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한국에서의 촬영을 무사히 끝내고, 촬영팀은 희희치킨이 있는 먹자골목에 가서 회식까지 거하게 치렀다.
미국에 있는 멤버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팀의 수장인 브라이언이 치맥은 포기 못 한다고 선언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다들 어서 맥주와 함께 이 치킨을 맛보라고!”
희희치킨 한복판에서 브라이언이 쩌렁쩌렁하게 스태프들을 독려했다.
덕분에 아버지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끊임없이 치킨을 튀겨 내야 했다.
“아빠 양념치킨 일곱 개 더 달래…….”
나는 아까부터 주방에서 나올 새가 없는 아버지에게 약간 미안한 듯이 말했다.
바쁠 줄은 예상했지만,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어! 그럼! 금방 해줄게.”
우리 가게가 먹자골목에서 그리 작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100명에 달하는 인원을 모두 수용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결국 우리는 옆 가게를 하루 전세 내서 두 가게를 통째로 차지하고 회식을 벌였다.
본사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음에도, 브라이언은 사랑하는 수고한 촬영팀 전원에게 이 치맥의 맛을 직접 보여주고 싶다는 염원과 함께 통 크게 쏘기로 했다.
아버지가 돈은 괜찮다고, 안 받아도 된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줄줄이 들어오는 스태프의 인원을 보고는 조용히 입을 닫았다.
“시우야, 미국인들은 먹성도 끝내주는 거 같다.”
“나는 지금 팔이 끊어질 것 같아…….”
덕분에 어마어마한 매출을 올리게 된 아버지는 신이 나셨다.
그 옆에 강제로 일일 아르바이트생이 된 삼촌은 생맥주를 나르느라 진이 빠졌지만 말이다.
“시우, 이제 한동안 못 보겠네.”
“시우의 타미 없이 나는 이제 무슨 낙으로 살지? 어? 무슨 낙으로 사냐고……!”
“하하, 진정해요. 이번이 끝은 아니니까요.”
아쉬움을 표하는 배우들에게 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나도 이번에야 알았지만, 뮤지컬 영화는 일반 영화보다 훨씬 제작 기간이 길었다.
완벽한 합을 맞추기 위해 한 장면을 며칠에 걸쳐서 찍기도 했고.
아무래도 할리우드 자본이 많이 들어간 영화인만큼 그만큼 극한의 완성도를 원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나는 한국 촬영까지 마쳤음에도 종종 미국으로 건너가 추가 촬영을 하게 되었다.
아직 촬영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니 말이다.
내가 미국에 가면 만날 수 있다고 달래서 그런지.
동료 배우들은 그날을 고대하겠다며 새벽 늦게까지 축배를 들었다.
“하아…….”
다음날, 정신없이 공항까지 나가 그들을 배웅하고 나자, 평화가 찾아왔다.
***
오랜만에 찾아온 한가로운 기간.
이따금 미국에 갈 때가 아니면, 따로 스케줄을 잡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새 날짜는 10월 중순이 되었다.
12월에 있는 공모전에 제출할 극본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했다.
본격적으로 극본 작업에 들어가기 전, 나는 노백찬의 저택을 찾았다.
나는 노백찬의 서재에 앉아 제주도에서 공수해 왔다는 세작을 홀짝였다.
“향이 좋네요.”
“그러냐.”
노백찬은 내가 건네준 종이 뭉치를 넘겨보느라 내 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대답했다.
돋보기를 코끝에 걸쳐 쓴 그는 내가 온 것 보다 저 종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랑곳하지 않고 집중했다.
“후룩-”
여유로운 척 차를 홀짝였지만, 사실 속으로 내심 긴장 중이었다.
지금 노백찬이 읽고 있는 것이 바로 내 노력의 결정체.
이번 공모전을 위한 극본의 시놉시스였던 것이다.
바쁜 촬영 스케줄 속에서 겨우 정리한 시놉시스였다.
공모전 참가를 결정하기 전 노백찬에게 보여주곤 했던 한두 장의 짤막한 스케치가 아니었다.
