한국 초등학교랑 미국 초등학교가 비슷할까?”
“한국 초등학교도 모르는 나한테 물으면 나야… 모르지.”
“그렇지. 음음, 아마 비슷할 거야!”
그러면서 남연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학교의 구조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다.
“교실은 이렇게 여기 연습실의 반? 아니다, 반의반? 정도 되는 공간에 책상이랑 의자가 주욱 늘어서 있어. 동아리실은 뭐 하는 곳이냐에 따라 다른데 아마 여기 작품에서처럼 밴드부면 악기가 채워져 있지 않을까? 그 외에는 비어있겠지. 어떤 동아리실은 소파나…….”
남연수는 차분하게 머릿속으로 자신이 아는 그림을 그리며 설명을 이어갔다.
“흐음, 그렇구나. 그럼 아까 내가 말한 것처럼 교실에서는 막 뛰어다니거나 하는 게 어렵겠네?”
“그럴 수 있어. ……내가 미국 초등학교까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내가 남연수를 부른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모르는 학교의 풍경을 알려달라는 것.
이번 작품 는 하필 배경이 초등학교였다.
초등학생 1학년 타미와 5학년 여학생 라이키.
그리고 꼴통 선생인 헤이글 세 사람이서 학교 동아리 밴드를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학교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한다.
뮤지컬이 아닌, 뮤지컬 영화이기 때문에 당연히 집이나 여타 다른 장소에 가서도 촬영을 하겠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배경은 학교였다.
다행히 남연수도 내가 타미 역을 따낸 소식을 듣고 나서 큰 관심을 보여주었다.
다른 곳도 아니라 바로 그, 레인보우 픽처스의 작품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남연수는 내가 하는 작품이라면 전부 관심이 지대한 것 같다.
과거 노아 시절, 나는 귀족 자제 모임에 나가거나 개인 교사에게 교육을 받은 적은 있긴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라는 곳에 가서 다른 어린 평민 아이들과 어울릴 기회 같은 건 없었다.
모임에 나가서도 성향이 잘 맞지 않는 귀족 아이들만 있었을 뿐, 친구도 없었다.
성향이 잘 맞는다 해도 어디 귀족이 매일매일 붙어서 놀 수만 있었겠는가.
그것을 내 아버지인 휴고 바텐베르크, 그자가 허락할 리 만무했다.
아마 그래서일까.
처음 오스카 극단에 갔을 때 그 시간이 더 귀하게 여겨졌는지도 모르겠다.
학교라는 곳은, 내가 오스카 극단에서 만들었던 그런 추억을, 어린 나이에 만들 수 있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아마 학교에 대해서는 남연수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보다 두 살이 많아서 벌써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으니까.
“학교는 어때?”
“으음, 괜찮아.”
“재미있어?”
남연수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길래 물어본 말이었다.
그러자 뜨끔한 표정을 지은 남연수가 눈을 데구르르 굴리면서 말했다.
“재미? 어…… 재미있을 때도 있는데.”
“재미없구나.”
“음, 수업은 그렇게 재밌지 않아. 보통 친한 친구들이랑 놀려고 가는 애들이 많다고 하니까.”
왜 남의 일처럼 말하는 거지?
의아하게 남연수의 표정을 살피다가 놀라서 물었다.
“뭐야. 연수 형 친구 없어?”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애가 바쁠 뿐이지, 어디 모난 데도 없고…….
자신감이 좀 없어 보일 때가 있지만 일도 열심히 하고 착한 아이였다.
정말 의문에 가득 차서 묻자 남연수가 아픈 곳을 찔렸다는 듯이 우물쭈물하게 대답했다.
“……윽, 내가 스케줄 때문에 매일 학교 빠지기도 하고…. 사실, 이상하게 애들이 나를 별로 안 좋아해.”
“흐음? 왜?”
“……그건 내가 알고 싶어.”
급격하게 시무룩해진 남연수를 보고는 머리를 굴렸다.
“같은 반 애들이 나빠?”
남연수가 같은 반 아이들에게 패악을 부리는 건 도저히 상상이 안 가니.
아마 원인은 이쪽이려나?
그러자 놀라서 남연수가 휙휙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그건 아냐. 여자애들은 내가 오랜만에 학교에 가면 선물을 잔뜩 주기도 하고. 그래. 먼저 와서 말도 걸어주고.”
“아아.”
뭔가 짚이는 데가 있었다.
여자애들은 좋아라 해준다는 말이지.
“뭐야? 시우 너는 뭔가를 알아?”
“아니, 몰라. 그래서? 다른 애들은?”
나는 일단 모른 척을 하면서 더 캐물어 보았다.
“으응, 그래서 남자애들은 쉬는 시간마다 교실 뒤에서 공 가지고 놀고, 점심시간에는 운동장에 가서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그러는데……. 이상하게 나는 잘 안 끼워줘. 이미 친한 애들이 다 정해진 느낌?”
“끼워달라고 말은 해봤어?”
“응……. 그런데 이미 인원수 다 찼다고 나 보고는 저리 가라고 해. ……거의 맨날.”
“허어.”
이거 괜찮은 건가? 생각하는데, 남연수가 고개를 답싹 들더니 외쳤다.
“그런데 괜찮아! 나는 시우가 있으니까.”
“응?”
같이 학교도 안 다니고 같은 반도 아닌데, 내가 있어서 괜찮다는 건 또 무슨 소리인가.
“같이 촬영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시간이 나면 전화도 할 수 있고, 문자도 할 수 있으니까!”
“그래……?”
이거 생각보다 내 존재가 남연수에게 아주 거대한 모양이다.