오늘은 나름 제대로 된 시놉시스와 인물 관계, 캐릭터에 대한 구체적인 설정도 함께 들고 왔다.
그러다 보니 십여 장이 넘는 양이 되었다.
노백찬이 종이를 하나씩 팔랑 넘길 때마다 심장이 죄어왔다.
원래는 의 촬영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했건만.
이미 그 전에 소재나 스토리 라인은 이미 다 떠올랐기에 정리를 싹 해버렸다.
거기에다가 미국에서건, 비행기에서건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했다.
그렇게 틈날 때마다 디테일을 채운 결과물이 오늘 나온 저 종이 뭉치였다.
“흐음…….”
“…….”
나는 숨을 죽이고 노백찬의 반응을 관찰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내가 극본을 보여준 경험이 그리 많지가 않았다.
과거, 내가 노아였을 시절에는 올리버에게 당연히 보여주었고.
그 외에는 올리버가 오스카에게 보여주었지.
오스카 극단에 들어간 다음에는 셰익스피어와 단원들 몇 명 정도가 다였다.
바이올렛이 내 극본을 공연으로 올리고 싶어 했지만, 내가 반대했다.
아직 나 스스로 만족할 만큼 완성된 극본이 없는 것 같다며.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노백찬이 유일했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떨리는 손을 찻잔을 꼭 쥐는 것으로 가렸다.
……이번에 내가 쓴 극본의 내용은, 두 소년의 우정 이야기였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힘겹게 우정을 나누는 두 소년에 대한 이야기.
주인공은 10살의 일본인 남자아이와 조선의 남자아이다.
나는 이 두 아이의 시선을 통해 비극적인 시대가 주는 아픔.
그리고 그사이에도 피어오르는 인간애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작품을 쓰고 싶었다.
동시에, 그 비극을 통해 현시대의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있었고.
어느 시절이나 비극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법이니까 말이다.
“허어,”
조용히 혼자서 이번에 쓴 극본의 내용을 더듬어보고 있는 와중, 앞에서 노백찬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할아버지……?”
조용히 내가 건넨 시놉시스를 덮은 그는 평소처럼 허허, 하고 웃는 웃음은 보이지 않았다.
저게 과연 어떤 반응일까 싶어서 나는 조용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시우야.”
“네.”
한참이나 가만히 있던 노백찬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내 대답에 노백찬은 콧등에 걸쳐져 있던 돋보기 안경을 벗어서 테이블 위에 올려두며 물었다.
“어떤 생각으로 이 극을 쓰게 된 것이냐.”
‘좋다’, ‘싫다’라는 말 대신 나온 질문.
나는 노백찬의 질문에 지금까지 이 시놉시스를 적으며 생각했던 생각을 풀어냈다.
“이번에 을 찍기 전부터 이 나라 역사에 흥미가 있었어요.”
“이 나라? 허허, 한국 말이지. 그래…… 굴곡이 많기는 했지.”
“네. 그렇더라구요.”
전생에서는 있는 줄도 몰랐던 한국이라는 나라의 역사.
나는 내가 새롭게 살아가게 된 터전의 역사에 대해 흥미가 많았다.
예전부터 TV에서 방영하는 사극을 눈여겨본 것도 다 그 흥미 때문이었다.
전생의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역사도 궁금했지만, 그보다는 그 이후의 역사에 더 흥미가 가는 게 사실이었다.
정확히 말해 400년 전, 노아가 비참하게 쓰러져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난 후.
그리고 2002년의 한시우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이 땅은 과연 어떤 일을 겪어왔을까.
단순히 내가 살아가야 할 이 땅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는 것을 넘어 알고 싶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영국이라는 커다란 나라가 전부라고 믿었던 내 눈에 한국은 멋진 문화를 구축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한국의 역사를 알아가던 와중, 일제강점기를 알게 되었다.
처음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를 알게 되었을 때 겪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했다.
정녕 이 땅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벌써 몇십 년이 지난 일이건만, 내 일처럼 몇 날 며칠을 분노에 떨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내가 이 극본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은 단순히 일제강점기를 사실적으로 재현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 절망적인 시대상과, 잘못된 교육관 안에서 잘못된 사상을 강요받는 당시 실태를 ‘아이들’의 시선으로 그리고 싶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 아이들은 언어와 문화를 잃었다.