“응! 걔네들이랑은 이런 이야기도 못 하잖아. 처음에는 내가 스케줄 때문에 학교도 많이 빠지고 내 사정을 선생님도 봐주는 게 미안해서……. 아이스크림, 햄버거, 피자, 음료수, 과자 같은 것도 좀 돌려봤는데, 별 소용이 없는 것 같더라고.”
“…….”
남연수 이 자식…….
그동안 고생이 많았겠구나.
저렇게 노력을 했는데도 남자애들이 무리에 안 끼워줬나 보다.
어린 것들이 벌써부터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시기하고, 또 따돌리기까지 하다니.
또, 하필 그 대상이 누구보다 올곧은 아이인 남연수라니.
눈물이 날 것 같다.
“하하, 그래서 그냥 이제는 조용조용 다니고 있어. 그래도 초등학교는 수업이 일찍 끝나니까 다행이야. 중학교는 예술중이나 연예인들이 많이 다니는 곳으로 들어가려고.”
“아아, 그래서 나도 청염 초등학교 원서 제출했어.”
이 이야기를 듣다 보니 노백찬의 말을 듣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염 초등학교 이야기가 나오자 남연수의 눈이 커다래졌다.
“와, 진짜?! 나도 거기 생각했다가 아빠가 초등학교는 일반적인 데 다니는 게 연기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셔서… 원서도 못 냈어.”
“으응, 그래…….”
그런 사람이 애가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할까?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그러다가 우리 사이에 있는 대본을 내려다 보는데, 묘하게 기시감이 들었다.
어째…… 듣다 보니 이 Dynamite의 주인공이랑 남연수의 입장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완전 따돌림을 당하는 건 아닌데, 은근히 따돌림 당하는 상황이지 않은가.
본인은 괜찮다고는 하지만, 듣기만 해도 괜찮지 않다는 걸 알겠다.
되도록 문자 답장을 길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그룹이 형성된 애들끼리만 노는 건 몇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모양이다.
이것만큼은 400년이 지나도 어째 바뀌는 게 없는지 모르겠다.
낯을 가리던 성격이었던 과거의 나도 또래 집단 사이에서 겉도는 존재였다.
바텐베르크의 성을 짊어지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또래들을 사로잡는 큰형님과는 다르게 나는 말수가 없고 숫기가 없었다.
거기에다가 계승순위가 마지막인 막내 공자인 내게 아주 친근하게 대하는 사람도 없었다.
바텐베르크의 이름이 무서워서 나를 아예 배척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또래 집단이 모이는 살롱이나 연회에 가서도 항상 파벌이 나뉘어 있다는 건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런던 템스강 인근에 위치하고 있던 공작가는 두 개.
하나는 우리 바텐베르크가였고, 다른 하나는 에든버러가였다.
에든버러의 공자와 우리 큰형님이 주축이 된 파벌 싸움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작은형님은 애초에 이런 시끄러운 연회는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사냥이나 나갔다.
다만, 나는 연회를 빠질 배짱은 없어서 홀에 나가 그들의 기싸움에 체하고는 했다.
오스카 극단에 들어가서 연기를 시작한 이후에는 연습할 시간도 바빠 그런 자리에는 얼굴도 잘 내밀지 않게 되었지만.
“아무튼! 나 여기 나오는 이런 장면은 엄청 잘 알려줄 수 있어.”
“뭔데?”
잠시 옛날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남연수의 쾌활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남연수는 의기양양하게 대본의 어디 한 부분을 손으로 짚고 있었다.
그리고 남연수가 짚은 부분을 보고는 내가 할 말을 잃었다.
…이걸 잘 따라 할 수 있다고? 왜?
“여기 보면 타미를 괴롭히는 이 우두머리 같은 학생 있잖아? 우리 반에 꼭 이런 애가 한 명 있거든!”
“형도 괴롭혔어?!”
“아, 아니야. 나는 학교에 잘 없어서 나는 안 건드려. 대신 돌아가면서 고루고루 애들을 다 괴롭혀.”
“와, 악질이네 진짜.”
“응. 그렇지 뭐. 덩치가 커서 그런가 봐. 하여튼 내가 몇 번 봐서 이거 잘 따라 할 수 있는데 해볼까?”
해맑게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무서운 소리를 하는 남연수.
저것도 다 나를 도와주고 싶어서 하는 말임을 알기에 고개를 절레 내젓고는 일어났다.
“그럼 한번 합을 맞춰볼까?”
“좋아! 자, 잠시만…… 나 대사 다 못 외웠어. 그런데 이 단어는 발음을 어떻게 해?”
나는 잠시 타미를 괴롭히는 조연 아이의 대사를 알려주었다.
남연수는 여러 번 발음하면서 영어 대사를 외우고는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아, 노랑이 오셨나?”
“…아, 아니야.”
“뭐? 뭐라고? 발음이 후져서 잘 안 들리는데!”
동양인을 비하하는 말로 시작되는 대사는 그 뒤로도 실감 나게 이어졌다.
나름 두 살이 더 많다고 나보다 덩치가 조금 더 큰 남연수여서 그런지 배역에 얼추 잘 들어맞았다.
그나저나 아까는 같은 반 애들이 다 착하다면서 도대체 어떤 빌런을 봐왔길래 연기가 이렇게 실감 나는 거야?
평소에 착한 아이 그 자체인 남연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실감 나는 연기였다.
“어이 꼬맹이. 지금 너 키면 유치원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혹시 아직 글도 못 읽어서 여기가 유치원인 줄 알았나? 크크큭.”
…역시 남연수는 연기를 잘하긴 한다.
하마터면 욱할뻔했다.
“…비켜줘.”
욱한 감정은 버리고, 대신 곧바로 소심한 타미로 변모해서 그 대사에 맞받아쳤다.
우리는 한동안 영어로 대사를 내뱉으며 교실 속 한 장면을 완성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