그리고 일본 아이들은 약자를 향한 폭력과 갑질이 당연하다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 잘못된 사상 안에서 자신의 길, 도덕적 올바름은 어디로 갔을까.
역사책 안에서는 결코 알 수 없던 이야기를 더듬어보고 싶었다.
그 시절, 낭만과 우정을 찾고자 하는 아이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믿으며.
그리고 통탄스러운 내 마음을 대변하는 극본이기도 했다.
과거, 나에게는 족쇄이기만 했던 잘못된 교육이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아서.
단 며칠을 간 유치원,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던 독서 교실.
거기서 압박 속에 살아가는 어린아이들이 내 눈에 보였다.
그리고…… 가족 같은 친구, 남연수를 가까이 보면서 느꼈다.
상황과 압박이라는 것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아직 기댈 곳 없는 아이들에게 가해진 압박과 폭력은 무언가를 포기하게 만든다.
마치 과거 하고 싶은 것을 놓아버려야 했던 전생의 나, 노아처럼 말이다.
그건 400년 이 지난 지금.
현재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로봇 같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전 그들이 그렇게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아요. 그 어떤 상황과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찾았으면 해서, 그것도 맞겠죠. 그런데 거기서 그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압박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커요. 그래서, 아이들이 주인공이지만, 아동극은 아니에요. 저는 어른들이 봤으면 하고 이 극본을 썼어요.”
현재의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아픈 과거를 통해 경종을 울리고 싶어서, 뭐 그런 거창한 뜻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그냥 그들에게 한번 느껴보라고 해주고 싶다.
당신들의 압박 속에 아이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걸 경험하는지.
“설마, 그래서 이 비극적인 결말을 만든 거냐.”
“그렇게 느끼셨어요?”
“…….”
“성공… 인 걸까요. 충격이 있어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테니.”
“……그래, 그렇단 말이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내 대답이 끝났음에도 노백찬 한동안 뭐라 말이 없었다.
더 이상 그의 감상을 묻지 않고 조용히 찻잔을 들이켰다.
***
“…….”
한시우가 떠나고 텅 빈 노백찬의 서재.
10월에 접어들어 해가 조금씩 이르게 저문다.
어둑한 저녁의 차분한 공기.
항상 똑같은 풍경의 서재이건만 이곳에 가만히 앉아 있는 노백찬의 표정이 예사롭지가 않다.
이미 그의 앞에 놓인 찻잔 속 차는 다 식은 지 오래였다.
오늘 노백찬은 손수 준비한 차를 한 모금도 채 제대로 마시지 않았다.
정확히는 찻잔에 손을 댈 생각조차 못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서재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그의 집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이가 서재에 들어와 찻상을 물리려고 했건만.
소파에 앉아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 노백찬을 보고 조용히 발길을 돌렸다.
탁.
조용히 서재의 문이 닫히고, 그 뒤로도 수 시간이 흘렀다.
노백찬은 여운이 남은 듯 책상에 놓인 한시우의 시놉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지금껏 거장이라는 이름을 짊어지고 수많은 시놉시스와 극본을 봐왔다.
연극의 극본일 때도 있었고.
영화의 시나리오일 때도 있었다.
정말 슬픈 이야기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칭송하는 극본, 감동적인 이야기가 먹먹해진다는 극본을 모두 봐왔건만…… 이런 기분은 또 오랜만이다.
시놉시스만 봤을 뿐인데 마음이 먹먹하다니.
“허허, 참…….”
또다시, 조용한 서재 안에 그의 헛웃음이 흘렀다.
짧은 연극으로 담아내기에는 너무나 어지러운 시대, 일제강점기.
예사롭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속은 더욱 깊었다.
어지러운 시대에 겉으로는 체념한 듯하지만, 여전히 낭만과 순수함을 품고 살아가는 두 소년의 이야기.
비극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희망을 찾아가는 아이들의 서사가 늙은 노백찬의 가슴을 울리고 말았다.